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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노산 수백 가지 읽는 인공 리보솜 나온다

단백질 제조 공장의 재탄생


매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열리는 ‘TED(테드) 컨퍼런스’는 세계 지성의 향연으로 불린다. TED는 테크놀로지, 엔터테인먼트, 디자인의 첫 글자로 과학, 기술, 경제,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리더들이 연사로 나서 미래 세계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올해에도 빌 게이츠, 제임스 캐머런, 엘 고어 등 유명인사를 볼 수 있었다.

현대 과학의 첨단을 소개하기 위해 연사로 나선 미국 하버드대 유전학과 조지 처치 교수는 머리통만 한 덩어리를 들고 나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단백질 제조 공장’이라고 불리는 생체분자복합체 리보솜의 모형이다. 현재 처치 교수는 미국 크레이그벤터연구소의 크레이그 벤터 소장과 함께 누가 먼저 최초의 ‘인공 생명체’를 만들어내느냐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인공 생명체로 가는 길목

물론 수년 전 벤터 박사팀이 바이러스 게놈을 실험실에서 합성해 감염성이 있다는 것까지 확인했지만 바이러스는 독립적인 생명체가 아니라서 인공 생명체를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진정한 인공 생명체라면 스스로의 힘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복제해 자손을 퍼뜨릴 수 있는 세포로 된 생명체야 한다. 따라서 인공 생명체는 가장 단순한 단세포인 박테리아 형태가 될 것이다. 인공 생명체로 가는 길에 꼭 넘어야 할 단계 가운데 하나가 인공 리보솜을 만드는 일이다. 리보솜이 제대로 작동해야 생명활동에 관여하는 각종 단백질이 만들어져 공급되기 때문이다.

리보솜은 거대한 리보솜RNA(rRNA)와 단백질 수십 개로 이뤄진 복잡한 생체분자로 전체 원자 개수가 10만 개를 넘는다. 이스라엘 바이츠만연구소 아다 요나스 박사를 비롯해 수많은 석학들의 수십 년에 걸친 노력으로 최근 리보솜의 3차원 구조가 밝혀졌지만 세포 밖에서 개별 rRNA와 단백질을 모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리보솜을 재구성하는 일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처치 교수팀에서 리보솜 재구성에 성공했던 것. 연구자들은 대장균에서 얻은 리보솜을 각 요소로 완전히 해체한 뒤 rRNA를 인공으로 합성해 여기에 해체한 단백질을 다시 결합시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리보솜을 만들었다.처치 교수는 “이번 성공으로 인공 생명체 창조에 한 걸음 더 다가갔을 뿐 아니라 실용적인 면에서도 큰 진전을 이뤘다”고 자평했다.

즉 지금까지는 유용한 단백질을 대량으로 만들 때 박테리아나 효모 같은 생명체에 유전자를 집어넣어 세포 안에서 단백질을 만들게 조작한 뒤 세포에서 단백질을 추출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만들어낸 바이오매스의 90% 이상이 버려진다.

그런데 앞으로는 rRNA의 구조를 바꿔 단백질 합성 효율이 훨씬 뛰어난 합성 리보솜을 만든 뒤 세포가 아니라 시험관 안에서 단백질을 만들 수도 있다. 말 그대로 단백질 제조 공장을 만드는 셈이다. 처치 교수의 주장이 다소 과장된 것 같지만 리보솜의 단백질 제조 능력을 업그레이드한 최근 연구 결과들을 보면 가능성이 있는 얘기임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아미노산 집어넣는 데 쓰는 ‘종결코돈’

단백질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아미노산의 종류는 모두 20가지다. 즉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류의 단백질은 이 20가지 아미노산이 저마다 독특한 순서로 참여해 만들어진 결과다. 만일 20가지 이외의 새로운 아미노산이 단백질을 만들 때 참여하게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런 일이 가능해진다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특성을 보이는 단백질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20여 년 전부터 이런 일들을 실험실에서 시도하기 시작했다.

리보솜이 mRNA의 염기정보에 따라 아미노산 사슬을 만들 때는 아무 자리에서나 시작하는 게 아니라 ‘AUG’라는 개시코돈에서 시작한다. 개시코돈은 아미노산 메티오닌을 지정한다. 나중에 변형된 경우가 아닌 한 모든 단백질의 첫 아미노산이 메티오닌인 이유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mRNA의 코돈이 지정하는 대로 아미노산을 이어나가던 리보솜은 특정한 코돈을 만나면 작업을 멈춘다. 바로 ‘종결코돈’으로 UAG, UAA, UGA 3가지가 있다.

