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난이도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지만 책을 전부 다 읽어보고 판단하기에는 책이 너무 많다. 또 우리에게 그만한 시간과 에너지도 없다. 따라서 제목, 표지 등 한눈에도 보이는 정보들을 통해 가급적 최선의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사람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다.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하나 찬찬히 시간과 공을 들여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면 좋겠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또 사람에 대한 판단은 책에 대한 판단보다 더 신속함이 요구될 때가 많다. 30분간의 짧은 면접만으로 신입생을 뽑는 대학 면접관이나, 판매자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사기꾼인지 5분 안에 판단해야 하는 소비자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신속히 사람을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다행히 우리는 사람을 빨리 판단하게 도와주는 일종의 단축키를 가지고 있다. 바로 첫인상이다. 책의 표지를 훑어보듯 사람도 한 번 쓱 훑어보고 만든 첫인상을 통해 사람의 성격과 능력치를 추론한다. 물론 추론이 빠르다고 꼭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0.1초면 만들어지는 첫인상
첫인상 형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빠르다’는 것이다. 불과 0.1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 이상 시간을 줘도 상대방에 대한 첫인상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doi: 10.1111/j.1467-9280.2006.01750.x
그리고 첫인상에 크게 반하는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지 않는 한 첫인상은 꾸준히 유지되는 편이다. 1994년 당시 미국 미주리대 경영학부 토마스 도허티 교수와 다니엘 터반 교수가 어느 회사의 면접관 3명을 대상으로 이를 테스트해봤다.
면접관들은 지원자 79명을 만났는데, 만나기 전 서류 심사를 통해 호감을 느낀 지원자들에게는 실제로 면접장에서 만났을 때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친근하게 대하는 편이었다. doi: 10.1037/0021-9010.79.5.659
또, 특정 인상을 한 번 형성하면 그 사람의 행동거지를 이미 형성된 인상에 맞춰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유능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면 그 사람이 손가락으로 머리를 넘기는 행동도 스마트한 몸짓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첫인상을 심는 것이 유리할 때가 많다. 일단 한 번 좋은 인상을 심으면 사람들은 당신이 무얼 하든 일단 좋은 사람으로 바라봐 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확증편향이라 부르는 ‘사람은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라는 특징이 진정 맞는 듯하다.
능력보다 성격,
그런데 성격은 외모로부터?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영역은 바로 ‘따스함’이다. 가령 창의적이고 유머러스하고 똑똑하지만 퉁명한 사람이 있고, 똑같이 창의적이고 유머러스하고 똑똑한데 친절하기까지 한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은 두말할 것 없이 후자에게 훨씬 큰 호감을 느낀다.doi: 10.1016/j.tics.2006.11.005
설사 능력이 없어도 따듯하고 친절한, 소위 사람 됨됨이가 좋은 사람에게는 호감을 느끼지만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차갑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은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따스함은 다른 어떤 정보보다 강력하게 작용하며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지배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착한 사람은 멍청해도 곁에 둔다고 해서 크게 해가 되지 않지만, 나쁘면서 똑똑한 사람은 언젠가 뒤통수를 치는 등 큰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선에서 인성, 따듯함을 보고 여기서 통과하면 그다음에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첫 만남에서 자신의 똑똑함을 자랑하는 것보다도 예의 바름, 친절, 배려하는 행동, 따듯한 미소를 강조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신뢰부터 쌓고 그다음에 조금씩 능력을 어필해도 늦지 않다.
