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금 은 잊혀져가는 풍습이지만, 해마다 정월대보름 전날 밤이면 어린이들은 쥐불놀이에 푹 빠져 시간가는 줄 몰랐다. 빈 깡통에 바람구멍을 뚫은 뒤 깡통의 끝에 철사를 길게 매단다. 깡통 안에 장작개비 조각이나 솔방울을 넣고 불을 붙인 다음에 빙빙 돌리면, 깡통안의 불꽃이 원을 그리며 어두운 밤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보어 원자 모델의 단점
쥐불놀이의 원운동은 언뜻 보면 보어의 원자 모델을 닮았다. 원운동의 반지름은 철사의 길이로 정해진다. 멀리서 바라보는 쥐불놀이의 풍경은 전자가 원자핵에서 떨어져 원운동을 하는 원자 세계를 흉내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어가 제시했던 원자 모델과 쥐불놀이는 다르다.
먼저 불꽃 원운동의 반지름이 일정하지 않다. 깡통을 돌리는 어린이가 팔을 쭉 펴고 돌리느냐 아니면 팔이 아파서 조금 움츠리느냐에 따라 불꽃의 반지름이 변한다. 그리고 원운동을 하는 불꽃을 멀리서 바라볼 때 깡통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멀리서는 깡통이 회전하는 궤도만 보일 뿐이다. 혹시 원자 세계의 전자가 운동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보어의 모델을 이용하면 수소원자(H)처럼 전자를 하나만 갖고 있는 경우의 스펙트럼을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자가 두 개만 돼도 실험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보어가 선스펙트럼 결과에 맞추기 위해 이론적인 배경 없이 억지로(?)‘ 불연속성’개념을 도입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원자 구조를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새로운 개념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양자역학의 탄생
보어의 원자 모델은 현대 과학의 전환기인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졌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은 가속도, 작용-반작용의 법칙 등 친숙한 뉴턴 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원자와 같은 아주 작은 세계에 대한 실험결과들이 발표된 시기였다. 그 당시의 과학자들은 고전역학이라고 불리는 기존 방법을 이용해 어떻게든 실험 결과를 설명하고자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개념이 절실히 필요했고, 이는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라는 학문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양자역학이 탄생했던 시기는 이름만 들어도 친숙한 수많은 과학자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때였다. 아인슈타인, 플랑크, 톰슨, 러더퍼드, 보어 등이 바로 이 시기에 훌륭한 연구 업적을 남긴 과학자다. 양자(quantum)의 사전적의미가‘특정량’,‘ 정량’,‘ 정액’의뜻을 가지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양자역학은 ‘불연속성’을 토대로 성립된 학문이다. 보어가 수소 선스펙트럼의 실험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불연속성’개념을 도입한 것은 우연이 아닌 시대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보어는 고전역학의 틀 안에 ‘불연속성’개념을 도입했기 때문에 서로 어울리지 않는, 뭔가 어색한 만남이었다.
고전역학은 ‘처음을 알면 끝도 알 수 있다’는 기본적인 생각에서 시작한다. 물체의 초기 조건과 속도를 알면 물체의 운동을 기술할 수 있다는 고전역학에서는 모든 것이 확실하고 정해져 있다. 보어의 원자 구조를 보면, 전자는 정해진 궤도를 따라서 원운동을 하며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낮은 에너지 상태로 떨어지면 빛을 방출한다. 고전역학에서 중요한 변수인 위치와 속도를 보어의 원자 모델에서도 확실하게 기술할 수 있다.
불확정성의 원리
반면에 양자역학은 ‘불연속성’의 개념 이외에도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생각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를‘불확정성의 원리’라고 한다. 원자 구조를 예로 들면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100%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는 뜻이다.
‘불확정성’의 개념은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개념과도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 돌멩이, 야구공, 축구공, 전자 등이 입자의 예가 될 것이고, 빛 또는 물결이 파동의 예다. 하지만 양자역학이 탄생하던 시기에 이 둘의 구분이 없어지는 결과가 발표됐다. 아인슈타인은 파동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빛(전자기파)이 입자의 성질을 가진다는 가정으로 실험결과를 설명했다. J. J. 톰슨은 전자가 원자를 이루는 입자라는 것을 발견했고, 아들인 G. P. 톰슨은 전자가 파동의 성질을 보인다는 것을 증명했다.
