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노벨 생리의학상이 발표된 뒤, ‘네이처’가 가장 먼저 인터뷰한 사람은 빌 위크너라는 과학자였다. 미국 다트머스대에 있는 필자의 지도교수인데 세 명과 두루두루 친분이 많았다. 덕분에 필자도 수상자들을 직접 만나거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러나 보니 사생활도 조금 들었는데 공교롭게도 수상자인 랜디 셰크먼 교수의 아내가 바로 위크너 교수의 전 여자친구다. 우리네 정서에는 다소 민망한 상황인데도 위크너 교수는 종종 이 이야기를 꺼낸다. 더구나 이들은 매년 같이 모여 공동연구도 하고 스키도 타며 둘도 없는 절친으로 지내고 있다.
우리 분야의 과학자들은 예전부터 랜디 셰크먼과 제임스 로드먼의 노벨상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해왔다. 두 사람의 업적이 워낙 탁월한데다 노벨상의 예고편인 래스커 기초의학연구상을 2002년에 이미 받았기 때문이다. 또다른 수상자인 토마스 쥐트호프도 올해 이 상을 받았다.
또 하나, 노벨 과학상을 받는 과학자들은 마피아처럼 혈연으로 뭉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실험실을 중심으로 한 스승과 제자 사이를 말하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로드먼과 셰크먼 그리고 필자의 지도교수인 빌 위크너 세 사람의 연구를 이끌어준 사람은 바로 스탠퍼드대 생화학과의 터줏대감인 아서 콘버그 교수로 DNA합성효소를 발견해 1959년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다. 또 쥐트호프의 지도교수였던 텍사스대 마이클 브라운과 조셉 골드스타인도 198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처럼 최고의 과학자와 열정어린 신인이 한 공간에서 만나 지적인 자극과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노벨상을 받는 모습은 부럽기만 하다.
세포의 특급 택배 서비스
이제 세 사람의 연구를 살펴보자. 간단히 말하면 이들은 세포 안에서 필요한 물질을 작은 주머니(운반소낭, vesicle)에 담아 필요한 곳에 보내는 데 필요한 생명현상을 연구했다. 세포 안에서 활동하는 택배회사가 어떻게 짐을 싸고, 주소대로 배달하는지를 밝혀낸 것이다.
사실 세포 내부는 필요한 물질을 목적지로 배달하는 데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어느 곳에서는 물질이 만들어지는 반면, 또 다른 곳은 물질의 분해가 활발히 일어난다. 예를 들어 세포질에서 단백질을 만든 뒤 세포막으로 보낸다고 생각해 보자. 세포질에서 만들어진 단백질은 정확하게 세포막으로 배달해야 하는데, 실수로 단백질을 분해하는 리소좀으로 배달한다면, 기껏 만들어 놓은 제품을 트럭에 실어 쓰레기 처리장으로 배달하는 꼴이 된다.
세포는 이런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고 정확한 주소로 물질을 배달하기 위해 작은 주머니에 물건을 담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일단 주머니에 들어가면 물질은 단백질 분해효소 등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 게다가 주머니에는 배달장소의 정확한 주소가 적혀 있다. 주머니를 이용한 택배 방식은 세포 내부뿐만 아니라 세포 내부에서 외부로, 또는 외부에서 내부로 필요한 물질을 들여보낼 때도 사용하는 방식이다. 즉 췌장세포가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 호르몬을 밖으로 분비하거나, 신경세포가 시냅스라는 연결 부위에서 신경전달물질을 내보내는 과정 등이다.
택배용 주머니는 세포 안에 있는 여러 기관(세포소기관)에서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세포 안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작은 기관은 자신을 둘러싼 생체막으로 주머니를 만든 뒤 필요한 단백질을 골라 담는다. 이 주머니가 떨어져 나오면 트럭격인 모터 단백질이 달라붙어 필요한 곳으로 운반한다. 트럭이 다니는 고속도로가 바로 미세소관(microtuble)이다. 이 주머니는 목적지에 도착한 뒤 세포막이나 다른 소기관의 막과 융합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목적지에서 필요한 물질을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막융합은 스네어(SNARE)라는 단백질이 중계한다. 주머니에 붙어있는 스네어 단백질과 세포막에 붙어있는 스네어 단백질이 서로 지퍼처럼 결합해 막이 융합하는 것이다. 세 명의 수상자는 세포의 물질수송과 관련된 각 단계를 조절하거나 일으키는 단백질과 유전자를 찾아내고 상세한 과정을 밝혀냈다.
