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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은 주술도 마술도 아니다. 의학 심리학에 근거를 둔 지극히 과학적인 연구분야인 것이다.

대학 1학년생인 한 여학생(K양)이 필자의 진료실을 찾은 적이 있다. 겉보기에는 여느 여학생과 다름 없었던 K양은 공포증때문에 수업시간에 들어갈 수 없다고 호소했다.

그래서 필자는 K양에게 공포심을 주는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질문을 시작했다. 원인은 K양의 국민학교 5학년 시절로 거슬러 가서야 찾을 수 있었다. 당시 K양은 무척 따르고 좋아하던 선생님이 있었는데 하찮은 일로 그 선생님에게 심한 야단을 맞았다. "왜 선생님이 나를 꾸중할까?"하고 고심하던 K양은 다분히 피해망상적인 결론을 내렸다. "우리 집이 가난해서 돈을 안가져다 주기 때문일거야."

결국 K양은 선생님에게 큰 실망과 배신을 느끼게 되고 그 이후론 다른 선생님의 눈길만 보아도 두려워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저런 치료로도 효과를 볼 수 없었다는 K양에게 필자는 최면치료법을 권했다. 이어 최면치료에 들어갔다. 감정이 예민한 편인 K양은 쉽게 최면상태에 들어갔는데 필자는 선생님의 눈길과 동료 학생들의 눈길을 상상하라고 주문했다. 평소에는 떠올리기조차 겁이 났던 선생님의 눈길을 최면상태에서 접하게 하는 훈련을 한 것이다. 말하자면 최면을 통한 적응훈련을 한 셈인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처럼 최면은 불안 공포 우울 등의 정서조절에 이용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심신의 경계면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에 정신질환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비과학(非科學)으로 치부되던 종래의 개념을 탈피, 최근에는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먼지 최면상태란 어떤 상태인가 알아보자.

스스로 유도할 수 있다
 

최면을 거는 과정^우선 최면유도 희망자와 상담을…(위). 이어 눈을 감은 상태에서 최면세계로 들어간다(가운데). 팔을 만져주면서 그 팔이 '깨고 나면 저릴 것'이라고 암시하면, 실제로 최면이 풀린 후 저린 감을 느끼기도 한다(아래).


최면상태란 통상적인 의식 상태가 아닌 변화된 의식상태를 말한다. 사람이 잠자지 않고 깨어 있을 동안의 의식 상태는 일정하지 않다. 자기의 주변을 살피는 주변인식과 한 곳에 정신을 집중하는 촛점인식 사이를 끊임없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게 되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게 된다. 즉 주변의 일을 잊고 한가지 촛점에 집중을 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상태를 바로 최면상태라고 정의한다. 말하자면 최면은 정신집중인 것이다.

한 곳에 집중, 주변을 잊은 상태를 우리는 무아지경상태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태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일시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정상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최면은 정상적인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경험하는 상태인 것이다.

최면은 유도되는 방법에 따라서 크게 3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자연발생적인 최면이다. 즉 남이 특별히 유도해주지 않아도 저절로 최면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예컨대 완전히 놀이에 몰두해 있거나 열심히 공부할 때 또는 영화 TV 연극 등에 푹 빠져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태일 때는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알지 못한다. 예로 열심히 공부하는 중에 누가 방에 들어왔다 나가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또 영화에 너무 몰두해 있을 때에는 누가 부르거나 건드리더라도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험은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최면현상 중에는 백일몽이 있다. 예를 들면 바둑을 처음 배워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천지가 바둑판이다. 언제나 바둑 생각을 하다보면 누워있을 때 천정의 벽지가 바둑판으로 보이기도 한다. 반대로 눈을 감으면 검은 돌과 하얀 돌이 생생히 보이는 경우도 있다. 운전을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도 백일몽은 나타난다. 누워서 눈을 감고 운전생각을 하면 사거리 신호등 차선 등이 마치 꿈처럼 어른거리기도 하는 것이다.

