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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지구 만든 조류(藻類)의 비밀을 밝히고 싶습니다!”

윤환수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교수 인터뷰



“이렇게 나뭇잎 위에 가라앉은 부유물 위에 자라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런 잔디 사이에 짙은 녹색 클로버 싹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3월 초순 성균관대 구내에 있는 작은 연못. 생명과학과 윤환수 교수가 연못 바닥에 있는 나뭇잎 위에 커다란 스포이드를 대고 물을 빨아 당긴다. 윤 교수가 채집하려는 생명체는 폴리넬라(Paulinella)라는 단세포 진핵생물(원생생물)이다.

조류(藻類, algae) 연구가인 윤 교수는 지난 수년 동안 폴리넬라에 푹 빠져있다. 현재 폴리넬라가 엄청난 일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식물 광합성의 기원인 내공생이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다. 내공생이란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 같은 세포소기관이 생겨난 과정이다. 큰 세포에 잡아먹힌 작은 박테리아가 소화되지 않고 세포 내부에 적응해 공생체로 살아남아 진화해 세포소기관이 됐다는 이론이다.

지금까지 연구결과 지구상에 존재하는 광합성을 하는 모든 진핵생물은 최소한 10억 년 전 단 한차례 일어났던 내공생에서 비롯됐다. 즉 이들이 갖고 있는 엽록체는 당시 잡아먹힌 한 시아노박테리아(남세균)에서 기원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06년 미국 아이오와대 생물학과 선임연구원으로 있던 윤 교수는 폴리넬라 안에 들어있는 색소체라는 광합성을 하는 세포소기관이 엽록체와는 다른 유형의 시아노박테리아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색소체는 세포에 포획된 시아노박테리아가 엽록체로 진화하는 과정에 있는 중간 형태로 추정된다.

“엽록체의 기원인 내공생은 지구상에서 단 한번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지금 폴리넬라에서 두 번째로 내공생이 일어나고 있지요. 무척 흥미롭지 않습니까?”

연못에서 채집을 마치고 다음 채집장소인 일월저수지로 걸어가면서 윤 교수가 이야기한다.


[폴리넬라의 현미경 이미지로 안의 녹색 부분이 색소체다. 폴리넬라는 불과 수천만 년 전에 내공생을 통해 광합성 능력을 획득한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성균관대 생물학과 윤환수 교수가 학교 인근 일월저수지에서 폴리넬라라는 원생생물을 찾기 위해 시료를 채집하고 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채집여행 따라 다녀

태양초 고추로 유명한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윤 교수는 어릴 때부터 산과 들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 생물시간이 되면 늘 설레던 그는 취직이 어려울 거라는 담임선생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1988년 충남대 생물학과에 들어갔다. 이때 생물학과에는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교수가 있었다. 조류(藻類)를 연구하는 부성민 교수다.

“당시 교수님 실험실에 대학원생이 여학생 한 명뿐이었습니다(현재 제주대 생물학과 김명숙 교수). 그러다보니 채집여행을 갈 때 짐꾼이 필요했죠. 그래서 제가 얼른 지원했어요.”

이렇게 윤 교수는 대학 4년 내내 채집여행을 다녔다. 공부도 하면서 여행도 다니니 학부생으로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물론 당시는 차도 없어 버스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막내인 그가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짐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채집을 마치고 밤에 싱싱한 해산물을 안주로 마셨던 소주의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는 자연스럽게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2년 동안 홍조류인 비단풀에 대한 분류학 연구를 진행했고 1994년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6개월을 복무하면 병역을 마치는 석사장교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시험을 쳤는데 떨어졌습니다. 어쩌겠어요? 사병으로 입대했죠.”

25살에 군에 갔더니 장교들과 나이대가 비슷했다. 장교들이 챙겨준 덕분에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편하게 군대생활을 마쳤다. 그런데 그가 입대한 이듬해 지도교수인 부 교수가 안식년을 맞아 캐나다를 방문했는데 이때 분자생물학 기법을 이용한 분류학을 배우게 된다.

“제대해서 실험실에 갔더니 교수님이 부르시더군요. 이제 형태를 보고 분류를 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실험실에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는 일을 책임지고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석사장교 시험에 붙었다면 적당한 조류를 정해 기존에 하던 방식대로 분류학 연구를 해 박사학위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2년간의 공백이 생기면서 전혀 다른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 처음에는 골치 아프게 됐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오늘날 윤 교수가 있게 된 출발점이 됐다.

“특정 유전자의 염기 서열을 비교해 우리나라에 있는 갈조류(미역, 다시마 등)에 대한 분류학 체계를 세우는 연구였습니다. 그 결과는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주목을 받았죠.”




300만 달러짜리 프로젝트 책임 맡아

윤 교수는 지금도 2000년 7월 6일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미국 아이오와의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의 황량함이 잊혀지지 않는다. 전 해에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박사후과정으로 아이오와대를 택했고 아내와 아이와 함께 낯선 이국땅에 발을 디딘 것. 처음엔 말도 통하지 않고 막막했지만 하루 이틀 지내다보니 적응이 됐다.

