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Part1.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은 왜 침몰했을까




[진수 직전 타이타닉의 모습. 총 3327명이 탈 수 있는 거대한 배를 만드는 데 26개월이 걸렸다.]

1912년 4월 15일 밤, 캄캄한 북대서양 하늘에 반짝이는 섬광이 빛났다. 동시에 다급한 전파 신호도 텅 빈 공간을 가로질렀다. 침몰 위기를 마주한 배가 절박한 심정으로 보낸 구조 신호였다. 그러나 눈부신 섬광도 드넓은 바다 위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 희미한 불빛일 뿐이었고, 빛의 속도로 달리는 전파도 구조선을 빨리 끌고 올 능력은 없었다. 불과 며칠 전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첫 항해에 나섰던 거대한 배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침몰 사건으로 기록에 남았다. 그 유명한 타이타닉 얘기다.

 


타이타닉이 첫 항해에서 바로 침몰한 뒤 100년이 흘렀다. 그동안 온갖 소설, 드라마, 영화의 소재가 돼 왔던 터라 이제는 타이타닉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사실 타이타닉은 그 당시에도 유명했다. 타이타닉은 과학과 기술에 대한 낙관주의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의 산물이었다. 영국과 독일 같은 기술 선진국은 경쟁적으로 크고 화려한 배를 만들었다. 때마침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던 미국은 사회기반기설을 닦을 인구가 많이 필요했고, 유럽에서 꿈을 찾아 미국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이에 따라 선박 회사는 대서양을 횡단하는 정기선을 더욱 크고 호화롭게 만들기 시작했다.

1910년대 초반 영국 선박 회사인 화이트스타라인은 당시 가장 크고 가장 화려한 정기선 세 척을 만들었는데, 타이타닉은 그중 두 번째였다. 첫 번째인 올림픽은 1911년부터 1935년까지 활동하다 퇴역했다. 하지만 타이타닉의 뒤를 이은 브리타닉은 건조되자마자 1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의료선으로 활동하다가 기뢰를 맞고 침몰했다. 야심차게 만든 세 자매선 중 두 척이 불의의 사고로 침몰하는 비극을 맞이했던 것이다.

타이타닉을 만드는 데는 당시에 동원할 수 있었던 최고급 기술이 모두 들어갔다. 총 길이는 269m에 폭은 28m, 높이는 53m로 세계에서 가장 컸다. 최대 승객 2435명과 승무원 892명을 태우고 최고 속도 시속 39km로 항해할 수 있었다.

거대한 선체를 움직이는 엔진은 3개였다. 피스톤의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꾸는 엔진 2개와 증기압으로 회전날개를 돌리는 터빈엔진 1개다. 왕복엔진은 타이타닉만 한 배를 움직이기에는 힘이 약하고, 터빈엔진은 힘이 세지만 진동이 커서 이 둘을 조합해 썼다.

 


마지막 항해가 된 첫 항해

1912년 4월 10일 타이타닉은 영국의 사우스샘프턴을 출발해 프랑스의 셰르부르와 아일랜드의 퀸즈타운에 기항한 뒤, 4월 11일 뉴욕으로 출발했다. 승무원 892명과 승객 1320명을 태운 채였다. 승객 수는 최대 허용치의 절반 정도였다.

처음 며칠은 무사히 지나갔다. 14일에는 무선통신으로 빙산 경고를 6번 받았다. 그해 겨울이 따뜻해 북극의 빙하가 많이 녹아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유독 빙산이 많았다.

여러 차례 경고를 받았지만, 타이타닉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거의 최고 속도에 가깝게 달렸다. 나중에 받은 경고는 아예 선장에게 전해지지도 않았다. 무선통신사였던 잭 필립스가 승객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에 치여 너무 바빴던 탓도 있었다.

타이타닉이 운명의 빙산과 충돌한 시간은 4월 14일 오후 11시 40분. 많은 승객들이 잠들어 있을 때였다. 높이가 29m인 망루에서 전방을 감시하던 승무원이 빙산을 발견했다. 당시 달이 없었고 바다가 너무 잔잔해서 빙산에 부딪혀서 부서지는 파도도 거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감시원에게 쌍안경도 없어서 빙산이 멀리 있을 때 보지 못했다.

