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끼요∼.”
먼동이 틀 무렵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에 길 가던 나그네를 희롱하던 구미호는 화들짝 놀라 다시 여우로 바뀌어 줄행랑을 친다. 이처럼 닭은 새벽을 알리는 동물로 귀신을 쫓는다고 알려져 있다. 올해는 12간지의 10번째인 닭의 해다.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12간지 동물을 살펴보면 포유류가 9종, 파충류가 2종(용 포함), 조류가 1종이다. 상상속의 동물인 용을 제외하면 이들은 가축이거나 주변에서 흔히 발견되는 동물이다. 유일한 조류인 닭 역시 인류와 친숙한 동물이다.
그렇다면 닭은 언제부터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됐을까. 수탉은 새벽이 되면 왜 그렇게 울어대고 암탉은 어떻게 하루가 멀다하고 알을 낳게 됐을까. 최근 닭 게놈이 해독됐다는데 어떤 사실이 밝혀졌나. 사람덕분에 새 중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자손을 퍼뜨린 닭의 이모저모를 알아보자.
7400년전 뼈 발굴
닭이 언제 어디서 처음 가축화됐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가축화 과정에 대해서도 설이 분분하다. 다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5000∼1만년 전 아시아에서 일어났다고 추측하고 있다. 유럽에 닭이 소개된 것은 기원전 500년 무렵 고대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서다.
현재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는 들닭이 살고 있는데 이들을 길들여 가축화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들닭의 종류도 다양한데 인도와 동남아, 중국 남부지방에 사는 적색들닭, 인도에 사는 회색들닭, 인도네시아의 녹색들닭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적색들닭이 현재 가축화된 닭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처음 이런 주장을 편 사람은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 적색들닭이 기르는 닭과 교배가 가능할 뿐 아니라 그 사이에서 태어난 닭이 불임이 아님을 관찰한 그는 1896년 이같이 주장했다. 그로부터 거의 100년이 지난 1994년 일본의 연구자들은 미토콘드리아 DNA를 비교해 다윈의 주장이 옮음을 입증했다. 한편 일부 연구자들은 새로운 품종을 얻는 과정에서 지역에 따라 다른 들닭이 교배돼 유전자가 섞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고고학적 증거로는 중국 황하 유역 일대의 고대 유적지인 페이리깡(裴李崗)부근에서 중국의 고고학자 차오 벤슈가 발굴한 닭뼈로 대략 7400~7200년 전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의 고고학자 브루스 스미스는 “돼지나 닭이 언제 어디서 처음으로 가축화됐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며 “현재까지는 페이리깡의 유적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축화된 닭의 증거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물론 이것이 사람에 잡힌 야생닭의 잔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인류는 왜 닭을 가축화하게 됐을까. 지금의 쓰임새를 놓고 보면 고기와 달걀을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매번 힘들게 쫓아다니며 사냥하는 대신 뒤뜰에서 키우면 안정적으로 먹거리를 얻을 수 있으니까.
“고기와 달걀 확보가 원래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주술과 오락의 목적이 먼저였을 것으로 봅니다.”
국내 양계업계의 산증인인 서울대 동물자원과학과 오봉국 명예교수의 말이다. 오 교수에 따르면 인류가 닭을 키우게 된 것은 새벽, 일정한 시간이 되면 울어대는 닭의 습성 때문. 수탉이 자기 영역을 주장하는 행동이다.
오 교수는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은 맹수가 어슬렁거리는 밤을 두려워했다”며 “그들에게 밝은 낮의 시작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가 무척 반갑게 들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미호를 비롯해 구전설화에서 나타나는 귀신은 이들 맹수가 신화화된 것이다. 정월초하루가 되면 대문에 닭그림을 그려 붙이거나 닭피를 뿌려 축귀(逐鬼)와 벽사(壁邪)를 하는 풍습이 아시아 곳곳에 남아있는 것도 이런 연유이다.
닭을 기르게 된 또 하나의 중요한 계기는 닭싸움이다. 한쪽 다리를 들어 양손으로 잡고 외발로 뛰어가며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놀이를 ‘닭싸움’이라고 부를 정도로 닭은 싸움을 즐기는 속성이 있다. 주로 서열을 정하기 위해서 싸우는데 지켜보면 치열하기도 하고 기민한 움직임이 꽤 흥미롭다. 따라서 마땅한 재미거리가 없던 사람들에게 닭싸움은 상당한 구경거리였다.
