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름다움은 당신이 용기를 가지고 다가서기를 기다린다.
- 알랭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됐다. 그렇다고 여름 내내 바캉스를 떠날 수는 없는 일. 집안에서 시원한 수박이나 팥빙수를 먹으면서 만화책이나 DVD를 보는 일도 더위를 잊는 지혜다. 그렇다면 올해는 수학책을 보면서 여름을 나는 건 어떨까. 날도 더운데 머리 아픈 수학책을 읽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물론 딱딱한 수학 교과서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소설보다 재미있게 수학이야기를 들려주는 책들도 많다. ‘과학동아’에서는 수학교수와 과학고 교사, 과학기자들에게 한여름에 읽을 만한 수학책을 추천받아 이 가운데 10권을 선정했다. 수학에 ‘몰입’할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할 수학책 베스트 10을 만나보자.
★ 수학비타민
박경미 지음 | 랜덤하우스 | 9000원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3대 영양소다. 그렇다고 이 3가지만 먹는다면 삶은 활력을 잃는다. 이 영양소를 제대로 흡수하기 위해서는 ‘비타민’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수학교과서에는 수많은 정의와 증명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지만 교과서만 읽다보면 ‘활력’을 잃는다. 이럴 때 필요한 책이 바로 ‘수학비타민’.
홍익대 수학교육과 박경미 교수가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을 다듬어 묶은 이 책은 추천수가 가장 많았다. 수학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들의 의미를 명쾌하게 깨닫게 해주는 글솜씨가 돋보인다. 저자의 위트를 보여주는 예 가운데 하나가 초코파이에서 초코 함량을 구하는 문제.
‘초코 함량이야 제조회사마다 다른 거지 그걸 어떻게 구하나?’ 물론 이 문제는 넌센스 퀴즈이지만 해답이 그럴 듯하다. 초코 함량(%)을 구하는 식은 (초코÷초코파이)x100이다. 그런데 ‘초코파이’를 ‘초코x파이’로 보면 분자 분모의 초코가 약분돼 식은 ‘100÷파이’가 된다. 파이는 3.14이므로 결국 초코의 함량은 32%가 된다(물론 먹는 파이(pie)와 원주율 파이(π, pi)는 다르다!).
박 교수는 책을 6개 장으로 나눴다. 생활 속의 수, 자연 속의 수학, 역사 속의 수학, 예술 속의 수학, 생활 속의 수학, 생활 속의 통계와 확률. 골치 아픈 수학시간 때마다 늘 ‘쓸 데 없는 수학은 왜 배우나?’하며 고개를 젓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답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실용적인 응용 때문이 아니라도 수학을 연구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보상이 된다. 다른 어떤 학문이나 예술도 줄 수 없는 수학만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four fours’라는 게임에서도 그 일면을 볼 수 있다. 4를 4개 쓰는 수학연산으로 0부터 10까지 만들 수 있다. 0=44-44, 1=44/44, 2=4/4+4/4, 3=(4+4+4)/4, 4=4(4-4)+4, 5=(4x4+4)/4. 신기한가? 나머지 숫자들도 한번 만들어보자(답은 여럿인데 한 가지를 171쪽 오른쪽 하단에 소개했다).
★ 아무도 풀지 못한 문제
박영훈 지음 | 김학수 그림 | 주니어김영사 | 9800원
‘아무도 풀지 못한 문제’라는 책 제목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역사상 유명한 수학자 11명의 삶을 재미있게 소개하면서 수학에 흥미를 느끼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수학교사, 7차 교육과정 중고등학교 교과서 집필자, 사단법인 나온교육의 대표 등 수학교육과 관련해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저자는 중고생들이 수학을 친근하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오로지 논리에만 의존하는 딱딱한 수학을 만든 사람들이 때로는 동네 아저씨처럼 푸근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하찮은 말다툼 때문에 결투로 목숨을 잃을 정도로 ‘비합리’적인 삶을 살기도 했다는 걸 알게 된다.
