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서울에서 홍수는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1968년 7월 17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다음과 같이 서울 청계천에서 일어난 홍수 상황을 전한다.
“17일 새벽 2시 40분 성동구 흥인동 청계천변 주민 150가구 250여 명이 청계천이 넘쳐 침수되어 광희국민학교로 긴급 대피했다.”
이 기사에 나온 홍수의 양상은 ‘100년 빈도의 큰 비’가 내렸다며 서울 곳곳이 잠긴 뒤인 올해 7월 28일자 동아일보의 실린 기사와는 조금 다르다. 이 날 동아일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강남구, 서초구 등 강남 전 지역이 물난리를 겪었다. 강남을 가로지르는 테헤란로, 남부순환로뿐 아니라 서초대로, 강남대로 등 주요 도로가 모두 물에 잠겨 교통이 마비됐다.”
1968년 도시 홍수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개천이 넘쳐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다면, 지금은 도로가 물에 잠기는 ‘내수범람(하수구범람)’으로 피해가 발생했다.
홍수의 양상이 달라진 이유는 40여 년 동안 서울이 급격히 도시화됐기 때문이다. 많은 건물을 짓고, 도로나 공원을 만들면서 땅을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덮었다. 이 때문에 1968년 7.8%에 불과했던 서울의 불투수율(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비율)이 47.1%로 증가했다. 땅으로 흡수돼 오랜 시간에 걸쳐 하천으로 흘러나가야 하는 빗물이 빠른 시간 동안 하수관거로 몰리자 하수처리시설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벗어나 물에 잠기는 내수범람이 발생했다. 심재현 소방방재청 토목연구관의 2006년 조사에 따르면 전국 상습수해지구 719곳 중 73.4%가 내수 범람으로 인한 피해였다. 하천이 넘치는 것보다 하수처리 시스템의 문제로 피해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빗물, 모으면 넘친다
내수범람은 왜 발생할까.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중앙집중식 하수처리시설이 원인”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도시 대부분은 빗물이 내리자마자 곧바로 하수도를 통해 하천으로 내보내는 데 집중한다. 따라서 하수도, 집수정, 맨홀 등 모든 하수시설이 빗물을 담아두지 않고 흘려보내는 역할만 한다. 심지어 빗물이 자연스럽게 흡수되고, 증발하는 녹지에서조차 빗물을 모아 하수도로 보낸다. 이런 방식은 설계상 허용된 수량을 빠르고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기상이변으로 집중호우가 늘어나고 도시 개발로 불투수율이 높아지면서 과거에 예상했던 것보다 하수처리용량이 더 필요해졌다.
그런데 하수처리용량을 키우는 일이 만만치 않다. 지난해 가을 광화문 홍수가 난 뒤 서울시는 중앙집중식 처리의 연장선에서 ‘대심도 빗물배수터널’을 짓기로 발표했다. 도심 깊은 곳에 대형 빗물저장 공간을 만들어 홍수대응 시간을 10~15분 정도 벌기로 한 것이다. 이 계획은 많은 예산이 들어 현재 사업진행이 원활하지 않다. 광화문 한 곳에만 무려 320억 원이 들어 도심 침수가 발생하는 곳곳에 이 시설을 지으려면 엄청난 예산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앙집중식 하수처리방식은 도시화로 인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도시화에 따른 불투수면(빗물이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지역)이 늘어나는 것은 내수범람의 위험만을 늘린 것은 아니다. 빗물이 땅에 흡수되는 양이 줄고 지표면으로 많이 흐르면 장기적으로 지하수의 수위가 하천의 지면보다 낮아지면서 용천수가 사라져 하천이 마른다. 도시 곳곳의 천이 말라 ‘건천’이 된 이유는 바로 도시의 하수처리 방식에 있다. 건천은 수량이 적어 수질을 관리하기도 어렵다. 또 그간의 하수처리방식은 도시의 열섬 현상을 일으킨다.
