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세계에도 자식 편애가 있을까? 그럴 리 없다고 여겨졌던 고정관념을 뒤엎는 연구결과가 동물행동학자들에 의해 나왔는데…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다고 한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냐는 말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관점으로 보더라도 한 부모 슬하의 자식은 모두 동등하게 부모로부터 같은 50%의 유전자를 물려받게 되므로 편애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똑같은 나의 '피'를 물려받은 자식인데 어떻게 차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자식이 많은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걸 안다. 남녀간의 차별은 별개로 한다 치더라도 보통 큰 아들이 맏이라고 제일 사랑을 받고 부모님도 가장 믿음직스러워 한다. 막내의 경우가 두번째 정도는 된다. 고집을 부리거나 떼를 쓰더라도 막내이기 때문에 용서가 되고 용납된다.
서러운 것은 가운데 낀 형제나 자매이기 마련인데, 부모님의 관심도 덜하고 옷을 입더라도 형이 입던 헌 옷만 물려입기 십상이며 책도 형이 온통 낙서한 지저분한 것을 물려받는다. 재산을 물려줄 때도 항상 큰 아들이 우선이다. 나중에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책임을 큰 아들이 져야 하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꼭 태어난 순서에 의해서만 부모의 사랑이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 말에 순종하고 잘 따른다면 역시 사랑받는 한 요건이 될 것이며, 점수와 학위가 강조되는 우리사회에서는 공부를 잘 하는 것도 떡 하나 더 받아먹을 수 있는 자격이 될 것이다.
동물들 중에도 인간들처럼 새끼를 돌보는 종들이 많다. 옆으로 쓰러져 젖을 물고 있는 새끼를 편안히 바라보는 개나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서로 먹겠다고 짹짹되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는 제비 등을 아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좀 어리석은 질문 같기는 하지만 이런 동물들에서도 새끼를 편애하고 차별하는 일이 일어날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편애하는 것일까?
생사 좌우하는 부모의 편애
가령 제비는 서로 먹겠다고 입을 가능한 한 크게 벌리고 짹짹대는 새끼들에게 더 예뻐 보이므로 많이 주고 못생겼으니 더 조금 먹이고 할까? 이들은 사람과는 달리 한꺼번에 짧은 시간 동안 거의 동시에 알에서 깨어나거나 태어났다.
다시 새끼를 낳을 때쯤이면 원래의 새끼들은 이미 다 자라서 독립한 후이기 때문에 먼저 태어난 것과 나중에 태어난 것 사이에 편애나 차별이 없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함께 태어난 쌍둥이를 부모가 차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처럼 형제 자매들이 태어난 시기가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성장하여 독립할 때까지 오랜 동안 모여사는 경우가 아니라면 후손에 대한 편애를 동물에서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종류의 편애가 인간이 아닌 다른 종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구나 그 주인공은 인간과 유사한 영장류도 아니고 두루미목 뜸부기과에 속하는북미산 검둥오리(Fulica americana, 일명 미국 물닭)다.
물론 사람처럼 태어난 순서에 따라서 편애하거나 공부를 잘하고 똑똑하다고 먹이를 더 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검둥오리는 보통 자신들의 영역을 암수가 함께 지키고 부화시키며, 알에서 깨어나 자라는 새끼를 적어도 한달 가량 함께 먹인다. 다 자란 검둥오리는 우중충한 검은색을 띠는데 반해 새끼는 화려한 색을 띤다.
알에서 갓 깨어난 직후의 밀생한 검은 털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조금 자란 검둥오리는 비록 기부는 검은색이지만 겉은 선명한 오렌지색 깃털이 몸 전면의 반을 덮고 없다. 목부분은 붉은색 긴 장식 깃털이 나 있으며 주둥이는 선홍색이다. 또 눈 주위는 선명한 붉은 작은 돌기가 둘러싸고 있고, 머리 윗 부분은 선홍색으로 변할 수 있는 대머리가 시원스럽게 벗겨져 있다.
검둥오리 새끼는 짹짹대면서 목소리로 먹이를 달라고 보채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자신의 오렌지색 깃털을 펼쳐 보임으로써 둥지의 다른 새끼들보다 더 많은 먹이를 먹으려고 경쟁한다. 이런 화려한 장식 색깔 깃털은 보통 3주 정도 지나면 사라져 전형적인 검둥오리가 된다.
날지 못하는 병아리가 대머리같은 노출된 피부와 화려한 깃털같은 두드러진 장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아주 드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포식자들의 눈에 쉽게 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둥오리 새끼는 어미가 위험하다는 신호를 발하면 재빨리 머리를 숙여 벗겨진 머리와 깃털을 가리려고 애쓴다고 하는데, 이는 화려한 깃털과 벗겨진 머리가 비싼 대가를 치른다는 걸 시사한다고 하겠다.
생물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북미산 검둥오리는 바로 이런 화려한 장식을 기초로 새끼를 편애한다는 것이다. 즉 번지르하게 장식된 새끼와 그렇지 않은 새끼들 중에서 선택해야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검둥오리는 멋진 장식 깃털을 가진 새끼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 발견은 장식 깃털을 기준으로 양친이 새끼에 대해 선호도를 보여 주는 첫번째 실험적 증거다. 더구나 사람의 경우 부모의 편애가 떡 하나 더 먹고 못먹는 차이라고 한다면 검둥오리새끼들의 경우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므로 그 의미는 크다.