책에는 글보다 수를 먼저 배웠다는 오일러를 비롯해 천재적인 수학자도 나오지만 다른 사람들의 업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성경만큼이나 영향력이 큰 ‘기하학 원본’을 쓴 유클리드의 인내와 2차세계대전 패전으로 몰락한 일본에서 배를 주려가며 수학 공부에 정진해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한 헤이스케의 집념도 소개돼 있다. 책 말미에 소개한 영국 수학자 고드프리 하디의 말은 독자들을 아름다운 수학의 세계에 뛰어들도록 할 것이다.
“수학자들은 화가나 시인들처럼 아름다운 심성을 가져야만 한다. 수학적 아이디어는 색채나 시어처럼 서로 조화롭게 어울려야 한다. 수학에서 아름다움은 필수적 요소다. 보기 흉한 수학이 설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 교실 밖 수학여행
김선화·여태경 지음 | 사계절 | 9800원
‘교실밖’ 시리즈의 수학 분야로 현직 중·고교 교사 두 사람이 함께 집필했다. 1994년 초판이 나온 이래 꾸준한 사랑을 받았고 지난해 내용을 다듬고 삽화를 대폭 보완한 2판이 나왔다. 고교수학교과서와 비슷하게 구성된 이 책은 학생들이 교과서를 보면서 궁금했을만한 내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한다. 무한의 개념을 명확히 정의했지만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친 칸토어 등 현대 수학에 기여한 수학자들의 뒷모습도 보여준다.
“청소년 대부분이 기호와 공식에 질려 수학의 세계에 푹 빠질 엄두를 못 내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한 저자들은 “이 책이 선사하는 수학의 에피소드로 청소년들이 수학의 세계에 부담없이 다가와 호기심과 재미를 느끼길 바란다”며 수학을 즐기기를 당부했다.
책의 구성은 교과서와 비슷하다. 수와 집합 이야기, 대수 이야기, 함수 이야기, 기하 이야기, 최신 수학과 그 밖의 이야기 이렇게 다섯 장으로 이뤄졌다. 굳이 ‘이야기’를 붙인 것도 기본 개념과 풀이과정만 담은 교과서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일까. 묻고 대답하는 글의 전개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핵심 개념을 파악할 수 있다. 수식이나 도형이 올리브 그린색 글씨로 써 있어 시각적으로도 휠씬 명쾌하다.
★ 리만 가설 : 베른하르트 리만과 소수의 비밀
존 더비셔 지음 | 박병철 옮김 | 승산 | 2만 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4색 문제, 푸앵카레 추측. 유명한 난제들이면서 결국은 해결된 문제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제로 남아 있는 문제가 있으니 바로 ‘리만 가설’이다. 리만 가설은 독일의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이 주어진 숫자보다 작은 소수의 갯수를 구하는 규칙을 연구하다가 생각해낸 추측이다. 즉 ‘제타 함수의 자명하지 않은 모든 근들은 실수부가 1/2이다’로 표현된다.'
수학자인 저자는 일반인은 도저히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리만 가설을 역사적인 배경을 소개하며 차근히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서 수학 한 두 과목을 들은 사람들’을 염두하고 글을 썼다고 밝혔듯이 읽어나가기가 만만치 않다. 소수 배열의 패턴을 설명하는 리만 가설이 풀릴 경우 소수 곱으로 암호를 만드는 현재의 보안시스템이 붕괴될 수도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고 한다. 여전히 많은 수학자가 매달리고 있다는 리만 가설의 실체를 살펴보자.
