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 가능한 우주 범위 밖에서 우주가 멈춘다는 증거는 없다. 이런 우주가 하나하나의 우주를 구성한다고 보면 전체가 다중우주를 이룬다.]
특징 비슷한 우주가 반복된다
1단계 다중우주는 관측 한계를 벗어난 지역 너머에 존재하는 또다른 우주다. 이 우주의 특징은 우리 우주와 같은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이다.
아이디어 우주의 반복을 계산할 수 있다
현재 관측 가능한 우주의 범위는 반지름 약 420억 광년으로 한정돼 있다. 관측 수단인 빛이 그 이상의 우주를 우리에게 안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외계 지적생명체라 해도 마찬가지다. 반지름 420억 광년의 공간이 하나의 우주를 구성하며, 우리 우주 밖에는 이런 우주가 바로 붙어서 늘어서 있다. 이 모습은 캡슐 모양의 우주가 계란판처럼 끝도 없이 늘어서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2003년 테그마크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우리 우주 안에 있는 입자의 수는 10118개다. 입자 하나의 배열을 2진 부호로 계산하면 모든 입자가 만들 수 있는 배열의 경우의 수는 210118개다. 이 가능성에 따라 배열된 우주를 하나씩 전부 세트로 갖추려면 얼마나 큰 공간이 필요한지도 계산했다. 지름이 1010118m 규모다. 다시 말하면 확률상 1010118m를 지날 때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우주와 똑같은 우주가 한 번은 되풀이된다는 뜻이다(테그마크 교수는 2006년 발표한 논문에서도 다시 한번 계산을 했다. 이 때는 지수가 118이 아니라 115였다. 반면 2011년 브라이언 그린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저서 ‘멀티유니버스’에서 행한 계산에서는 입자가 배열될 총 경우의 수가 1010122개로 다소 크다.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압도적으로 큰 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탄생 무한 공간 속 도플갱어
바로 여기에서 제1다중우주가 생길 가능성이 태어난다. 테그마크 교수의 주장이 사실이고 만약 우주가 1010118m보다 크다면, 확률상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와 입자의 배열 상태가 완전히 똑같은 우주가 다시 나올 가능성이 있다. 만약 우주의 크기가 무한이라면, 우리와 똑같은 우주 역시 무한 개 되풀이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와 아주 비슷한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지만 은하나 물질, 생명체의 상태는 조금씩 다른 우주가 무한 개 있다는 뜻이다. 지금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독자와, 독자가 살고 있는 우리 캡슐 우주도 도플갱어처럼 무한 개 존재한다는 뜻이다.
[영원한 인플레이션 다중우주는 두 가지 형태로 묘사된다. 첫 번째는 영원한 인플레이션 이론을 처음 제시한 안드레이 린데 미국 스탠퍼드대 물리학과 교수가 묘사한 포도송이 모양(위)이다. 오늘날에는 테그마크 교수가 ‘빵 속 기포’라고 묘사한 형태로도 많이 표현된다.]
특징 물리법칙이 다른 ‘딴세상’ 우주
2단계는 우리 우주와 다른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 우리와 전혀 다른 다중우주가 존재한다고 본다. 끈이론과 관련 있는 다중우주 둘은 파트3에서 따로 소개하고, 여기에서는 영원한 인플레이션 다중우주만 소개한다.
아이디어 인플레이션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인플레이션 이론은 우주가 밀도가 무한한 한 공간(우주의 평평도에 따라 하나의 점일 수도 있고, 끝없이 펼쳐진 무한 공간일 수도 있다)에서 시작됐으며, 초창기에 우주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시기가 있었다고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서는 우주가 척력을 발생시키는 입자(Inflaton,인플라톤)의 장(field,‘인플라톤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본다. 인플라톤장의 에너지(일종의 위치에너지)가 높으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마치 높은 산 위의 공이 골짜기로 굴러 떨어지면 위치에너지를 방출하며 공의 속도를 높이듯(운동에너지로 바뀌었다), 인플라톤 에너지도 낮아지면서 뭔가 다른 일을 한다. 이때 인플라톤이 하는 일은 물질과 암흑물질을 만드는 것이다. 마치 수증기가 응결하듯 물질(입자)이 생기고, 물질이 양자역학적인 요동 때문에 지역적으로 조금씩 밀도를 달리하면 별과 은하가 생긴다.
