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宇宙)란 시간과 공간을 뜻한다. 시간은 물질이 차지하는 영역이고 물질의 변화가 바로 시간이다. 시공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것이 현대 우주론의 정수이다.
중국 전한시대의 회남자(淮南子)에 따르면 사방상하(四方上下) 이것을 우(宇)라 하고, 왕고래금(往古來今) 이것을 주(宙)라고 한다 했다. 그러므로 우는 공간적 영역을 말하고 주는 시간의 경과를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회남자는 현대 우주론의 기본구성인 시간과 공간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기할 만하다. 이 글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본질, 그리고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와 열역학적인 엔트로피, 궁극적으로 이들 모두가 팽창우주론과의 무슨 숨은 관계가 있는지를 밝혀보고자 한다.
공간(宇)에 대한 탐구
공간이란 무엇일까? 아마 쉬운 질문이라고 독자들은 답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질문은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무려 2000년 넘게 많은 철학자, 과학자들을 괴롭혔던 문제인 것이다. 왜냐하면 공간에 대한 궁극적 이해는 바로 우리가 사는 우주의 궁극적인 이해와 통하기 때문이다.
공간의 본질에 대한 연구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장 앞섰다.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 (B.C.384-B.C.322)는 오랜 사고를 통해 지구를 중심으로 한 최초의 기하학적 우주론을 제창했다. 막연한 인상에 근거한 신비론적인 우주론이 아니라 자연철학적 합리성을 통해 제창되어진 최초의 우주론이다. 그는 우리가 사는 우주란 지구를 중심으로 한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들은 천구상 주어진 궤도를 따라 운행한다. 그리고 그 바깥에는 별들이 박혀있는 맨 바깥층이 존재하고 그 층 너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진공조차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무(無)'라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대상은 아리스토델레스 우주관의 맨 바깥층을 형성하는 '진공'(眞空)이라는 존재다. 실상 우리는 일상생활을 통해 진공이라는 개념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 우주선을 타고 나간 우주인이 지구궤도에서 작업을 할 때 우리는 그들이 진공에서 작업을 한다고 한다. 물론 그곳엔 대기가 희박한 관계로 그런 표현이 무리없게 받아진다. 또는 밀폐된 유리관속의 공기를 빼낸 것을 진공관이라 부른다. 공기가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공기가 없다고 해서 진정한 진공이 되는 것일까?
진공이란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진공이 존재한다'는 말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있다'는 모순 논리를 잉태하고 있다. 여기서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과연 진공이란 자연에 존재하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모순관계에 주목했다. 그래서 이런 모순점을 극복하려 진공, 즉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공간'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Nature abhores vacuum)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따라서 절대적인 진공은 우리가 상상해서 만들어진 관념적인 개념이라는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우리가 공간이라고 느끼는 영역이란(즉 부피같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물질이 차지하는 영역(領域)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물질이 차지한 부피영역 역시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가 진공관속에 있는 물질을 완벽하게 빼낸다면 진공관은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절대적 무의 공간을 부정하는 사상은 후에 케플러나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그리고 아인슈타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데카르트는 결론짓기를 '진공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다. 진공의 본질을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질과 공간은 실상 동일 개념이며 단지 우리가 추상적으로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물질은 공간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물질의 영역(領域)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반박하는 이론도 만만치 않았다. 꼭집어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인 이상 진공이라는 실체(實體) 역시 자연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대표적 인물은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라는 자연철학자였다. 그는 최초로 물질이 원자라는 작은 입자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하여 유명한 사람이다. 이 주장을 수용한 대표적인 사람은 바로 만유인력의 발견자인 뉴턴이다. 뉴턴은 주장하기를 물리에서 말하는 공간은 진공 그 자체를 말하며 그가 발견한 만유인력은 이런 진공을 통해 원격작용으로 전달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당대에 있어서 뉴턴의 운동방정식과 만유인력이론은 자타가 공인하는 완벽한 이론이었다.
