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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은 늘 야구선수 곁에 있다. 투수에게는 더 그렇다. 투구는 부상의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동작이기 때문이다. 프로야구단 LG 트윈스의 트레이너를 지낸 권태윤 R&C스포츠센터 원장은 “투구는 인간의 정상적 활동 범위를 넘어선 동작”이라고 말했다.

강속구를 던지려면 몸을 뒤로 젖혀 와인드업 동작을 취한 뒤 발을 내딛으며 몸의 중심을 빠르게 앞으로 이동한다. 동시에 허리를 태엽처럼 감았다 풀면서 생긴 힘이 어깨에 전달된다. 어깨는 이 힘을 바탕으로 초속 7000°의 각속도로 회전한다. 다시 말해 팔은 1초에 18바퀴가 넘는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동시에 팔꿈치를 뒤틀면서 힘을 더 한다. 여기에 손목의 스냅과 손끝의 감각이 더해져 최고 시속 160km의 속구 혹은 시속 130km의 변화구가 날아간다.

이런 동작은 간단히 밀거나 당기기 위해 만들어진 어깨와 팔꿈치에 심각한 무리를 준다. 상당한 무게와 마찰을 견딜 수 있는 무릎, 엉덩이 관절, 허리와 달리 어깨와 팔꿈치는 견딜 수 있는 힘이 훨씬 약하기 때문이다. 박진영 건국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재활치료를 받은 야구 선수 680명을 조사했다. 그 결과 다친 야구선수의 64.1%가 투수였으며, 가장 많이 다친 부위는 팔꿈치(48.4%)와 어깨(27.1%)였다.

가장 흔한 부상은 팔꿈치 내측 인대 부상이다. 팔꿈치 내측 인대는 팔꿈치 관절 안쪽의 위팔뼈와 팔뚝의 앞쪽 뼈를 이루는 관절을 지지한다. 팔을 휘두를 때 팔꿈치가 바깥쪽으로 꺾이는 현상을 막는다.

투수가 투구를 많이 하면 지지대 역할을 하는 인대가 부상을 당할 위험이 크다. 이 인대는 투수가 공을 적게 던질 때는 팔이 바깥쪽으로 꺾이는 현상을 막아주는 데 충분하다. 그러나 많이 투구하면 근육에 피로가 쌓이며 약화돼 인대에 늘어나는 힘, 즉 장력이 가해진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큰 장력이 자주 가해지면 인대는 늘어나거나 근육에 눌려 염증이 생기며 두터워진다.

이렇게 되면 인대의 유연성이 떨어지는데, 심해지면 결국 끊어진다. 박 교수는 “투구와 송구를 무리하게 반복하면 팔꿈치의 인대가 고무줄과 껌의 중간 형태처럼 너덜너덜해졌다가 결국 찢어진다”고 말했다.
 

선수생명 늘리는 토미존 수술

과거에는 무리한 투구로 인대가 끊어지면 선수 생명도 끝났다. 인대를 다시 붙일 수 없어 많은 투수들이 그라운드를 떠났다. 고 최동원 투수를 비롯한 프로야구 초창기 투수들의 전성기가 서른 살 즈음에 끝났던 것도 이와 큰 관련이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투수 샌디 쿠팩스가 서른살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은퇴한 것도 팔꿈치 부상 때문이었다.

1974년 미국의 프랭크 조브 박사가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왼손 투수 토미 존을 치료하며 투수의 선수 생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조브 박사는 존의 너덜너덜해진 왼팔 팔꿈치 인대를 오른팔의 거의 쓰지 않는 인대로 교체했다. 31살이었던 존은 1년 반이 넘는 재활 기간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복귀했다. 놀랍게도 그는 그 뒤 14년 동안 164승을 더 올렸다. 1989년 통산 288승을 거두고 46세의 나이에 은퇴했다. 조브 박사가 한 이 수술은 토미 존의 이름을 따 ‘토미존 수술’이라고 부른다. 의학용어는 ‘팔꿈치 주관절 내측 측부 인대재건술’이다.

토미존 수술은 1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간단한 수술이다. 우리 몸에 있는, 떼어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인대를 떼어 팔꿈치에 이식한다. 현재 수술 성공률은 90%이상이다. 야구선수 이외에도 다른 종목의 선수와 일반인들도 많이 받는 보편적인 수술이 됐다.