★ 괴델, 에셔, 바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지음 | 박여성 옮김 | 까치글방 | 상하 각각 2만 원
1980년 퓰리처상 논픽션부문 수상작. 미국의 물리학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를 일약 유명하게 만든 작품으로 천재 수학자괴델, 벨기에의 예술가 에셔, 음악의 아버지 바흐를 ‘수학적 논리학’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어 이야기를 펼쳐낸 기발한 작품이다. 저자는 바흐의 음악, 에셔의 작품, 괴델의 수학 사이의 접점을 탐구하며 인간의 사고와 창조성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보여준다. 복잡한 수학개념을 바흐의 음악과 에셔의 교묘한 역설의 그림을 빗대 설명하면서 수학에 낯선 사람들도 개념을 이해할 수 있게 안내한다. 컴퓨터 과학자로 인공지능 연구자이기도 한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의 사고를 모방하는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미래도 전망하고 있다.
★ 수학 걸
유키 히로시 지음 | 김정환 옮김 | 동아일보사 | 1만 2000원
“수학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가슴 벅찬 게임”이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언어 교재와 수학책을 다수 집필한 유명 작가다. 수학에 빠진 고등학교 남학생과 여학생 두 명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형식을 빌었다. 이 책은 ‘실마리를 찾을 수 없지만 왠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아련한 감정’이라는 수학과 연애감정의 공통점을 잘 보여준다.
주인공 가운데 두 사람이 만나는 첫 장면부터 피보나치수열을 비롯해 도저히 그 다음 수를 예측할 수 없는 ‘6 2 8 2 10 18’ 같은 수열에 이르기까지 읽기에 만만찮은 책이다. 그러나 겁낼 필요는 없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스토리에서 답이 나오기 때문. 주인공들이 펼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수학 마니아가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 박경미의 수학콘서트
박경미 지음 | 동아시아 | 1만 2000원
과학 분야에 ‘정재승의 과학콘서트’가 있다면 수학 분야에는 ‘박경미의 수학콘서트’가 있다! ‘수학비타민’으로 일반인을 위한 수학 저술가로 이름을 알린 저자는 수학을 음악에 비유해 이 책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각 장의 제목에는 그 내용에 어울리는 음악의 장르가 함께 있다. 예를 들어 ‘수학은 조화롭다’며 파이(π), 로그, 미분을 소개한 7장은 심포니(symphony)로 표현된다.
중학교 때까지 열심히 피아노를 쳤다는 저자는 실제로 음악에서 수학적 요소를 많이 발견한다고. 특히 바흐의 음악은 구성의 정교함이 수학 그 자체라고 감탄한다. 또 모차르트의 변주곡에서는 하나의 개념이나 원리가 다양한 형태의 문제를 통해 변신하는 모습이 떠오른다고. 수학공부를 하다 지쳤을 때는 음악을 들으며 ‘수학 콘서트’ 내용을 음미해보면 어떨까.
★ 수학귀신
한스 엔젠스베르거 지음 | 로트라우트 수잔네 베르너 그림 | 고영아 옮김 | 비룡소 | 1만 4000원
전후 독일의 유명 작가인 저자가 동화의 형식을 빌어 수학의 복잡한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한 놀라운 책이다. 수학을 싫어하는 소년 로베르트가 밤마다 꿈에서 수학귀신을 만나면서 수학 원리를 깨우치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렸다. 이들의 대화를 읽다보면 인수분해, 거듭제곱, 무리수, 제곱근 등 수학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로베르트와 동일시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가 열 살 된 딸을 위해 썼다고 하지만 ‘!’(팩토리얼)까지 소개돼 있을 정도로 내용이 만만치 않다. 따라서 수학교과서를 통해 어느 정도 개념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 책을 본다면 훨씬 재미있고 깊이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 수학 교과서, 영화에 딴지 걸다
이재진 지음 | 푸른숲 | 1만 1000원
‘과학 교과서, 영화에 딴지 걸다’를 펴내 호평받았던 저자의 ‘딴지 걸다’ 수학판이다. 학원에서 수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던 저자는 수학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학생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이 책을 쓰게 됐다고. 영화 12편에서 뽑아낸 수학 아이디어로 200쪽에 이르는 책을 썼다는 사실이 놀랍다.