이러한 공간의 본성에 대한 대립된 논쟁은 중세를 통해, 그리고 근세기 초까지 끊임없이 지속돼 왔다. 이에 관한 논쟁이 바로 유명한 '절대공간'(Absolute Space, Absolute Rest)에 대한 논쟁이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데카르트의 주장이 옳았음이 20세기에 들어와 밝혀진다. 유명한 마이켈슨-몰리 실험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바로 이런 절대공간이 진짜로 자연에 실재하느냐, 아니냐 하는 증명과정을 통해 발견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2000년을 끌어온 논쟁은 1907년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해 '절대공간의 존재를 부정'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종결된 것이다.
양자론적인 관점에서 본 공간
앞서 말했던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진공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물질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일까? 또한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드디어 1937년에 완성된 양자론은 이의 해답을 제공해준다. 양자역학적 불확정성원리(不確定性原理:Uncertainty Principle)에 의하면 진공은 비어있지 않고 물질로 꽉찬 공간이라는 재미있는 결론을 내려준다. 즉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속에는 항상 수많은 입자들이 쌍창생(pair creation)과 쌍소멸(pair annihilation)이라는 과정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탄생되었다 소멸되는 시간이 매우 짧아서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렇게 공간속에는 아주 짧은 수명을 가지고 탄생과 소멸을 계속하고 있는 입자들을 가상입자(virtual particle)라고 부른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20세기 물리학의 양대산맥인 상대론과 양자론을 통해 모두 입증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검은구멍'(Blackhole)이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미국의 물리학자 휠러 (J. Wheeler)는 "팅빈 공간이 비어있지 않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좀더 자세히 이 현상을 설명해 보자. 하이젠베르크(W. Heisenberg)의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가 내리는 가장 신기한 결론중의 하나는 우리가 신성시해온 에너지 보존법칙도 순간적에 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바로 이 현상 때문에 순간적이나마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너지=0)가 그 자체로 유한한 에너지를 갖는 물질 상태로 바뀔 수 있는 물리적 근거를 제시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공(眞空)의 좀더 자세한 정의란 존재(存在)와 무(無:nothing)의 사이를 요동하는 물리량인 것이다. 이런 현상을 통틀어 물리학자들은 진공요동(vacuum fluctuation) 이라고 부른다.
그럼 이 시점에서 독자들은 질문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신기한 현상을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 이러한 가상입자들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이들은 반드시 원자핵에 구속된 전자궤도의 에너지를 약간 변화시킬 수 있다. 좀더 자세히 말해서 핵에 구속된 전자의 전기장이 진공중 가상입자들의 탄생을 촉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진공편광(vacuum polarization)이라고 부르는데 이에 의해 핵에 구속된 전자는 아주 미약한 에너지의 섭동선(lambshift)을 갖게 된다. 결국 이런 에너지 스펙트럼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미국의 물리학자인 램(W. Lamb)에 의해 놀랄만한 정밀도를 가지고 검증되었다.
여기까지 정리해보면 진정한 의미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란 정말로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옳았던 것이다. 단지 공간이란 '주어진 물질이 차지하는 영역'이었고 이를 우리는 '공간'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양자역학적 불확정성원리에 바탕을 둔 수소원자의 에너지 섭동선에 의해 검증되었다.
