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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소개할 두 개의 다중우주는 테그마크 교수가 분류한 4단계 분류에서는 2단계에 속하며, 비교적 새로운 다중우주 아이디어다. 모두 최신 끈이론과 관련이 있다.

 


특징 시간에 따라 나타나는 다중우주

이 우주는 기사에서 소개한 나머지 다섯 개의 다중우주와 전혀 다르다. 다른 다중우주들이 모두 공간속에 여러 개의 우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형태인데 반해, 이 다중우주는 시간 속에 여럿 존재하는, 주기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다중우주다.

빅뱅, 그리고 뒤이은 인플레이션을 떠올려보자. 이 이론은 우주가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설명해 준다. 하나의 특이점에서 우주가 시작됐고,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다(팽창하는 속도는 느려지다 다시 빨라지고 있다). 우주에 시작점이 있다는 것은 이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전에는 우주가 없었다. 영원한 인플레이션이론에서 아무리 포도송이 다중우주를 이야기해도, 모두 ‘우주가 시작된 뒤’에 만들어졌다는 점은 동일하다.

하지만 만약 이 ‘시작’점이 사실은 시작이 아니라면 어떨까. 빅뱅으로 우주가 태어나는 순간 이전에도 우주가 존재했다. 우주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빅뱅과 인플레이션을 일으켰고, 새로운 우주가 탄생했다. 하지만 이 우주도 시간이 지나면 어떤 이유로 다시 대폭발을 일으킨다. 이 과정이 무한히 반복된다. 빅뱅과 인플레이션이 탄생시킨 하나하나의 우주는 각각 모두 다른 우주다. 시간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고를 반복하기 때문에 ‘다중’우주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시간을 하나의 긴 줄에 비유하고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우주를 줄에 있는 매듭이라고 보면, 여러 개의 우주가 시간이라는 차원에 나란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공간의 차원에서 보면 시간과 나머지 공간(3차원)을 구분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주기적 다중우주도 어엿한 다중우주다.

사실 ‘주기적 다중우주’ 아이디어는 옛날부터 있었다. 우주가 주기적으로 팽창했다 다시 쪼그라들어 점으로 작아졌다는 아이디어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론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아이디어에 불과했다. 하지만 끈이론을 통해 정교한 세부 사항을 설명할 수 있게 됐다. 몇 가지 설명이 있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2000년대 초반 큰 인기를 얻은 ‘브레인(brane) 충돌 빅뱅 이론’이다.


아이디어 새로운 끈이론이 낳은 우주들

오늘날 끈이론은 닫히고 열린 작은 끈만 다루는 이론이 아니다. 끈이 방향이 하나인 1차원 요소라면, CD나 종이 같은 2차원, 튜브 같은 3차원 요소까지 다양한 차원의 요소를 다룬다. 최신 끈이론인 M이론에서는 다양한 차원의 공간이 9차원까지 있으며, 이들이 11차원 시공간 속을 떠다닌다. 사람은 3차원 이상의 공간을 상상할 수 없으니 차원을 낮춰 비유하면, 3차원 허공에 2차원 마법의 양탄자가 떠다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들 하나하나의 공간은 ‘브레인’이라고 하며 우리가 사는 우주도 그 중 하나인 3차원 브레인이라고 본다(보기에 따라 브레인 하나하나를 다중우주로 여길 수도 있다).

브레인 충돌 빅뱅 이론에 따르면 이들 브레인(몇 차원이든 상관없다)은 더 큰차원의 시공간 속에서 가까이 있을 수 있고, 충돌도 할 수 있다. 이 충돌이 바로 빅뱅이다.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충돌이 일어나고 나면(➊), 두 브레인은 마치 심벌즈를 탕 치고 난 다음처럼 서로 튕겨나가며 멀어진다. 이 과정에서 팽창이 일어난다(➋). 두 브레인 사이의 중력 때문에(중력은 중력자라는 닫힌 끈이 매개하는데, 브레인 사이를 떠돌아다닐 수 있는 유일한 끈이다) 멀어지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다 어느 순간 멈추고는(➌)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멀어질 때는 브레인의 팽창 속도가 느려지고, 멈췄을 때 쯤에는 물질 농도가 희박해진다. 가까워질 때 브레인의 팽창 속도는 반대로 빨라진다(➍). 그리고 다시 심벌즈가 부딪히듯이 충돌이 일어나며 우주는 진공에서 다시 시작한다.

이 이론은 빅뱅 이후 팽창속도가 느려지다가 약 70억 년 이후 다시 빨라져 현재에 이르렀다는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이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다시 브레인이 서로 충돌을 향해가고 있는 중이다.

