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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도시나 마을치고 산 한둘 접하지 않은 곳이 없다. 사실상 우리는 산 밑 아니면 산 옆에 살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산악 국가인 일본만 해도 산을 보려면 도시 외곽으로 멀리 나가야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런데 이번 폭우에 그 ‘마을 뒷산’이 무너졌다. 내가 사는 곳은 안전할까. 또 다른 종류의 산지 재해 우려는 없는 걸까.

이번에 산사태가 크게 이슈가 된 것은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면산이라는 도심에서 산사태가 나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통상적인 산사태로 보고 잊었을 가능성이 높다. 산사태는 그만큼 흔한 재해기 때문이다. 산림청이 지난 2010년 12월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동안 일어난 산사태는 모두 7126ha(헥타르. 가로세로 100m 넓이 단위. 산사태는 하나의 산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횟수가 아니라 면적을 기준으로 센다). 매년 평균 713ha의 산지에서 크고 작은 산사태가 일어났다. 이번에 우면산에서 일어난 산사태는 15곳 이상에서 0.05~1.8ha 일어났다. 모두 더하면 약 5.7ha 규모다. 그러니까 전국적으로 이런 산사태가 한 해 평균 120개는 일어난다는 뜻이다. 올해에도 경남 밀양과 경기 포천 등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마을을 덮친 사례가 있다.

산을 깎아 일어난 산사태 예보 못해

그렇다면 어디에서 언제 산사태가 발생할지 예측할 방법은 없을까. 사고 직후 언론에서 이야기한 것과 달리 산사태 정보 자체는 쉽게 구할 수 있다. 산림청이 운영하는 ‘산사태위험지관리시스템(sansatai.forest.go.kr)’은 국립산림과학원의 수십 년 현지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한 산사태 위험도를 지도 위에 제공하고 있다. 발생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지역부터 없는 지역까지를 4단계로 구분한다. 원하는 지역의 위험도를 검색할 수도 있고 지도를 보면서 직접 확인할 수도 있다. 산사태 위험도를 전국 지도에 한눈에 표시한 ‘산사태위험지관리도’ 역시 산림공간정보서비스(fgis.forest.go.kr)를 통해 공개돼 있다.

산사태 예보 시스템도 있다. 산사태는 대부분 비가 많이 올 때 발생한다(36쪽 그림 참조). 따라서 기상청의 강우 자료를 바탕으로 산사태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해당 지역 지자체장이 산사태 주의보와 경보를 내릴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런데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우선 인공적인 이유로 발생하는 산사태, 즉 ‘절개지 붕괴’에 대한 정보가 없다. 멀쩡하던 산이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만 반영돼 있는 것이다. 유철상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현재의 산사태는 사람에 의한 간섭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산사태’의 정의와 전문가, 산사태 정보시스템이 내리는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흔히 사람들은 산이 무너지고 흙이나 바위, 모래가 흘러내리는 재해라면 모두 산사태라고 부른다. 때문에 도로를 깎은 절개지가 무너지거나 도로
사면이 깎인 경우도 산사태로 인식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발생 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둘을 분리한다. 윤호중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방재연구과 박사는 “절개지 붕괴는 공사가 전체 원인의 70%를 차지한다”며 “산사태와는 별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인터넷으로 제공되고 있는 산사태 위험지와 예보 역시 좁은 의미의 산사태를 예측한 지도다. 사실상 ‘사람이 건드리지 않은 멀쩡한 산으로, 비가 많이 오면 저절로 무너질 우려가 있는 곳’이라는 한정된 정보를 표시한 것이다. 물론 이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 애초에 무너지기 쉬운 지형을 알 수 있다면 집이나 건물을 지을 때 위험한 지역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증도 많이 이뤄졌다. 이제까지 일어난 실제 산사태
의 88%가 1등급과 2등급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우면산과 춘천 역시 1급이다. 하지만 도로를 내거나 건물을 짓기 위해 산을 깎은 곳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절개지 붕괴 위험을 뺀 산사태 위험지 정보는 위험을 온전히 반영하기엔 부족하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산사태 이후의 피해지역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산사태 위험지는 말 그대로 산사태라는 ‘사건’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산사태 피해는 발생 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무너진 흙이 흘러내리는 곳에서 더 큰 피해가 발생한다. 대개 마을이나 도시가 사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이곳까지 흙과 모래, 비가 뒤섞인 ‘토석류’가 흘러내릴 경우 피해가 크다. 이번 우면산 산사태도 토석류가 아래 아파트 단지와 전원주택지를 덮치면서 피해가 컸다. 경남 밀양 산사태도 마을을 덮쳤다.






