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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무슨 고백을 할 건데요?”

노숙자는 식사를 다 한 뒤 질문했다.

“고백?”

나는 식사하는 내내 젊은 노숙자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기껏해야 스물이나 갓 넘겼을까 말까, 고급 양복을 입은 노인네가 서울역에서 대뜸 저녁을 사주겠다고 했을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내 집에 들어와서, 목욕을 시켜주고 옷을 사주는 데도 조용하고,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고 주는 식사를 다 먹고 하는 말이, 나더러 무슨 고백을 할 거냐고 묻는다.

“제가 민담 같은 걸 좋아해서요. 부자가 거지를 불러 거하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죠. 그리고 아무에게도 하지 못하는 비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대나무숲에 대고 말하면서 스트레스 푸는 거죠. 돌아간 거지가 어디 가서 그 이야기를 남에게 한다고 해도 어차피 아무도 믿지 않고요.”

“눈치가 빠른 친구로군. 맞아. 이건 내 연례행사지. 개인적인 취미생활이랄까.”

“취미야 자기 자유죠. 그런데 어쩌다 나를 골랐어요?”

“죽은 아내 생일에 결혼식 날짜를 합해서 우리가 처음 만난 날짜와 만난 시간을 빼고……, 신경 쓰지 말게. 뭐 그런 식으로 해서 날과 시간을 정해 서울역에 나가 제일 처음 만나는 노숙자를 선택하지.”

청년은 식탁 의자를 밀고 일어나 제 집처럼 찬장 문을 열었다.

“커피 끓여 드릴까요?”

“커피가 거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나?”

“집마다 놓는 데 비슷하잖아요. 설탕 네 수저 넣으시죠?”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사회 초년생이 뭐 하겠어요. 커피나 끓이는 거죠. 단 거 좋아하실 거 같아서. 그래서 오늘 뭘 고백하실 건데요? 죽은 아내 이야기?”

청년은 솜씨 좋게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려 노인 앞에 놓았다. 커피 맛이 입맛에 맞아서 마음에 들었다. ‘찻잔 둔 곳은 어떻게 알았나’하고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자네, 교육 좀 받은 친구로군. 하긴 전에 데려온 노숙자는 대학교수였어. 전에는 중소기업 사장했던 친구도 있었지.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어.”

나는 청년을 데리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안구를 스캔하고 지문감식을 하고, 음성확인까지 거친 뒤에야 문이 열렸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신기해서 눈을 휘둥그레 뜨는 풍경인데도 청년은 두리번거리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금고 같은 것도 있네요.”

“5중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거야. 문과 똑같은 장치에 비밀번호는 나만 아는 거고. 슈퍼컴퓨터로도 열 수 없을 걸세.”
나는 청년이 금고에 관심을 두는 것을 보고 말했다. 이어서는 벽면을 열어 비밀창고를 보여주었다. 청년은 안에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게 뭔지 알겠나?”

청년은 묵묵히 보다가 말했다.

“알아요. 인공 뇌죠. 저기 있는 건 인공 몸이고요. 세포 단계에서 부분을 따로 배양해서 합치죠. 자라기도 하고 늙기도 하고 죽기도 해요. 살아 있는 건 아니지만 무생물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하죠. 보아하니 본인 세포를 쓴 것 같네요.”

“나는 오늘 여기로 옮겨 갈 거야.”

청년은 잠시 침묵했다.

“정신을 복제할 수 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옮겨가는 건 아니죠. 그냥 같은 거예요. 정신적인 쌍둥이죠. 몸을 복제해도 같은 사람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예요.”

“나는 이런 식으로 200년째 살고 있다네.”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놀란 모양이로군.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폼이…….”

“놀라지 않았어요. 하지만 정말로 200년 사신 건 아녜요. 200년의 기억이 있는 거죠. 본인이었던 사람은 오래 전에 죽었고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게. 난 사실 지금 불안해하고 있어. 저번에 잘 되지 않았거든.”

“기억이 날아갔나요?”

나는 흠칫 고개를 돌렸다.

“찍어 봤어요. 하드도 데이터 옮기다가 날아갈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불안해하는 건가요? 제대로 옮겨가지 않을까 봐?”

“쓸데없는 걱정이지. 사람은 어차피 계속 기억을 잃으면서 사는 거야. 그렇다고 내가 죽었거나 내가 아닌 건 아냐. 어린 시절을 다 기억하고 사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죽는 것 맞아요.”

