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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예능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개인 방송에서 자주 등장하는 신뢰 가득한(?) 기계가 하나 있다. 흔히 ‘거짓말 탐지기’로 불리는 ‘쇼킹 라이어’라는 제품이다. 기계 위에 손바닥을 올리고 질문에 답을 한 뒤 버튼을 누르면 ‘뚠뚠뚠뚠’ 소리가 약 5초간 흘러나온다. 혹시 답변이 거짓말이라면? 기계는 가차 없이 따끔한 전기 처벌을 내린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 기계의 역할은 기대 이상이다. 답변자가 난처할만한 질문을 던진 뒤 진실로 판명나면(‘팅’ 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린다) 진심에 감탄하고, 거짓이면 면박을 주는 시나리오로 프로그램의 한 꼭지가 완성된다.  
정말 이 기계를 얼마만큼 믿을 수 있는지 홍현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심리과 심리연구사를 찾아가 물었다. 홍 심리연구사는 “손에서 땀이 나는지 판별하는 센서가 있다고 알려져 있긴 하다”면서도 “이정도 가격(소비자가격 1만 원 내외)이면 굉장히 조악한 센서를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비롯해 경찰청, 대검찰청 등에서 사용되는 정식 거짓말 탐지기에도 땀 배출량을 감지하는 센서가 있다. 그런데 센서 장치만 50만~70만 원으로 매우 정교하다. 홍 심리연구사는 “쇼킹 라이어의 정확도가 50% 수준은 될지 의문”이라며 “그 정도면 동전던지기로 거짓말을 판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만큼 재미를 위한 장난감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진짜’ 거짓말 탐지기는 어떻게 사람의 마음 저 깊숙이 숨겨진 진실을 판단하는 것일까.

동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프 요동 쳐


“목요일 오전에 오세요.”
이재석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 경위에게 거짓말 탐지기 취재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갔다. 직접 거짓말 탐지 테스트를 받아볼 작정이었다. 
가로세로 3m 크기의 검사실에 들어서자 한가운데에 놓인 검은색 1인용 소파가 보였다. 소파에 앉자 이내 여러 장치들이 등장했다. 이 경위는 기자의 손바닥에 스티커 형태의 센서 2개를 붙였고, 또 다른 센서 1개는 엄지손가락에 감았다. 흉부와 복부에는 고무 튜브가 하나씩 둘러졌고, 왼쪽 팔뚝에는 혈압 측정기도 달렸다. 
이 경위는 “거짓말 탐지의 가장 기본적인 측정 도구들”이라며 “손에 붙인 센서는 땀 발생량과 혈류량을, 흉부와 복부에 두른 감지기는 호흡을 측정하고, 혈압 측정기는 심혈관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감지한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소파 옆 컴퓨터 책상에 앉아 가장 기본적인 검사를 시작했다. 
“1부터 5 사이의 숫자 중 아무 숫자나 이 종이에 쓰세요. 그 뒤에 제가 1부터 차례대로 어떤 숫자를 썼는지 물어볼 겁니다. 모든 질문에 ‘아니오’라고만 답해야 합니다.”
기자는 가장 좋아하는 숫자인 ‘3’을 썼다. 종이를 반으로 접어 이 경위에게 건네자 거짓말 탐지 테스트가 시작됐다. ‘당신은 1을 썼습니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5가 될 때까지 동일한 형태의 질문이 이어졌다. 질문과 질문 사이에는 10초 정도의 공백이 있었다. 질문에 ‘아니오’라는 답변만 하면 되니 마음은 평온했다. 
그런데 웬걸. 검사가 끝난 뒤 컴퓨터 모니터를 확인한 순간 기자의 거짓말이 들통 났음을 깨달았다. ‘당신은 3을 썼습니까?’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한 경우에만 유독 흉부와 복부의 호흡이 길어졌고, 땀 발생량이 최고를 기록했다. 이 부분에서만 그래프가 요동을 쳤다. 
분명 검사 시작부터 끝까지 기자의 마음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이 경위는 “거짓말 탐지는 진실을 말할 때와 거짓을 말할 때 어쩔 수 없이 차이가 생기는 신체의 미세한 반응을 포착한다”며 “호흡, 혈류량 등 신체의 생리학적인 변화를 포착하는 이런 탐지 방식을 ‘폴리그래프(Polygraph)’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3~5% 오차 있어 재판에 직접 증거는 안 돼