또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남녀는 날씨가 추운 것쯤은 느껴지지도 않고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것도 백일몽의 하나.
백일몽은 또 플래시보(placebo, 僞藥)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예로 2차대전 당시 치열했던 안지오전투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은 보스턴에서 같은 시기에 같은 정도의 부상을 입은 병사들에 비해 진통제 사용이 적었다. 그 처절했던 전투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 통증을 덜 느꼈던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연 발생하는 최면상태가 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예컨대 기억상실 몽유병 이중인격 등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 때 의식한 한 부분이 최면상태에서 다른 한 부분과 분리되는데 분리된 의식들은 서로간에 전혀 모르기도 한다.

최면의 두번째 종류에 속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최면이라고 말하는 정식최면이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에 의하여 최면상태로 유도되는 것이다.
최면이라는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최면을 걸줄 아는 사람과 마주하게 되면 무슨 생각을 할까? 우선 최면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하는 기대와 두려움 등을 가지게 된다. 이어 최면술사가 유도를 해 주면 그 곳에 정신이 집중되면서 촛점이 아른거리고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즉 최면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세째는 자기최면이다. 이것은 일단 한번 정신 최면에 걸렸던 사람이 그 유도법을 스스로 배워서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최면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부러 의도적으로 들어가는 최면이다.

 


최면후 암시를 이용한 미인계
 

완전히 최면에 빠진 상태(위). 최면에서 깬 후 왼손과 오른 손에 느낌의 차이가 있으면 최면감수성이 높다는 증거(가운데). 최면 유도법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손떠올리기다(아래).


다른 사람에 의해서 최면에 유도되게 되면, 유도가 진행됨에 따라서 평상시에 경험하지 못하던 여러 가지 현상들이 일어날 수 있다.

예컨대 마음으로 상상을 하면 실제 몸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손이 풍선같이 가벼워진다고 상상을 하면 실제로 손이 가벼워지면서 일부러 올리려하지 않아도 저절로 올라 갈 수 있다. 또 왼 손과 오른 손에 각각 자석이 있어 하나는 N극, 하나는 S극이라고 마음속으로 상상을 하면 몸도 그 상상대로 움직인다. 실제로 자석이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면서 왼손과 오른손이 저절로 달라붙을 수 있는 것이다. 감각의 이상이 올 수도 있다. 왼손이 가벼워졌다고 상상을 하면 왼손에 저린 감각이 오는 것이다. 일부러 저린 느낌을 가져보라고 지시한 것도 아닌데 가볍다는 느낌과 함께 손이 저린 감각, 그리고 손이 손목에서 떨어져 나가서 내 손이 아닌 것 같은 분리감이 생길수 있다.

또한 한쪽 손에만 최면을 걸었을 경우에는 최면이 걸린 손과 걸리지 않은 손 사이에는 움직이는 감각에 차이가 생긴다. 그래서 한쪽 손은 움직이려해도 잘 움직여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최면상태에서 최면이 깨어난 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 날 것이라는 말들을 들으면 그대로 따라하기도 한다. 최면상태가 끝난 다음에 그 말들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최면에 깊게 걸리는 사람일수록 강박적(어쩔 수 업이 따라 한다)으로 최면 상태에서 들은 지시에 반응하기 쉽다.

예컨대 나중에 눈을 뜬 다음에 팔을 내려 놓으면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팔이 올라갈거라는 암시를 들었던 사람은 암시를 실행한다. 정말로 팔이 저절로 올라가는 것을 체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최면후 암시라고 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다소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예로 "오후 3시가 되면 다시 실험실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라는 최면후 암시에 걸린 학생이 취한 행동은 아찔하기까지 했다. 귀가중이던 그 학생은 고속도로 상에서 자기도 모르게 갑자기 유턴(U-turn)을 하여 3시까지 실험실에 도착하려 했던 것이다.