그가 일하게 된 실험실의 책임자인 아이오와대 생명과학과 드바시시 바타차리아 교수는 인도계 캐나다인으로 당시 대학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연구비도 별로 없고 대학원생도 2명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윤 교수를 별로 챙겨주지 않았다고. 이때 윤 교수가 시작한 연구는 2차 내공생 과정을 규명하는 일이었다. 2차 내공생이란 진핵생물이 광합성을 하는 진핵생물을 포획해 광합성을 하는 새로운 생명체로 바뀐 과정이다. 윤 교수는 2차 내공생을 하는 진핵생물들의 유전자를 비교분석해 홍조류와 관련된 2차 내공생의 기원을 밝혔다.

“제 연구가 결과를 내기 시작하자 드바시시 교수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군요. 좀 지나니까 제 주제가 실험실 연구의 중심이 됐어요.”

2004년부터 선임과학자로 일하던 그는 어느 날 드바시시 교수와 이야기를 하다가 드바시시 교수가 예전에 독일에서 일할 때 가지고 왔던 한 원생생물을 연구해 보기로 했다. 폴리넬라라고 불리는 이 생물체는 세포 안에 엽록체 대신 색소체라는 소시지처럼 생긴 광합성을 하는 소기관을 지니고 있었는데 당시 거의 연구되지 않은 상태였다.

윤 교수도 처음에는 별로 기대하지 않고 폴리넬라 색소체의 게놈을 분석해봤는데 놀랍게도 기존 엽록체와는 그 기원이 달랐던 것. 2006년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그의 논문은 큰 화제가 됐다. 이때부터 현재까지 폴리넬라는 윤 교수를 사로잡고 있다.

한편 2007년 미국 비글로해양과학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그는 2008년과 2009년에 미국립과학재단(NSF)으로부터 각각 연구비 100만 달러(약 11억 원), 300만 달러(약 33억 원)를 지원받는 두 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이끌게 됐다. 하나는 폴리넬라 게놈을 분석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홍조류의 계통수를 구축하는 ‘Red Algal Tree of Life’ 과제로 5년간 진행된다. 현재 홍조류는 6000여 종이 알려져 있는데 이 가운데 500여 종의 상관관계를 규명할 계획이다. 그리고 16종은 게놈까지 분석한다. 윤 교수는 지난해 성균관대에 부임했지만 이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는 비글로연구소 실험실도 운영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지요.” 아직은 텅 빈 실험실에 가장 중요한 장치인 게놈분석기를 설치하며 윤 교수가 뿌듯해했다.]

육상식물 버금가는 역할하는 조류

지난해와 올해 윤 교수는 연달아 저명한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해 주목받았다. 2011년 논문은 ‘단일세포 유전체 분석법’을 최초로 진핵생물에 적용해 유전자 정보를 해독해낸 성과다. 세포 하나만 있어도 전체 게놈을 분석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지난 2월 17일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은 조류 진화 초기에 갈라진 회조류란 식물플랑크톤의 게놈을 분석해 이들의 엽록체 역시 공동의 조상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학부 때부터 익힌 고전적인 분류학 지식과 박사과정 때부터 배운 분자 정보에 기반한 분류학 지식을 겸비하고 있는 윤 교수는 이곳저곳에 공동연구자들이 포진해 있다. 윤 교수는 올해 본격적으로 성균관대 실험실을 꾸리고 있다. 현재 구성원은 석사과정에 입학한 대학원생 한 명과 며칠 전부터 출근하는 박사후연구원 두 명이 전부다. 그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부성민 교수 실험실 상황이 연상된다.

현재 윤 교수는 농촌진흥청 차세대바이오그린 21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2의 광합성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폴리넬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 한천을 비롯해 유용한 물질을 생산하는 우뭇가사리(홍조류)의 게놈 분석을 한국해양연구원 이정현 박사팀과 진행하고 있는데 이 연구는 그의 은사인 부성민 교수팀과 함께 해 더 뜻 깊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해조류인 미역의 게놈을 해독하는 연구도 계획하고 있다.

“사람들은 조류가 육상식물 만큼이나 광합성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녹색 지구의 숨은 공로자인 조류를 연구해 세상에 알리는 제 일에 큰 보람을 느끼는 이유죠.”

해양 식물플랑크톤의 총무게는 육상식물의 1%도 안 되지만 매년 광합성으로 고정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450~500억t으로 520억t인 육상식물과 큰 차이가 없다. 앞으로 조류에 대한 연구가 쌓이면 이토록 효율적인 광합성의 메커니즘이 밝혀져 인류가 당면한 에너지,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큰 몫을 할 것이다.

“이 장치가 최신 게놈분석기입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가격은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성능은 더 좋아졌지요.”

텅 빈 실험실 테이블에 막 도착한 ‘따끈따끈한’ 게놈분석기를 설치하며 윤 교수가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앞으로 몇 주가 지나면 분석기가 돌아가면서 조류의 게놈 데이터를 쏟아낼 것이다.

“오늘 첫 실험실 회식을 하려고 합니다. 수원은 갈비가 유명하다던데 어디가 좋을까요?”

윤 교수가 마침 수원에 살고 있는 사진작가에게 회식장소를 추천해 달라며 활짝 웃었다.

2012년 4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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