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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투수를 해부하는 메스, 투구추적시스템


8월 26일 서울 잠실구장,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삼성이 3-2로 앞서던 9회 말 삼성의 마무리투수 오승환이 등판했다. 오승환은 그의 가장 큰 무기인 직구를 힘차게 뿌렸다. 결과는 중견수 플라이, 삼진, 삼진. 깔끔한 마무리로 최다연속경기세이브 타이기록인 15경기 연속세이브를 기록했으며, 자신의 올 시즌 37번째 세이브를 거뒀다.

구장에는 오승환의 공을 분석하는 장비가 있었다. 직구 초속은 시속 147.6km, 종속은 시속 134.1km였다. 분당 회전수는 2875.29회, 1초에 47.92회전을 했다. 손이 공을 놓은 릴리스포인트에서 포수 미트에 꽂힐 때까지의 낙차는 7.03cm였다. 오승환의 공은 다른 투수보다 초당 회전수가 6바퀴 가량 많았으며, 낙차도 크지 않았다. 오승환의 직구가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다른 선수들보다 적은 낙차 때문이다. ‘라이징패스트볼’이라 불리던 떠오르는 공은 사실 생각보다 떨어지는 것이 덜해 착시를 일으킨 결과다.
 
[메이저리그의 경기 중계 서비스 ‘게임데이’의 일부 영상. PTS를 이용해 투구의 궤적을 알려줘 실제 경기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투구의 모든 것, 3초 안에 분석

오승환의 공을 분석한 장비의 정체는 바로 KBO의 공식 투구추적시스템이다. 이는 KBO공식 통계업체 스포츠투아이가 미국의 IT회사 스포트비전이 2003년 개발한 투구추적시스템(PTS)을 한국에 도입한 장비다.

PTS는 1루, 3루, 외야 중앙에 설치된 3대의 카메라와 중앙추적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 먼저 3개의 카메라가 경기 중 모든 투구를 찍는다. PTS는 야구공이 아닌 물체를 걸러내기 위해 시속 64.3km(40마일)에서 시속 193.1km(120마일) 사이의 물체만을 추적한다. 카메라가 관중이 던진 팝콘이나 날아오는 새를 공으로 오인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3대의 카메라가 찍은 영상을 바탕으로 날아가는 공의 속도와 궤적을 3차원으로 분석한다. 그 뒤 중앙추적시스템이 영상을 분석해 투구에 관한 정보를 숫자로 뽑아내고, 3차원 그래픽 영상으로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이 2~3초면 충분하다. PTS는 영상을 분석해 공의 초속과 종속, 포수의 미트에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 상하좌우의 움직임, 분당 회전 수, 회전 방향, 공을 놓는 지점을 기록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 시스템을 2007년부터 시작했다. 30개 구단의 홈구장에 모두 설치돼 있다. 메이저리그 공식홈페이지(mlb.com)의 문자중계 서비스인 ‘게임데이’를 통해 볼 수 있어 누구나 2007년 이후 메이저리그 선수의 PTS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다. 하나의 장비가 야구장에는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훨씬 과학적으로 분석하게 된 것이다. 투수에 대한 PTS 데이터를 분석할 때 가장 보편적인 접근법은 투구 궤적을 살펴보는 것이다. 3차원 영상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공의 좌우와 상하 움직임을 볼 수 있어 투수가 던지는 공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공의 수직 궤적을 살펴볼 때 중요한 것은 공을 놓는 지점이다. PTS는 공의 순간 속도와 가속도, 그리고 진행 방향을 기록한다. 이를 토대로 투수가 공을 놓는 지점이 어딘지를 계산할 수 있다. 대개 좋은 투수는 던지는 구종과 상관없이 이 지점이 거의 일정하다. 공을 놓는 지점이 일정하다는 것은 매번 똑같은 폼으로 공을 던지며, 직구와 변화구를 던질 때 폼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을 놓는 지점의 편차를 보면 투구 폼의 특징과 얼마나 투구 폼이 안정적인지 파악할 수 있다.


[삼성 라이온즈 오승환 투수의 역동적 투구 모습. 분석 결과 그의 뛰어난 직구는 떠오르지도, 종속이 더 빠르지도 않았다. PTS는 야구의 많은 속설을 과학적으로 깨뜨렸다. / 스포츠투아이의 투구분석시스템. 현재 서울 잠실, 인천 문학, 광주 무등, 부산 사직 구장에 설치돼 있다. 앞으로 모든 구장에 설치할 계획이다.]

한국프로야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두산 베어스의 에이스투수 더스틴 니퍼트는 지난해까지 3년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다. 지난 3년간의 기록을 보면 니퍼트 선수는 직구와 슬라이더, 그리고 체인지업의 공을 놓는 지점이 조금 다르다. 직구와 슬라이더는 공을 놓는 지점이 좌우 7cm, 상하 7~10cm 정도의 차이가 있다. 이는 니퍼트 선수의 독특한 투구 습관에 따라 팔의 각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타자가 니퍼트 선수의 구종을 읽는 단서가 된다. 하지만 니퍼트 선수는 한국에선 이런 습관을 없앴거나, 공의 위력으로 이런 약점을 상쇄했기에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니퍼트 선수의 투구 습관이 남아있다면 구종을 파악해 공략할 수 있다.