또 미인계에 걸린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어떤 일을 하는 경우도 최면후 암시에 해당한다. 남녀간의 열렬한 사랑은 자연적인 최면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식적으로는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자기도 모르게 그 여자가 시킨 일을 할 수도 있다.
깊은 최면상태에서는 환각(실제로 없는 감각을 있는 것처럼 경험하는 것), 환시(실제로 없는 물체가 보이는 것), 환청(실제로 없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생길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최면후 암시에 의해 고양이를 보게 할 수도 안보이게 할 수도 있다. 또 종소리를 들리게 또는 안들리게 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마치 장님같이 아무 것도 안보이게 할 수도 있다.

근육마비를 일으키기도

환각만이 아니라 근육의 마비도 일으킬 수가 있다. 최면후 암시에 의해서 멀쩡한 사람을 걸을수 없게 하거나 양손의 깍지를 풀수 없게 할 수도 있다. 반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근육을 풀어서 움직이게 할 수도 있다.

또 최면상태에서는 연령퇴행현상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 연령퇴행현상은 매우 독특한 현상으로 최면상태에서 예전 나이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5살로 돌아가면 5살자리의 말과 행동을 하고 3살로 돌아가면 3살자리의 말과 행동을 한다. 생후 1개월의 갓난 아기로 돌아가면 말도 못하고 손가락을 빨기도 한다.

그런데 이 현상은 정신과적 치료에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예컨대 5살때 감당하지 못할 큰 정신적인 상처를 받아서 병이 걸린 사람은 최면상태에서 5살로 돌아간다. 그래서 그 당시의 기억을 생생하게 재현, 병이 낫는 수도 있다. 꼭 병과는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더라도 연령퇴행현상은 과거를 밝히는데 도움을 준다. 평상시에는 아무리 해도 생각나지 않은 기억일지라도 최면에 의한 연령퇴행상태에서는 갑자기 떠오를 수 있다.

최면은 약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순히 마주 앉아서 말을 함으로써 유도(보통 최면을 건다고 함)한다. 대부분의 경우 정신집중, 팔이 떠오르는 감각에의 집중으로 최면은 간단히 유도될수 있는 것이다.

최면유도가 간단히 되지 않는 경우에는 점진적 이완(머리에서 발 끝까지 근육의 긴장을 서서히 푸는 것)을 통해 유도할 수 있다. 그래도 안되는 경우는 에릭소니언(최면을 개발한 의사의 이름)유도법을 써서 유도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최면유도가 된다. 그러나 10명에 1명정도는 최면 유도가 안되는 수가 있다. 대개 심한 정신집중장애가 있는 경우이다.

0등급에서 5등급까지
 

안구회전시 흰자가 많이 보이면 최면감수성이 높다(위). 손 올리기나 손 내리기로 최면 유도가 안되는 사람에게 손 움직임 유도법(moving hand induction)을 실시한다(가운데). 이 때 양손이 윙윙거리고 자석같은 느낌을 받으면 최면 감수성이 높다(아래).


물론 누구든지 깊은 최면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개 사람에 따라서 최면의 깊이는 정해져 있는 게 보통이다. 각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최면의 깊이는 선천적으로 그 사람이 타고난 자질과 성격 환경등에 의하여 조절된다. 간혹 훈련에 의해 최면의 깊이를 깊게 할 수도 있기는 하나 아주 적은 범위이내의 변화일 뿐이다. 최면감수성이 낮은 사람을 환각 마비 연령퇴행이 일어나는 깊은 최면상태에 빠지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단 예외는 있다. 원래 타고난 최면 감수성은 높은데 심한 정신집중 장애로 인하여 타고난 최면감수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다. 이 때 약물을 비롯한 적절한 치료로 그 장애가 호전되면 본래의 최면감수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최면감수성의 측정은 최면유도척도(HIP 한국판)로 할 수 있다. 최면감수성을 측정하려면 우선 최면에 걸리기를 원하는 사람이 최면유도에 익숙한 사람에 의해서 유도된다는 전제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최면유도에 익숙한 사람이 최면에 걸리기를 원하는 사람을 유도할 때에만 최면의 깊이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최면유도가 미숙하거나 최면에 걸리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는 감수성측정이 어렵다.
최면에 걸리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최면을 걸 수 조차 없다. 단 공포를 주거나 미인계를 쓸 때는 예외가 된다.

