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하순경 여름장마가 끝나고 8월 중순경 늦장마가 시작되기 이전. 장마가 쉬는 이 때 도시 내부 콘크리트 표면 온도는 50℃ 이상으로 올라간다. 아열대 건조 사막 표면과 유사한 고온 상태다. 도시 외곽의 녹지 지역에서는 식물의 증발산 작용에 의해 대기 중 습도가 적절하게 유지된다. 대기 중 습도가 유지되면 기온 상승이 줄어든다. 태양 복사에너지를 수증기가 냉각시켜 주기 때문이다. 반면 서울처럼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도시 내부는 고온상태에서 증발량이 부족한 데다 토양에 있는 수분도 쉽게 증발돼 매우 건조한 사막과 같은 대기 상태가 유지된다.
과거에는 태풍, 집중호우 등 저기압 현상에 따른 수해를 기후재해로 인식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맑고 기온이 높은 여름철 고기압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기후재해로 떠올랐다. 이런 여름철 고온 현상을 국제적으로 ‘열파(heat wave)’, 우리나라에서는 ‘폭염’이라고 명명했다.
도시 사막에서는 여름철 열파가 발생하면 단기간에 노인층을 중심으로 사망자가 급증한다. 2003년 7∼8월 유럽에서는 여름철 고온 현상으로 사막화된 도시 내부에 방치됐던 노인 수십 만 명이 단기간에 사망했다. 우리나라, 특히 서울은 어떨까.

성동구 마포구 용산구 양천구 동대문구가 더 위험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는 전체 인구의 절반이 밀집해 살고 있다. 특히 고온에 취약한 노인계층이 빠르게 늘고 있다. 서울은 1960년대 이후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약 10% 이하에 불과하던 불투수 면적이 2010년대에 전체의 절반가량으로 증가했다. 고층건물도 크게 늘어나 콘크리트 면적이 3차원으로 증가했다. 도시 공기는 그사이 건조해졌고 온도 변화에 예민해졌다. 이같은 사막화로 서울에서는 여름철에 도시열섬 현상이 더해져 더욱 강한 폭염이 발생하고 있다.
여름철에 도시 폭염이 일어나면 취약계층인 심혈관계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층 사망 피해가 늘어난다. 과거 100년간(1908~2007년) 서울의 여름철 고온 현상 발생빈도를 살펴보자. 가장 더웠던 1994년 ‘마른장마’가 찾아와 여름철 초과 사망자(평균 이상의 사망자)가 4000명을 넘겼다. 1994년 7월 22일 서울은 체감온도가 40℃가 넘는 강한 열파가 발생했고 3일 후인 7월 25일에는 심혈관계 질병을 가지고 있는 노약자 계층을 중심으로 질병사망자가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때 초과 사망률의 지역적 분포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녹지 면적이 적고 상대적으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도심 내부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초과 사망자가 더 많았던 것이다. 성동구, 마포구, 용산구, 양천구, 동대문구 등이다.
녹지 면적과 여름철 노인 초과 사망자수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지난 100년간 폭염이 가장 심했던 1994년 7월 하순 위성영상 자료를 살펴보자(오른쪽 페이지). 성동구, 마포구, 용산구, 양천구, 동대문구 등은 오전 10시 30분에도 기온이 28℃ 이상으로 도시 외곽에 비해 3~5℃ 더 높았다. 녹지 정도를 보여주는 정규식생지수(위 지도)와 비교하면 식생지수가 0.1 감소할수록 지표온도는 1℃씩 증가하고 있다. 즉, 아스팔트나 콘크리트가 늘어날수록 폭염이 더 강해지고 더 많은 노인 사망자가 발생한다.


사막화에서 죽음까지
왜 폭염이 사망까지 이르게 될까. 폭염 발생 시 인체는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째 음식섭취량이 줄어든다. 옛말에 ‘더우면 밥 먹기 싫다’고 한다. 음식에너지는 몸 안에서는 결국 열을 일으키는 화학에너지다. 따라서 폭염이 일어나면 음식을 덜 먹는 것은 열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이다. 둘째, 땀을 많이 흘린다. 땀이 증발하면서 잠열을 인체 표면으로부터 빼앗아 가기 때문에 피부에서 열이 줄어든다. 셋째, 체내에 남는 열이 생기면 인체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모세혈관을 팽창시키고 혈액순환을 빠르게 해 최대한 열을 체외로 배출하려고 한다. 점심시간에 농구를 하고 수업시간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모세혈관이 최대한 피부 가까이 팽창해 얼굴이 검붉은 피부색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여름철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는 습도 차이에 따라 체감온도가 4∼9℃이상 올라갈 수 있다. 최근 노인층에서 고혈압 등 심혈관계 만성질환자가 증가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하면 강한 폭염 발생 시 이러한 질환을 가지고 있는 노인층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앞서 얘기한 대로 폭염 시 혈액순환을 빠르게 해 최대한 열을 체외로 배출하기 위해 모세혈관이 팽창하면 고혈압이나 심혈관계 만성질환 노인층은 훨씬 큰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2100년까지 서울 기온 4℃ 오른다
20세기 100년 동안의 여름철 기온과 폭염 발생빈도의 관계를 살펴보면 여름철 평균기온이 1℃ 상승하면 서울의 폭염발생일은 8.8일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기상청이 공개한 고해상도 기후변화 시나리오 자료에 따르면, 21세기 후반(2100년)까지 강수량은 증감을 반복하지만 기온은 최대 4℃까지 증가해 도심의 사막화 현상은 가속화되고 강한 폭염에 의한 노약자 사망 피해는 더욱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규모 정전 현상이 발생하는 도심 지역의 노약자들을 위한 다양한 대비책 마련이 필요한 실정이다.
폭염 사망자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도심 열환경 조절을 고려한 도시계획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1970년대 초반 도심의 팽창을 막기 위한 그린벨트 덕분에 서울 주변의 해발고도 100m 이상 산악지역은 무분별한 개발이 억제됐다. 이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냉기류가 서울 도심 주변 산지에서 형성돼 서울에 공급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부의 그린벨트 해제 정책에 따라 수십 년간 억제됐던 도시사막화 현상이 서울과 인근 위성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아파트 건설을 통해 얻는 수익과 녹지 공간을 보존해 절약할 수 있는 에너지양을 비교하면 장기적으로 어느 쪽이 더 이익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