생후 3주간만 나타나는 화려한 깃털색
처음 이런 특이한 오렌지색 깃털의 화려한 새끼를 발견한 뒤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배우자 선택시 나타나는 화려한 수컷의 깃털 장식과 연관지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 깃털 색은 생후 3주만 되면 다 사라진다. 그러므로 성선 택 보다 더 직접 이 깃털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새끼를 돌보는 어버이의 선호도에 차이를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모든 일이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생물행동학 연구는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힘들지만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실험과정에서 검둥오리 색깔을 바꾸기 위해 물감을 칠하는 방법을 택한다면 오리를 병들게 하거나 조류의 깃털에서 방수기름을 없애는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그래서 실험에서는 말단 부위가 오렌지색인 깃털의 끝을 다듬어서 그 아래에 밀생한 검은 털이 드러나게 하는 방법으로 인위적으로 검둥오리 새끼를 만들었다.
이렇게 오렌지색 깃털의 끝을 다듬어 검은색을 띠게 만든 새끼와 원래대로인 오렌지색 새끼를 부모가 먹이는 비율과 성장 및 생존율을 조사하여 비교했다. 이때 실험이 제대로 되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대조군으로 오렌지색 깃털 끝이 전부 다듬어져 검은 색을 띠는 한배 새끼와 원래대로 오렌지색 깃털인 다른 한배 새끼 집단의 3가지 수치를 비교했다.
놀랍게도 이들 대조군 집단에서는 3가지 산출된 수치에 차이가 없었다. 반면 한배새끼의 반이 다듬어지고 나머지 반은 원래대로 오렌지색을 띠는 실험 집단이 혼합된 한배새끼는 오렌지색 병아리가 보다 많은 비율로 먹여졌고 더 빨리 자라고 보다 높은 생존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대조군 집단과 그 수치는 유사했다고 한다. 이는 검둥오리는 그들 새끼의 오렌지색 깃털 장식을 좋아하지만 장식된 것과 장식되지 않은 후손 사이에 꼭 선택을 해야 할 경우에만 장식을 택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실험에서 병아리의 깃털을 다듬는 행위는 색깔을 바꿀 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동 혹은 생존성, 심지어 그들을 좀더 작게 보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깃털을 다듬은 검은새끼끼리 두거나 오렌지색 무리만 두었을 때는 그 사이에 생존율 차이가 없었다는 것은 다듬는 것 그 자체가 생존능력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행동에도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또한 검둥오리 어미는 보다 작은 새끼에게 더 많이 먹이는 경향이 있기에 실험과정상 우려된 실험적 변인은 통제가 되었다 할 수 있다.
깃털이 새끼의 우월성을 표현한다?
왜 검둥오리가 예쁘게 치장한 새끼를 편애할까? 이를 3가지로 설명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오렌지색 깃털을 갖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그걸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에너지 비용+증가된 포식위험)은 검둥오리 새끼중 아무나 그 깃털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적합하게 적응된 좋은 형질을 가진 새끼만이 가진다는 걸 의미한다는 견해다.
즉 화려한 깃털을 가지면 눈에 잘 띠어 포식자들에게 잡혀먹기 쉽고 그 깃털을 만들어내기도 어려운데 굳이 그 깃털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그 장식을 가진 새끼가 더 우월하다는 걸 말해준다는 설이다. 따라서 양친은 좋은 유전자를 가졌다고 생각되는 예쁜 장식 깃털을 가진 병아리를 편애하여 먹일 것이다.
두번째 설명은 말그대로 검둥오리가 그런 오렌지색을 띠는 새끼를 좋아하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상징적으로 장식깃털과그 깃털에 대한 부모의 선호가 고삐풀린 진화을 통하여 공진화할 수 있기에 처음에 이득이 되었던 깃털형질이 부모가 그것을 선호함으로써 과장될 수 있다. 그러나 고삐불린 진화(혹은 Fisherian process)는 성적으로 선택된 형질 이외에 다른 형질에 대해서 조사된 적이 없다.
세번째는 검둥오리가 나이를 추정하기 위하여 색깔 정도를 이용할 수 있다. 검둥오리의 색깔은 정상적으로 알에서 깨어난 후 3주 뒤 사라진다. 그러므로 실험에서 다듬어진 검둥오리 새끼는 아마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큰 것으로 간주되었을 수 있다.
만약 검둥오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깃털을 나이를 추정하는데 사용한다면, 검둥오리 새끼는 그들이 어리다는 것을 부모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화려한 깃털을 사용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부모는 검은 색을 띠는 새끼와 오렌지색을 띠는 한배새끼가 동시에 존재하면 오렌지색 병아리에게 더 많이 먹일 것이다. 그러나 전체 한배새끼가 깃털이 다 자란시기 근처에서 검게 될 때는 그들의 새끼를 검은 색을 띤다는 이유로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이 실험의 결과와 같다.
3가지 설 중에서 어떤 것이 바른 설명일까? 아무튼 장식을 기초로 색깔을 선호한다는 생각은 출생시 색깔은 보호색 혹은 종인식 신호라는 일반적 견해를 뛰어넘는다.
성 선택에서 최근에 밝혀진 바로는 대칭성을 가진 배우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졌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대칭적 장식을 가진 자식을 선호한다는 증거가 바로 제시될 수 있다고 예견하는 것도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똑같이 50%의 유전자를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자손들 사이에 편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기적 유전자설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검둥오리도 인간만큼 어떤 후손이 더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생각할 줄 안다고 말한다면 너무 심한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