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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죽음의 손가락’ 지닌 기이한 원숭이

허재원의 영장류 이야기 ➌ 아이아이


귀여운 판다나 멋진 갈기를 가진 사자 같은 동물은 사람들의 관심을 듬뿍 받는다. 그러나 모든 존재가 인간의 사랑을 받는 건 아니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영장류 ‘아이아이’는 특이한 외모 때문에 흉조이자 죽음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알고 보면, 아이아이는 몹시 경이로운 영장류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원주민들은 어두운 숲에 사는 공포스러운 존재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그것은 캄캄한 정글 속에서 몹시 비밀스럽게 움직여요. 온몸엔 뻣뻣한 털이 나 있고 귀는 레이더처럼 생겼죠. 길다란 꼬리는 마치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날카롭고 커다란 선홍색 눈에서는 광채가 번뜩입니다. 무엇보다 두려운 건…, 기이하게 생긴 길쭉한 가운데 손가락을 이용하면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는 거예요.”


기이한 외모=완벽한 사냥 도구?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악령이 떠오르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이아이(Aye- Aye, Daubentonia madagascariensis)’라는 영장류다. 지구에 존재하는 야행성 원숭이 중 가장 큰 종으로,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여우원숭이상과 영장류다. 외모와 생태가 워낙 독특해서 계통분류학상 과(family, 종이나 속보다 상위 분류군)에 속하는 다른 친척이 없다. 물론 그 외모는, 우리가 상상하는 귀여운 원숭이의 모습은 아니다.

불길함의 징조가 될 정도로 아이아이의 모습이 기이하긴 하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 주변에는 검고 뚜렷한 고리가 있어서 진한 스모키 화장을 한 것처럼 보인다. 양쪽 귀는 얼굴 크기와 맞먹을 정도로 크다. 몸통 전체와 길이가 비슷한 (약 40cm) 꼬리를 갖고 있는데, 털로 수북하게 덮여 있다. 몸무게는 2.5~3kg 정도이며, 수컷이 암컷보다 약간 더 무겁다. 네발로 기어 다니고, 다른 야행성 동물과 마찬가지로 소리를 내지 않고 은밀하게 이동한다. 특이하게도 앞니가 설치류처럼 끊임없이 자라나서, 한때는 설치류로 분류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길쭉하고 가느다란 가운데 손가락은 무서운 소문을 만들어낸 원흉이다.

아이아이의 이런 독특한 몸 구조는 경이로운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은 그간 축적해 온 과학 지식을 활용해 다양한 도구를 개발했다. 금속탐지기를 이용해 흙 속에 숨은 금속을 찾아낼 수 있고, 적외선 투시장치를 쓰면 어두운 밤에도 앞을 잘 볼 수 있다.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하면 열을 발산하는 생명체와 그 외의 무생물을 구분해낼 수도 있다. 아이아이는 이런 도구 하나 없이도 보이지 않는 나무 속 벌레의 존재를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아이아이의 특수 무기는 가늘고 긴 가운데 손가락과 정교하게 발달한 큰 귀, 그리고 날카로운 앞니다. 신기술이 적용된 최신 도구는 없지만, 자신의 독특한 신체를 먹고 살기 위한 도구로 100%활용한다.

아이아이가 애벌레를 사냥하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네 개의 발을 이용해 썩은 나무나 대나무를 타고 조용히 이동하면서 손가락으로 나무를 ‘톡톡톡’ 친다. 나무 안에서 진동이 전해지며 규칙적인 소리가 들리는데, 만약 그 안에 애벌레가 숨어 있으면 소리가 조금 다르게 들린다. 아이아이는 레이더처럼 생긴 커다란 귀를 기울여서 그 소리를 구별해 애벌레가 있는 곳을 알아낸다.

일단 이렇게 애벌레의 존재를 알게 되면 다음은 날카로운 앞니를 내세울 차례다. 아이아이의 앞니는 매우 강력해서 열대 우림의 웬만한 나무는 다 뚫을 수 있다. 쥐가 대들보를 갉아먹는 것처럼, 아이아이는 딱딱한 대나무를 상대로 애벌레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작은 구멍을 낸다.


죽음을 내리는 가운데 손가락의 비밀

구멍이 만들어지면, 마지막으로 손가락을 치켜든다. 아이아이의 가운데 손가락은 가늘고 긴데다, 끝에는 날카로운 고리가 달려 있다. 마치 낚시바늘처럼 생겼는데, 쓰임새도 비슷하다. 구멍 속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밀어 넣어 애벌레들을 낚아 먹는다.

