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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가수를 꿈꾸는 한 젊은이가 있다. 서바이벌 오디션 에 참가해 눈부신 활약을 펼친 그는 이제 최종 3인에 드느냐 마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았다. 긴장과 흥분으로 가득한 무대 위, 과연 그의 운명은?



1 세상에 너를 보여줘
“탈락자는…. 60초 후에 공개합니다.”
역시나 사회자가 뜸을 들인다. 방청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순간 긴장이 풀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눈앞이 캄캄하고 어지럽다. 내가 왜 여기 서 있는 거지?

“그 힘들게 들어간 의대는 왜 그만두고 딴따라 짓을 하려고 그래!”

어머니다. 내가 가수가 되겠다고 선언하자 실망한 어머니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에 나간다고 집을 나설 때 내다보지도 않으셨다. 그래도 지금쯤 TV 앞에서 나처럼 두 손을 모으고 떨고 계실 테다. 어머니께 여러 사람들 앞에서 가수로 인정받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자, 힘을 내자. 이제 최종 결선만 남았다!
 
[사람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주된 이유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부족한 부분을 우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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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오디션 속 과학 ➊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평가 받고 싶은 욕망이 다. 이런 바람은 비단 아마추어에게만 있지 않다. 프로들도 끊임없이 대중의 관심을 받아 성장하는 꿈을 꾼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탄생한 것도 이런 가수들의 심리를 꿰뚫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해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성격과 특성 중 일부는 개인보다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더 잘 파악하기도 한다. 미국 워싱턴대 시마인 바지레 교수가 165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무대 공포증처럼 신경증적인 특성은 다른 사람들이 알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창의력, 지적능력, 무례한 태도 같은 특성은 다른 사람이 더 잘 판단했다. 바지레 교수는 “개인은 자신을 높게 바라보고 싶은 무의식적인 동기와 공포들로 인해 자신을 제대로 아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결과는 ‘성격 및 사
회심리학 저널’ 2010년 2월호에 소개됐다.



2 고집불통 심사위원이 있는 이유
“자네 노래는 평가 자체가 안 돼. 노래에 너무 겉멋이 들어갔잖아.”
처음 지역 예선을 치르던 때가 생각난다.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처음이라 엄청 떨었다. 하지만 독설로 유명한 박왕규 앞에서 떨지 않을 수 있냐고. 노래는 그런대로 불렀던 것 같은데, 박왕규의 점수는 5.1이라는, 그 날 도전자 중 최고로 낮은 점수를 내게 선사했다. 다른 심사위원들이 8점대 후반의 후한 점수를 줬는데도 말이다! 박왕규가 예선전까지만 참여한 건 정말 행운이다. 아, 다시 생각하니 또 뒷골 땡기네. 박왕규는 왜 혼자 고집불통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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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오디션 속 과학 ➋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 검토하고 자신의 의견을 결정한 뒤에는 다른 사람들이 반대의견을 가진 것을 알아도 자신의 결정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리차드 페티 교수팀은 이런 경향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에는 회사의 긍정적인 미래상이 담긴 정보를 주고, 다른 그룹에게는 회사 로고가 아주 매력적이라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정보만 제공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에게 이 회사가 일할 만한 회사인지를 평가하라고 지시했다. 만일 다수의 의견이 당신과 다르다면 당신의 기존 평가는 어떻게 될 것인지도 물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학생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 한번 결정을 내리면 다수 의견이 자신과 다르다고 해도 오히려 자신의 결정을 더 정당화하고 확신을 가졌다. 페티 교수는 “사람들은 다수가 믿는 일반적인 결정에 대해 자신이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오히려 자부심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며 “반대로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은 사람은 다수의견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해 9월 ‘개인과 사회 심리학 회보’에 소개됐다.

3 파이널로 갈수록 경쟁은 치열해 진다

“방송 30초 전~.”

스텝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메라 감독들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긴장이 몰려온다.
 
[대그룹보다 소그룹에 참여한 참가자들일수록 경쟁심을 더 느끼고 일의 성과도 더 높다. 사진은 엠넷 ‘슈퍼스타K2’의 ‘파이널 11’에 진출한 11명의 모습.]

“자, 우리 파이팅이나 한번 할까?”