오늘날에도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는 닭싸움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호전적’인 성향을 갖는 쪽으로 품종개량이 돼 있기 때문에 양계장의 닭들과는 생김새도 많이 다르다. 아무튼 닭의 가축화가 넓게 퍼지게 된 데에는 투계(鬪鷄)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선조들은 언제부터 닭을 가축화했을까. 현재의 토종닭을 보면 이들이 적색들닭의 후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렇다할 고고학적 증거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한서대 박물관 안덕임 관장은 “북한에서 청동기 시대 닭의 가축화를 시사하는 유물이 나왔다고 하나 아직 확인이 안 된 상태”라며 “신석기 유적 여러 곳에서 꿩의 뼈가 나온 것으로 보아 이때까지는 한반도에서 닭의 가축화가 안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설화나 신라 천마총에서 출토된 달걀 껍질 등으로 미루어 보건데 적어도 2000년 전에는 한반도에서 닭을 길렀음을 알 수 있다.
닭을 키우게 된 계기야 어찌됐던 오늘날 닭고기와 달걀은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품목이 됐다.
“닭을 키우다보면 잡아먹기도 하고 때로는 달걀을 먹기도 했을 겁니다. 그러다가 살이 잘 찌고 알을 많이 낳는 쪽으로 품종개량이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오봉국 교수의 설명이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야생의 들닭을 보면 이 과정을 추측할 수 있다. 적색들닭의 경우 개량된 닭에 비해 몸이 작고 알도 많이 낳지 않는다. 다른 새들처럼 산란기에만 알을 낳는데 봄이 되면 10~15개의 알을 낳은 뒤 부화시키고 또 한번 그 과정을 밟는다. 즉 일년에 고작 20~30개의 알을 낳는 셈이다. 오늘날 난용종(卵用種)의 10분의 1 수준이다.
알을 많이 낳게 하는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적당한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과 품종을 개량하는 것.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낮이 길어지고 따뜻해진다. 닭은 이 변화를 새끼를 낳아 키우기에 적당한 계절이 다가왔다는 신호로 보고 알을 낳기 시작한다. 따라서 인공적으로 온도를 높여주고 조명을 쪼여주면 닭은 계속 알을 낳게 된다. 물론 사료를 통해 껍질의 재료가 되는 칼슘 등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현재 양계장 시스템이 바로 이것이다.
한편 다양한 교배를 통해 알을 많이 낳는 품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탈리아 원산인 레그혼종이 대표적인 난용종으로 연간 산란수는 220∼250개다. 이 녀석들은 성질이 예민하고 알을 잘 품지 않으려고 한다. 낳기만 하고 돌보지 않으니 알을 거둬 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상적인 품종이다.
우리나라의 토종닭의 경우는 이처럼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품종개량이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야생의 들닭 특징이 남아있어 크기가 작고 연간 산란수도 난용종의 절반 수준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토종닭을 선호하는 것은 맛이 한결 낫기 때문. 오 교수는 “육용종 닭은 성장이 매우 빨라 살이 푸석푸석하다”며 “반면 토종닭은 성장이 더디기 때문에 근육이 단단하고 씹는 맛이 쫄깃쫄깃하다”고 설명했다.
닭 가슴살이 하얀 이유
‘꿩 대신 닭.’
용도에 꼭 맞는 것이 없을 때 아쉬운 대로 비슷한 대상으로 대신할 경우 쓰는 속담이다. 명품 핸드백 대신 쓰이는 짜가가 대표적인 꿩 대신 닭이다. 아무튼 닭의 입장에서는 불쾌한 비유다. 그렇다면 이 말의 유래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음식과 관련된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즉 예전에는 설날에 떡국을 끓일 때 꿩고기로 국물을 냈다고 한다. 그런데 꿩은 사냥해야만 구할 수 있으므로 일반 서민들이 쓰기는 어려웠다. 그 대신 쓰인 것이 바로 뒤뜰에 놓아기르던 닭. 떡국 뿐 아니라 만두소에 꿩고기를 쓰는 ‘생치(生雉)만두’에도 꿩을 구하기 어려울 때 대신 닭고기가 쓰였다고 한다.
꿩고기를 닭고기보다 높게 치는 것은 서양도 마찬가지다. 19세기 초 대표적인 미식가였던 프랑스의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은 지금까지도 미식의 경전으로 읽히고 있는 저서 ‘미각의 생리학’(Physiologie du gout, 최근 ‘브리야 사바랭의 미식 예찬’이란 제목으로 번역서 나옴)에서 꿩고기에 대해 “제때에 요리하면 그 살코기는 부드럽고 고상하며 대단히 맛이 좋다. 가금과 큰 수렵짐승의 맛이 동시에 나기 때문”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아무튼 닭고기가 대신 쓰일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맛이 꿩고기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은 둘 다 꿩과에 속하므로 분류학적으로 가까운 친척이다. 이밖에 금계, 공작 등이 꿩과에 속하는 새들이다. 닭과 달리 꿩은 날 수 있지만 다른 새들에 비해서는 비행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꿩과에 속하는 새들은 주로 들에서 생활하는데 주로 급할 때 단거리 비행을 한다.