타이타닉은 즉시 방향을 왼쪽으로 돌렸지만, 완전히 피하기에는 너무 늦은 뒤였다. 빙산은 타이타닉 우현에 충돌했다. 충돌이 일으킨 충격은 크지 않았다. 3등실에서는 충격이 느껴졌지만, 1등실 승객은 충돌한 줄도 모르고 계속 잠을 잤을 정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타이타닉이 침몰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충돌로 생긴 틈을 통해 물이 자꾸 들어오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타이타닉의 하층부 갑판에는 물을 막는 격벽이 있었지만, 위쪽으로는 천장에 닿지 않아 틈이 있었다. 방수구역이 차례로 침수되면서 타이타닉은 뱃머리부터 가라앉기 시작했다. 뱃머리가 잠기자 고물이 솟아올랐고, 허공에 솟은 뒷부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중간 부분에서 부러졌다. 그리고 얼마 뒤 타이타닉은 뱃머리부터 가라앉으면서 수직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가라앉지 않는(unsinkable) 배’라고 불리던 타이타닉은 별명이 무색하게 빙산에 충돌한 지 3시간 만에 북대서양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타이타닉에 있던 구명보트 정원은 타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 수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급한 나머지 정원을 다 채우지 않고 출발한 구명보트도 많았다. 구명보트에 타지 못한 사람들은 꼼짝없이 익사하거나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2200여 명 중에서 살아난 사람은 700여 명에 불과했다.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침몰의 순간

이게 많이 알려진 타이타닉의 침몰 과정이다. 이미 여러 책과 영화, 드라마를 통해 많이 접해 익숙하다. 1960년대부터는 타이타닉을 인양하자는 제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76년에는 영화 ‘타이타닉을 인양하라!’도 나왔다. 타이타닉에 무기로 쓸 수 있는 희귀 광물이 있었다는 가정 아래 미국과 옛 소련이 바닷속 타이타닉을 인양하려고 경쟁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는 타이타닉 선체의 구멍 난 곳을 수리한 뒤 고압의 공기를 불어넣어 수면으로 떠오르게 한다. 물론 과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영화도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흥행에도 실패했다.

타이타닉 침몰을 다룬 영화 중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1958년에 나온 ‘기억할 만한 밤’과 1997년에 개봉한 ‘타이타닉’이다. 둘 다 사실 고증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1958년 영화에서는 타이타닉이 반으로 쪼개지지 않은 채 그대로 가라앉는다. 사고 이후 생존자 중에서 선체가 반으로 갈라졌다고 증언한 사람도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증언은 1985년 미국의 해양학자 로버트 발라드가 타이타닉의 잔해를 발견하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발라드는 수중음파탐지기를 이용하던 기존의 방법으로는 선체를 찾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전략을 바꿨다. 선체 대신 더 넓은 범위에 퍼져 있는 파편을 찾는 방식이었다. 음파탐지기로는 파편을 구별하기 어려우므로 카메라로 바닥을 훑어가며 조사했다.

타이타닉의 본체는 생존자의 증언처럼 두 조각으로 나뉘어 있었다. 둘 사이의 거리는 600m였다. 수심은 3.8km였고, 본체를 중심으로 가로 8km, 세로 4.8km 범위 안에 수만 개의 파편이 퍼져 있었다. 승객의 개인소지품부터 가구, 기계 등으로 다양했다. 사망자의 몸은 오랜 세월 동안 분해되고, 옷가지만 남아 있었다.

제임스 카메론이 만든 영화 타이타닉에는 두 동강 난 타이타닉이 반영돼 있다. 이전까지는 타이타닉이 반으로 쪼개졌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완벽주의자로 소문난 카메론은 영화를 만들기 전에 직접 잠수정을 타고 12번이나 타이타닉을 탐사하기도 했다. 이때 찍은 영상은 영화 속에 교묘하게 섞여 있다.




[사우스샘프턴 항구에 정박해 있는 타이타닉.]





[타이타닉은 앞쪽이 먼저 가라앉으면서 물 위로 솟아오른 뒤쪽의 무게를 못 이기고 반으로 부러졌다.(왼쪽 사진)영하에 가까운 바다에 빠진 승객 대부분은 몇십 분 안에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침몰의 비밀은 철의 성분

그런데 당시 세계에서 가장 컸던 배가 한 번의 충돌로 허무하게 침몰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충돌로 생긴 피해를 분석하려면 속도와 부딪힌 대상의 크기, 부딪힌 위치 등을 알아야 한다.