최면감수성 측정중에서 각자의 타고난 능력은 안구회전(Eye-Roll)으로 측정한다. 안구회전이란 눈을 뜬 상태로, 눈동자를 머리 꼭대기를 향해서 감아 올린 상태에서 계속 위를 보면서 눈꺼풀만 살짝 감는 순간의 눈의 모양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때 눈동자 아래의 흰자가 많이 보일수록 최면감수성이 높다.

대개의 경우 예술인, 히스테리성격을 가진 사람은 흰자가 많이 보인다. 즉 최면감수성이 높다. 반면 학자, 소심하고 내향적인 성격의 소지자는 흰자가 적게 보인다. 다시 말해 최면감수성이 낮다. 요컨대 최면감수성은 각자의 성격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최면유도척도의 경우 여러 측정기준이 있다. 편안감 저린감 분리감 부유감(둥둥뜨는 느낌), 최면후 암시에 의해 팔의 올라가는 정도, 양손의 움직임의 차이, 최면후 암시에 의하여 최면이 풀리는 정도, 최면후 암시에 대한 기억등을 측정, 개인의 최면 감수성을 판정한다. 이 과정은 약 10분 이내에 이루어지며 결과는 0에서 5까지 6등급으로 분류된다.

0은 최면이 전혀 안 걸리는 경우이고 5는 최면이 매우 깊이 걸려서 환각 마비를 일으키고 최면 유도를 받았다는 기억을 전혀 못하는 경우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최면감수성을 검사하면 그 분포는 정규분포곡선을 형성한다. 즉 2~3급 사이가 평균이 되고 양 끝으로 갈수록 점점 그 수가 줄게 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일반인의 약 10%는 최면이 전혀 안 걸리고 약 10%는 매우 깊게 걸린다. 그리고 나머지 80%는 중간 정도의 최면상태를 경험하는 것이다.

남녀 별로는 감수성의 차이가 없다. 일반적으로 여자가 최면에 잘 걸릴 거라는 인식과는 달리 실제로는 감수성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연령 별로는 약간 차이가 있다. 청소년기에 최면감수성이 제일 높고 나이가 들수록 감소, 노인층에서는 전반적으로 최면에 덜 걸린다.

문화적인 측면도 최면감수성에 영향을 준다. 예컨대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발리섬(인도네시아의 섬)사람들의 경우는 어린이 청년 중년 노년이 별 차이없이 최면감수성이 높다. 반면 문명국가일수록 이해를 계산하고, 논리를 따지고, 남을 잘 믿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결코 양보하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최면감수성이 떨어진다.

최면에 대한 오해들

최면(Hypnosis)은 수면(Sleep)과는 전혀 다르다. 수면은 말 그대로 잠자는 상태이고 최면은 정신이 집중된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최면과 수면은 정반대의 상태라고도 말할 수 있다.

최면에 걸리면 자기가 원하지 않는 말을 하게 되거나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할까봐 두려워 한다. 그런데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최면에 걸린 사람이 무대 위에서 오리 흉내를 내는 까닭은 무엇인가? 호텔의 무대등에서 하는 최면은 사실 '한잔 술'과 같은 효과이다. 즉 그가 평소에 할 수 없었던 억제된 욕구를 최면의 이름을 빌어 표출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스트레스 해소도 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게 되는 이중효과를 얻고자 하는 행동이다. 요컨대 본인이 원하지 않은 일은 최면상태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최면에 들어가기를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사실 최면을 두려워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즉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자기도 모르게 표출, 그것때문에 당황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때문에 최면을 피한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가 유도하는 최면에서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최면은 약물을 쓰지 않으므로 중독 의존 남용의 염려가 없는 안전한 치료이다. 그러나 최면을 거는 것 그 자체는 치료가 아니다. 최면을 걸면 편안해지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다. 그 자체로서 그 사람의 문제가 해결되거나 병이 낫지는 않는 것이다.