한화 이글스의 류현진 선수가 고등학교 때 받은 걸로도 유명하다. 류현진 선수는 이 수술을 받고 프로에 입단한 첫 해 2006년 신인왕과 MVP를 차지했다. 최고의 마무리투수인 삼성 라이온즈의 오승환과 일본리그에서 최고의 마무리로 활약하고 있는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임창용 선수도 이 수술을 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토미존 수술 이후 몇몇 투수들이 수술 전보다 공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는 점이다. 임창용 선수는 수술 전 직구가 시속 150km에 머물렀다. 수술 뒤 재활이 끝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최고 시속 160km에 달하는 빠른 공을 던졌다. 아마 시절보다 프로에 와서 위력적인 직구를 선보인 류현진 선수와 오승환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성공 사례로 인해 토미존 수술을 받으면 구속이 증가한다는 속설이 생겼다. 과연 사실일까.
 
[입단 뒤 건강검진을 받는 한화 이글스의 유창식 투수. 신인 선수들이 입단하면 먼저 건강검진을 받는다. 어렸을 때부터 무리해 부상을 가진 경우가 많다.]


[➊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추신수 선수의 팔꿈치에 남아 있는 토미존 수술 자국. ➋ 수술을 받고 나면 한동안 팔꿈치를 고정시켜 수술 부위를 아물게 한다. 너무 오랫동안 하면 근육이 사라져 재활이 길어지기 때문에 최근 고정시키는 기간이 줄고 있다. 토미존 수술의 대표적인 두 가지 방식. ➌은 구멍을 한개 뚫어 새 인대를 접합하는 방식으로 한화 류현진, 삼성 오승환도 이 같은 방식으로 국내에서 수술 받았다. ➍는 ‘8자 매듭법’으로 건강한 인대를 부상 팔꿈치 위쪽과 아래쪽에 각각 두개의 구멍을 뚫고 8자 모양으로 끼우는 방식이다.]


[제2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한 야구대표팀의 전지 훈련 모습. 재활 과정뿐만 아니라 부상이 없을 때도 꾸준히 근력과 유연성 훈련을 해야 부상을 줄일 수 있다.]

구속 상승의 비밀, 수술? 재활!

조브 박사는 ESPN과의 인터뷰에서 “손상된 인대 대신 탄력이 좋은 새로운 인대 때문에 구속이 증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인대의 탄력이 줄어들면 다시 구속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공이 빨라진 것은 수술과 상관없이 충실히 재활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많다. 권태윤 원장은 “1년이 넘는 재활을 하며 몸 전체가 강화되면서 구속이 빨라진다”고 말했다. 부상당한 팔꿈치만이 아니라 어깨, 허리, 하체 등 몸 전체를 보강하며 투구 메커니즘이 정상으로 돌아와 구속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김병곤 LG 트윈스 트레이너도 권 원장의 의견에 동의했다. “투수들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부상때문에 몸이 정상이 아닌 경우가 많아 최고의 실력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술 뒤 재활하며 자잘한 통증이 사라져 최고의 몸 상태가 돼 원래 몸이 낼 수 있는 최고 구속을 회복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권 원장은 “선수의 수술 전 상태와 재활 과정에 따라 결과가 크게 차이 난다”고 말했다. 따라서 수술만으로 구속이 빨라지거나 느려진다고 명확히 단정 지을 수 없다.

재활과정에서 공이 느려진 투수도 있다. KIA 타이거즈의 투수 서재응이 대표적이다. 서재응 선수는 1998년 미국 메이저리그에 도전했지만 부상으로 1999년 토미존 수술을 받았다. 시속 153km에 달하던 직구 구속은 수술 뒤 시속 145km에 그쳤다. 서재응 선수는 결국 제구력을 바탕으로 한 투수로 변신할 수 밖에 없었다.

삼성 라이온즈의 에이스였던 배영수 투수도 구속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고 구속이 시속 156km까지 나왔으나 2008년 복귀 뒤 시속 140km에 못 미쳤다. 점차 몸을 만들면서 올해 시속 145km가 넘는 직구를 던지지만 성적은 전성기에 못 미친다.