냉장고에 피로 가득찬 병을 넣어 두던 어린시절
랜디 셰크먼 교수는 싫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점잖고 자상한 과학자다. 조용하지만 가끔씩 던지는 위트 있는 농담과 미소는 묘한 카리스마와 매력이 있다. 세계적 과학학술지인 미국국립과학원 회보(PNAS)의 편집장을 6년이나 맡았을 정도로 존경을 받고 있다.
셰크먼 교수는 어린 시절 과학을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차고에 실험실을 차려 놓았는데 어머니가 냉장고에서 피가 가득 들어 있는 병을 발견하고 까무라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10대 시절 여동생을 백혈병으로 잃은 뒤 의사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대학교에서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의 분자생물학 교과서를 읽고 나서 생명과학자의 길로 들어선다. 대학을 졸업할 때 이미 ‘네이처’에 논문 한 편, ‘분자생물학회지’에 논문 2편을 발표해 어린 천재로 유명했다.
랜디는 1974년 대학원생 시절 처음으로 미국세포생물학회 학술대회에 참가한다. 그곳에서 막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조지 팔레드의 강연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는다. 이번 수상의 주제이기도 한 생체막 주머니를 이용한 물질 수송이 주제였다. 랜디는 자신의 실험실이 생기면 세포의 물질 수송을 연구하겠다고 결심하고 1976년 마침내 UC버클리 교수가 된다.
셰크먼 교수는 돌연변이 효모를 이용해 연구를 시작했다. 어느날 밤 자정 집에서 자다 “빨리 학교의 전자현미경실로 오라”는 전화를 받는다. 부리나케 가 봤더니 돌연변이 효모의 몸 안에 작은 주머니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운반주머니가 만들어진 뒤 필요한 곳으로 가서 다시 세포막과 융합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추론했다. 이 효모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난 유전자가 바로 세포막 융합에 필요한 유전자였던 것이다. 셰크먼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 물질수송에 필요한 유전자와 단백질을 대거 찾아냈다. 그는 훗날 “내 인생에서 가장 흥분된 날”이라고 회상했다.
대학시절 마리화나 피운 노벨상 수상자
또다른 수상자인 제임스 로드먼 교수는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의사가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뜻과 달리 그는 물리학자가 되고 싶어했다. 훗날 로드먼 교수는 “어렸을 때 물리학자는 스마트하고, 화학자는 그럭저럭 봐줄만 하고, 생물학자는 멍청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게 된 것도 아이러니하다.
예일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로드먼은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전공하고 생체막 전문가였던 유진 케네디 교수의 박사과정 학생이 된다. 그가 물리학을 버리고 그토록 무시하던 생화학을 하게 된 이유는 확실하지 않으나 예일대를 다닐 당시 히피문화의 영향으로 마리화나를 피우는 등 대학생활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로드먼도 1978년 스탠포드대 생화학과에서 자신의 실험실을 갖게 되고 세포수송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셰크먼 교수가 UC버클리에서 돌연변이 효모를 연구하고 있을 때다.
로드먼은 정상세포와 돌연변이 세포를 파괴해 만든 용액을 이용해 시험관 안에서 단백질이 이동하는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로드먼은 이 시스템을 이용해 단백질 수송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하나씩 발견해 나간다. 이 중 하나가 운반 단백질을 생체막에 붙게 하는 단백질, 즉 처음에 말한 스네어 단백질이다. 나중에 셰크먼이 발견한 단백질과 로드먼이 발견한 단백질이 서로 같은 단백질이라는 사실도 밝혀진다.
