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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Fun] DGIST 학생들이 학교로 피서를 떠난 까닭은

기자가 겪어본 최고의 피서는 대학생 시절의 여름 방학이다. 방학을 맞아 선풍기를 켜고 나무늘보처럼 아무것도 안한다면, 그곳이 천국이다. 그런데 최고의 피서를 반납하고 매일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이 있다. 좋은 시절을 포기하고, 연구와 실험으로 더위를 이기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황현정 씨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3학년 학생이다. 보통 학생은 방학을 집에서 보내지만, 그는 학교에 남기로 결정했다. UGRP(Undergraduate Group Research P rog rom) 모임을 위 해서다. U GR P는  DGIST 3학년 학생들이 1년 동안 팀을 이뤄융․복합 연구를 진행하는 학내 프로그램이다. 현정 씨와 다른 동기 네 명의 연구 주제는 ‘지구 온난화 논쟁 되돌아보기’. 지구 온난화(기후변화)를 둘러싼 찬반의 논쟁을 정리하고, 이를 대중에게 쉽게 전달할 방법을 찾는 것이 목표다. 뜨거운 여름을 반납하고 의기투합을 할 정도면, 꽤 오랜 친구 사이겠거니 싶어 만나게 된 계기를 물었다. “‘UGRP 위키’를 통해서 한 팀이 됐어요. 원래 얼굴과 이름만 아는 사이였어요.” 현정 씨가 답답한지 스마트폰을 꺼냈다. 위키피디아와 디자인은 비슷했지만, UGRP 위키라는 이름이었다. UGRP에 관한 모든 정보가 모인 이 위키의 항목중 정약용 코스에서 현정 씨와 팀원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란시스 크릭, 장영실, 정약용, 빌 게이츠 중에 입맛대로 골라봐

UGRP는 크게 프란시스 크릭 코스, 장영실 코스, 정약용 코스, 빌 게이츠 코스로 나뉜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프란시스 크릭의 이름을 딴 코스는 순수과학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제를 수행한다. 장영실 코스는 공학의 관점에서 뭔가를 직접 만든다. 정약용 코스는 과학대중화와 예술과 과학의 접목
을, 빌 게이츠 코스는 과학기술의 학연산 협력 방법을 연구하거나 과학벤처 창업을 준비한다. 올해만 약 30여 개의 팀이 UGRP를 진행하고 있다.

현정 씨가 택한 지구 온난화 논쟁 되돌아보기는 과학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맞춘 과제다. 서양사가 전공인 역사학자 김대륜 기초학부 교수가 제안한 주제다. 김 교수는 “기후 변화가 과학적인 문제인 동시에 사회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융・복합 연구 주제로 적합하다”며 “학생들이 과학에 문외한인 제게 과학을 가
르쳐주고, 반대로 저는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문제를 볼 수 있게 돕고 있다”고 말했다.

현정 씨와 팀원들은 올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해 꾸준히 모임을 가졌다. 3학점이 걸린 정규 과목이지만, 따로 수업시간이 편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기 중에는 아무래도 진척이 더뎠다. 방학 동안에도 계속 모임을 갖는 이유도 부족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서다. 당장 2학기에 진행할 글쓰기, 인포그래픽 디자인, 대중강연 등 굵직굵직한 과제를 준비해야 한다. 과학커뮤니케이션에 종사하고 있는 현업자와의 만남도 계획 중인데, 때마침 과학동아 기자가 찾아와 일을 덜었다(?)며 모두 반가워했다.
 
▲황현정 씨(오른쪽)와 UGRP 팀원들. 맨 뒤에서 턱을 괴고 있는 이는 이들의 지도교수인 김대륜 기초학부 교수.


◀인턴 프로그램 동안 손상혁 펠로우팀은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스마트홈을 연구한다.








슈퍼컴퓨터부터 펠로우 교수까지, 말하는 대로 지원 받는다

UGRP 프로그램을 위해 학교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장익수 뇌인지과학전공 교수가 지도하는 바이오 빅데이터 연구팀이다.

슈퍼컴퓨터 동아리 출신의 학생 세 명이 지원한 이 과제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최근 뇌과학 분야에서 유행하고 있는 커넥톰을 연구하고 있다. 커넥톰은 복잡하게 얽힌 신경망의 연결구조를 하나하나 도식화하는 연구로, 나아가 이들의 기능까지 알아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만 개가 넘는 신경세포를 하나씩 연구하는 것도 까다롭지만, 그것의 연결을 살펴보는 것은 경우의 수가 훨씬 더 많다. 수학과 컴퓨터의 도움이 필수다.