먼저 타이타닉과 부딪친 빙산은 크기가 어느 정도였을까. 생존자의 증언이 제각각이라 빙산의 크기를 정확히 알수는 없다. 물 밖으로 보이는 부분의 높이가 9m라는 이야기부터 거의 50m라는 이야기까지 있다. 그러나 물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부분은 전체 빙산의 약 8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제대로 부딪쳤다면 치명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타이타닉은 정면충돌을 피했다. 빙산과 충돌한 곳은 선체 오른쪽 앞부분으로 몇 초 동안 빙산을 긁고 지나갔다. 사고 이후 한동안은 충돌로 선체에 큰 피해가 생겨 침몰했다고 생각했다. 수십 m에 달하는 긴 구멍이 생겨 물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1985년에 선체가 발견되자 빙산에 부딪혀 입은 피해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빙산에 부딪힌 부분에서 구멍 6개가 발견됐다. 그중 가장 큰 구멍은 길이가 약 10m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작은 피해였다. 충돌 당시 별로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생존자들의 증언과도 일치하는 결과였다. 이 작은 구멍이 거대한 배를 가라앉게 한 주범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얼음이 강철을 찢을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1990년대 초반 타이타닉의 잔해를 인양해 연구한 결과 외벽을 만들었을 때 쓴 철의 품질이 나빴다는 주장이 나왔다. 빙산과 부딪친 외벽 부근의 잔해가 휘는 대신 부서져 있었다는 것이다. 외벽을 이루는 철판의 화학 성분도 분석했다. 오늘날 사용하는 표준 저탄소강과 성분은 대체로 비슷했다. 가장 차이가 나는 성분은 망간 대 황의 비율이었다.

황은 철의 결합을 약하게 만들어 균열이 생길 가능성을 높인다. 망간은 황과 잘 결합해 철이 약해지는 것을 막아준다. 타이타닉에 쓴 강철은 황에 대한 망간의 비율이 현대 저탄소강의 2분의 1 정도로 낮았다. 이 때문에 빙산이 충돌했을 때 외벽이 쉽게 깨졌을 가능성이 있다.

철판을 서로 결합시키는 리벳에 책임을 돌리는 의견도 있다. 제니퍼 후퍼 매카티와 팀 포이크라는 두 재료공학자는 2008년 빙산이 외벽을 스치면서 리벳이 떨어져나와 물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생겼다는 내용이 담긴 책을 냈다. 이들은 수십 년 동안 바닷속에 있던 철판을 관찰해보면 갈라지거나 부서진 곳이 없어 강철의 품질만으로는 침몰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타이타닉의 강철에 들어있는 망간의 양이 황을 붙잡기에 충분하다며 망간/황 비율 가설도 반박했다. 이들은 타이타닉에 쓰인 리벳을 조사했다. 타이타닉의 가운데 부분에는 강철 리벳을 썼지만, 뱃머리와 고물에는 단철(강도가 낮은 철) 리벳을 썼다. 뱃머리는 빙산이 부딪친곳이다. 같은 재료로 리벳을 만들어 실험한 결과 타이타닉의 외벽을 지탱하기에는 강도가 약하다는 결과도 얻었다. 이 주장대로라면 빙산이 부딪쳤을 때 리벳이 떨어져 나가면서 타이타닉의 외벽이 입을 벌려 물을 들이켰다는 얘기다.





타이타닉이 남긴 유산

타이타닉의 침몰은 전 세계에 충격을 가져왔다. 엄청난 인명 손실뿐만 아니라 이를 방지하지 못했던 안전 규정도 주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바다에서 사고가 났을 때 인명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1914년 해상인명안전협약이 체결됐다. 이 협약은 이후 몇 차례의 개정을 거쳐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다.

한편 타이타닉의 잔해를 처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모이지 않고 있다. 유물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유물을 인양해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타이타닉이 가라앉은 곳을 일종의 무덤으로써 놓아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양측 모두 타이타닉 본체를 인양하는 데는 부정적이다. 당분간 타이타닉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는 어려울 듯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침몰 사건의 주인공인 타이타닉은 아직도 비극의 장소에 그대로 머문채 자신의 뒤를 이은 거대 선박이 대양을 활보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타이타닉에서 크루즈까지
Part1.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은 왜 침몰했을까
Part2. 안전·환경·쾌적-크루즈, 보이지 않는 과학

2012년 4월 과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 진로 추천

  • 역사·고고학
  • 조선·해양공학
  • 물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