실제 수사에 사용되는 거짓말 탐지는 폴리그래프 방식 외에도 뇌파,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 동공 크기 확인 등 신체 반응을 측정해 이뤄진다. 거짓말 탐지의 목적이나 질문 방식에 따라 적절한 방식을 이용하면 거짓말 판별의 정확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 
거짓말 탐지의 목적은 크게 ‘진단’과 ‘스크린’으로 나뉜다. 진단은 주로 범죄 용의자에게서 알아내고자 하는 한 가지 내용에 대해 진실을 판별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 질문 방식은 두 가지다. 우선 ‘칼로 찔렀나’ ‘지갑을 훔쳤나’와 같이 구체적인 행동을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 있다. 이를 ‘비교 질문 검사’라고 부른다. 홍 심리연구사는 “국내 범죄수사에는 98% 정도가 비교 질문 검사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거짓말을 할 때 신체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다. 거짓말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심에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 사이코패스의 경우 신체 반응에 변화가 없는 경우가 있다. 
거짓말을 잡아내지 못하는 것보다 심각한 오류는 진실을 거짓말로 판독하는 경우다. 거짓말 탐지라는 검사 자체에 너무 부담을 느껴 진실을 말하는 상황에서도 불규칙적인 신체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를 ‘허위 긍정 오류(false positive error)’라고 한다. 
허위 긍정 오류가 발생하면 사건과 무관한 사람이 단번에 용의자로 지목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비교 질문 방식의 정확도는 95~97%에서 더 높아지지 않는다. 홍 심리연구사는 “무고한 사람이 죄인으로 전락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인 만큼 3~5%라는 작은 오차도 수사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라며 “거짓말 탐지 결과가 재판에서 참고만 될 뿐 직접적인 증거로 채택되지 못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숨김 정보 검사’는 정확도 100%


거짓말 탐지에도 오차가 거의 없는 질문 방식이 있다. 두 번째 질문 방식인 ‘숨김 정보 검사’다. 범인이나 사건 관련자만 알고 있을 만한 숨겨진 정보를 알고 있는지 묻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사 기관에서 범행에 사용한 칼을 확보한 경우, 범행과 전혀 상관없는 여러 자루의 칼과 섞어서 하나씩 보여준다. 범인은 자신이 사용한 칼을 봤을 때 흠칫하게 되고, 이 순간 신체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다. 
홍 심리연구사는 “이런 신체 변화는 0.3초 이내의 아주 짧은 순간에 나타나기 때문에, 허위 긍정 오류를 비롯해 비교 질문 검사에서 종종 발생하는 오류들이 현격히 줄어든다”며 “정확도가 사실상 100%”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범죄수사에서 모든 거짓말 탐지를 숨김 정보 검사로 진행한다. 때문에 거짓말 탐지 결과가 재판에서 직접적인 증거로 채택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숨김 정보 검사를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홍 심리연구사는 “일본에서는 수사 초기에 거짓말 탐지 수사가 이뤄지는 반면 국내에서는 수사 마지막 단계에 적용되기 때문”이라며 “수사 마지막 단계에서는 무고한 사람들도 이미 범죄와 관련해 많은 내용을 알게 된 상태여서 범인만 알고 있는 숨겨진 정보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실제 수사에 숨김 정보 검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하나로 간이용 숨김 정보 검사를 개발했다. 수사 초기 단계에 전문 검사관이 아니어도 간이용 숨김 정보 검사기를 이용해 숨김 정보 검사를 할 수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특허 두 건을 출원했다. 
숨김 정보를 알고 있는 범인과 숨김 정보를 전해 들어 나중에 알게 된 무고한 사람의 신체 반응 차이를 구분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홍 심리연구사는 “숨김 정보를 전해 들으면 무고한 사람에게도 신체 변화가 나타나지만, 범인보다는 변화의 폭이 좁다”며 “둘 사이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 판별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면 수사 마지막 단계에서도 숨김 정보 검사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범죄자 관리에 거짓말 탐지 활용


국내에서는 거짓말 탐지를 대부분 범죄수사를 위한 진단 목적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미국은 특정 사건이 아닌 넓은 범위의 질문을 통해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스크린 목적으로 거짓말 탐지를 적극 사용하고 있다. 
가령 정보기관이나 국경 수비대 등 뇌물이 쉽게 오갈 수 있는 기관의 경우 입사할 때뿐만 아니라 입사한 뒤에도 직원들에게 정기적으로 거짓말 탐지 검사를 받게 한다. 또 미국 입국자 중 마약이나 테러, 첩보 위험이 있는 인물을 대상으로 스크린을 하기 위해 거짓말 탐지가 이뤄진다. 기업에서는 산업 스파이를 찾아낼 목적으로 거짓말 탐지를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홍 심리연구사는 “스크린 검사는 위험 요소 색출에도 사용되지만, 그보다는 예방의 효과가 크다”며 “미국은 1990년대부터, 영국은 2014년부터 성범죄자가 출소한 뒤 보호관찰소 등 지정된 기관에서 주기적으로 거짓말 탐지를 받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범죄 전과자들은 ‘성범죄를 저질렀나’ ‘아동 대상 포르노를 본 적 있나’ ‘성매매 업소에 출입한 적 있나’ 등 성범죄와 관련된 폭넓은 질문을 받게 된다. 홍 심리연구사는 “이를 통해 전과자가 범죄를 저질렀는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전과자에게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인식을 가지게 해 추가 범죄를 예방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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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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