전자는 입자이면서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전자의 위치가 아닌 파장과 진폭같은 개념으로 전자의 운동을 설명해야 한다. 쥐불놀이의 깡통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쥐불놀이를 하는 친구의 깡통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 돌을 던져서 맞추려고 한다고 가정해보자. 여러 번의 돌팔매질 끝에 우연히 깡통을 맞췄지만, 과연 깡통이 거기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깡통이 돌에 맞는 순간, 친구는 움찔하게 될 것이고, 돌의 운동에너지를 받은 깡통은 원래의 궤도에서 벗어나고 속도도 바뀔 것이다.
마찬가지로 원자 안의 전자의 위치를 알려고 여러가지 과학적 방법을 동원한다고 하자. 깡통이 돌에 맞은 것처럼 전자의 위치와 속도가 바뀌므로 전자의 정보를 100%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즉 전자의 위치와 속도는 불확정적인 것이다.
쥐불놀이에서 깡통의 위치를 확실하게 아는 방법은 무엇일까? 깡통을 돌리지 않고 그냥 들고 있으면 된다. 하지만 이 경우 그전에 돌고 있던 깡통의 속도를 알 수 없다. 정리하면 원자 안에서 원운동을 하는 전자의 위치와 속도(다른 표현으로 운동량($p=mv$)을 동시에 100%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확률 게임
193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하이젠베르크가 제시한‘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전자의 궤도(위치)와 속도를 기술한 보어의 원자 모델을 수정해 전자의 운동을 확률로 설명해야한다. 확률에 따른다는 것은 전자의 운동을 기술하기 위해서 궤도를 사용할 수 없고, 전자가 어떤 위치에 있을(따라서 어떤 에너지를 가지고 있을) 확률을 따져서 수식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뜻이다.
보어의 수소 원자 모델에서는 원운동 하는 전자의 궤도 반지름은 ${n}^{2}$·${a}_{0}$(${a}_{0}$ = 0.529Å)로 정해진 규칙에 따라 불연속적인 값을 갖는다. 반지름은 ${a}_{0}$ (n = 1), 4${a}_{0}$(n=2), 9${a}_{0}$ (n=3), 16${a}_{0}$ (n=4), 25${a}_{0}$ (n= 5)가 되며, n이 정해지면 어떤 에너지 상태에서 전자가 어떤 운동을 하는지 기술할 수 있다.
n에 따라 정해진 에너지 상태를 전자껍질이라고 부르고, K(n= 1), L(n=2), M(n=3), N(n=4), O(n= 5) …로 표현한다. 각각의 전자껍질은 고전역학으로 완벽하게 나타낼 수 있으며, 전자껍질에 들어갈 수 있는 전자의 수는 2n2이다. 수소의 전자 1개는 K껍질에 들어가고, 헬륨(He)의 전자 2개도 K껍질에 들어간다. 전자가 1개 더 많은 리튬(Li)의 경우 처음 2개의 전자는 K껍질을 채우고, 세 번째 전자는 L껍질에 들어간다.
보어의 원자 모델은 단순하고 명확하기 때문에 현대 화학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보어의 원자 모델을 100% 틀리다고할수도없다.‘ 불확정성’과‘확률’이라는 개념이 없고, 전자가 1개 이상 있는 경우에 설명이 힘들뿐이다.
보어 모델이 단순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양자역학에 따르면, n이 1인 바닥상태의 수소 원자의 전자는 보어 모델이 제시하는 반지름이 ${a}_{0}$인 궤도를 따라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원자핵을 중심으로 공간적으로 어디나 존재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확률이기 때문에 전자는 원자핵에 아주 가까이에도 혹은 아주 먼 곳에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전자가 공간적으로 어느 곳에 있을 확률이 높을 것인가다.
양자역학으로 계산해보면, n이 1인 바닥상태에서 전자를 발견할 확률이 가장 높은 원자핵과 전자의 거리는 놀랍게도 ${a}_{0}$이다. 보어는 쥐불놀이를 멀리서 바라보고 불꽃의 원운동 궤도만을 기술했지만, 사실 그 궤도는 확률이 제일 높은 궤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