시간(宙 )의 근원은 열역학 제2법칙
그렇다면 시간이란 무엇인가? 신학대전으로 유명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는 "나는 남이 물어보지 않으면 시간이 무엇인지 이해한 듯하다가도 누가 설명해달라면 이내 뜻을 몰라 혼란스러워 한다"라고 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밤잠을 설치게 한 질문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시간은 자체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다. 시간은 우리의 인식에 그어진 단순한 눈금일 뿐이다. 시계의 초침, 분침이 움직임으로 해서 우리가 늙어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 시계가 없던 원시시대에도 우주의 운행, 물질의 영고성쇄는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시간 역시 물질에 의해 정의된 양이다. 즉 물질이 존재함으로써 공간이 정의된 것처럼 물질이 진화해 감으로써 시간의 흐름이 정해지는 것이다. 우주에 물질이 존재하고 절대로 변화하지 않는다고 하면 시간이란 그의 존재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변화가 없는 세상에서 시간의 흐름이란 그의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우주에 있는 물질들의 상호작용이 사라진다면 언제 보아도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는지는 전혀 알아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란 '물질의 상태변화'를 우리가 '느끼는' 감각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시간과 공간의 근원은 물질에 귀착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질이 차지하는 영역을 통해 우리는 '공간'을 느끼고 또한 물질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질이란 과연 무엇일까? 물질은 그 자체로 변화하려는 속성이 있는 것일까?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불교의 경구를 생각해보자.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은 항상 변화하는 존재니 물질의 흐름은 그침이 없고 또한 모든 것은 항상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사에서도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탄생이 있으면 죽음이 있게 마련이다. 진정 살아있는 생명, 그리고 그들이 만든 사회 전체도 원래의 모습에서 벗어나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려 한다. 이들을 포함하는 지구, 별, 은하들도 예외가 아니다. 삼라만상 어느 것이라도 결코 영구불변의 것은 없다는 뜻이다. 이런 속성을 물리학적 용어로 바꿔 말하면 엔트로피의 증가현상이라고 말한다. 주어진 계안에 있는 물질들이 주어진 상태에서 좀더 무질서한 상태로 변화하려는 속성을 자연과학에서는 엔트로피(entropy)의 증가현상이라고 한다. (여기서 엔트로피란 '증가량'을 뜻하는 그리스말이다.) 좀더 간략하게 열역학의 제 2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자연과학에서 가장 신성하게 지켜지는 원칙으로서 주어진 물질은 항상 정리된 상태에서 혼란스런 무작위의 상태로 변화하려 한다는 속성을 통틀어 일컫는다.
예를들어 보자. 물컵에 한방울의 잉크를 떨어뜨려보면 원래의 잉크방울은 점점 물컵속에 골고루 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 조그만 방울에 구속되었던 잉크분자가 골고루 물컵속에 퍼진 것이다. 새로 지은 빌딩이 오래되면 낡아 부스러지며 퇴락되는 현상, 얼음이 물로 변하는 현상, 산 생명체가 자라고 노쇠하는 현상, 죽은 생명체가 부패되는 현상, 모두가 엔트로피의 증가현상인 것이다.
여기서 독자들은 냉장고는 그런 열역학의 법칙을 어기고 있는 기계가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옳은 반론이다. 확실히 냉장고는 물을 얼음으로 변화시켜 물이라는 계의 엔트로피를 감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단 물이 얼음인 상태로 있는 경우 그 엔트로피는 액체 상태인 경우보다 적다. 얼음은 결정구조로 되어있어서 물의 분자가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덜 혼란스러운 상태인 셈이다. 그러나 얼음이 녹아 물로 변하면 물분자는 자유롭게 사방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물의 상태란 얼음보다 좀더 무질서적인, 또는 엄밀히 말해서 '좀더 물분자의 자유도가 증가된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물을 얼음으로 바꾸기 위해 냉동기를 작동해야 한다. 컵에 담아둔 물이 갑자기 스스로 얼음으로 변하는 현상은 절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냉동기가 작동하는 동안 열손실에 의해 물이 얼음으로 변해서 파생된 엔트로피의 감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엔트로피를 주변에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냉장고 전체를 고려해보면 국소적으로 냉동실에서 물의 엔트로피가 감소하여 얼음으로 변화했지만 냉장고 전체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고 있다.
이와같이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물질이건 그것은 본질적으로 엔트로피의 증가, 즉 선천적으로 좀더 무질서적인 상태로 변화하려는 속성을 타고난 것이다. 이런 변화하려는 속성을 자연과학에선 '비가역적 현상'(irreversible process)'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물컵속에 퍼진 잉크분자가 어느 시기에 '한번 뭉쳐볼까?'하고 원래 한방울의 잉크로 뭉치는 가역적(reversible) 현상은 절대로 없다.
