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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우주 이론과 직, 간접적으로 관련된 학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아인슈타인, 레너스 서스킨트, 폴데이비스, 로저 펜로즈, 스티븐 호킹.]

누벼이은 다중우주
‘무한’은 쉽지 않다

‘무한’이라는 가정은 만만치 않은 가정이다.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물리적으로 정말 무한이 존재할 수 있는가’는 함부로 사용하기 어려운 주제”라고 말했다. 박병철 대진대 물리학과 교수(과학번역가)는 “수학적으로도 대단히 까다로운 가정”이라고 말했다. 그린 교수도 ‘멀티 유니버스’에서 “우주의 크기가 무한이라면 시간이 0일 때(탄생 시점) 우주가 아주 작은 점이었다는 가정을 할 수 없다”는 예를 들고 있다. 무한은 작게 만들어도 무한이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누벼이은 다중우주를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관측 범위 밖에서 우주가 갑자기 벼랑 끝처럼 끝나리라고 믿는 편이 더 부자연스럽다. 우주배경복사 관측위성 ‘WMAP’의 측정 결과도 우주가 무한하거나 적어도 대단히 클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WMAP와 은하 적색편이 측정 결과를 종합해 보면 우주에서 물질은 거리에 비례한다. 이는 물질이 우주에 걸쳐 균일하게 차 있다는 뜻이다. 관측 범위를 넘어서도 같은 양상을 보일 수 있다. 이형목 교수는 “지평선(호라이즌) 부근에 있는 우주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 너머의 우주도 물리학적인 조건은 같다는 것이 현재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영원한 인플레이션
반드시 ‘딴 세상 물리학’을 낳는 것은 아니다

이 이론이 증명되려면 먼저 인플레이션 이론의 타당성이 증명돼야 한다. 인플레이션 이론 자체는 우주배경복사 관측으로 설득력을 지니게 됐지만, 1980년대에 로저 펜로즈 영국 옥스퍼드대 물리학과 교수가 주장했던 ‘초기조건 문제(인플레이션이 다른 형태로 일어나거나 심지어 일어나지 않고 지금과 같은 ‘평평한 우주’가 나타날 확률이 훨씬(1010100배) 높다는 주장)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또 핵심인 인플라톤장은 측정을 통해 증명되지 않은 가설적인 장이다.

영원한 인플레이션이 만든 다중우주의 흔적을 검출하려는 시도도 있다. 매튜 클레번 미국 뉴욕대 물리학과 교수는 2011년 한 논문에서 “팽창하는 거품 다중우주가 서로 충돌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우주배경복사에 특정한 무늬(온도 차이)를 남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개별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보다 우주끼리 서로 멀어지는 속도가 더 빨라 만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우주마다 물리법칙이 다르다는 가정도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지 엘리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 수학과 석좌교수는 2011년 8월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기고문을 통해 “영원한 인플레이션 자체만으로 다중우주마다 다른 물리법칙이 있다는 결론을 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워싱턴주에 위치한 중력파검출기 ‘라이고(LIGO)’ 의 모습. 현재는 업그레이드 중이다. 중력파를 찾으면 주기적 다중우주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다세계 해석
‘해석’을 증명할 방법이 있는가

양자역학이 일으키는 기묘한 현상 자체는 이미 숱한 실험과 예측으로 거의 완벽하게 증명돼 있다. 하지만 그것이 코펜하겐 해석의 설명대로인지, 다중세계 해석대로인지를 알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특히 수많은 입자로 구성된 현실 우주가 정말 갈라질지 알 방법은 더더욱 요원하다. 데이비드 앨버트 미국 컬럼비아대 철학과 교수(물리철학)는 2007년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어느 해석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중첩 현상을 실험하고 있지만, 1000개 입자를 실험한 정도에 불과하다”며 “일부 학자들이 106개 입자를 지닌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실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세계의 ‘갈라짐’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박병철 교수는 “세계가 무수히 갈라진다는 사실은 쉽게 제안할 수 있고, 이해하기도 쉽다. 그런데 그렇게 갈라진 세계의 ‘나’와, 마찬가지로 무수히 갈라진 세계의 ‘너’가 같은 세계에서 만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하고 반문했다. 문제는 세계가 갈라지는 현상이 아니라, 그 세계가 ‘나’와 너’에게 동일하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확실한 설명이 다중세계 해석에는 없다.

시뮬레이션 다중우주
이것이 ‘진짜 우주’일까

이 다중우주는 한 가지 심오한 결론으로 우리를 이끈다. 만약, 만들어진 시뮬레이션 우주 안에 의식이 있는 생명체가 있다면 어떨까. 누군가가 자신과 자신의 우주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우리는 고차원적인 곳에 있는 ‘누군가’가 우리 우주를 포함한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또는 궁극적 다중우주)를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다음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과학일까.”

또다른 의문도 있다. 서로 다른 수학적 구조를 지닌 다양한 시뮬레이션 다중우주 가운데 ‘진짜 우주’가 따로 있는가. 만약 있다면 이들을 시뮬레이션화한 컴퓨터와 프로그래머가 쓴 수학이 진짜 우주일까. 그렇다면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는 가짜 우주일까.
 

