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2/02/2333042934f4d9190c2f7a.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2/02/5354675774f4d9085c0e4a.jpg)
2011년 2월 14~16일 미국의 유명한 퀴즈쇼 ‘제퍼디’에 얼굴 없는 참가자가 나타났다. 목소리만으로 대결에 임한 이 색다른 참가자의 이름은 왓슨이었다. 왓슨의 상대는 역대 제퍼디 출연자 중 상금을 가장 많이 획득한 브랫 러터와 가장 오랫동안 연속으로 우승한 켄 제닝스. 왓슨은 이 막강한 퀴즈의 대가들을 상대로 전혀 주눅이 들지 않은 채 대결을 펼쳤다. 최종 결과는 왓슨 7만 7147달러, 켄 제닝스 2만 4000달러, 브랫 러터 2만 1600달러였다. 왓슨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이 대결이 눈길을 끈 건 왓슨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왓슨의 정체는 IBM이 만든 인공지능이었다. 왓슨은 슈퍼컴퓨터 ‘블루진’을 이용한다. 3.5GHz로 작동하는 CPU 2880개, 메모리 16TB(테라바이트, 1000GB)가 장착된 강력한 컴퓨터다. 여기에는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 전체를 비롯해 모두 2억 쪽 가량의 자료가 들어 있다. 왓슨은 초당 500GB의 자료를 처리하며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다. 단순히 많은 자료를 빨리 처리할 수 있다고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 때로는 비유적인 표현까지 쓰는 문제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정답을 틀리면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잃기 때문에 다음 문제를 고르는 전략도 필요하다.
문제를 이해하는 능력에서 왓슨은 사람에게 밀린다. 특히 문제가 짧을수록 어렵다. 하지만 정보를 기억하는 양이나 처리하는 속도는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엄청난 처리 속도로 단점을 극복하는 것이다. 사람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던 분야에서 컴퓨터에게 따라잡히는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다. 1997년 IBM이 만든 체스컴퓨터 ‘딥블루’는 당시 세계 챔피언이었던 게리 카스파로프와 대결해서 이겼다.
그러나 왓슨이나 딥블루를 진정한 인공지능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딥블루는 사람이 설계한 방법에 따라 체스를 둘 뿐이며, 왓슨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정해진 대로 작동해 빠른 속도로 결과를 내놓지만, 자기가 뭘 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사람보다 뛰어나 보여도 결국은 계산만 엄청나게 빠른 기계일 뿐이다.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자는 생각은 컴퓨터가 처음 태어나던 시절부터 있었지만, 아직 그 바람은 요원한 상태다.
사람처럼 대답하면 인공지능일까?
1930~1940년대 컴퓨터의 발판을 닦은 과학자들은 사람의 뇌에 관심을 뒀다. 오늘날 책상 위의 데스크톱부터 슈퍼컴퓨터까지 모든 컴퓨터의 기반이 된 구조를 만든 수학자 존 폰 노이만도 마찬가지였다. 노이만은 당시의 이론을 바탕으로 뇌와 컴퓨터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탐구했다.
그렇다면 뇌도 일종의 컴퓨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1943년 신경생리학자 워렌 매컬럭과 월터 피츠는 ‘신경 활동에 내재한 논리 계산법에 대한 아이디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뉴런이 컴퓨터의 기본 단위인 논리 게이트와 마찬가지로 논리 계산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컴퓨터는 논리 게이트 수백만 개 이상의 집합이고, 뇌는 뉴런의 집합이니 뇌 또한 컴퓨터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었다. 당시에는 뇌를 생물학적으로 분석해 나온 증거가 없었음에도 그들은 그렇게 주장했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2/02/14162731604f4d91a691ac5.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2/02/7958159514f4d91b63481d.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2/02/17302355334f4d91d0644d8.jpg)
그러자 굳이 뇌와 똑같이 작동하는 기계를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둘 다 하는 일이 논리 계산이라면 현재 가지고 있는 컴퓨터로 뇌를 시뮬레이션하면 그만이었다. 사람은 정해진 문법 규칙을 이용해 단어를 조합하고 문장을 만들어 말을 한다. 체스를 둘 때도 규칙에 따라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 보고 말을 어떻게 움직일지 결정한다. 규칙을 컴퓨터 알고리듬으로 만들면 이런 기능을 흉내 낼 수 있다. 미래에 컴퓨터가 더욱 발달하고 정교해지면 사람처럼 의식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당연했다.