등장 주기적 다중우주의 가능성

주기적 다중우주론은 표준 빅뱅이론과 인플레이션 우주론이 갖는 단점을 몇 가지 해결해 준다. 가장 큰 장점은 이전 이론이 갖던 골치 아픈 난제를 피해간다는점이다. 바로 우주의 시작이 언제인지를 물을 필요가 없어진다. 우주에는 시작도 끝도 없어진다. 우주상수(또는 암흑에너지)와 관련한 미스터리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이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인 폴 스타인하르트 미국 프린스턴대 수리과학센터 교수는 2006년 미국 뉴포트에서 열린 14회 ‘초대칭과 기본 상호작용력의 통일’ 학술대회에서 “우리 우주가 하필 ‘딱 좋은’ 우주상수를 지닌 이유를 굳이 랜드스케이프(뒷 페이지 제6우주 참조)를 통하지 않아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주기적 다중우주인 ‘브레인 충돌 빅뱅 이론’의 주창자 중 한 명인 폴 스타인하르트 미국 프린스턴대 물리학과 교수가 홈페이지에 만들어 둔 동영상을 통해 과정을 좀더 실감나게 볼 수 있다. http://goo.gl/ZvBok

 

 

특징 우주를 설명할 새로운 생각

물리학자들은 다시 한번 오래 전 아인슈타인이 제기했던 ‘우주상수’를 떠올렸다. 먼 천체(초신성) 연구 결과,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로 발견된 것이다. 팽창 속도가 점점 빨라지려면 서로 당기는 이들 천체를 강제로 멀리 떼어놓는 힘, 즉 반발력에 해당하는 힘이 따로 존재해야 했다. 아인슈타인이 우주가 수축하지 않도록 추가한 우주상수가 후보가 될 수 있었다.

오늘날 물리학자들은 우주상수를 ‘진공이 원래 가진 고유 에너지의 밀도’로 본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진공은 물질과 에너지가 없는 상태가 아니다. 입자와 반입자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다시 서로 충돌해 끊임없이 사라지는 상태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나온다. 우주는 이 진공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이 에너지는 미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카시미르 힘’. 과학동아 2011년 10월호 특집 ‘양자역학과 춤을’ 참조), 천체 등 물질이 갖는 중력(끌어당기는 힘으로, 결국 우주를 수축시킨다)에 대항해 우주를 팽창시킨다.

현재 관측으로 확인된 우주상수는 대단히 작다(물리학자들이 쓰는 단위 없는 기준으로 10-123). 그리고 시간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 값, 즉 상수다. 그런데 이 값이 정확히 지금의 값이 된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오묘하게도 지금의 우주상수는 물질과 은하를 만들고, 생명체를 탄생시키기에 딱 맞는 값을 가지고 있다. 스티븐 와인버그 미국 텍사스대 교수는 “우주상수가 지금보다 수백 배 커지면 생명은 물론 은하도 탄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우주를 (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해) 신이 만들었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주장을 부정하기에는 우리 우주의 우주상수가 너무나 절묘했지만, 새로운 다중우주론이 이 문제를 해결할 후보로 등장했다.


아이디어 우주 속에 다른 차원의 우주가 10500개?

끈이론이 예측하는 두 번째 다중우주는 서로 다른 진공 에너지, 즉 우주상수를 지니는 우주가 굉장히 많다고 본다. 이것은 끈이론에서 진공 에너지가 가질 수 있는 값의 범위가 무척 넓기 때문에 가능하다. 마치 산꼭대기에 있는 공이 낮은 골짜기로 가면 안정된 상태가 되듯, 진공 에너지도 낮은 값일수록 안정한 상태가 된다. 따라서 만약 진공 에너지의 분포가 주변보다 낮은 곳이 있다면, 이 조건은 안정한 상태기 때문에 그 값을 진공 에너지로 하는 우주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끈이론에서 이렇게 진공 에너지 분포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은 무수히 많다고 본다. 앞서 말했듯 오늘날의 끈이론인 M이론에서는 모두 11차원의 시공간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4차원(3차원 공간과 시간) 외에 다른 차원은 어디에 있을까. 먼저 앞서 제5다중우주에서 이야기했듯, 우리가 볼 수 없는 고차원 우주 속을 우리가 떠다니고 있다는 설명이 있다. 또 하나의 설명은 남은 차원이 우리가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차원 속에 숨어 있다고 본다. 이런 차원을 ‘여분차원’이라고 부르는데, 이 설명에 따르면 친숙한 3차원 공간의 어떤 한 점을 확대해 보면 아주 작게 말려있는 6차원 또는 7차원의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의 크기는 플랑크 길이(10-33cm. 끈이론의 끈 길이가 이 정도 규모다) 단위이기 때문에, 4차원 시공간에서는 볼 수 없고 확대해야만 볼 수 있다. 마치 건물 위에서 바닥에 널어 둔 이불을 보면 그냥 평평한 2차원 평면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내려와 보면 고리 모양으로 만들어진 작은 실밥이 보이는 것과 같다.