인플레이션 우주론에서는 우리 우주가 탄생 뒤 10-30초만에 인플라톤이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낮은 상태로 뚝 떨어졌다고 본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에 인플라톤의 영향으로 공간은 1025배로 팽창했다. 공간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팽창했고, 초기의 초고온 상태를 벗어나 차갑게 식어버렸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이론에 따르면, 우주가 아직 작을 때는 온도 등의 정보를 모든 곳과 서로 충분히 교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온도가 균질해졌고, 137억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주 초창기에 최초로 방출한 빛이 남긴 온도 흔적(이것이 ‘우주배경복사’다)은 균질하다. 우주 전체에서 겨우 1000분의 1 정도의 차이밖에 없을 정도다. 인플레이션 없이 이렇게 될 확률은 대단히 낮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이론은 우주의 탄생을 잘 설명해 준다는 평을 듣고 있다.
등장 끊임없이 ‘새끼 우주’가 태어난다
이런 인플레이션 우주론에서 다중우주의 아이디어가 나온다. 인플레이션 우주론 중에는 인플레이션이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주 여기저기에서 계속해서 일어난다는 ‘영원한 인플레이션’ 이론이 있다. 이것은 인플라톤 입자가 ‘모든 상태가 가능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때문에 에너지 상태가 낮은 상태로 고정되지 않고 변덕스럽게 변해서다.
이런 인플라톤 장의 요동 때문에 우주에는 인플라톤 에너지의 크기가 미세하게 다른 지역이 여기저기 마구 섞여 있게 된다. 이 중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큰 지역에서는 팽창이 일어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는 뻥 뚫린 공백이 생기고 안에 물질과 은하가 생길 것이다. 이 과정이 우주 대부분의 지역에서 영원히 계속된다. 그 결과, 우주 안팎에 우주가 새끼처럼 계속 생겨난다. 이 우주는 입자에 질량을 주는 힉스 등 입자의 특성이 다르다. 그래서 제1우주와 달리 물리법칙이 완전히 다른 우주가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에 따르면, 우주는 양자의 파동함수에 따라 끊임없이 갈라진다. 하나하나의 우주가 다중우주를 구성한다.]
특징 세계가 갈라져 독립된 다중우주가 된다.
양자역학의 기묘한 특성이 지금도 무한한 다중우주를 낳고 있다. 나(정확히는 나를 구성하는 입자들) 역시 매 순간 우주를 가르고 있다.
아이디어 양자역학 속 ‘해석’의 문제
양자역학에서 가장 기묘한 성질은 양자역학의 심장에 숨어 있다. 바로 양자역학을 수학적으로 기술한 ‘슈뢰딩거 방정식’이 때때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시간에 따른 양자의 상태를 담고 있는 함수, 즉 양자의 ‘파동함수(어떤 계의 정보나 상태를 담고 있는 함수)’를 구하기 위한 방정식이다. 그런데 고전 물리학과 달리 슈뢰딩거 방정식의 해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에너지 상태를 설명하는 파동함수로 나온다.
그래서 양자역학에서는 구한 해를 ‘해석’하는 일이 중요해졌다(자세한 내용은 과학동아 2011년 10월호 특집 ‘양자역학과 춤을’ 3부 참조). 해석을 쉽게 이야기하면 “서로 다른 상태(위치나 에너지 등)의 양자가 동시에 존재하는가 또는 그 중 하나만 존재하는가” 등을 결정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책상 위 볼펜의 위치를 나타내는 파동함수를 구했는데(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었음), 볼펜의 위치가 책상 아래 30cm, 위 15cm, 5500km 상공, 이런 식으로 나왔다면 “볼펜이 세 군데에 동시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어떤 이유 때문이든) 이 중 하나에 존재하는가”를 해석해야 한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볼펜 하나가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입자는 가능한 모든 곳에 동시에 위치할 수 있는 기묘한 성질이 있다(‘중첩’). 좀더 정확히 설명하면 책상 위, 아래, 5500km 상공 등 세 곳에 볼펜(입자)이 있을 수 있고, 그 중 어디에 있는지는 관측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같은 볼펜이지만 관측 전에는 여러 곳에 동시에 위치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기묘한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이 여러 가지 해석을 제시했다.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세 곳에 “확률적으로 존재한다”는 해석이다. 이에 따르면 파동함수는 입자가 어떤 상태를 지닌 확률을 나타내는 함수가 된다. 입자의 위치가 각각 ‘책상 아래, 위, 5500km 상공에 각각 90%, 9%, 1% 존재할 확률’이라는 식이다. 그러다 관측을 하면 확률함수가 작동하지 않고 한 곳에 100% 존재하는 것으로 바뀐다. 기이해 보이지만, 이 해석은 양자역학을 이용한 수많은 계산과 예측에 잘 맞는다. 이를 받아들인 해석이 닐스 보어 등이 확립한 ‘코펜하겐 해석’이며, 현재 양자역학 해석의 주류다.