최면치료란 최면상태에서 정신치료를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의사가 아닌 사람이 최면치료를 하면 효과가 없다. 이는 최면을 걸 줄만 알았지 최면을 이용해서 병을 고칠 줄은 모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칼은 누구나 쓸 수 있으나 칼을 써서 병을 고치는 것은 외과의사만이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최면이 단순히 심리적인 현상만인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최근 최면은 단순히 심리적인 것만이 아니고 뇌속의 전기적인 변화를 수반하는 신경 생리학적인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유발전위(EP:Evoked Potential, 대뇌 피질의 전기적인 변화를 측정하는 기계)검사를 해보면 깊은 최면상태에서는 대뇌 피질의 전기적인 변화가 있는 것을 측정할 수 있다.

왕의 약손

최면이란 단어를 처음 쓰기 시작한 사람은 19세기 영국의 의사인 브레이드(Braid)였다. 그러나 최면현상을 이용하였던 기록은 고대 그리이스시대부터 있었다. 심지어는 이집트나 북미의 인디언들도 현대의 최면과 비슷한 방법들을 사용했던 기록이 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5세기부터 약 7백년간이나 일종의 최면치료가 시도되었다. 왕이 환자들을 모아 놓고 손을 얹고 만져줌으로써 병의 치료에 이용하였던 것이다. 특히 엘리자베스여왕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이는 환자들이, 왕이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왕이 자신을 만져줄 때 그 믿음이 현실로 변했던 것이다.

현대적인 의미의 최면이 연구된 것은 지금부터 약 40년전부터였다. 이때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과학적인 최면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현재 최면은 세계 각국에서 치료에 이용하고 있으며 이미 의학 심리학의 한 분야로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

최면으로 치료되는 병은 상당히 많다. 그중 가장 많이 치료하고 있는 질병은 불안신경증과 공포신경증(노이로제)이다. 최면을 걸어 불안이나 공포에 직접 대항하게 할 수도 있고, 그 원인을 찾아서 갈등을 해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신분열증이나 성격장애의 경우도 최면치료가 유효할 수 있다. 또 전환장애(히스테리아, 즉 신체검사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근육에 마비가 와서 말을 못하거나 걷지 못한다)에도 빠른 시간 안에 효과를 보기도 한다.

그리고 담배를 끊거나 술을 끊는등의 습관 조절에도 쓸 수 있으며 통증의 완화에도 유효하다. 특히 암에 의한 통증이 최면으로 인해 저리거나 따뜻한 감각으로 변환, 고통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소화성궤양 천식 고혈압에도 최면치료는 유용하다. 또 최면마취를 시행, 마취제를 쓰지 않고 수술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마취약에 과민하여 마취를 할 수 없었던 환자에게 최면마취를 시도, 성공적으로 수술을 끝나친 예가 있다.

최면은 마치 수술용 메스와 같다. 다시 말해 의사의 손에 의해 이뤄지면 최면은 질병을 고치는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지만 질병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 사용할 경우에는 질병치료에 효과가 없다.
최면은 이제 더 이상 주술도 마술도 아니다. 이미 의학 심리학의 한 분야로 뿌리깊게 자리잡았고, 많은 과학적 연구가 축적된 현실적인 학문인 것이다.

가벼운 최면유도법

대상자를 의자에 앉게 한 뒤 다음과 같이 말해주면 최면을 걸 수 있다.