영국의 수학자로 컴퓨터과학의 선구자인 알란 튜링은 1950년 사람처럼 의식을 가진 컴퓨터를 구별해 내는 방법으로 ‘튜링 테스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튜링 테스트는 사람이 상대가 컴퓨터인지 사람인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그 결과 컴퓨터가 사람과 구분할 수 없는 수준의 반응을 보인다면 그 컴퓨터는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튜링 테스트에 따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사람 같으면 된다.
1950~1970년대에는 인공지능 연구가 활발했다. 언젠가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다는 기대도 컸다. 상대적으로 뇌의 신경망을 모방해 인공 뇌를 만드는 연구에는 소홀했다. 그런데 성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데 성공한 인공지능은 전혀 없다. 때때로 사람을 속여 넘기는 경우는 있었지만, 아무도 그게 제대로 된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튜링 테스트도 완벽하지 않아
튜링 테스트에 대한 반론도 나왔다. 1980년 미국 철학자 존 설은 당시 컴퓨터가 사람처럼 생각할 수 없으며 튜링 테스트로는 인공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중국어 방’이라는 사고실험을 제시했다. 사고실험의 내용은 이렇다.
한쪽 벽에 구멍이 뚫려 있는 방이 하나 있다. 방 안에는 책상과 종이, 영어로 적힌 두툼한 명령문이 있다. 명령문은 한자를 옮겨 쓰거나 지우고 재배열하는 방법이 나와 있다. 한자의 뜻은 나와 있지 않다. 방 밖에서 구멍을 통해 중국어로 된 질문지를 넣어 준다. 그러면 방 안의 사람은 명령문을 보고 한자를 옮겨 쓰거나 배열해 종이에 결과를 적는다. 결과를 구멍을 통해 질문자에게 전달하면 끝이다.
질문하는 사람은 중국어로 질문하고 답변을 받았으므로 자연스럽게 대화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방 안에 있는 사람은 중국어를 전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밖에서 자연스러운 답변을 받았다고 해서 안에 있는 사람이 중국어를 이해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중국어 방은 컴퓨터 하드웨어로, 안에 있는 사람과 명령문은 소프트웨어로 비유할 수 있다. 설은 컴퓨터가 사람을 아무리 잘 흉내 내도록 해도, 컴퓨터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어 방은 인공지능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 사고실험에 대한 반박도 있었지만, 인공지능 연구에 대한 기대가 시들해진 건 사실이었다. 그 대안이 초기 컴퓨터과학자들이 관심을 뒀던 인공신경망이었다. 인공신경망은 뇌의 구조와 기능을 단순화된 형태로 구현한 모델이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2/02/10868893794f4d91fbd5c8d.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2/02/16960896794f4d9219a2a17.jpg)
그런데 그동안 발달한 생물학 지식은 뉴런이 인공신경망의 소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시냅스는 단순히 전기가 통하는지 안 통하는지가 중요한 회로 접합부와 다르며, 뉴런에서 나오는 신경전달물질과 반응의 양상도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다. 1940년대 뉴런도 논리 계산을 할 뿐이라고 주장했던 이들이 틀렸던 것이다.
“인공신경망은 뇌의 신경회로를 단순화해 공학적으로 구현한 모델로 실제 뇌와는 기능이 다릅니다. 너무 단순하고 인공적이라 실제와는 거리가 멀죠. 다만, 알고리듬 측면에서 활용할 여지는 많아서 공학에서 최적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이 씁니다.”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는 인공신경망을 실제 뇌에 비교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인공신경망도 이런 한계 때문에 주식 시장 예측이나 얼굴을 확인하는 등의 한정된 영역에 머물렀다.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는 “결국은 인공지능과 인공신경망 두 접근 방식이 다 실패한 셈”이라며 “현재는 지금까지의 연구를 다 정리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답은 뇌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 인공 뇌다. 단순했던 인공신경망과 달리 진짜 뇌의 복잡한 회로망을 자세히 분석해 똑같이 만들겠다는 것이다. 사실 뇌는 불완전한 존재다. 속도도 느리고 기억력도 뛰어나지 않다. 툭하면 기억을 왜곡하기도 한다. 컴퓨터는 빠르고 정확해 그럴 걱정이 없다. 그럼에도 뇌를 똑같이 흉내 내야 하는 건 사람의 지능이 뇌와 뗄 수 없는 관계기 때문이다.