새알이나 코코넛처럼 속이 액체로 된 먹이를 먹을때에도 길다란 손가락이 유용하다. 아이아이는 인간
처럼 알이나 코코넛을 들고 ‘원샷’하는 방법을 모른다. 다시 말해, 날카로운 이빨로 껍질은 쉽게 뚫을 수 있지만 속에 든 액체를 먹기는 쉽지 않다. 대신 앞니로 낸 작은 구멍 안으로 길다란 가운데 손가락을 넣었다 뺀 뒤, 그 손가락을 핥아 먹는다. 갈고리가 아닌, 효율이 다소 나쁜(?) 숟가락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속도는 느리지만 새알처럼 점성이 높은 액체를 즐기기엔 충분하다. 아이아이가 길다란 가운데 손가락을 이용해 애벌레를 낚고 새알 내용물을 먹는 걸 보면, ‘죽음을 내리는 가운데 손가락’이라는 소문은 어찌 보면 사실인 셈이다.

아이아이가 애벌레를 사냥하는 모습. 길다란 가운데 손가락으로 나무를 톡톡 쳐서 애벌레의 위치를 찾는다.(➊) 나무를 이빨로 갈아 구멍을 내고()  가운데 손가락을 집어넣어 애벌레를 낚아() 꺼내먹는다.()

QR코드를 스캔하면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사냥에 특화돼 있는 가운데 손가락의 가장 큰 비밀은 구조에 있다. 아이아이의 가운데 손가락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영장류의 손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가운데 손가락이 마치 드릴처럼 360° 회전한다! 이런 기능 덕분에 애벌레나 끈적한 액체를 발라 손쉽게 먹을 수 있다.

이처럼 만능이지만, 가운데 손가락은 굉장히 취약한 부위이기도 하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기계장치가
그렇듯, 용도가 너무 특수하면 범용성이 오히려 떨어진다. 다시 말해, 이처럼 특이한 구조의 손가락은 사냥하는 데에는 매우 유리하지만 사냥 외의 일을 할때는 불리하다.

원래 네발 달린 동물의 손가락뼈와 발가락뼈의 기본기능은 체중을 지탱하는 일이다. 손가락 관절은 위에서 아래로 힘을 받을 때 버틸 수 있도록 한쪽으로만 접히게 돼 있다. 반면 어느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아이아이의 가운데 손가락은 체중을 버티기엔 적합하지 않다. 더구나 다른 손가락에 비해 터무니없이 가늘고 약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부러질 수도 있다. 그래서 사냥할 때가 아니면 보통 가운데 손가락을 반대방향으로 편 채로 이동한다.

재미있는 점은 자세뿐만 아니라 에너지 사용도 바꾼다는 점이다. 가운데 손가락을 열화상 카메라로 관찰한 결과, 아이아이가 사냥하지 않고 이동만 할 때, 즉 가운데 손가락이 쓸모 없는 시기에는 이 손가락의 온도가 다른 손가락에 비해 평균 2.3℃ 낮았다. 반면 사냥을 하기 위해 가운데 손가락을 이용할 때는 온도가 평균 2.0℃ 높았다. 가장 뜨거울 때와 차가울 때의 온도 차이는 최대 6.0℃까지 나타났다. 사냥을 할 때에는 과감하게 혈액을 투자해 사냥의 성공률을 높이고, 사냥 외의 행동을 할 때에는 혈액 공급을 적게 해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다.
 
 
경이로운 진화의 산물

아이아이만의 독특한 해부학적 구조와 그로 인해 얻는 이득은, 다른 영장류와 비교해 확실히 독보적이다. 수천만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하면서 사냥에 필요한 복잡한 먹이잡이 도구를 스스로 몸에 장착했다.

이들은 소리와 진동의 과학을 공부하지 않았지만, 조상에서 자손으로 이어지는 진화의 긴 터널 속에서그 원리를 깨쳤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동물과 식물, 미생물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의 겉모습만 보고 존재의 가치를 쉽게 판단한다. 하지만 그들의 현재 모습은 아이아이처럼 경이로운 진화의 결과다. 생명체들이 수천만 년 동안 지구상에 존재하고 살아남아 있는 데에는 분명 비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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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허재원 선임연구원
  • 에디터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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