DGIST는 이런 연구를 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학생들이 매일 모여 토론을 하는 연구실 지하에 국내 대학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가 있기 때문이다. DGIST슈퍼컴퓨팅 빅데이터센터의 슈퍼컴퓨터 아이렘(iREMB)은 세계에서 455번째로 빠른 슈퍼컴퓨터다(2016년 6월 기준). 아이렘보다 더 빠른 슈퍼컴퓨터가 기상청과 국내 기업에도 있지만, 순수하게 교육 및 연구 목적으로 사용하는 슈퍼컴퓨터 중에서는 성능이 가장 뛰어나다. 이 슈퍼컴퓨터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장교수는 UGRP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유에 대해 “슈퍼컴퓨터와 생물학을 융합한 연구로 학생들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빵빵한’ 지원에 학생들도 응답했다. 방학을 반납하고 연구실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다. 매일 아침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게 일상이다. 등을 맞대고 논문을 읽고, 잘 모르는 부분은 토론을 한다. 과제에 참여 중인 정태곤 씨(DGIST 3학년)는 “각자 잘하는 분야가 조금씩 달라 의지할수 있다”며 “배낭여행은 언제든 갈 수 있지만 이 연구는 지금 하지 않으면 남에게 빼앗길 것 같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연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며 “올해 말에 정식으로 논문을 내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학부생들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최고의 과학자와 직접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UGRP의 장점이다. 국내 최고의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며 기초과학연구원(IBS) 단장을 맡고 있는 남홍길 뉴바이올로지전공 펠로우(세계적 수준의 교수에게 부여한 DGIST의 호칭)도 직접 UGRP과제를 돕고 있다. 남 펠로우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쁘지만 학생을 만나는 게 일 순위”라고 말했다. 이런 도움 덕분에 지도교수 일인당 학생 수는 3.06명으로 매우 낮다. 특허 문제 같이 교내에서 전문가를 찾기 어려운 경우에는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문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다른 학교에서 DGIST의 융・복합연구로 피서를 온 학생들도 있었다. DGIST는 매년 여름 방학을 앞두고 인턴 프로그램 참가자를 모집한다. 치열한 경쟁 끝에 선발된 학생 수십 명은 기숙사와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DGIST에서 여름을 보낸다. 올해는 홍콩, 스웨덴, 폴란드 등 외국 대학의 학생들도 참가하고 있다.

손상혁 정보통신융합공학전공 펠로우의 실험실을 찾은 세 학생은 저마다 DGIST에 온 이유가 달랐다. 박민철 씨(고려대 제어계측공학과 4학년)와 박광호 씨(경북대 전자공학부 3학년)는 대학원 진학에 뜻을 두고 이곳을 찾았다. 민철 씨는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 미리 현장의 분위기를 체험하고 싶었다”고 말했고, 광호 씨는 “손 펠로우의 실험실에 꼭 진학하고 싶어 미리 찾아왔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온 박지환 씨(광운대 전자융합공학과 4학년)는 취업을 준비 중이다. 지환 씨는 “DGIST에서 여름 인턴을 했던 친구가 이 경험을 살려 취업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지환 씨처럼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도 차별은 없다. 공동과제를 하고 있는 다른 두 명과 달리, 오히려 지환 씨는 독립적으로 과제를 하고 있다. 그가 이번 여름 동안 연구를 할 분야는 사물인터넷을 이용한 스마트홈이다. 지환 씨는 “프로그래밍이 익숙지 않아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며 “인턴 기간 동안
큰 프로젝트를 끝내기는 힘들어도 실전을 통해 실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철 씨와 광호 씨는 ‘자칼’이라는 조그마한 무인 자동차를 이용해 스마트카를 개발하고 있다. 이들도 역시 프로그래밍에 애를 먹고 있었다. 광호 씨는 “평소에 로봇 전용 운영체제를 다뤄본 적이 없어서 아직 적응 중”이라며 “앞으로 회전교차로에서 차량이 진입할 때 충돌을 피하는 방법을 연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 사람의 지도교수이자 대학원장인 손상혁 펠로우는 “인턴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이 융합 과학자로 발돋움할 수 있게 도울 것”이라고 전했다.

DGIST가 학부생을 모집한 것은 불과 3년 전이다. 이번에 기자가 만난 3학년 학생들은 모두 DGIST의 첫 번째 학부생으로, UGRP는 이 학생들이 과학자로 첫 발을 내딛는 과정이다.

처음은 언제나 설레는 법이다. 그 설렘은 아마 많은 청춘들이 오늘도 캠퍼스 한켠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올 여름의 담금질이 끝나면 설렘이 열정을 넘어, 진짜 과학으로 변해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1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대구 = 송준섭 기자
  • 사진

    이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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