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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일본 도쿄(東京)에 주재하는 한국 특파원들이 시내 한 음식점에 모였다. 한해 전 동일본 대지진 때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내부를 누가 취재할지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후쿠시마 원전 측은 내부를 보여주는 언론 행사를 열었고 한국 언론에 4자리를 배정했다.

애초 특파원들은 서로 “취재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런데 선발된 4개 사만 원전 내부 기사를 쓰고 나머지 기자들은 전혀 쓸 수 없다면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결국 조정된 안은 4개 사를 뽑아 공동 취재단을 꾸리고 그들이 취재한 내용은 모든 언론이 공유하기로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서로 “안 가겠다”고 돌아섰다. 우여곡절 끝에 사다리를 타서 4개 언론사를 정했고 공동 취재까지 마칠 수 있었다.

그 때만 해도 후쿠시마 원전에 대한 특파원들의 인식은 ‘혹시 모르니 가급적 안 가는 게 좋지만 취재차 방문해도 큰 문제는 없다’정도였다.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이 원전 내부를 기자들에게 보여주는 행사를 연 것도 그만큼 안전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전한 상태는 기사 가치가 높지 않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된 기사는 급격히 사라졌다. 한국 국민들도 ‘후쿠시마 공포’를 서서히 잊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후쿠시마 원전이 다시 조명 받고 있다. 이번에는 ‘방사능 오염수’가 문제다. 오염수는 당장 국민들에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산물 오염 가능성을 남기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준다. 일본뿐 아니라 이웃 국가인 한국에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것의 무서움

기자는 2011년 3월 12일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후쿠시마 공항에 도착했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하루 뒤에 서울 본사에서
현장으로 급파됐다. 오전 일찍 항공기에 오를 때만 해도 쟁점은 ‘지진해일(쓰나미)’이었다. 센다이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기 위해 폐쇄된 센
다이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후쿠시마 공항으로 떠났다.

후쿠시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 사고가 일어났으니 최대한 빨리 후쿠시마 현을 벗어나라”고 했다. 곧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센다이로 직행했다. 하지만 길이 꽉 막혔다. 대지진으로 고속도로가 봉쇄됐기 때문에 모든 차량이 국도로 몰렸다. 평상시 1시간 반이면 갈 거리를 약 12시간 정도 달려 센다이에 도착했다.


 

택시 안에서 대여섯 번 본사와 도쿄 지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후쿠시마 현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는 전화였다. 원전사고로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으니 빨리 피하라고 했다. 거북이걸음을 하는 택시 안에서 기자는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방사능이 눈에 보였으면 그리 조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보이지 않는 것의 무서움은 크다.

현재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어나는 방사능 오염수 문제도 보이지 않는 공포를 확산시키고 있다.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사실로 확인됐다. 후쿠시마 근해에 방사능 농도가 높은 지점도 실제 여기저기 발견됐다. 그 곳의 물고기는 일정 부분 방사능에 오염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조업을 하지 못하게 했지만 어류가 그곳에만 머무는 게 아니다. 일본 정부가 방사능 검사를 하고 있지만 전수 검사가 아니다. 한국 식탁에 올라오는 생선 중 어떤 게 방사능에 오염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불안하다.



 

오염 지하수 하루 300t 유출

후쿠시마 원전의 위험성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7월 중순부터다. 그 달 18일 후쿠시마 원전 3호기 원자로 건물 위에서 백색 수증기가 발생했다. 수증기가 배출되는 지점의 방사선량은 시간당 562밀리시버트(mSv). 이는 일반인들의 연간 방사선량 피폭 한계(1mSv)를 562배나 넘기는 수치다.

도쿄전력은 “원자로 격납용기 부근으로 스며든 빗물이 온도가 높아져 수증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설명하지 못했다. 백색 수증기는 곧 사라졌지만 한국에서는 ‘후쿠시마 괴담’이 나오기 시작했다.

