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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화 효소 중간체의 비밀 밝히다

생체모방시스템 연구단

자동차는 휘발유를 사용해 움직인 뒤 오염물질이 포함된 배기가스를 배출한다. 마찬가지로 산소는 우리 몸에 쓰이는 에너지인 ATP를 만들거나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물질 대사 과정에 쓰인 뒤 독성물질인 ‘활성산소’를 만든다. 활성산소는 산소가 에너지를 받아 전자가 들뜬상태로 반응성이 매우 높다.

이런 불안정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활성산소는 주위의 다른 물질의 전자를 뺏는 산화반응을 일으킨다. 산소는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미노산을 산화시켜 단백질을 망가트리고 세포나 세포소기관에 손상을 입히는 ‘양날의 검’인 셈이다. 몸에 활성산소가 많이 쌓일 경우 DNA 염기가 변형되거나 당이 산화되기도 하는데, DNA 염기에 변형이 일어나면 돌연변이나 암의 원인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효소기질 복합체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남원우 교수가 이끄는 생체모방시스템 연구단은 우리 몸의 효소를 모방해 인공 효소를 개발한다. 그중에서도 연구단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는 ‘산소화 효소’다. 산소화 효소는 몸에 들어온 산소 분자의 결합을 끊어 산소 원자로 바꾸며 산소가 필요한 반응에서 반응속도를 높인다. 이렇게 생긴 산소 원자는 ATP 합성이나 음식물 소화 등 다양한 대사 작용에 쓰인다.

효소는 생물체가 만든 고분자인 단백질로 몸속에서 다양한 화학반응을 빠르게 또는 느리게 하는 촉매다. 현재까지 알려진 효소는 약 2500여 종이며 일반적으로 체내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화학 반응에는 반응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효소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보면 입에 침이 고이는데 음식물의 소화과정에도 수많은 효소가 쓰여 분해와 흡수를 돕는다. 침에는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효소인 아밀라아제가 포함돼 있다. 위에서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인 펩신이 이자에서는 지방을 분해하는 효소인 리파아제가 분비된다. 만약 몸속에 멸균상태가 유지되고 소화효소가 분비되지 않는다면 음식물은 소화가 되지 않는다.

효소는 이처럼 반응에 쓰이는 원료 물질인 기질(예를 들며 음식물)과 결합해 ‘효소-기질 복합체’를 만들어 반응의 활성화 에너지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활성화 에너지는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과 같은 에너지다.

예를 들어 롤러코스터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위해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이때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 에너지가 일종의 활성화 에너지인데 효소는 롤러코스터가 올라가야 할 높이를 낮춰 에너지 소모를 줄이지만 속도는 원래 높이에서 떨어질 때와 같게 유지한다.

그런데 효소-기질 복합체가 생기는 시간은 수십에서 수백만 분의 1초로 매우 짧아 대부분의 반응에서 효소-기질 복합체를 실제 관찰하기 어렵다. 화학 반응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산소화 효소 중간체의 존재와 구조를 밝히는 일은 오랫동안 화학계가 풀지 못한 과제 중 하나였다.

남 단장은 “실제 반응이 일어나는 부분은 효소 전체 크기의 수십에서 수백분의 1에 해당하는 부분”이라며 “게다가 화학반응이 굉장히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효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효소를 이루는 단백질 크기는 작은 경우 DNA 이중나선의 폭과 같은 약 2nm(나노미터, 1nm=10-9m)에서 큰 경우 약 10nm로 세포막의 지질 이중층 두께(7nm)보다 크다.

그래서 연구단은 효소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활성부위만 모방한 뒤 인공효소를 만들어 그곳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연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예를 들어 헤모글로빈이 산소를 어떻게 세포에 전달하는가를 연구하려면 헤모글로빈의 활성부위 구조를 X선으로 알아낸다. 만약 활성부위에 철과 질소, 탄소, 산소가 있다면 실험실에서 이 구조를 똑같이 합성한 뒤 연구한다.

시토크롬 P450 중간체 세계 최초로 밝혀
인공효소는 어디에 쓰일 수 있을까. 뇌에 산소가 모자랄 경우 뇌졸중에 걸릴 수 있는데 이때 산소를 전달하는 산소화 효소로 뇌에 산소를 공급하면 뇌졸중을 치료할 수 있다.

연구단이 효소 중간체 연구에 매달리는 이유는 인공효소를 만들려면 효소가 관여하는 화학반응의 전체 과정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 단장은 “효소의 화학반응에서 생성되는 중간체의 형태와 기능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마치 미로에서 입구와 출구는 알고 있지만 중간에 어떤 과정을 거쳐서 미로를 벗어나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인공효소모방시스템을 이용해 2003년 2월 세계 최초로 ‘시토크롬 P450’이란 산소화 효소의 중간체를 찾아내 ‘사이언스’에 게재했다. 시토크롬 P450은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체내에 생긴 지방 성분의 노폐물을 땀이나 소변에 녹여 배출시킨다. 학계에서 시토크롬 P450의 중간체가 형성되는 과정이 몇 단계인지가 계속 논란이 돼 왔다. 연구팀은 P450의 2번째 단계 중간체를 찾아냈고 사이언스는 이 논문을 화학계의 오랜 난제를 풀어낸 성과로 평가했다.

연구팀은 2005년 시토크롬 P450의 중간체를 합성한 뒤 방사광가속기로 관찰하며 배위결합된 황 작용기가 산소 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 ‘사이언스’에 다시 한 번 논문을 게재했다. 생체 내 산소화 효소의 신비를 풀 수 있는 기반을 모두 마련한 셈이다. 2007년에는 효소 중간체의 축을 변화시킬 때 화학적 성질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연구해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했다.