널리 알려진 성공사례에 비해 실패사례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속설에 한 몫 한다. 의학적으로 수술이 성공했다고 해서 과거의 기량을 바로 되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긴 재활 과정에서 많은 선수들이 좌절하고 선수 생활을 포기하거나, 다시 부상을 입지만 이런 사실들은 잘 알려지지 않고, 기억에서 쉽게 사라진다.

결국 토미존 수술은 구속을 증가시킨다고 볼 수 없다. 원래의 운동 실력을 내기까지는 오랜 재활 과정이 필수고,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원래의 실력 혹은 숨겨진 실력을 되찾을 뿐이다.
 
조급함 버리고 단계적으로 차근차근해야

토미존 수술 뒤 선수들은 짧게는 1년, 길게는 1년 반의 재활 기간을 거친다. 수술을 받은 뒤 첫 4주는 수술한 부위를 고정해 아물도록 기다린다. 그 뒤 4주 정도 물리치료를 통해 관절의 운동 범위를 회복한다. 수술 8주 뒤부턴 근력을 만든다. 이 단계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비슷하다. 박진영 교수는 “인대가 아물고 굳어진 관절이 풀리는 데 필수적인 시간”이라고 말했다.

수술 뒤 6개월이 지나면 드디어 공을 잡고 단계별 투구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이 프로그램 역시 조브 박사가 처음 고안했다. 수술 뒤 토미 존 선수에게 이 프로그램을 적용해 재활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 프로그램은 수술 뒤의 선수뿐만 아니라 부상 등으로 오래 쉰 선수가 공을 던지기 위해서 꼭 거친다.

이 프로그램은 재활 기간 동안 각 선수의 어깨 상태와 근력을 고려해 거리와 공 개수를 조정한다. 공을 던지지 않고 투구 동작만 취하는 ‘쉐도우 피칭’을 거쳐 15m부터 시작해 60m까지 거리와 투구 수를 점차적으로 늘린다. 한경진 헤렌스포츠클리닉 대표는 “이 프로그램은 점진적으로 던지는 거리를 늘려 몸의 균형과 투구의 감각을 살리고, 동시에 팔에 무리가 가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으면 투수는 정상 투구를 시작한다. 단계별 투구프로그램 진행 중에 통증이 발생하면 거리와 투구 수를 낮춰 던지고, 통증이 없어지면 다시 늘린다. 선수들은 보통 2~3회 정도 통증을 겪는데, 트레이너와 코치 그리고 의사가 긴밀하게 협조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다. 박진영 교수는 “이때 선수의 관절 가동 범위, 근력과 근지구력, 관절 안정성, 통증 정도를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MRI나 CT와 같은 영상 장비로 수술 부위를 계속 점검한다”고 말했다.

단계별 투구프로그램을 끝낸 투수는 50%의 힘으로 던지는 하프피칭부터 시작해 점차 전력투구를 할 수 있게끔 컨디션을 올린다. 마지막에는 변화구 사용과 연습경기에 등판해 부상부위와 투구 내용을 점검한다. 이 결과 문제가 없으면 재활을 마치고 1군으로 올라간다.

1년이 넘는 긴 재활 과정을 견디는 것은 상당히 힘들다. 최원호 LG 트윈스 재활 코치는 선수 시절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최 코치는 “선수들은 의욕이 앞서 재활 순서를 지키지 않을 때가 많다”며 “조급한 마음에 통증이 없다고 트레이너를 속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부상이 재발한다”고 말했다. 빨리 팀에 복귀하고 싶은 마음에 무리하는 것이다. 또 선수가 부족한 팀이 성적에 쫓겨 재활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선수를 빨리 던지게 해 다시 탈이 나기도 한다.

김병곤 트레이너는 조급함을 버리고, 몸과 마음의 한계를 인정하고 체계적인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선수들에게 2달에 걸쳐 30번 트레이닝하면 된다고 말하면, 많은 이들이 ‘1달 동안 60번 운동을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해 무리한다”며 “몸은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넘어서면 제대로 운동할 수 없어 결과적으로 재활의 효율도 더 떨어진다”고 말했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정해진 기준에 맞춰 절차에 따라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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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종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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