이런 여분차원에는 진공 에너지 분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여럿 있다. 여분차원은 도넛 모양의 고리가 여러 개 꼬여있는 형태다. 꼬인 모양, 개수, 크기나 길이,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브레인과 다발(‘플럭스(flux)’라고도 하며 끈에 작용하는 힘을 의미한다)의 형태 등에 따라 각기 다른 에너지를 갖는다. 끈이론에서는 이런 조건의 조합이 10500개 존재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여분차원이 10500가지 존재할 수 있다.

이 이론을 우주론에 적용해보자. 진공 상태의 우주(시공간) 모든 점을 플랑크 길이 규모로 확대해 보면 이렇게 숨어 있는 여분차원이 존재하며, 이들은 서로 다른 에너지를 지닌다. 이 에너지가 바로 진공에너지다. 그리고 이 진공에너지 가운데 앞서 말한 조건에 따라 상대적으로 ‘안정한’ 상태에 있는 점이 있다. 이 안정한 지점도 무수히 많다. 바로 이것이 끈이론에서 다양한 범위의 우주상수(진공 에너지)를 지니는 진공 공간(우주)이 탄생할 수 있는 비법이다. 고등과학원 물리학과 석좌교수이기도 한 레너드 서스킨트 전 미국 스탠포드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렇게 다양한 에너지 안정도를 지닌 광범위한 상태 목록의 조합을 봉우리와 골짜기가 있는 자연에 비유해 ‘풍경(또는 경관. 랜드스케이프)’이라고 이름 지었다.


등장 풍경 속 다중우주의 탄생

드스케이프 다중우주의 모습은 제2우주(영원한 인플레이션 다중우주) 중 빵의 기포 모양을 한 우주와 비슷하다. 공간 안에 우주상수가 다른 또다른 새끼 우주가 생기며, 이 과정이 반복되며 다중우주가 된다.

일단 이렇게 탄생한 우주 중 우주상수가 양의 값을 우주는 팽창한다(음의 값을 지닌 우주는 쪼그라든다). 팽창하는 우주가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복잡한 문제가 더 있다. 양자역학에는 ‘터널 효과’가 있다. 이에 따르면, 양자는 벽을 뚫고 이동하는(정확히는 벽 너머에서 발견되는) 현상이 가능하다. 확률이 다를 뿐 양자는 여러 개의 상태로 존재할 수 있고, 위치 역시 그런 상태 중 하나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풍경에 적용하면, 앞서 말한 상대적으로 안정한 에너지 상태 가운데 일부는 무작위로 에너지가 더 낮은 다른 안정한 상태로 변할 수 있다. 이는 그 상태에서 탄생한 우주가 다른 우주상수를 지닌 전혀 다른 우주로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우주 안에 새로운 우주가 생긴다. 물 속에서 갑자기 물분자 하나가 기름으로 바뀌었다면 그 지점은 작은 기름 방울로 분리될 것이다. 공기가 됐다면 기포가 될 것이다. 이 기포 가운데 역시 우주상수가 양의 값인 우주는 팽창한다. 새끼 우주가 태어나는 셈이다. 만약 이 안에 또다시 터널 효과가 일어나고, 역시 우주상수가 양수라면 손자 우주로 자라난다. 이렇게 되면 시공간은 그 안에 작은 새끼 거품이 자라고 있는, 역시 팽창하고 있는 거품 우주로 가득차게 된다. 각각의 거품은 서로 독립돼 있으며, 우주상수를 비롯해 모든 물리법칙이 다른 다중우주가 된다.


우주상수의 범위 예. 그래프에서 주변장(field)보다 상대적으로 값이 낮은 곳은 안정된 곳이기 때문에 모두 우주가 생성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우주의 우주상수는 이 가운데 0보다 약간 큰 지점에 위치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끈이론에서 계산한 값은 대부분 음수 결과를 나타내고 있으며, 양수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파트 3 참조). 우주상수가 음수인 우주는 팽창하지 못하고 쪼그라들어 오늘날 존재한다 해도 다중우주를 구성할 수 없다. / 하나하나가 안정한 상태의 우주가 될 수 있다. 단, 음수 우주상수를 지닌 우주는 쪼그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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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우주를 뛰어넘은 사랑 가능할까 - 다중우주
Part1. 숨겨진 다중우주를 찾아서
Part2. 끈이론 다중우주
Part3. 비판과 한계

 

 

201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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