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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거대 악어의 반격이 시작되다!

파충류의 속사정 13 악어의 과거 下

공룡의 그림자 밑에서 숨어 지낸 중생대의 악어. 하지만 중생대가 끝날 무렵인 약 8000만 년 전, 반전이 일어났다. 공룡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거대 악어 드디어 등장!
 
 
1903년 카네기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자 존 해처는 미국 몬태나 주에서 공룡 화석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부드러운 토양 위에 작은 골편들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해처가 돌아다니던 지역은 갑옷공룡의 화석이 간혹 발견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는 이골편이 거대한 갑옷공룡의 것인 줄만 알았다.

몇 달 후, 해처는 골편이 놓여 있던 지점을 다시 찾아 주변을 조금씩 파헤쳤다. 그러자 땅속에서 척추뼈와 갈비뼈, 그리고 골반뼈의 일부가 추가로 나타났다. 해처는 이 화석들을 포장해 박물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박물관에서 이 화석들을 연구해보니 갑옷공룡의 것이 아니었다. 전부 악어의 화석이었다. 악어보다는 공룡에 더 관심이 많았던 해처는 이 화석들을 내려놓고는 공룡화석들을 찾으러 나섰다.

이듬해인 1904년, 해처는 장티푸스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가 연구하다 만 악어 화석은 박물관 동료였던 고생물학자이자 동물학자 윌리엄 홀랜드에게 넘어갔다. 해처가 남기고 간 악어 화석을 자세히 연구한 홀랜드는 깜짝 놀랐다. 악어가 버스만 한 크기였기 때문이다!



공룡까지 사냥한 슈퍼 악어


해처의 악어는 상식을 뒤엎는 발견이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알려진 공룡시대의 악어들은 모두 공룡보다 작은 체구였기 때문이다(지난 호 참조). 홀랜드는 이 거대한 악어에게 ‘무서운 악어’라는 뜻의 그리스어‘데이노수쿠스’라는 학명을 붙여줬다. 데이노수쿠스는 1909년 학계에 공개됐는데, 거대한 덩치 때문에 공개되자마자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악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거대한 데이노수쿠스는 먹음직스러운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데이노수쿠스는 8000만 년 전에서 7300만 년 전에 해당하는 지층에서만 발견됐는데, 이 지층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바다거북과 몸길이가 10m에 이르는 살집 두둑한 오리주둥이공룡, 그리고 몸길이 7m 정도의 갑옷공룡과 작은 타조공룡까지 다양한 동물의 화석이 발견된다.

데이노수쿠스와 같은 지층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동물로는 육식공룡 테라토포네우스가 있다. 공룡의 왕 티라노사우루스의 조상 격인 동물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무시무시한 티라노사우루스로 진화할 예정이라 해도 테라토포네우스의 몸집은 데이노수쿠스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데이노수쿠스의 식단에는 이 동물들이 모두 올라와 있었다. 화석기록도 남아 있다. 미국 콜럼버스주립대의 고생물학자 데이비드 쉼머가 2003년에 쓴 책, ‘악어목의 왕: 데이노수쿠스의 고생물학’에 따르면 데이노수쿠스에게 물려 등딱지에 구멍이 뚫려 있는 바다거북의 화석이 미국 멕시코 만에서 많이 발견되며, 미국 텍사스 주와 멕시코에서는 데이노수쿠스의 이빨 자국이 가득한 오리주둥이공룡의 척추와 육식공룡의 다리뼈가 발견되기도 했다. 데이노수쿠스는 당시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였던 것이다.
 
데이노수쿠스가 거대한 몸집을 가지게 된 이유는 당시의 환경과 관련이 있다. 데이노수쿠스가 생존했던 8000만 년 전에서 7300만 년 전 사이에는 북미대륙을 가로지르는 따뜻하고 얕은 바다가 있었다. 이런 내해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활발했던 지각변동과 관련이 있다.

북미대륙을 포함하는 북아메리카판의 동쪽에는 ‘패럴론판’이라 불리는 해양판이 있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백악기에는 북아메리카판 밑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침강하는 패럴론판은 북아메리카판을 잡아당겼는데, 이때 북미대륙의 안쪽은 땅이 낮아져 바다가 흘러들어왔다. 흘러들어온 바다는 북미대륙 안쪽에 따뜻한 내해 환경을 만들었다. 데이노수쿠스는 이 따뜻한 내해와 함께 등장했다.