로드먼은 셰크먼과 달리 직설적인 성격이어서 동료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곤 했다. 필자도 로드먼과 한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의 기에 눌려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한 아쉬운 기억이 있다. 재밌게도 셰크먼은 지금도 여전히 UC버클리 교수인데 비해, 로드먼은 스탠포드대, 프린스턴대, 슬로언-케터링 연구소, 콜럼비아대를 거쳐 지금은 예일대 교수로 꽤 여러 곳을 옮겨다녔다.
마지막 수상자인 토마스 쥐트호프 교수는 독일에서 태어나 1982년 괴팅겐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미국 텍사스대 남서부의학센터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시작한 쥐트호프는 혈관에서 콜레스테롤을 운반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를 발견하게 된다. 이 성과를 포함해 콜레스테롤 대사조절에 대한 연구로 그의 지도교수였던 마이클 브라운과 조셉 골드스타인은 앞서 말한대로 1985년 노벨상을 받게 된다. 27년이 지나 이번엔 쥐트호프가 받게 되니 노벨상은 역시 대물림되나 보다.
신경세포에 관심이 많았던 쥐트호프는 신경세포의 연결부위 즉 시냅스에서 막융합을 연구했다. 당시 칼슘이온이 생체막 주머니의 막융합을 통해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촉진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막융합이 일어나는지, 이 과정을 어떻게 칼슘이 촉진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쥐트호프는 이 과정을 조절하는 단백질(문크18)을 찾아내고 이 단백질과 스네어 단백질이 협력해 막융합을 일으킨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또 쥐트호프는 칼슘의 시냅스 막융합을 촉진하는 단백질까지 밝혀냈다. 즉 쥐트호프는 셰크먼과 로드먼이 밝혀낸 운반소낭의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이런 과정이 가장 활발하고 정교하게 이뤄지는 신경세포에서 벌어지는 일을 구체적으로 밝혀낸 것이다(시냅스에서 신호전달은 1000분의 1초).
보톡스가 노벨상 받은 단백질을 방해한다?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의 업적은 생명과학에서도 기초과학에 속하는 분야다. 그러나 많은 질병이 호르몬이나 수송 관련 물질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업적을 통해 질병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고 치료제까지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람과 같은 다세포 생명체는 세포 간의 상호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경세포의 신호전달, 호르몬과 성장인자에 의한 생리현상, 면역세포의 인체방어기전 등은 모두 세포에서 분비된 물질에 의해 조절되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주름을 없애준다며 미용 치료용으로 널리 이용되는 보톡스도 이런 과정을 이용한다. 보톡스는 혐기성 세균이 분비하는 신경독소인데 1.5kg 만으로도 인류 전체를 전멸시킬 정도로 치명적이다. 보톡스는 신경세포의 신호전달과정을 강력하게 억제해 근육을 마비시키고,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극소량을 사용한다면 국소적인 근육만 마비시켜 주름을 펴주기도 한다. 재미있게도 보톡스는 단백질 분해효소인데 앞서 말한 스네어 단백질, 즉 운반주머니와 신경세포의 막융합을 일으키는 단백질을 분해한다. 즉 신호전달물질이 들어있는 운반주머니의 막융합을 방해해 근육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효모를 이용한 인슐린 생산도 이번 연구의 우연한 부산물이다. 수상자인 랜디 셰크먼이 효모를 이용해 연구하면서 효모가 사람과 거의 비슷한 단백질을 만든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보통 대장균에서 의료용 단백질을 많이 만들지만 세균의 일종인 대장균은 독소를 갖고 있는 사람과 달리 원핵세포여서 실제 사람 단백질과 차이가 많다. 현재 당뇨병환자 치료용으로 사용되는 인슐린의 25% 이상이 효모에서 생산되고 있다. 만일 셰크먼의 연구가 없었다면, 많은 당뇨병 환자들은 소의 췌장에서 뽑아낸 인슐린에만 의존하게 돼 지금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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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노벨 과학상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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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생리의학상 - 신속 정확 세포 택배회사
PART 3. 화학상 - 실험하지 않고도 화학반응 예측한다
PART 4. 이그노벨상 - 암소가 바닥에 누울 확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