도전자들끼리 손을 마주 잡았다. 수경이, 동수, 예지. 진짜 쟁쟁한 녀석들만 남았다. ‘가수 뺨치는 실력’, ‘가수 이효리, 무대 보다 실신하다’, ‘서바이벌 오디션 보려고 탈북자 급증’ 이런 기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난 진짜 엄청난 녀석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우리 실력이 드러난 건 상위 11명으로 압축됐을 때부터다. 경쟁은 수천 대 1의 경쟁을 펼치던 예선전보다 열 명 남짓으로 추려졌을 때가 훨씬 심해졌다. 더불어 스트레스는 익스포넨셜로 증가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거다. 내가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고생하기 시작한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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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오디션 속 과학 ➌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경쟁할 때 좋은 성적이 나올까. 작은 그룹 안에서 경쟁할 때 좋은 성적이 나올까.

이스라엘 하이파대와 미국 미시간대 공동 연구진은 시험을 치루는 사람의 수가 개인의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70여 명의 학생을 홀로 앉히고 제한 시간 동안 단답형 퀴즈를 풀도록 했다. 그리고 한 그룹에는 총 10명이 같은 퀴즈를 풀고 있다고 전하고 다른 그룹에는 총 100명이 함께 푼다고 얘기해줬다. 학생들에게 가장 빨리 답안을 낸 20%에게 5달러를 지급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 결과 9명과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한 학생이 99명과 경쟁한다고 생각한 학생보다 더 빠른 시간에 답안을 써서 제출했다. 한 반의 학생 수가 적어야 경쟁심이 더 유발되고 어떤 목표를 위해 더 활발하게 움직인 것이다.

연구팀이 미시간대 학생 1383명을 서로 다른 규모의 22개 그룹으로 나눠 3년간 인지능력을 테스트한 결과에서도 소그룹의 성적이 더 높았다. 이 같은 결과는 ‘심리과학’ 2009년 6월호에 소개됐다.

4 10대 청소년은 선의의 경쟁에 불 탄다
무대에 불이 들어왔다. 매번 ‘60초 후에 공개합니다’고 해서 ‘60초 남자’로 불리는 사회자도 돌아왔다. 긴장 되냐고 묻는다. 아이고~.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정말 죽겠습니다.

이제 얼마 뒤면 우리들 중 한 명은 집으로 돌아간다. 동수와 예지가 보인다. 고등학교 2학년생인 녀석들이 용케도 여기까지 살아남았다. 그래도 동수는 매번 탈락자 결정 순간마다 의젓하다. 녀석, 아무 생각이 없나? 그런데 예지는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다. 안심해~. 예지야, 왠지 너는 붙을 것 같단 말이지.
 
[10대 청소년들은 다른 사람을 패배시키는 경쟁보다 종전보다 더 잘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경쟁을 더 좋아한다.]


 

5 탈락과 생존 그 엇갈린 운명
“형, 걱정 마이소. 제가 떨어질 거라예. 심사위원 점수가 제일 낮다 안 함니꺼.”

동수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씨익 웃는다. 녀석. 어쩜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지? 오늘 점수가 가장 낮긴 하지만 녀석은 전국 여학생 친위대 10만 명을 이끄는, 그야말로 ‘여학생의 대통령’이다. 그녀들이 한 표씩만 투표한대도 녀석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곱상하게 생긴 외모와 달
리 털털한 성격과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매력 포인트란다. 끄응~.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어, 쩝.

그에 반해 나는 오늘 점수는 그럭저럭 받았다. 하지만 강한 인상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특색 없는 목소리가 아쉽네요”라는 말을 오늘도 들었다. 어째 내가 예지보다 더 떨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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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오디션 속 과학 ➎

사람은 누구나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에 더 귀를 기울인다. 위험이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생존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 하지만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나쁜 소식보다 불확실한 소식에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팀이 혼란, 불확실, 실수 등의 상황에 관여하는 뇌 영역인 ‘앞띠이랑(Anterior Cingulate Cortex)의 활동을 측정한 결과다.

연구팀은 대학생 41명을 대상으로 정보가 없거나 불확실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기 위해 뇌파 검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에게 모니터에서 작은 십자가(+) 표시가 나오면 1초 뒤에 버튼을 누르도록 지시했다. 만일 제대로 1초 뒤에 버튼을 누르면 ‘+’ 표시가 나오지만 너무 일찍 누르거나 너무 늦게 누르면 ‘-’표시가 나온다. ‘?’ 표시도 가끔 나오게 했다.