청년이 무심하게 말했다.

“고급스러운 방식의 자살이죠. 그것도 자기 선택이니 뭐라 할 건 없지만. 옮겨가고 나서 원래 몸은 어떻게 하는데요? 죽여서 쓰레기통에 버릴 건가요? 운동 좀 열심히 하고 약 잘 먹으면 앞으로 한참 더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토론이 되겠군. 의사들이 올 때까지는 시간도 있고…….”

나는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청년도 마찬가지로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내가 의자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고 까닥거리자 청년도 따라서 까닥거렸다.

“기억에 영혼이 담긴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나?”

“그럼요. 하다못해 도자기 같은 것도 영혼을 담죠. 그림에도 소설에도 담기죠. 사람은 본능적으로 혼이 담긴 것과 담기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알아요. 영화필름에 혼이 담기는데 하드디스크에 담기지 못할 건 뭐예요? 단지 본인은 아니라는 거죠.”

“자네 믿음이겠지.”

“믿음이죠.”

청년이 답했다.

“내 믿음을 말해 볼까요? 영혼은 사람의 몸 전체에 담겨있어요. 뇌에 지혜가 있고 심장에 양심이 있죠. 간에는 배짱이 있고 위에는 욕심이, 장에는 불안이 있고, 허파에는 농담이 있고, 손에는 잔재주가 있고 발에는 굳은살이 있죠.내장도 기억을 하고 근육도 기억을 해요. 그게 전부 자기예요. 다 없어지면 자기가 아닌 거고.”



“그럼 팔이 하나 잘린 사람은?”

청년은 입을 다물었다.

“다리 하나를 잃으면 다른 사람인가? 아니, 상처가 나서 새 살이 돋으면 다른 사람인가? 수혈을 받으면, 때를 밀면, 머리를 다듬고 수염을 깎으면? 손톱을 자르고 각질을 벗겨 내면? 신장이나 골수를 이식받으면 다른 사람이 되나?”

“…….”

“자네가 태어났을 때 자네 몸에 있던 세포 중 남아 있는 건 하나도 없어. 사람 몸이라는 건 지금 이 순간에도 바뀌고, 배설되고, 섭취한 영양분을 변환해 새로 생겨나지. 생물은 그런 식으로 사실상 계속 몸을 옮기며 살아가는 걸세. 이 과자가 내 몸으로 들어와……. 잠깐, 과자는 또 언제 찾아낸 거야?”

“증명할 수 없는 문제에요.”

청년이 과자 상자에서 곰돌이 모양 쿠키를 들어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말했다.

“나와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나와 똑같은 기억을 갖고 있는 어떤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내가 다른 사람이라고 느낀다면, 그렇게 믿는 것뿐인지 진짜인지 어떻게 증명할까요?”

“…….”

“어떤 사람이 자기 아이와 자신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아이의 고통을 같이 느끼고 기쁨을 같이 느낀대요. 그렇게 믿는 것뿐인지 진짜인지 어떻게 증명할까요?”

“…….”

“의식이 생겨난 컴퓨터가 있어요. 하드디스크가 자의식을 갖고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 컴퓨터는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까요?”

“…….”

“하지만 본인은 알아요. 본인은 알 수밖에 없죠. 의식이 있는 하드디스크 본인은 자신이 살아 있는 줄 알 거예요. 증명할 수 없다 뿐이지.”

“…….”

“식물이 무생물이었던 시절도 있었죠. 미국 원주민은 돌이나 흙도 생물로 분류하죠. 피부색만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규정되지 않았던 적도 있어요. 무엇이 생명인가, 무엇이 살아있는가, 무엇이 의식이고 정신인가 하는 개념에는 언제나 사회적인 합의가 섞여 있어요. 물론 그 시대 안에서는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상식이라 사회적인 합의인 줄도 모르지만요.”

나는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청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네 직장 가져 본 적은 있나? 내가 어디 소개서라도 써줄까?”

“원래는 연구소에 다녔는데 일이 좀 생겨서 도망 다니는 중이에요.”

“무슨 연구소?”

“타임머신 만들다가 문제가 생겨서요(과학동아 2011년 11월호 ‘타임머신 특집’).”

“무슨 머신?”

“그런 게 있어요.”

청년은 몸을 숙여 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었다.

“제가 확인하는 법을 생각해 봤는데요.”

“뭔데?”