“초창기에 인공지능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사람이 어려워하는 문제를 컴퓨터가 풀게 했습니다. 수학과 체스죠. 그런데 쉽게 생각했던 언어 처리에서 막혀버렸습니다.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어요. 뭐가 쉽고 뭐가 어려운 문제인지를 처음에 잘못 생각했던 겁니다.”
김대식 교수는 걷는 동작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사람은 의식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쉽게 걷는다. 그래서 걷는 게 쉽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수억 년의 진화 과정을 통해서 이미 해결한 문제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잘 못하고 뇌는 잘하는 패턴 인식도 마찬가지다. 어린아이에게 강아지 사진, 강아지 동영상, 강아지 그림을 보여주면 금방 모두 강아지라고 알아본다. 그러나 컴퓨터는 이게 어렵다. 강아지 사진과 강아지 그림을 픽셀 정보로 보면 공통점이 없기 때문이다. 규칙과 기호를 가지고 가르쳐줄 수는 있지만, 겨우 강아지를 구별할 수 있어도 다른 동물은 여전히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쉬운 문제와 어려운 문제를 다시 분류하고 있다. 사람이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정보이론을 바탕으로 판단한다. 새로운 기준에 따르면 수학과 체스는 입력신호의 조합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쉬운 문제다. 규칙과 기호를 통해 문제를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잘하는 분야다. 반면에 사람이 잘하는 패턴 인식은 입력 신호가 너무 복잡해서 어려운 문제다. 규칙과 기호로 표현이 안 돼 컴퓨터로 처리하기 어렵다.
뇌는 오랜 세월에 걸쳐 어려운 문제에 맞게 진화한 하드웨어다. 따라서 우리는 쉽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어려운 문제를 풀려면 뇌와 같은 하드웨어, 즉 인공 뇌를 만들어야 한다. 인공 뇌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뇌가 작동하는 방식도 이해할 수 있다. 아직 우리는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잘 모른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2/02/16315572044f4da76dd43db.jpg)
[인공 뇌에 우리 정신을 업로드한다면 육신이 죽어도 정신은 영생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는 로봇의 몸에 정신을 담고 수백 년이 걸리는 우주여행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공 뇌에 들어가 영원히 산다
그런데 인공 뇌가 완성된다면 그 능력은 사람의 뇌보다 뛰어날지도 모른다. 반도체 소자는 뉴런보다 처리 속도가 100만 배 이상 빠르다. 반도체로 생각할 수 있는 인공 뇌를 만든다면 뇌보다 100만 배 이상 빠른 속도로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지식을 쌓는 속도도 빠르다. 사람이 평생 걸려도 다 못 배우는 양을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다.
기억력도 그렇다. 인공 뇌의 기억 용량을 크게 설계하면 사람보다 더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더 빨리 처리할 수 있다. 학습과 훈련이 다 끝난 상태의 인공 뇌를 복제할 수 있다면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닌 존재를 짧은 시간 안에 무수히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런 수준에 이른다면 사람은 인공 뇌를 어떻게 활용할까. 사람의 육체노동을 대신하는 로봇과 다르게 정신노동을 대신하게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인공 뇌가 순순히 말을 듣는다는 가정 아래서지만.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앞으로 사람의 뇌를 스캔해 기계에 업로드하는 세상이 온다고 예측했다. 뇌 속에 나노로봇을 넣어 뉴런의 상태와 활동을 낱낱이 기록한 뒤 슈퍼컴퓨터에 전송해 시뮬레이션한다는 생각이다. 인공 뇌가 완성된다면 한 사람의 뇌 정보를 인공 뇌에 고스란히 전송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상태로 영원불멸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미래가 올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하지만 사람의 지능과 뇌의 비밀이 모두 풀리고 인공 뇌가 완성된다면, 인류 문명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게 분명하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인공 뇌
Part1. 뇌 vs 컴퓨터
Part2. 인공 뇌 만들기
Part3. 뇌보다 똑똑한 인공 뇌
Part4. 인공 뇌에도 마음이 있을까
Part5. 이사하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