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랗게 물들기 직전의 푸른 은행잎이 약효가 뛰어나.
엑기스를 추출해 성인병치료제로 개발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잎-. 이 아름다운 은행나무잎속에 성인병 특효약의 원료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건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최근 이 은행나무잎을 둘러싸고 "수출해서 외화를 벌어들어야 한다"(은행잎수출회사) "잎을 수출하지 말고 약품을 생산해 수출하는게 유리하다"(제약회사)는 이른바 '은행나무잎전쟁'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과연 은행잎이 어떤 약효가 있길래 수출문제가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일까. 또 은행잎을 원료로 만든 성인병 치료약은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은행나무잎에서 추출되는 문제의 성분은 '징코프라본 글리코사이드' Gingkoflavonglycoside). 이것은 은행잎에서 의학적으로 인체에 불필요한 화학성분(뷰틸산)을 완전제거한 뒤 정밀제조공정에 의해 추출돼야만 치료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은행잎에 약효가 있다고 해서 직접 끓여먹으면 오히려 인체에 피해를 줄수도 있다고 한다.
은행잎에서 추출되는 징코프라본 글리코사이드의 약리작용은 혈행을 원활히 하여 인체 각 조직의 균형을 유지시켜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좁혀진 혈관을 확장시켜 혈관의 협착상태를 제거하고, 혈액의 정도를 저하시켜 혈행을 용이하게 만들어 혈액순환을 원활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원료로 만든 약품은 당뇨 중풍 고혈압 동맥경화 등의 치료제를 표방하고 있다.
또 주사액으로 개발되어 화생방전의 해독약인 '아트로핀' 주사액의 대체품 등으로도 수요가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현재 은행잎을 원료로 제품화한 것으로 동방제약이 1981년 성인병치료제로 선보인 '징코민'이 있으며, 외국에서는 1969년 서독 '슈바베' 제약회사가 개발한 약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면 은행잎의 약효는 정말 선전문구처럼 뛰어난 것일까.
서울대생약연구소장 지형준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약품에 표시된 약효는 보사부의 심의를 거친 것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보증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일반론을 펴면서 '은행잎치료약'의 경우, 은행잎 성분만이 아닌 여러가지 성분을 포함해 만든 것으로 추측했다.
지형준교수는 서독에서 처음으로 은행잎을 원료로 한 약이 개발된 배경에 대해 "원래 독일사람들은 약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나뭇잎 등을 슬라이스로 만들어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홍차 마시듯 복용하는 습성이 있다. 은행잎의 제약화도 이런 관습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의학계에서도 옛부터 은행알을 한약재로 취급해왔던 것에 비추어 은행나무 자체가 예사로운 나무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은행잎의 약효에 대한 의학적 판단 외에도 현실적으로 은행나무잎이 비싼값(1kg당 약 2천5백원에 수출)으로 팔리고 있으며, 이를 원료로 만든 약품들이 세계시장에서 팔리고 있다는 사실이 약효의 우수성을 웅변해주고 있는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은행잎전쟁의 배경
'은행잎 수출'을 둘러싼 논란도 은행잎의 약효 못지 않게 관심을 끌고 있는 대목이다.
은행잎의 수출물량은 전국의 20~30군데 집단재배단지에서 생산되는 연간 2천t가량의 은행잎중 1천2백t에 달한다. 이를 삼연개발에서 일괄매입, 서독으로 수출되는데 작년에만 3백60만달러어치에 달했다.
그런데 국내의 동방제약이 징코민 개발에 성공, 특허권을 인정받으면서 '은행잎수출금지'가 쟁점화됐다. 국산은행잎을 수출하지 않고 국내에서 독점생산하면 연가 1억달러 이상의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제약회사측의 주장이다.
이에 반해 은행잎수출회사측은 제약회사측이 국산은행잎의 전국총생산량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데, 굳이 남아 돌아가는 은행잎의 수출을 금지할 필요가 있으냐는 반론을 펴고 있다.
이처럼 은행잎의 수출을 둘러싼 다툼이 6년째 끌어오자 관계당국에서 이 문제를 깊이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은행나무잎전쟁'으로까지 불리면서 국산은행잎을 확보하려는 배경은 무엇일까. 이는 한마디로 국산은행잎의 약품 성분함량이 다른 나라 것보다 무려 10~20배나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산업연구원이 분석한 데서도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은행잎의 약품성분 추출수율이 국산은행잎의 경우 2%로 외국산의 0.1~0.2%에 비교해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국산의 은행잎이 특히 외국산에 비해 성분함량이 높다는 설에 대해 그럴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한국인삼이 다른 나라 인삼보다 뛰어나 것처럼 충분히 가능한 현상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한편 은행잎은 노랗게 물들기 직전, 9월경에 따는 것이 가장 약효가 높다고한다. 낙엽이 져 엽록소가 파괴되면 그 속의 성분이 모두 파괴되기 때문이라는 것.
살아있는 화석식물
은행나무는 여느 나무들과는 좀 색다른 점이 많다. 우선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식물'로 불릴만큼 그 생존역사가 독특하다. 정영호교수(서울대·식물학)에 의하면 은행나무는 아득히 먼 지질시대, 약 2억년전부터 존재했었으나 모두 절멸됐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 사천성의 산골짜기에서 단 한그루 살아남은 은행나무가 발견돼 다시 전세계에 퍼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전세계의 은행나무는 중국 사천성 은행나무의 후손들인 셈이다.
은행나무는 독특한 생식방법으로도 유명하다. 숫나무에서 나오는정자(편모형태)가 바람에 날려 암나무에 붙게 되면 3개월이나 기다렸다가 암나무의 씨방(노출돼있음) 안으로 들어가 수정된다는 것이다. 이때 결실되는 것이 식용으로도 쓰이는 은행알인 셈이다.
은행나무는 사람 가까이에서 자라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깊은 산속에서 은행나무를 보기는 힘들다. 만약 산중에 은행나무가 있다면 그곳에서 사람이 살았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불에 타지 않으며 벌레먹지 않는다는 것도 은행나무잎의 특징이다. 아뭏든 은행나무는 오랜 역사와 신비한 효능, 특이한 성질이 있는 특기할만한 나무임에 틀림없다.
은행잎의 효능이 좀더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그 이용방법 역시 합리적인 방향으로 결정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