빗물이 빠르게 흘러 내려가면 증발될 물도 없어 도시의 기온이 높아진다. 물이 증발하면 열을 뺏아가면서 기온이 내려가는데, 이런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빗물을 저장하기 위해 하천을 정리하고, 녹지를 만들면 열섬현상이 줄어든다. 청계천을 복원한 뒤 열섬강도(청계지역 평균온도/서울 평균온도)가 8.9% 감소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연스러운 물 순환을 복원해 지하수위 같은 환경을 자연상태로 유지해서 연중 안정적으로 빗물을 확보해야 한다. 홍수 피해까지 방지할 수 있는 체계적인 빗물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
홍수 방지는 기본, 도시 환경도 재생
도시홍수와 부자연스러운 물순환을 해결하기 위해선 빗물이 토양으로 흡수되고 대기 중으로 증발하는 양을 도시화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한무영 교수는 “조선시대 경복궁 경회루에 호수를 만든 것은 빗물을 잡아두어 생태계의 평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생각에서 비가 내린 지역에 빗물을 잠시 잡아두는 ‘분산식 빗물관리’가 주목받고 있다. 분산식 빗물관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물을 잡아두고, 토양에 흡수하거나 발산한다.
먼저 건물 밑 지하 공간에 작은 크기의 빗물 저류조를 설치하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대규모 저류 시설에 비해 홍수예방 효과가 크고, 빗물을 다시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경기 수원시와 소방방재청은 수원의 한 마을에서 빗물 저류 시설의 크기에 따른 홍수 조절 효과를 실험했다. 3000m3의 커다란 저류조 하나를 만들자 기존 하수처리 시설보다 첨두유출량(물이 가장 많이 흘러갈 때의 양)이 15.5% 줄었다. 500m3의 저류조 6개를 나눠 설치하자 첨두유출량이 28% 줄었다. 빗물저류조의 총 용량이 같더라도 빗물저류조를 나눠 개수를 늘리면 빠져나가는 물을 더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빗물이 떨어지는 곳에서 바로 모으기 때문에 물이 깨끗해 다시 사용하기도 쉽다. 서울 광진구의 대규모 주상복합단지 ‘스타시티’에도 소규모 빗물저류조를 설치했다. 단지 내에 내린 빗물을 저장해 주위의 하수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저장한 빗물은 조경용수나 화장실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빗물을 저장하기 위해 단지 건물 4동 중 한 동의 지하 3층에 1000t 용량의 저장탱크 세 개로 이뤄진 3000t 규모의 빗물저장탱크를 설치했다. 첫 번째 저장조는 지붕에서 모은 빗물을 저장한다. 두 번째 저장조에는 단지 내 주차장과 도로에서 모은 빗물을 저장해 침수를 예방하고 조경용수로 사용한다. 특히 조경용수로 사용한 빗물은 포장되지 않은 땅으로 흡수돼 다시 저장조로 들어와 순환되기 때문에 빗물 이용률이 높다. 세 번째 저장조는 단수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 건물 내 물 공급을 위해 물을 저장한다.
저장조의 수질 관리를 위해 일정시간이 지나면 저장된 물의 절반을 다른 빗물 저장조로 옮긴 뒤 다시 깨끗한 물로 채우고 있다. 지금까지 스타시티 단지 전체 면적에 떨어진 빗물 중 67%를 용수로 활용했다.
빗물이 땅으로 흡수되도록 돕는 시설도 있다. 이승복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독일은 대부분의 도시에서 지하수를 상수원으로 사용하다보니 가장 적극적으로 빗물을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은 지하수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기술을 여러 주택 단지에 적용한다.
독일 베를린 북동쪽 외곽에 있는 카로우 노르트 주거 단지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빗물이 최대한 땅으로 흡수되도록 투수성 포장, 단지를 녹지로 만들었다. 빗물을 모으기 위해 건물 지붕에 홈통과 소규모 배수로를 만들어 빗물이 흐르게 했다. 이 빗물을 단지 내부의 투수구덩이로 흘려보내 빗물 속의 이물질을 여과했다. 투수구덩이가 넘치면 빗물 유도로로 흘러 단지 저지대에 있는 투수 연못으로 모인다. 이런 시스템을 구축해 빗물이 최대한 지하로 흐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도시화가 이미 끝난 기존 도시에서는 이런 단지를 만들기 힘들다. 하지만 새롭게 만드는 주택단지에서는 시도해볼 만하다.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이번 홍수로 서울지역에서 580곳이 침수됐으며 침수원인도 580가지가 넘는다”고 말했다. 서울 안에서도 지역마다 침수 이유가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에 맞는 홍수 대책을 선택해야 한다. 유철상 고려대 건축사회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비가 내리는 양상이나, 도시의 개발 정도, 하천 환경을 고려할 때 빗물 이용, 흡수, 저류, 배수 등을 조합해 관리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중앙집중식 처리 방식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분산식 처리 방식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