등장 다세계 해석, 양자역학 접수하나
그런데 중요한 문제가 있다. 막상 관측을 통해 양자의 상태를 하나로 결정하는 과정은 슈뢰딩거 방정식에 없는 내용이다. 즉, 방정식을 방정식에 없는 방법으로 푸는 셈이다.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이를 파동함수가 ‘붕괴한다’고 표현하는데, 수학적으로 엄밀하지 못한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있다. 여기에서 세 번째 단계의 다중우주가 태어날 가능성이 나온다. 미국의 양자물리학자 휴 에버렛 3세는 코펜하겐 해석에 반대해 ‘다세계 해석’을 내놨다. 이 해석에 따르면, 관측을 해도 파동함수는 붕괴하지 않는다. 책상 아래, 위, 5500km 상공 모두에 볼펜이 존재한다. 다만 세 곳에 각각 볼펜이 있는 세계가 ‘갈라질’ 뿐이다. 그리고 갈라진 세계 하나하나가 다중우주다.
이 해석에 따르면 우리(정확히는 우리를 구성하는 입자들)가 행하는 모든 판단과 행동도 다 우주를 갈라놓는다. 만약 이 기사를 끝까지 읽을지, ‘로맨틱한 호관씨’를 읽기 위해 건너뛸지 고민하다 ‘로맨틱한 호관씨’를 택했다면, 우주는 ‘이 기사를 끝까지 읽는 나’가 있는 세계와 ‘로맨틱한 호관씨’를 읽으러 간 나’가 있는 세계로 갈라진다. 일상에서도 무수히 많은 우주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 다른 거대 다중우주 이론과 다른 점이다.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는 수학이 곧 물리적 우주와 같다고 본다. 상상할 수 있는 어떤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우주라도 만들 수 있다.]
특징 가능한 우주는 모두 존재할 수 있다
테그마크 교수의 마지막 4단계 다중우주다. 입자의 상태, 상수, 파동함수 등 물리학적 조건을 아예 자유자재로 바꾼 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 심지어 일부러 창조할 수 있다.
아이디어 우주와 수학은 다르지 않다
4단계 우주는 테그마크 교수가 직접 제안한 아이디어로, 추상적인 수학 속에 존재하는 우주다. 하지만 수학적 구조와 실제 물리적 우주 사이에 차이가 없다면 어떨까. 수학적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우주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궤변 같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물질을 구성하는 것은 입자고, 입자의 성질을 규정하는 것은 입자의 종류와 입자가 만드는 장(field)이다. 입자의 장은 장 방정식으로 결정될 것이고, 입자는 지니고 있는 에너지, 파동함수 등에 따라 설명된다. 장과 장 방정식, 입자와 입자의 파동함수 등 ‘물리적 우주’와 ‘수학’ 사이의 차이를 명확히 밝히기 어렵다. 굳이 구분하자면, 물리적 우주가 있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수학을 동원했다고 볼지, 반대로 수학이 있고 이것에 대응하는 물리적 우주가 있는지의 차이 정도다.
등장 상상 가능한 모든 우주를 만든다.
두 가지 입장 중 ‘물리적 우주가 있고 수학은 설명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제외하면, 우주는 곧 수학과 동일해진다. 즉 수나 방정식, 함수가 존재하면 대응하는 물리적 실체를 찾을 수 있다(실제로 입자물리학의 많은 입자를 이런 순서로 찾았으니 황당한 생각은 아니다). 따라서 컴퓨터로 다양한 수학적 우주를 만들어 물리적 다중우주를 만들 수도 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수학 법칙을 지닌 우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우주도 이런 우주 중 하나가 된다. 이런 이유로 테그마크 교수는 ‘궁극적 다중우주’라는 말을 썼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우주를 뛰어넘은 사랑 가능할까 - 다중우주
Part1. 숨겨진 다중우주를 찾아서
Part2. 끈이론 다중우주
Part3. 비판과 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