 
[지난 해 7월 스테판 피니 영국 런던대 물리천문학부 교수팀이 찾은 ‘영원한 인플레이션 다중우주’의 충돌 흔적 후보(오른쪽 아래 색이 다른 부분). 아직은 좀더 상세한 연구가 필요하다.]

주기적 다중우주
관측을 통해 검증할 수 있을까

그린 교수는 ‘멀티 유니버스’에서 “현재 이 이론을 진지하게 믿는 학자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다중우주가 그렇듯, 이 이론도 관측을 통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 만약 관측에 성공해서 브레인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면 브레인의 충돌을 전제로 한 주기적 우주의 존재 가능성도 높아진다. 하지만 브레인 관측은 아직은 요원하다.

관측 증거 후보로 유력한 것은 우주 초기의 중력파다. 빛을 이용해 관측이 가능한 시간적 한계는 빅뱅 이후 38만 년 이후부터다. 이 경계를 “최후산란면”이라고 하며, 그 이전은 오직 중력이 시공간에 미친 요동인 ‘중력파’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이형목 교수는 “주기적 다중우주설에서는 빅뱅 직후 중력파가 나오지 않는다고 본다”며 “반면 인플레이션 우주론에 따르면 중력파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중력파 검출 여부가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력파 검출은 현재 미국의 ‘라이고(LIGO)’ 등 몇 곳에서 이뤄지고 있는데(라이고는 현재 업그레이드 중), 아직은 직접 우주 초기 중력파를 검출할 해상도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이 문제는 검출기의 성능을 높이고 지구 밖에 검출기를 보내는 방법으로 해결할 계획이다.

랜드스케이프 다중우주
10500개의 우주상수는 어디로 갔는가

랜드스케이프 다중우주의 강점은 다양한 우주상수를 지닌 우주를 찾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끈이론을 통해 여분차원의 다양한 조건을 계산하면 다양한 진공에너지 밀도(우주상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얻은 우주상수들 중에 우리우주와 같은 우주상수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초끈이론의 범주에서 수학적으로 얻은 우주상수 중 값이 양수인 우주상수는 거의 없다(우리 우주의 우주상수는 0보다 약간 큰 양수다. 47쪽 그림 참조). 이필진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는 “음수인 우주상수는 무수히 많이(101000개) 계산해냈지만, 양수인 해는 현재까지 한 가지 종류만 알려져 있다”며 “끈이론 내부에서도 수학적으로 다중우주가 있느냐에 대해 여전히 확신하지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음수인 우주상수를 갖는 우주는 아무리 많아도 은하가 만들어지지 않고 수축해 버려 다중우주 논의에서는 다룰 이유가 없다. 이 교수는 “음수 우주상수 계산 결과 중 일부를 수학적인 방법을 이용해 양수로 만드는 방법이 세계적으로 연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피니 교수팀이 찾은 인플레이션 다중우주의 ‘충돌 흔적’ 후보 분석 결과. 맨 위가 온도로, 커다란 원 모양의 온도 요동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연구팀은 플랑크 위성 등 추가 연구 필요성을 제기했다. 다중우주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결론 이것이 과학인가 vs. 우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폴 데이비스 호주 매쿼리대 우주생물학센터 교수는 2004년 논문에서 다중우주를 둘러싸고 “이것이 과학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관측범위 안으로 관측이 제한된 상황에서 ‘그 밖’의 존재를 논하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는 비판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데이비스 교수는 “관측할 수 없는 내용을 예측하는 일이라도, 그것이 검증 가능한 결론을 낼 수 있는 이론에서 나왔을 때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다중우주를 상상 속의 상상을 의미하는 ‘도깨비 뿔’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관측을 통한 검증, 입자물리 실험을 통한 간접 검증, 그리고 이론 자체의 수학적 엄밀성에 따른 검증이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예를 들어 중력파 검증은 우주 탄생 초창기의 중력파를 검출할 수 있도록 검출기의 저주파수 감도를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아예 우주로 검출기를 올리는 방안과 지질학적 진동을 줄이는 새로운 검출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는 끈이론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인 초대칭 입자를 찾고 있지만, 물리학자들에 따라 지금보다 1만 배 이상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다중우주의 존재는 우주 자체의 모습을 밝히는 의미도 있지만 또다른 의미도 있다. 우리가 수많은 우주 중 하나의 우주에 살고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랜드스케이프 다중우주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마치 신이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은하와 생명이 탄생하기 딱 좋지만 전혀 특이한 우주가 아니다. 서로 다른 물리 상수를 지닌 수많은 다중우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사실 랜드스케이프 다중우주만이 아니다. 영원한 인플레이션 이론에서도, 다중세계에서도 우리 우주는 수많은 우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우리 우주가 우리 인간이 탄생하기 좋은 조건인 것은 그저 우연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면, 다중우주론은 ‘우리 우주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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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우주를 뛰어넘은 사랑 가능할까 - 다중우주
Part1. 숨겨진 다중우주를 찾아서
Part2. 끈이론 다중우주
Part3. 비판과 한계

201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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