편안하게 긴장을 풀고(팔을 팔받침에 놓아주고, 왼팔을 잡는다) 눈앞에서 자신의 마음대로 한점을 찾으세요. 그 점에다 촛점을 맞추고, 눈을 크게 뜨고 깜박거리지 말고 집중해서 바라 보십시오. 계속 바라보면서 지금은 제가 하는 말을 듣기만 하시고 아직 하지는 마십시오. 잠시후에 제가 하나 둘 셋 하게 될텐데, 하나하면 머리를 똑바로 둔 상태에서 눈동자만 끝까지 위로 감아 올리시고 계속 위를 쳐다 보면서 눈꺼풀만 살짝 감으세요. 둘하면 숨을 깊이 들이 마시고 잠깐 멈추었다가, 셋하면 숨을 내 쉬면서 눈의 긴장을 풀고 자신의 몸이 둥둥 뜬다고 상상하시면 됩니다.

자! 시작합니다.
하나, 눈동자를 끝까지 위로 감아 올리면서, 계속 위를 보는 상태에서 눈꺼풀만 살짝 감고
둘, 숨을 깊이 들이 마시고, 잠깐 멈추었다가
셋, 숨을 내쉬고, 눈의 긴장을 풀면서, 자신의 몸이 의자 아래로 무겁게 가라앉으면서 둥둥 뜬다고 상상하십시오.

계속 온몸이 의자 아래로 무겁게 가라 않으면서 위로 둥둥 뜬다고 상상하시는 동안에 저는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에 정신을 집중 하겠읍니다. 잠시 후에 제가 왼손 가운데 손가락에서부터 만져나가면 안절부절하는 움직임이 생기면서 왼손이 마치 풍선처럼 가벼워지면서 둥둥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그냥 뜨도록 내버려 두시기만 하면 됩니다(왼손 가운데 손가락에서 팔꿈치까지 왼 손 끝으로 누르는 듯이 만져 나간다). 왼손이 마치 풍선처럼 가벼워지면서 위로 둥둥 떠올라 간다고 상상하십시오(왼 팔목을 감아서 위로 15cm쯤 살짝 들어준다. 올라가는 속도에 따라서 1~2회 보강을 해준다).

(보강1) 왼손이 마치 풍선처럼 가벼워지면서 둥둥 떠오른다고 상상하십시오
(보강2) 마치 위에서 자석이 끌어 당기는 것처럼 어떤 저항 못할 힘이라도 있어서 위로 쭉 빨려 올라간다고 상상하십시오.
(팔이 끝까지 올라가면 편안하게 놓아준다).
(이렇게 최면유도가 끝나면 암시를 주는데 이 암시에 의해 '최면후 암시'현상이 나타난다.

실제로 잠시 후에 제가 눈을 뜨라고 한 뒤에도 이 손은 이상태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그후에 제가 당신의 팔을 잡아서 아래로 내려 놓으면 팔이, 마치 무슨 저항 못할 힘이라도 있는 것처럼 저절로 지금의 상태로 다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올라 가기 때문에 재미있다고도 느끼실 겁니다. 후에 제가 왼쪽 팔꿈치를 만지면 모든 감각이 정상으로 돌아갑니다. 나중에 혼자서 자기최면을 걸 때에도 하나 둘 셋 하면서 왼손이 풍선처럼 가벼워지면서 둥둥뜨는 감각에 집중하시면 곧바로 지금과 같이 편안한 최면상태에 들어가게 되고 자꾸 할수록 점점 더 쉬워지게 될 겁니다.

자! 눈을 살짝 뜨시고 왼손의 감각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이어 암시를 제대로 받아들였는지 검사한다).
편안하십니까? 저린 감각은 없읍니까?
왼손이 손목에서 떨어져 나간것 같은 감각은 없었읍니까?
(이때 편안감 저린감 분리감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최면감수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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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김용해 기자
  • 변영돈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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