대신 꿩이나 닭은 모두 강하고 튼튼한 다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발로 땅을 파헤쳐 벌레나 씨앗을 먹고산다. 특히 닭은 날기에는 몸이 너무 무거워졌기 때문에 날개를 더욱 쓰지 않게 됐다. 이처럼 가슴이나 날개 근육이 운동하는 일이 별로 없게 됨에 따라 닭가슴살은 유난히 흰 살코기가 됐다. 그런데 날지 못하는 것과 가슴살이 흰 것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고기의 색이 붉은 이유는 피의 색깔보다는 근육세포 자체에 있는 단백질인 미오글로빈이 붉기 때문이다. 미오글로빈은 혈액이 운반해온 산소를 보관하고 있다가 근육이 운동할 때 필요한 산소를 신속하게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산소가 많이 필요한 근육에는 미오글로빈이 많이 분포해 색이 짙다.
닭이나 칠면조처럼 주로 걸어다니고 거의 날 일이 없는 새들이 다릿살에 비해 가슴살이 흰 이유다. 꿩가슴살이 닭가슴살보다 색이 짙은 것도 꿩이 닭보다는 날갯짓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철새를 비롯해 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새들은 닭은 물론 꿩보다도 가슴살 색이 더 짙다.
닭 게놈 초안 해독
닭이 가축으로서만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근대 과학이 발달하면서 닭은 중요한 실험동물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척추동물 발생학 분야에서 매우 큰 기여를 했다.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의 경우 태아 발달 과정을 연구하기가 무척 어렵다. 이런 일들이 자궁 속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닭은 수정란이 성체가 되는 모든 과정이 알속에서 일어나므로 실험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고 있다. 그 결과 발생에 관련된 많은 사실들이 닭을 통해 알려졌다. 사람의 팔다리가 생기는 메커니즘 역시 닭 날개와 다리의 발달 과정을 관찰한 결과를 적용함으로써 밝혀졌다.
한편 닭은 생물의 진화를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네이처’ 2004년 12월 9일자는 닭 게놈 초안을 발표한 결과를 표지논문으로 소개했다. 닭의 게놈이 흥미를 끄는 것은 진화상에서 차지하는 닭의 위치 때문이다.
지금까지 게놈이 분석된 생물을 보면 미생물, 식물, 포유류 등이다. 이들은 그 자체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사람의 게놈과 비교함으로써 사람의 게놈을 좀더 폭넓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다. 그런데 미생물이나 식물은 사람의 게놈과 너무 다르고 포유류는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따라서 그 중간에 해당하는 생물이 필요했고 닭이 최적임자였던 것이다.
닭과 사람은 약 3억1000만년 전 둘의 공통 조상으로 추정되는 원시 파충류에서 갈라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쥐와 사람이 약 6500만년 전에 갈라진 것과 비교하면 훨씬 오래된 일이다. 이번에 밝혀진 닭의 게놈 초안도 이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현재 가축화돼 길러지고 있는 닭의 조상인 적색들닭의 게놈을 분석했다. 그 결과 닭의 게놈 크기는 사람 게놈의 3분의 1 수준으로 약 10억개의 염기쌍으로 이뤄져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유전자의 수는 2만~2만3000개로 추정돼 사람을 비롯한 포유류와 별 차이가 없었다. 즉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은 부분이 포유류에 비해 훨씬 적은 것이다.
닭의 게놈을 분석하는 연구는 이제 시작단계지만 벌써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닭은 후각능력이 미미한 것으로 여겨져 왔는데 이번 게놈을 분석한 결과 후각 유전자가 많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게놈 분석 연구가 진행되면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닭에 대한 지식에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번 연구 결과를 보면 비슷한 유전자가 닭과 사람에서는 어떻게 다른 기능을 하게 진화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케라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인류를 포함한 포유류에서는 털과 발톱을 만들 때 발현되는 반면, 닭에서는 부리나 깃털에서 발현된다. 또 서로의 게놈을 비교해보면 진화의 과정에서 각각 어떤 유전자를 얻었고 잃었는지를 알게 돼 그 기능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적색들닭 외에 현재 사육되는 3가지 품종의 게놈 일부도 해독됐다. 야생동물이 가축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게놈 상의 변화를 추적해보는 최초의 시도였다. 3가지 품종은 브로일러(Broiler), 레이어(Layer), 실키(Silkie)다. 그 결과 적색들닭과 개량종은 서로 염기 1000개당 5개꼴로 차이가 났다. 연구자들은 “야생종과 개량종의 게놈을 비교하는 연구는 좀더 우수한 품종을 만들어내는데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