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을 앞둔 ‘가오갤3’에서는 스타로드, 드랙스, 네뷸라, 맨티스, 로켓, 그루트, 그리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희생됐던 가모라까지 다시 돌아와 팀 ‘가디언즈’ 완전체를 이룹니다. 게다가 이번 편에서는 새로운 빌런 ‘하이 에볼루셔너리’까지 등장하는데요. 그는 평범한 라쿤이었던 로켓을 사람처럼 움직이고 말하는 개조생명체로 만든 무시무시한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만의 ‘파라다이스’를 만들기 위해 ‘카운터 어스’ 행성에 자신이 만든 개조생명체들을 살게 합니다.
유전자 조작에 심취한 새로운 빌런의 등장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한 마디로 ‘매드 사이언티스트’입니다. ‘에볼루셔너리’, 즉 인류의 진화를 위해 유전자를 마구 조작하고 실험하는 인물이죠. 실제로 예고편에 등장한 생명체를 보면 동물의 얼굴과 사람의 몸이 합쳐진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란 단순히 과학적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해 과학자로서의 윤리, 도덕성이 결여된 채 실험하는 과학자를 말합니다. 현실에서도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불렸던 과학자가 있습니다. 2018년 ‘유전자 편집 아기’를 탄생시킨 허젠쿠이 전 중국 남방과학기술대 교수입니다.
그는 ‘크리스퍼(CRISPR)-캐스9’이라는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면역력을 갖도록 배아의 DNA를 수정한 뒤 두 명의 산모에게 이식했습니다. 그 결과 한 산모는 여자 쌍둥이를 출산했고, 이듬해 다른 산모 역시 한 명의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당시 허 전 교수는 과학계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세계 7개국 18명의 생명과학자들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향후 최소 5년간 인간 배아의 유전자 편집과 착상을 전면 중단하고, 이를 관리감독하는 국제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킨 허 전 교수는 2019년 3년형을 구형받았죠. 지난해 출소한 그는 올해 초 영국 켄트대에서 열린 생명윤리 행사에 초청받았으나, 과거 자신이 했던 실험에 대해서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아 다시 한번 비난을 받았습니다.
동물 얼굴을 한 개조생명체, 만들 수 있을까
유전자 편집 기술은 사실 인류의 건강 증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입니다. 실제 많은 기업이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희귀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퍼-캐스9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유전자 편집 기술은 특정 DNA를 잘라내는 데 그쳤지만, 그 다음 세대 유전자 편집 기술은 DNA를 구성하는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 등 4개의 염기를 치환할 수 있습니다. 시토신은 티민으로, 아데닌은 구아닌으로, 단일 염기 단위로 바꿀 수 있어 파급력이 강한 기술이죠.
미국의 바이오 기업인 버브 테라퓨틱스는 이 기술로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는 데 관여하는 ‘PCSK9’라는 단백질 유전자를 영구적으로 비활성화하는 치료제를 개발했습니다. 현재 영국과 뉴질랜드에서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버브 테라퓨틱스는 이 치료제가 향후 유전적으로 콜레스테롤이 높은 ‘예비’ 환자들에게 예방 접종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가장 최신의 유전자 편집 기술은 ‘프라임 에디팅’ 기술입니다. 프라임 에디팅은 DNA를 합성할 수 있는 역전사 효소를 이용해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유전자를 끼울 수 있는 기술입니다. 아직 연구 초기 단계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원인이 밝혀진 유전질환의 80% 이상이 치료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가오갤3’에 등장하는, 동물의 얼굴을 한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봅시다. 우리의 유전자는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사람의 얼굴을 완벽하게 동물의 얼굴로 만들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유전자 정보가 알려진 경우엔 외형을 바꾸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한 예로 2020년 장영태 포스텍 화학과 교수가 참여한 국제공동연구팀은 생쥐에 유전자 가위 기술을 적용해 생쥐의 백색 지방을 갈색 지방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습니다. doi: 10.1126/scitranslmed.aaz8664
백색 지방은 에너지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지방으로, 우리가 흔히 보는 뱃살, 옆구리살 등은 대부분 백색 지방입니다. 반면 갈색 지방은 백색 지방과 정반대로 에너지를 태워 열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갈색 지방의 비중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백색 지방의 양이 줄어들면서 살이 빠지겠죠.
갈색 지방의 비중을 늘릴 수 있는 건 갈색 지방에서 활성화 되는 ‘UCP1’이라는 단백질 덕분입니다. 연구진은 유전자 편집 기술로 백색 지방 전구세포에 UCP1을 다량 발현시켰습니다. 그 결과 갈색 지방 비중이 늘어난 생쥐는 동일한 식단을 먹은 일반 생쥐에 비해 체중이 덜 늘어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결과를 종합해볼 때 얼굴 생김새를 결정짓는 정확한 유전자 정보를 알 수 있다면, 유전자 편집 기술로 배아 상태에서 외형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외형을 결정짓는 유전자는 최소 수만 개고, 배아 상태에서 유전자를 편집하는 실험은 윤리적으로 금지돼있기 때문에 현실에서 ‘가오갤3’ 속 개조생명체를 만나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이 엠 그루트” 진짜 말을 할 수 있다고?
‘가오갤3’의 중요한 캐릭터가 하나 남았죠? 바로 그루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그루트는 몸통이 나무로 구성된 생명체입니다. 현실에서 나무가 걷고 움직이며 총을 쏘는 건 어떤 수를 써도 불가능하지만, 최근 식물도 나름의 ‘말’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텔아브비대 연구팀은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뽁뽁’하는 소리를 낸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셀’ 3월 30일자에 발표했습니다. doi: 10.1016/j.cell.2023.03.009 연구진은 토마토와 담배에게 물을 주지 않거나 줄기를 자르는 등의 생존과 연관된 스트레스 상황을 연출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는 소리를 녹음했습니다. 그 결과 스트레스를 받는 식물이 그렇지 않은 식물보다 30~50배 가량 더 많은 소리를 냈습니다. 또 토마토와 담배가 각각 스트레스 받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소리를 비교 분석했을 때 약 98%의 정확도로 식물의 소리를 구분해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식물이 내는 소리는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초음파 영역이었지만, 연구팀이 이를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청주파수대로 변형하자 마치 포장용 ‘버블랩(뽁뽁이)’이 터지는 것과 유사한 소리가 났습니다. 현실 속 식물들이 “나는 그루트다”라는 말까지는 할 수 없어도 자기 나름의 목소리는 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