7월 22일 도쿄전력이 관측용 우물의 지하수 수위, 원전 앞 전용 항만의 해수 수위, 강수량 등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방사능에 오염된 지하수가 원전 앞 해수 취수구로 유출되고 있다”고 처음으로 인정했다. 그 이전에도 방사능 오염수 문제가 지적되기는 했다. 원전 사고 1년이 지났을 때 원전 냉각을 위해 주입한 물이 배관 틈으로 새어나와 원자로마다 1만∼2만t의 고농도 오염수가 차 있다고 언론이 문제제기를 했다. 하지만 큰 뉴스가 되지 않았다. 오염수는 원자로 건물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방사능에 오염된 지하수가 해수 취수구로 흘러들어갔다는 것은 의미가 달랐다. 후쿠시마 앞바다가 오염되고 그 곳의 생선이 방사능에 노출된다는 의미다.

8월 7일 일본 정부 기구인 원자력재해대책본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 1∼4호기 주변에서 흐르는 하루 약 1000t의 지하수 중 약 400t은 원자로 건물 지하 등에 유입되고 나머지 600t 가운데 약300t은 고농도의 오염수와 섞여 취수구로 흘러들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언제부터 그런 상태가 됐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2011년 3월 사고직후부터일 가능성이 크다. 그 경우 2년 이상 지속적으로 오염된 지하수가 후쿠시마 원전 앞바다의 취수구로 빠져나갔고 취수구에 있는 바닷물은 간접적으로 해양으로 흘러들어갔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 발표를 듣자 기자는 올해 2월 후쿠시마 현 이와키시를 취재 갔을 때 일이 떠올랐다. 저녁 식사 겸 취재를 위해 횟집에 들어갔는데 주방장이 울상이었다.

“후쿠시마 근해에서 잡은 생선은 예외 없이 방사능이 검출돼 식용으로 쓸 수가 없다. 러시아 근해나 규슈(九州) 인근에서 잡은 생선만 사용한다. 생선을 사오는 물류비가 더 들지만 안 그래도 없는 손님이 더 줄어들까봐 가격을 올릴 수 없다.”

매일 300t 씩 오염된 지하수가 후쿠시마 원전 취수구로 흘러들어 갔으니 바다는 조업이 불가능할 정도로 방사능에 오염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기자는 그 동안 방사능 오염수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 많은 반성을 했다.




지상 저장탱크도 문제

8월 중순이 되자 방사능 오염수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방사능 오염수를 담아 둔 지상 저장탱크에서 오염수가 새기 시작한 것이다. 방사능에 오염된 지하수는 어찌 피할 수 없는 천재(天災)라고 할 수 있지만 저장탱크 누수는 인재(人災)다.

그 달 20일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 4호기 뒤에 있는 저장탱크 밀집군(H4 구역) 내에 있는 저장탱크에서 300t의 오염수가 누수됐다”고 밝혔다. 오염수의 행방을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일부는 땅으로 스며들고 일부는 바다로 직접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했다. 방사능에 오염된 지하수의 경우 해수 취수구로 흘러들어가 나름 바다와는 일정 부분 차단돼 있지만 저장탱크 누수 오염수는 곧바로 바다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그 이후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계속 벌어졌다. 26일 H4 구역에 있는 한 저장탱크에서 시간당 16mSv(밀리시버트)의 방사선량이 검출됐다. 31일에는 H3 구역 저장탱크 3기와 배관 1곳에서 시간당 70∼1800m㏜ 방사선량이 검출됐다. 1800mSv는 사람이 4
시간 정도 서 있으면 죽을 수도 있는 매우 높은 방사선량이다. 9월 2일 들어서는 H6 구역 저장탱크에서 100mSv 방사선량이 검출됐다.

엄청나게 높은 방사선량이 여기저기에서 검출되고 있지만 오염수 저장탱크에 누수 흔적이 없었다. 도쿄전력은 왜 그렇게 높은 방사선량이 갑자기 측정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2012년 10월 중순 한국 특파원의 공동 취재단이 원전 내부에 들어갔을 때 도쿄전력 직원들이 방사능 측정기를 들고 기자들 옆을 지켰다. 여러 지점에서 방사선량을 측정했는데 모두 1mSv 아래였고 4호기 앞에서 1mSv까지 측정기 수치가 올라갔다. 당시 도쿄전력 직원들은 “1mSv, 1mSv”라며 크게 외쳤다. 버스가 서둘러 그 지점을 벗어났다. 시간당 1mSv만 돼도 주의해야 하는데 수백, 수천 mSv의 방사선량이 검출되는 게 지금의 후쿠시마 원전이다.