각각의 종결코돈은 애칭이 있는데, UAG는 ‘앰버(amber)’, UAA는 ‘오커(ochre)’, UGA는 ‘오팔(opal)’이라고 부른다. 64가지(=43) 코돈 가운데 61가지는 짝을 이루는 tRNA가 있지만 종결코돈은 해당하는 tRNA가 없다. tRNA는 ‘L’자형 분자인데, 한쪽 끝에는 안티코돈이 있어 mRNA의 코돈을 인식하고, 반대쪽 끝에는 아미노산이 붙어 있다. 결국 리보솜이 mRNA를 읽어 내려가다가 종결코돈을 만나면 더 이상 번역이 진행되지 않고 멈추게 되는데, 이때 ‘해리인자(RF)’라는 단백질이 그 자리에 들어오면서 이때까지 만들어진 아미노산 사슬(폴리펩티드)이 리보솜에서 떨어져나간다.

리보솜이 mRNA를 번역할 때 새로운 아미노산을 집어넣기 위해 과학자들은 종결코돈 가운데 하나인 앰버 코돈을 주목했다. 종결코돈으로 앰버 코돈이쓰이는 경우는 약 11%로 상대적으로 빈도가 낮다. 연구자들은 tRNA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안티코돈이 CUA로 앰버 코돈과 짝을 이루는 tRNA를 만들었다. 한편 mRNA도 변형시켜야 하는데, 새로운 아미노산을 넣을 위치의 코돈을 앰버 코돈으로 바꿔줘야 한다. 이렇게 만든 돌연변이 tRNA(한쪽 끝에 넣고자 하는 아미노산을 붙인 상태)와 변형 mRNA를 번역이 일어나는 시험관이나 세포 안에 넣어준다. 리보솜이 변형 mRNA를 읽어나가다가 앰버 코돈 차례가 오면 거기에 짝을 이루는 변이 tRNA가 들어와 결국 새로운 아미노산이 사슬에 결합한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단백질에 도입된 아미노산은 50여 가지나 된다.

그럼에도 변이 tRNA와 변형 mRNA만으로 새로운 아미노산을 도입하는 방법은 한계가 있다. 정상 리보솜이 변이 tRNA를 인식하는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앰버 코돈을 만났을 때 번역을 종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해리인자에게 경쟁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앰버 코돈 자리에 변이 tRNA가 자리를 잡아 특이한 아미노산을 끼워넣고 번역을 계속할 확률은 30%도 안 된다.




‘리보-X 리보솜’, ‘리보-Q 리보솜’ 등장

영국 케임브리지대 분자생물학연구소 의학연구위원회 제이슨 친 박사팀은 2007년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그 해결책을 제시해 주목받았다. 즉 새로운 아미노산이 들어가는 단백질 제조 전용 리보솜을 만들어낸 것. 이들은 번역을 시작할 때 박테리아의 리보솜이 mRNA을 인식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즉 리보솜은 RNA 단일 가닥이면 무조건 결합해 번역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가닥 앞부분에 ‘샤인-달가르노 연속부분(SD)’이라는 염기서열이 있어야 이를 통해 mRNA라는 걸 인식한다. 리보솜 30S 단위체를 이루는 16S 리보솜 RNA(rRNA)에 이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mRNA의 샤인-달가르노 연속부분을 바꾸고 동시에 16S rRNA에서 이를 인식하는 부분에도 변이를 일으켜 바뀐 샤인-달가르노 연속부분을 인식하게 만든다면 변형 mRNA 번역 전용 리보솜을 얻게 된다. 다음으로 리보솜의 16S rRNA에서 앰버 코돈이 왔을 때 번역을 끝내게 하는 해리인자인 RF1을 인식하는 부분도 변이를 일으켜 RF1이 잘 달라붙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리보솜이 번역을 할 때 참여하는 분자들을 인식하는 중요한 부분 두 곳을 바꾼 분자를 ‘리보-X 리보솜’이라고 명명했다. 예상대로 리보-X 리보솜은 SD가 바뀐 변형 mRNA에 대해서만 번역작업을 했고 앰버 코돈을 만났을 때 성공적으로 새로운 아미노산을 도입한 비율이 60%가 넘었다.

친 교수팀은 올해 3월 18일자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mRNA에서 염기 3개가 아니라 4개를 하나의 코돈으로 인식하는 ‘리보-Q 리보솜’을 만들었다고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안티코돈이 ‘UCUU’와 ‘UCCU’처럼 염기 4개로 이뤄진 변형 tRNA를 만든 뒤 이들을 인식하는 변이 리보솜을 선별했다. 자연 상태의 리보솜은 이렇게 구조가 많이 변형된 tRNA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염기 4개가 한 코돈이 된다면 모두 256가지(=44) 코돈 조합이 나올 수 있다. 연구자들은 “각각에 맞는 변형 tRNA를 만들어낸다면 적어도 원리상으로는 200가지가 넘는 새로운 아미노산을 단백질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수십억 년 동안 진화하며 아미노산 20종을 가지고 다양한 단백질을 만들어온 리보솜이 사람의 손길로 불과 수십 년 만에 새로운 방향으로 초고속 진화를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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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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