얕고 따뜻한 바다 속에는 먹음직스러운 해양생물들이 가득했다. 게다가 주변에 강과 호수들이 수없이 많았고, 물을 마시러 온 공룡들도 가득했다. 데이노수쿠스는 넓고 따뜻한 서식지와 크고 작은 먹이가 끊임없이 모여드는 환경 덕분에 몸집이 커졌다.

남미의 사이좋은 거인들

데이노수쿠스의 시대는 해수면 변화로 북미대륙의 내해가 빠져나가면서 끝이 났다. 하지만 이들의 친척인 나머지 악어들은 다음 시대까지 명맥을 유지해 나갔다.

6600만 년 전 어느 날, 에베레스트 산만 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서 악어는 또 한 번의 대멸종사건과 맞닥뜨린다. 갑자기 들이닥친 재앙으로 인해 지구생명체의 75%가 절멸했다. 이때 악어의 절반이 사라졌는데, 살아남은 나머지 절반이 오늘날의 악어 류인 ‘악어목(Crocodylia)’이다.

살아남은 악어목은 열대와 아열대 지역의 강과 호수, 늪지대에서 번성했다. 하지만 공룡시대 때만큼의 다양한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다른 동물들이 과거 악어들이 차지했던 생태적 지위들을 거의 모두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어목은 지금까지도 그다지 다양하지 않고, 원래 차지하고 있던 ‘머리만 수면 위로 내민 채 물속에서 먹이를 사냥하는’ 생태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항상 같은 생태적 지위만을 지키고 있다 보니 신생대의 악어목은 여러 종류가 한 서식지를 공유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같은 먹이를 두고 서로 다퉈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 800만 년 전인 마이오세 때 여러 종류의 악어목이 한 지역을 공유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도 모두 공룡시대 때의 데이노수쿠스만 한 거구들이었다!

2007년 페루 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자 로돌포 살라스-지스몬디와 연구팀은 페루의 동쪽에 위치한 마이오세 지층에서 네 종류의 악어, 푸루스사우루스, 그리포수쿠스, 발라네로두스, 그리고 모우라수쿠스를 발견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네 종류의 악어는 생태적 지위를 분할했다. 강한 턱을 가진 푸루스사우루스는 물을 마시러 물가에 오는 큰 동물을 사냥했고, 얇은 주둥이와 고깔 모양의 이빨을 가진 그리포수쿠스는 미끄러운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튼튼한 이빨을 가진 발라네로두스는 단단한 갑각류를 깨먹었으며, 넓적한 주둥이와 얇은 이빨을 가진 모우라수쿠스는 펠리칸처럼 물속의 작은 생물들을 건져 먹었다. 먹는 먹이가 서로 달라서 서식지를 사이좋게 공유할 수 있었던 거다.

아름다운 과거를 뒤로 하고

악어는 지난 2억 5000만 년 동안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2억 년 전에 있었던 초대륙의 분열로 급격한 환경변화도 겪었고, 6600만 년 전의 소행성 충돌 사건도 목격했다. 이런 재앙에도 불구하고 악어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지금까지 우리 곁에서 숨 쉬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이들의 명맥이 가까운 미래에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악어는 현재 인간 때문에 최대의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악어의 위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에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경제가 좋아지면서 악어가죽의 수요가 증가했다. 이때 아프리카부터 동남아시아까지 다양한 종류의 악어들이 가방용으로 희생됐다. 악어 사냥은 경제 성장과 함께 증가했는데, 1970년대 초에는 약 200만 마리의 악어가 가죽으로 전세계에 거래됐다. 이 때문에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국제거래협약(CITES)’에서는 현재 대부분의 악어류를 거래금지 항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야생 악어는 지금까지도 일부 국가에서 불법으로 거래되고 있다.

악어의 아름다운 진화사는 지난 2억5000만 년 동안 이어져왔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고작 가방 때문에 끝나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과연 악어는 이번 ‘대멸종’ 사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올해 어른들의 생신 때 여러분이 어떤 종류의 가방을 고르느냐에 따라 악어 가문의 운명이 결정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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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영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방문연구원
  • 일러스트

    정재환
  • 에디터

    윤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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