8월 31일에는 지상 저장탱크 사이를 잇는 배관 이음매 부위에서 물이 90초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것을 도쿄전력이 발견했다. 두 번째 누수 확인이었다. 물이 떨어진 바닥의 방사선량을 측정하자 시간당 약 230mSv(밀리시버트)가 검출됐다.

애초 누수가 일어난 저장탱크는 용접형이 아니라 볼트 조립형이었다. 볼트로 조립한 부분에서 오염수가 새나왔다. 그 경우 볼트 조립형 저장탱크를 용접형으로 교체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배관에서도 누수가 생기면 저장탱크를 바꿔도 소용이 없다. 도쿄전력은 오염수가 얼마나 새어 나갔는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총체적으로 방사능 오염수 문제가 확대된 것이다.



 

 종합대책의 실효성 의문

사태가 점차 심각해지자 아베 정권은 9월 3일 후쿠시마 원전 종합대책을 내놨다. 핵심은 원전 1~4호기를 둘러싼 동토(凍土)벽을 만들고 오염수정화장치(ALPS)를 증설한다는 것이다. 동토벽 건설에 320억 엔(약 3490억 원), ALPS 증설에 150억 엔 등 총470억 엔(약 5112억 원)의 국비를 투입하기로 했다.

동토벽은 1∼4호기 원자로 건물 주위로 관을 1m 간격으로 박은 것을 뜻한다. 깊이는 지표에서 20∼30m정도. 그 후 영하 40°C 이하의 냉각재를 관에 집어넣어 주위 땅을 얼린다. 이 경우 산에서 내려오던 지하수가 동토벽으로 인해 원자로 건물을 피해서 바다로 흘러가게 된다.

지하수 오염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게 일본 정부의 설명이다. ‘방사능 오염수’ 일지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공법이어서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된다. 또 빨라야 내년 하반기에 완공되는데 그 동안 오염된 지하수가 속절없이 해수 취수구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ALPS는 원전 내 오염수에서 62종류의 방사성물질을 제거하는 장치다. 도쿄전력이 설치하는 것에 추가해 정부가 고기능 정화설비를 증설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부 대책에 대해 일본 언론조차도 비판적인 톤으로 보도했다. 이미 도쿄전력이 발표한 대책을 정부가 재탕해 급히 발표했다는 것이다.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를 위한 급조한 대책이란 비판이 거셌다.
 

일본 주부는 과연 생선 살까

‘방사능 생선’, ‘수산물 소비 직격탄’, ‘수산물, 방사능 오염에 울다’, ‘방사능 수산물 공포’….

최근 신문에 흔히 보이는 제목이다. 하지만 일본 신문이 아니다. 모두 한국 신문에 나오는 제목이다. 일본 소비자들은 예전과 비슷하게 수산물 소비를 하고 있다. 횟집이나 어시장의 수산물 판매 현황도 과거와 별 차이가 없다. 인접국인 한국은 방사능 생선 공포로 난리를 치고 있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조용한 것이다.

일본 소비자들이 수산물 오염에 둔감한 것은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 일본 정부를 신뢰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정기적으로 후쿠시마 원전 앞바다를 수질검사 해 어민들이 조업을 해도 되는지 점검하고 있다. 현재는 조업 중단 상태다. 인근 지역에서 조업한 수산물도 방사능 검사를 실시한 후 유통시키고 있다.

둘째는 일본 국민으로서 ‘어쩔 수 없다’는 자포자기 심리도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이민가지 않는 한 일본 근해에서 잡힌 수산물을 먹을 수밖에 없다. 평생 먹어야 할 수산물이기 때문에 매번 방사능에 오염됐는지 신경을 쓰기보다는 그냥 안심하고 먹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들도 마음 속으로는 걱정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9월 7, 8일 전국의 20세 남녀 1925명에게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가 어느 정도로 심각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매우 심각하다’는 답이 72%, ‘어느 정도 심각하다’는 답이 23%에 달했다. 95%가 오염수 유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걱정해도 대책이 없기 때문에 입을 닫고 있을 뿐이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긴급진단] Part1_ 일본에서는 무슨 일이?
[긴급진단] Part2_ 물고기, 방사능, 그리고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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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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