1997년 작품인 ‘큐브’(Cube)에서는 소수의 특징과 소수가 암호를 만들 때 즐겨 쓰이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2005년 개봉작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는 통계의 허와 실을 보여주고 있다. 바람둥이 광태가 매력적인 경재에게 뽀뽀를 시도하다 거절당하자 “통계를 보니 OECD 평균은 만난 지 3번 만에 키스하는데 우리는 5번이 넘도록 못했잖아”라며 너스레를 떤다. 이런 통계가 설득력이 있을까? 책을 읽고 난 뒤 여기 소개된 영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사이먼 싱 지음 | 박병철 옮김 | 영림카디널 | 1만 3000원
“저는 8년 동안 한 가지 문제만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단 한시도 그 문제를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한 가지 생각만으로 보낸 시간치고는 꽤 긴 시간이었죠. 저의 여행은 이제 끝났습니다.”
350년간 풀리지 않았던 수학의 최대 난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영국 수학자 앤드루 와일스의 말이다. 프랑스의 아마추어 수학자였던 페르마가 “n이 3이상일 때 방정식 xn+yn=zn의 정수해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나는 이 정리를 증명했지만 여백이 좁아 여기 적지는 않겠다”고 썼는데 그 뒤 수많은 수학자들은 그를 원망하며 이 문제에 매달려왔다. 저자는 앤드루 와일스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풀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인 와일스는 1993년 6월 21~23일 3회에 걸친 강의에서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했음을 보여줘 수학자들을 경악시켰다. 그 뒤 증명에서 오류가 발견돼 제자였던 리처드 테일러와 1년간 해결에 몰두, 마침내 1994년 9월 증명을 완결지었다. 도대체 수학의 무엇이 이처럼 천재들을 사로잡을까.
이 밖에 추천된 책들
-소수의 음악 마르쿠스 듀 소토이 지음 | 고중숙 옮김 | 승산 | 2만 원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한 외로운 수학 천재 이야기(골드바흐의 추측)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지음 | 정회성 옮김 | 생각의 나무 | 9800원
-π의 역사 페트르 베크만 지음 | 박영훈 지음 | 경문사 | 1만 5000원
-학문의 즐거움 히로나가 헤이스케 지음 | 방승양 옮김 | 김영사 | 7900원
-간추린 수학사 더크 스트뤽 지음 | 장경윤, 강문봉, 박경미 옮김 | 경문사 | 1만 5000원
-재미있는 수학여행 1, 2, 3, 4권 김용운, 김용국 지음 | 김영사 | 각권 9900원
-0의 발견 요시다 요이치 지음 | 정구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9000원
-수, 과학의 언어 토비아스 단치히 지음 | 권혜승 옮김 | 한승 | 1만 7500원
-수학:양식의 과학 케이스 데블린 지음 | 박문규 옮김 | 경문사 | 2만 5000원
-어느 수학자의 변명 고트프리 하디 지음 | 정회성 옮김 | 세시 | 9500원
-명화와 함께 떠나는 수학사 여행 계영희 지음 | 살림출판사 | 1만 3800원
-불완전성 : 쿠르트 괴델의 증명과 역설
레베카 골드스타인 지음 | 고중숙 옮김 | 승산| 1만 5000원
수학책 추천해주신 분들
-대학교수
강주호(대구대 수학과), 계영희(고신대 유아교육과), 기하서(연세대 수학과),
김주영(대구카톨릭대 수학과) 조용승(이화여대 수리물리과학부), 한상근(KAIST 수학과),
홍성복(고려대 수학과)
-과학고
경기과학고, 대구과학고, 대전과학고, 서울과학고, 인천과학고, 장영실과학고,
한국과학영재고, 한성과학고
-과학기자
김재호, 김홍재(이상 사이언스타임즈) 김상연, 서금영, 이준덕, 이진원, 임순지, 전동혁, 정영훈(이상 동아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