그럼 이런 인성과 능력은 무엇을 통해서 짧은 시간 안에 파악할 수 있는 걸까? 앞서 책 표지 얘기를 했듯이 인간의 경우 외모가 표지의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얼굴이 동안인 사람들은 능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착한 사람일 것이라는 인상을, 얼굴이 성숙한 사람들은 능력은 좋지만 고집 센 사람일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 편이다. 그래서 똑같은 잘못을 했어도 얼굴이 성숙한 사람이 저지르면 쉽게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동안인 사람이 하면 일부러 그랬을 리가 없을 거라고 너그럽게 봐주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외모로 추론하는 게 정확한 판단일까. 한 연구에서는 사람들에게 미국의 최장수 경제지인 ‘포천(Fortune)’에서 선정한 100인의 최고경영자(CEO) 사진을 보여주고, 그 CEO들이 얼마나 훌륭한 리더일 것 같은지 평가하게 했다. 그 결과 얼굴만 보고 판단한 내용이 실제 CEO들이 운영하는 회사 실적과 상관관계가 크게 일치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doi: 10.1111/j.1751-9004.2010.00282.x
2010년에 발표된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비율, 술을 마시는 사람의 비율, ‘모태솔로’의 비율 같은 일반적인 정보만 가지고 새로운 사람을 판단할 때보다 이런 정보에 더해 외모를 함께 보고 판단할 때의 정확성이 더욱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doi: 10.1016/j.jesp.2009.12.002
분명 외모가 주는 정보가 있지만, 흔히 사람들을 볼 때 외모에 지나치게 큰 가중치를 두고 보는 실수를 저지른다는 뜻이다. 표지도 보고 내용도 봐야 하는데 지나치게 표지 중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게 문제인 셈이다.
예뻐야 자세히 본다?
사람들은 특히 외모가 매력적인 사람에 대해 좋은 인상을 형성할 뿐 아니라 이들의 성격을 더 신중하게, 그리고 정확히 지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세히 봐야 예쁘다고들 하지만, 실은 예뻐야 자세히 본다는 것이다.
2010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연구에 따르면 외모가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은 자세히 살펴보지 않을 뿐 아니라 이들은 성격도 나쁘고 능력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어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사람들을 향한 첫인상의 정확성이 높아진다. doi: 10.1177/0956797610388048
물론 외모 외의 요소도 첫인상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 같은 맥락 정보가 대표적이다. 같은 사람을 지나가다가, 또는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나 아니면 정치적 집회에서 만났다고 했을 때 상황에 따라 이 사람에 대한 인상이 크게 달라진다. 어떤 환경을 선호하느냐가 이 사람의 취향과 가치관에 대한 정보를 주기 때문이다. doi: 10.1177/0956797614532474
소유물도 인상 형성에 영향을 준다. 심지어 신발 사진을 보여주고 신발 주인의 나이, 성별, 소득수준, 불안 애착 등을 예측해보라고 했을 때 예측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doi: 10.1016/j.jrp.2012.04.003 물건의 품질이나 관리 상태에서 소득수준뿐 아니라 평소 생활 습관 같은 것들이 어느 정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앞서 우리는 타인을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고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상대방의 특성뿐 아니라 상대방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특성도 인상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가령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타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덜 하고, 따라서 사람들을 더 정확하게 판단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doi: 10.1037/a0021850 타인이 예쁜 것도 중요하지만 내 마음이 예쁜 것 또한 첫인상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데 중요하다는 얘기다.
첫인상은 바꿀 수 있다?
별다른 추가 정보가 없을 때는 첫인상이 그대로 유지되는 편이지만, 이를 뒤집을 만한 새로운 정보가 등장하면 충분히 바뀔 수 있다. doi: 10.1037/pspa0000021
가령 다짜고짜 타인의 집에 쳐들어가 기물을 파손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사람의 첫인상은 상당히 부정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 알고 보니 당시 집에 불이 났었고 집에 갇힌 이웃들을 구하기 위해 집을 부순 것이었다는, 이전의 해석을 뒤집는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면 이 사람에 대한 인상이 수정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다만 이렇게 기존의 해석을 뒤집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는 머리를 어느 정도 굴려야 하는 일이라서 관찰자가 정신적 여유가 있을 때거나 상대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나 관심이 있을 때만 주로 나타나는 편이다.
한정된 정보로 짧은 시간 안에 한 사람을 정확하게 판단한다는 건 명탐정 셜록 홈즈라고 해도 해내지 못할 어려운 일이다. 결국 우리가 하는 건 습관적으로 눈에 가장 띄는 무엇(외모, 상황적 단서 등)을 통해 사람의 특성을 ‘때려 맞추는’ 것에 가깝다.
따라서 좋은 첫인상을 형성하려고 애쓸 필요는 있겠지만, 내가 타인을 판단할 때는 첫인상에 너무 연연하지 말도록 하자. 내가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람인 것처럼 타인 또한 그러하니까. 끊임없는 정보 수집과 자신의 편견에서 벗어난 재해석만이 상대방을 제대로 파악하도록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