종속이 빠른 투수는 없다

PTS를 통해 알 수 있는 또 다른 정보는 바로 ‘투구 분포도’다. 투구마다 홈 플레이트에서 공의 위치를 파악해 투구의 분포 비율을 알려준다. 국내에서도 방송사와 구단에 영상과 스카우팅 리포트 형식으로 이런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에이스투수 로이 할러데이의 2010년 투구 분포도를 보면 좌우 타자를 막론하고 스트라이크 존 아래쪽과 존의 구석구석으로 공을 던진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메이저리그를 제패할 수 있었던 날카로운 제구력을 확인할 수 있다.

투구 분포도를 이용해서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 판정 성향도 알 수 있다. 2010년에서 2011년까지 메이저리그 정규리그 자료를 보면 심판이 스트라이크라고 판정한 공의 분포는 원래 규정된 스트라이크 존과 달랐다. 그리고 몸 쪽 공은 스트라이크 판정이 박한 대신 바깥쪽 공에 대한 판정이 비교적 후했다. 이런 심판의 성향을 빨리 파악한 영리한 투수들은 바깥쪽 공의 비율을 늘리기도 한다. 실제 스트라이크 존의 정중앙을 기준으로 초구가 바깥쪽일 확률이 안쪽일 경우보다 약 3배 이상 많다. 이런 정보를 이용하면 타격에 도움이 된다. 물론 알고도 치지 못하는 공을 던지면 어쩔 수 없지만, 대부분의 투수가 그런 공을 던지지 못한다. 초구는 어디에 던지는지, 어떤 구종을 던지는지 파악한다면, 타격에 앞서 투구를 예상할 수 있다. 반대로 투수들은 자신의 패턴을 역 이용해 타자를 공략할 수 있다. 타자가 직구를 노린다면 변화구를 던지는 식이다.

PTS는 초속과 종속의 관계나 공의 회전수를 알려줘 통계로는 알 수 없던 자료를 얻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야구계에 있었던 초속과 종속에 대한 논란은 거의 사라졌다. 예전에는 오승환의 직구를 두고 “초·종속의 차이가 별로 없어 볼 끝이 좋다”고 말하는 해설가들이 많았다. 실제 측정 결과 오승환의 초·종속 차이는 평균적인 투수보다 더 컸다. 오승환 직구의 초·종속 차이는 시속 13.49㎞였고, 그를 제외한 국내 투수의 전체 평균은 시속 12.55㎞였다.

그런데 이런 결과는 오승환만의 특징이 아니다. 공이 빠른 투수는 누구나 초·종속의 차이가 컸다. 반대로 공이 느린 투수는 이 편차가 크지 않았다. 공이 공기 속에서 비행을 할 때 받는 저항력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 커진다. 빠른 공일수록 같은 거리를 날아가면 속도가 더 많이 줄어드는 것이 물리적으로 당연했고, PTS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투수의 몸 상태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됐다. 예전엔 투수가 “오늘 내가 잘 던지지 못한 것은 컨디션이 나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 예전엔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선수의 판단이 가장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PTS로 투수의 상태가 영상과 수치로 나타나면서 과학적 근거로 코칭스태프와 선수가 의견을 나눌 여지가 커졌다. 또 훈련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됐다. 기존의 녹화장면을 이용한 투구 분석보다 더욱 과학적이고 세분화된 자료로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에서 말한 공을 놓는 지점을 파악해 우리 팀 투수의 투구 폼의 변화와 갑작스레 생긴 투구 습관을 교정하는 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반대로 상대팀 투수의 투구 습관을 파악해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 경기에서 투수의 이상을 판단해 즉시 투수를 교체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타격, 수비의 움직임도 분석

PTS는 야구 전력 분석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했다는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시스템이어서 발전할 여지가 크다. 최근 스포트비전 사는 타구를 분석하는 타격 F/X(HFX)를 개발했다. HFX는 이미 설치된 PTS시스템을 타구에 초점을 두고 분석하는 시스템이다. PTS시스템이 투수가 공을 던진 직후부터 홈 플레이트까지의 거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HFX는 PTS가 끝나는 시점 즉 홈 플레이트(타자가 공을 치는 순간)부터 타구의 결과가 나타나는 순간(홈런, 안타, 플라이 아웃 등)까지를 다룬다. 스포츠비전 사에서는 이 시스템을 더 확장해 경기 중 수비수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관측해서 실제 수비수의 수비범위를 측정하려고 한다

야구가 과학을 만나면서 야구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이런 자료를 더 많이 접하고 이를 야구팬이 폭넓게 즐길 수 있다면 국내야구 문화도 양적·질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현장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예전처럼 단순히 ‘밸런스’가 좋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 ‘공을 놓는 지점’의 변화, ‘공의 회전수의 감소’, ‘투구 분포의 변화’와 같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분석해 대화할 것이다. 과학은 야구의 언어를 바꾸고, 결국 야구의 발전을 이끌어 낼 것이다. 이제 과학을 이해하고 잘 이용하는 프로야구 감독이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는 날이 곧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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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투수를 해부하는 메스, 투구추적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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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송민구 야구 컬럼니스트 | 자료제공 스포츠투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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