연구단은 효소 중간체의 구조를 분석하기 위해서 X선 에너지의 세기를 변화시키며 투과 전후의 X선 흡수 계수를 분석해 원자 배열의 구조를 알아내는 ‘X선 흡수 미세구조 분석장치’(EXAFS)같은 장비를 이용하며 짧은 시간에 빠르게 일어나는 화학반응도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리게 보여 주는 분광장비(Stopped-Flow)도 이용한다.

전 세계 생무기화학 분야의 중심지
효소의 생체반응을 모방한 인공생체시스템을 개발해 산업이나 의약에 응용하려는 움직임은 세계 각국의 생무기화학 연구실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남 단장과 연구단이 있다. 연구단은 일본의 오사카대나 미국 스탠퍼드대 등 전 세계 연구진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공동연구도 하며 선의의 경쟁도 벌인다.

연구단의 학생들은 해외 연구팀과 공동 연구를 하며 경험을 쌓고 학술 교류를 하기 위해 일본 효고대 및 오사카대를 연 2회 이상 방문하며 국내외 학술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한다. 연구단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금남’(禁男)의 대학인 이화여대에 인도에서 찾아온 4명의 남성 박사후연구원도 있다. 그래서 실험실에선 한국어, 힌두어, ‘콩글리시’를 비롯해 ‘인도리시’까지 쓰인다. 하지만 연구를 처음 시작한 199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어려움도 많았다. 남 단장은 “생체모방시스템 연구에는 2~3억 원씩 하는 고가의 분광장비와 질량분석기기가 필요할 뿐 아니라 해석 전문가가 있어야 하는데 장비나 인원 모두 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연구할 수 있는 기본 인프라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셈이다.

예를 들어 헤모글로빈에 있는 철의 산화상태를 측정하는 모스 바우어 같은 기기와 여기서 나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화학적 계산이나 분석할 전문가가 국내에 없었다. 그래서 남 단장은 처음에는 2~3억 원하는 고가의 장비가 아닌 천만 원 정도의 자외선 분광기기를 이용해 중간체의 구조 분석보다는 반응성을 측정하는데 주력했다. 일종의 ‘틈새시장’을 찾은 셈이다. 점점 노하우를 쌓아가며 연구단은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고 이제는 인공생체시스템 분야에서 전 세계의 다른 연구팀과 정면승부를 한다.

연구단의 서미숙 박사는 “연구단에서 이화여대 최초로 미국 MIT 화학과와 하버드대 화학과에 진학하는 박사과정 학생을 배출했다”며 “교수님은 때로는 엄한 아버지 같지만 많은 여학생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멘토”라고 말했다. 연구단은 생무기화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여성 과학자를 배출하는 인큐베이터로 자리 잡고 있다.

인공효소를 만들려면 효소가 관여하는 전체 화학반응을 이해해야 한다.
효소의 화학반응에서 생성되는 중간체의 형태와 기능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마치 미로에서 입구와 출구는 알고 있지만 중간에 어떤 과정을 거쳐서 미로를 벗어나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한국 과학계 위상 높인 스타 과학자
2000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수여하는 ‘젊은과학자상’ 2005년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2006년 ‘대한화학회 학술상’, 2007년 ‘경암학술상’에서 지난해 말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수여하는 ‘닮고싶고 되고싶은 과학기술인’ 상까지. 만약 남 단장이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다면 ‘건도’ 유세윤 씨는 분명 ‘당신은 욕심쟁이 우후훗!’ 할 것이다.

국내외에서 명성을 얻은 남 단장은 전 세계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남 단장은 국제 생무기화학회(SBIC)에서 아시아 국가 대표를 맡고 있으며 최근 5년 동안 국제 학술회의에서 기조강연 10회를 포함해 초청 강연 40회를 하며 전 세계에 한국 과학계의 위상을 높이는데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남 단장이 미국 LA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돌아와 처음 홍익대 강단에 섰을 때는 아무도 이 젊은 교수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남 단장은 “변변한 연구실조차 없어 학생들이 쓰는 화학 실험실 한쪽 구석에 간이 실험실을 만들어 놓고 실험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연히 수억 원이 넘는 고가의 연구 장비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남 단장은 고려대 기초과학연구소에 있는 질량분석기기 등을 빌려 써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장비 사용 에 제약이 있어 제대로 연구를 하기 어려웠다.

1994년 이화여대에 부임한 뒤에도 10여 평 남짓한 작은 연구실에서 남 단장은 석사 과정 학생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험하고 토론했다. 노력은 곧 결실로 나타났다. 연구단은 이화여대 최초로 ‘미국화학회지’(JACS)에 논문을 발표했고 인공효소모방시스템도 개발했다. 2003년 이후 ‘사이언스’를 포함해 ‘PNAS’ 등 유명 학술지에 7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고 그 피인용 횟수는 1600회에 이른다. 남 단장은 “연구단의 비상(飛上)은 이제 시작”이라며 “전 세계 생무기화학 분야를 깜짝 놀라게 할 연구단을 지켜봐 달라”며 포부를 밝혔다.

남원우 단장

1985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화학 학사
1990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UCLA) 화학 박사
1990~1991 미국
UCLA 박사후연구원
1991~1994 홍익대
화학과 교수
1994~현재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교수
2003~현재 창의적 연구진흥 사업 생체모방시스템 연구단 단장

배위결합
두 원자 사이에서 한 쪽이 전자쌍을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결합.
생무기화학
철이나 마그네슘 같은 무기물질이 몸속에서 일으키는 화학반응이 생명 현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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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준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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