모든 참가자들은 부정적인 표시, 즉 ‘-’표시가 나올 때 뇌파의 반응이 크게 나왔다. 그런데 신경이 예민한 학생은 확실하지 않다는 의미인 물음표가 제시됐을 때 뇌파가 더 큰 반응을 보였다. 신경이 중간 정도로 예민한 학생은 ‘-‘ 표시나 물음표나 반응이 비슷했다.

이 같은 결과가 사실이라면 보통 사람들은 승진에서 누락됐을 때 더 스트레스를 받지만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이 때보다 발표 전 그 결과를 알 수 없을 때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와 관련해 미국 퍼듀대 심리학과 다니엘 므로크첵 교수는 “신경과민이 있는 사람은 ‘투쟁도주반응(fight or flight)’이 발달해 불확실하지 않은 상황을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로 받아들여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투쟁도주반응은 갑작스런 자극에 투쟁할 것인가, 도주할 것인가 결정하는 본능적 반응을 말한다. 이 연구 결과는 ‘심리과학’ 2008년 11월호에 발표됐다.

6 돈보다 더 귀한 경험
드디어 큐 사인이 떨어지고 카메라에 불이 들어왔다. 방청객들의 환호. 나는 다시 힘을 얻는다.

“자, 마지막 최종 3인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탈락자는…. 김으뜸입니다.”

아….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고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스모키 화장하지 말걸. 웃으며 생존자들에게 축하를 건네야 하는데. 옆을 돌아봤더니, 어느새 동수의 얼굴이 눈물 콧물로 범벅돼 있다. “인마, 잘했어. 넌 통과할 만해.”

사람들의 박수가 쏟아진다. 마치 넌 패배자가 아니라는 듯이, 이곳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멋진 가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듯 따뜻한 박수다. 고맙습니다. 저 포기하지 않을게요. 지난 두 달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을 귀한 경험을 얻고 돌아간다. 나를 발견했고, 새로운 것을 배웠으며 자신감을 채웠다. 난 이미 가수다.
 
[서바이벌 오디션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패배했다는 자괴감보다 좋은 경험을 얻었다는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사람들은 돈으로 얻는 행복보다 경험처럼, 기억에 남는 행복에 더 가치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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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오디션 속 과학 ➏

서바이벌 오디션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마지막 인터뷰에서 “좋은 경험을 하게 돼 정말 기뻐요”라는 말을 남긴다. 최종 승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경쟁에서 패한 실패자다. 하지만 시청자도,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프로그램 속 경쟁을 참가자가 자기실현과 자아발견을 위해 필요한 장치였다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돈으로 얻는 행복보다 경험과 같이 기억에 남는 행복에 더 가치를 느낀다. 미국 일리노이대 에드 디너 교수팀이 2005부터 2년간 132개국 13만 6000명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삶에 대해 점수를 평가하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수입이 늘면 삶의 질이 풍족해지고 만족감이 늘어난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만족의 크기는 남에게 존중받았을 때, 친구와 가족이 “정말 잘했다”고 지지해줬을 때, 자기가 딱 좋아하는 일을 찾았을 때 느끼는 즐거움과 재미보다 작았다. 즉 돈은 삶에 대한 만족감을 일정 수준 높여주지만 즐거움과 재미를 안겨 주는 존재는 아닌 것이다. 디너 교수는 이 같은 결과를 ‘성격사회심리학 저널’ 2010년 7월호에 발표했다.

이런 경향은 실험에서도 증명됐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은 164명의 사람들에게 물건을 고르게 한 뒤 그들이 고른 물건보다 더 나은 조건의 물품이 있다는 정보를 줬다. 그러자 다짜고짜 새 물건을 산 사람들은 여행이나 영화선택 등 체험관련 구매를 한 사람보다 더 후회하는 경향을 보였다. 물건은 다른 것과 계속 비교하게 되지만 체험을 산다면 마음속으로 장점을 계속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시계나 아이폰을 새로 사지 말고 영화나 여행 티켓을 사라는 주장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셈이다. 이 결과는 지난해 ‘성격 및 사회심리학 회지’ 1월호에 소개됐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서바이벌 오디션의 과학 - 경쟁하는 당신이 아름답다
Part 1. 눈과 귀 사로잡는 오디션의 과학
Part 2. 머리 좋은 가수가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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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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