“인공 뇌로 옮겨가면서, 원래 몸을 폐기하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둘이 같이 깨어나 보는 거죠. 어떻게 되나.”

나는 딱딱하게 굳었다.

“안 돼. 그건 미친 짓이야.”

“둘 중에 누가 진짜인지 서로 얼굴 마주 보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거죠. 원본이 누구일지.”

“그렇게 하면 자아가 둘로 갈라져. 한쪽을 죽이면서 동시에 가야…….”

“그것도 믿음이죠. 결국은 믿음의 문제예요.”

청년은 몸을 깊이 숙였다.

“우리는 몸을 모두 해체하고 가상공간으로 들어갈 수도 있어요. 하지 않는 이유는 할 이유가 많지 않아서고요. 사후세계를 믿는 사람조차도 자기 목을 치진 않아요. 결국 확신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거든요.”

“…….”



“사람들이 이걸 하지 않는 건 돈이 없거나 멍청해서가 아녜요. 믿지 않기 때문이죠. 영감님은 믿는 거고.”

슬슬 불편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도움이 되지 않는군. 그만 가 보게. 거기 서랍에 돈이 좀 있으니…….”

“알아요. 비밀번호 1029죠?”

청년은 의자를 뒤로 빼고 번호를 눌러 서랍을 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너 누구야? 탐정이야? 형사?”

“틀렸어요.”

“아냐, 아냐. 자네가 일부러 여기에 왔을 가능성은 없어. 내가 자네를 골라 데려왔어. 그 의식은 나만 아는 거야. 죽은 아내의 정보를 아는 것도 나만…….”

나는 말을 멈추고 상대를 한참 바라보았다.

“저번에 뇌랑 몸을 옮겼을 때요.”

청년은 돈을 꺼내 몇 장 세어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정확히 내가 주려고 했던 액수와 같은 금액이었다.

“오류가 있었죠. 원래의 몸이 죽지 않았어요. 새 몸도깨어났고 원래의 몸도 그냥 깨어나 버렸어요. ‘내’가 둘이 된 거죠. 원래 몸은 기억에 문제가 좀 생겨서 날 못 알아보더군요. 그때 느꼈죠. 나는 살아 있고, 의식도 자아도 있고, 영감님과 같은 정신을 갖고 있지만, 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걸요. 그래서 난 영감님 옆을 떠났어요.”

청년은 일어나 내 금고로 다가갔다. 태연하게 나만이 아는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지문을 찍고 눈을 대어 안구인식을 했다. 음성인식도 통과했다.

“자신과 같은 것을 마주한다는 건 불편한 경험이죠. 비밀번호도 다 알고, 자기 치부도 다 알고, 능력과 지식과 하다못해 욕망까지 동일하니.”
그는 금고 문을 열고 안에 든 작은 뼛가루 단지와 사진을 꺼냈다. 내 첫 번째 아내의 유품이었다. 내가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물건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죠? 나 혼자만 사랑하는 사람인데, 눈앞에 똑같은 사람을 사랑했고 똑같은 것을 보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니. 자기 자신이건만 연적처럼 느껴야 한다니.”

청년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할아버지면 그래도 괜찮아요. 나와 똑같이 젊은 사람이 이 좁은 나라에 둘이나 있다면, 사는 게 얼마나 팍팍할지 상상도 안 가네요.”

“날 죽일 건가?”

“설마요. ‘자신을’ 알잖아요? 살날이 많은데 죄짓고 어떻게 살아요?”

나는 청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걱정 마세요. 난 내 수명이 다하면 죽을 거예요. 언젠가 눈앞에서 사라져줄 거라고요. 옮기고 그런 거 안 해요. 지금까지 말했잖아요? 내가 뭘 ‘믿는지’.”

청년은 문을 열고 나가며 문득 생각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요, 우리 의견이 갈라진 건 우리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죠. 내가 이건 믿음의 문제라고 했던 것 기억나요?”

청년은 두려움도 애정도 미움도 연민도, 그 어떤 것도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뭘 믿으시겠어요?”

그는 나를 혼자 방에 남겨두고 나갔다. 나는 뒤에 남아 의자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고 까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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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인공 뇌
Part1. 뇌 vs 컴퓨터
Part2. 인공 뇌 만들기
Part3. 뇌보다 똑똑한 인공 뇌
Part4. 인공 뇌에도 마음이 있을까
Part5. 이사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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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과학동아 정보

  • 김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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