우리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이러한 열역학의 제 2법칙을 위배하는 어떤 현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열역학 제 2법칙이 우주에 존재하는 것일까? 다시 말해서 왜 우주의 모든 물질은 좀더 무질서한 상태, 엔트로피가 증가된 상태로 진화하려하는 것일까? 아직까지도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없다. 아마도 이 역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에 근원을 두고 있는 듯하다. 이 원리에 따르면 한 지점에 위치한 입자라도 차츰 원래의 위치에서 벗어나 좀더 넓은 공간으로, 좀더 무질서하게 퍼져나려는 속성을 보이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탐구는 아직도 현대물리학의 미지분야로 남아 있다.
시간의 화살과 팽창우주론
이쯤에서 우리는 이런 물질의 비가역적 변화란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과 흡사함에 주목해보자. 시간은 항상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고 절대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 특수상대론에 의해 우리는 미래로 여행할 수 있지만 절대로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다. 시간의 흐름 역시 비가역적 현상인 셈이다. 엔트로피의 비가역적 증가현상과 서로 통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깊은 독자는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란 바로 엔트로피증가 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국의 천체물리학자인 에딩턴(Sir Eddington)경은 엔트로피의 증가현상은 바로 '시간의 비가역적 흐름'(The arrow of time)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시간의 비가역적흐름이나 물질의 엔트로피 증가현상은 우주론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우주의 종말은 시간의 죽음
별이든 사회든, 부엌냉장고에서 발생한 엔트로피든 결국 궁극적으로 우주공간에 방출한다. 삼라만상 모든 것, 지구나 항성, 은하등에서 발생되는 모든 엔트로피 증가는 결국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엔트로피의 증가에 대한 우주의 반응은 무엇일까? 정상우주론(Steady State Cosmology)을 제창한 영국의 골드(Gould)는 우주의 팽창현상이 바로 이런 우주적 엔트로피의 증가에 따른 현상이라고 말했다. 별이든 생물이든 사회든 그 진화에 따른 엔트로피 증가를 유발하고 이렇게 파생된 엔트로피는 결국 우주공간으로 방출되는 것이다. 이렇게 방출된 엔트로피는 결국 '우주의 진화'로 귀결되어 결국 '우주팽창'이라는 현상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1929년에서 1932년에 걸쳐 미국의 천문학자 허블(Hubble)에 의해 발견된 우주팽창 현상이야말로 우주내의 엔트로피 증가의 관측적 검증인 것이다. 우주는 스스로 그의 궁극적인 종말점으로 진화해간다. 엔트로피가 가장 증가된 상태, 즉 모든 물질의 무질서도 또는 혼돈의 극한상태로 변화해 가는 것이다. 우리들 자신 역시 우주를 이루는 물질의 하나인 이상 어느 누구도 이러한 우주의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 현대 팽창우주론에 따르면 1백50억년간 우주는 이런 상태를 계속해 왔다. 우주의 종말에 이르면 그 시점에서 시간은 그의 존재 의미를 잊는다. 우주의 궁극적 종말은 '시간의 죽음'인 것이다.
그럼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자. 결국 궁극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우주(宇宙)란 회남자의 주장대로 시간과 공간을 뜻한다. 이의 근원은 바로 '물질'(物質)이다. '물질이 차지하는 영역'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통한 상태의 비가역적 변화'를 공간과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공간과 시간의 근원은 바로 물질이라는 개념에 귀착되고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물질에 대한 상호연관관계를 밝혀낸 학문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다.
모든 물질은 좀더 무질서한 상태로 진화하려는 속성을 갖는다. 이러한 비가역적 속성은 바로 시간의 과거로부터 미래로 향한 흐름을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우주 전체로 볼때 그 안에 있는 모든 물질이 갖는 엔트로피증가는 팽창우주론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이 모든 현상의 근원이 되는 불확정성 원리는 이런 의미에서 매우 심오하다. 공간의 물리적 정의와 시간의 흐름에 대한 근원적인 설명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극대(極大) 세계를 다루는 우주의 진화모습이란 극미(極微)의 세계를 다루는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설명된다는 이상한 구조로 되어 있다. 물론 우리는 아직도 왜 우리 우주가 그런 재미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