‘갈팡질팡’ 모형으로 산사태 피해 예측

산 아래 마을이나 도시의 피해를 예측하려면 산사태로 발생한 토석류가 어느 경로로 얼마만큼 흘러내릴지를 예측해야 한다. 그런데 토석류의 움직임을 예측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흙이나 모래는 고체면서 유체처럼 흐르고 일정한 점성도 지니는 물질이다. 고체와 액체의 특징을 모두 지닌 물질인 셈이다. 여기에 다시 빗물까지 섞여 든 토석류의 움직임을 물리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할 방법은 아직까지 없다. 윤호중 박사는 “수치를 활용한 물리 모델이나 경험 모델, 수치해석 모델 등 여러 가지 방법을 고려해 봤지만, 계산이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전국을 대상으로 계산할 경우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조사해야 해 실용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 박사는 같은 과 이창우 연구사와 함께 산지의 고도 차이에 따라 토석류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새로운 모형을 개발했다. ‘랜덤워크(Random Walk)모형’이라는 이름의 이 모형은 산지를 위에서 보고 바둑판 모양의 격자를 그린 뒤 각각의 격자에서 다음 격자로 이동할 때 높이 차이가 가장 큰 쪽의 격자(즉 경사가 가장 급한 방향)를 선택한다고 단순하게 가정한다(38쪽 위 그림 참조). 기울기가 급한 방향으로 토석류가 흘러간다는 발상으로 얼핏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경사 차이가 크지 않을 경우에는 어디로 흐를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윤 박사팀은 여기에 수학의 난수 개념을 도입해 무작위적으로 선택한 격자로 이동한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러니까 기울기가 충분히 크면 그 방향으로 흘러가고, 별로 기울기 차이가 없는 지역에서는 ‘어디로 튈지’ 우연에 맡긴다는 것이다. 윤 박사는 “그래서 갈팡질팡 모형이라고 부른다”며 웃었다.

랜덤워크모형은 이런 논리에 따라 만든 기본 공식에 복잡한 지역별 변수를 넣어서 세세하게 보정한 모형이다. 토사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관성력을 얼마로 보정할 것인지, 아파트나 펜션 등 토석류 흐름을 방해하는 요인이 있는지도 고려한다. 연구팀은 이 모형을 검증하기 위해 2007년 도입한 산림항공관리본부 헬리콥터의 촬영장치와 항공 라이다(LiDAR)로 실제 토석류 흐름 정보를 수집해 비교했다. 그 결과의 경우 이번에 산사태가 난 춘천과 우면산은 각각 63%와 42% 일치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어떤 곳에 집을 지어야 산사태나 토석류 피해로부터 안전할지 알아보자.우선 산사태위험지관리시스템을 통해 산사태 발생 1급과 2급 위험지로 판정 받은 곳은 위험하다. 다음으로 그 지역에서 계곡을 따라 아래에 위치한 지역이다. 경사지가 다른 곳보다 급하기 때문에 토석류가 흐를 가능성이 높다. 경사면보다 한참 아래라 하더라도 앞에 토석류를 막을 지형이나 구조물이 없다면 위험이 증가한다. 춘천 사고가 대표적인 예다. 이런 경우 사방댐을 건설하면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절개지 근처나 위는 사면이 불안정해 절개지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산 위에 조성한 인공호수는 사면의 수분량을 늘려 산사태가 나기 좋은 상태로 만든다. 식생 역시 변수다. 유철상 교수는 “나무나 풀 등 식생이 발달하면 작은 산사태는 막지만 큰 산사태는 늘어난다”고 말했다. 사면 가운데에는 경사가 완만한 곳과 오목한 형태를 띤 곳이 경사가 급하거나 볼록한 곳보다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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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폭우 도시를 삼키다
PART 1. 산사태
PART 2. 도시 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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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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