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이 몸에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당한 양의 알코올은 인간이 사회 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윤활유 역할을 한다. 즉 긴장을 풀어주는 신경안정제, 입맛을 돋구어주는 식욕항진제, 혈압을 내려주는 혈압강하제, 마음을 즐겁게 하는 항우울제, 잠을 잘 들게 하는 수면제 등 그 역할이 다양하다. 1일 4-5g의 알코올(소주 한잔)을 섭취하면 평균 수명이 늘어난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계속적인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과음이나 폭음이 연일 이어지면서 알코올은 약이 아닌 독이 돼 신체를 상하게 만든다. 그래서 직장인들 사이에 숙취를 제거한다고 알려진 기능성 음료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알코올은 어떤 경로를 통해 인체에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항알코올 기능성 음료는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을까.
알코올(엄밀하게 에탄올)을 섭취하면 입안의 점막으로부터 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로로 몸에 흡수된다. 흡수된 알코올의 90% 이상은 혈류를 통해 간으로 운반되며 나머지 5-10%의 알코올은 폐를 통해 호흡으로 배출되거나 땀이나 소변으로 직접 배출된다. 여기서는 알코올을 분해하는 주요 장기인 간에 대해 살펴보자. 간으로 운반된 알코올은 크게 3가지 경로를 통해 아세트알데히드로 분해되며, 다시 3가지 경로를 따라 분해돼 아세트산이 만들어진다.
섬유처럼 늘어지는 간세포
아세트산은 보통 신체의 에너지 대사 과정에 참여하거나 지방산을 합성하는데 이용된다. 그러나 몸이 알코올과 그 대사 산물을 분해하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만일 과도한 양의 알코올을 마시거나 장기적으로 섭취하면 체내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난다.
‘숙취’ 는 바로 알코올의 다양한 독성 때문에 발생한다. 알코올의 독성은 첫째 알코올 자체와 그 분해 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 독성, 둘째 알코올 대사의 부산물인 NADH(핵산 단위인 뉴클레오티드 두개가 결합한 NAD에 수소(H)가 결합된 형태)와 래디칼(${O₂}^{-}$, H₂O₂ 등)의 독성, 셋째 몸의 약물 대사계가 활성화되면서 발생하는 독성으로 구분된다.
알코올 자체는 세포막을 쉽게 통과하고 세포 지질막과 잘 혼합되기 때문에 세포의 정상적인 신호 전달을 방해한다. 또 아세트알데히드는 체내의 단백질, 지질, DNA 등과 결합해 원래의 활성을 잃게 만든다. 특히 과량의 아세트알데히드는 ‘세포내 발전소’ 라고 불리는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을 저하시켜, 간 세포의 기능을 떨어뜨린다. 그 결과 간 세포는 점차 섬유조직처럼 길게 늘어지면서 죽어간다.
한편 알코올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NADH는 중성지방의 합성과정과 젖산의 축적과정을 돕는 물질이다. NADH는 수소를 잃고 NAD로 변했다가(산화) 다시 본모습으로 돌아오는(환원)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세포 내 다양한 대사과정에 관여한다. 정상적인 경우 이 물질들 사이에 균형이 이뤄지지만, 알코올을 많이 섭취해 NADH의 양이 지나치게 늘면 간에서 지방이 늘고 젖산으로 인해 피로가 촉진된다.
래디칼은 주변 조직을 산화시켜 기능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유해 물질이다. 예를 들어 단백질이나 지질 분자를 빠른 속도로 산화시켜 활성을 잃게 하거나 DNA를 절단 또는 변형시킬 수 있다.
래디칼은 알코올이 분해되는 전 과정에서 발생한다. NAD가 주변 물질로부터 수소(H)를 뺏어와 NADH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기도 하고, 알데히드 산화효소나 크산틴 산화효소에 의한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도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알코올은 몸의 약물 대사계를 활성화시켜 독성을 일으키기도 한다. 몸에서 알코올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알코올 탈수소 효소)의 양은 한정돼 있다. 따라서 알코올을 많이 섭취했을 때 이를 충분히 분해하기 위해 또다른 대사 과정(MEOS)이 필요하다. 이 대사과정은 평소에는 없다가 알코올이 많아질 때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다.
알코올 분해 촉진
MEOS는 여러가지 효소와 물질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시스템으로, 약물대사 효소인 시토크롬 P450이 핵심 요소다. 이 효소는 간에서 독성 물질을 무독화시키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러나 어떤 약물은 시토크롬 P450과 같은 무독화 효소에 의해 오히려 독성이 더욱 강력하게 변환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현재 진통제의 주성분으로 사용되고 있는 아세트아미노펜은 시토크롬 P450에 의해 맹독성의 물질(벤조퀴논)으로 변환된다. 또한 니트로소디메틸아민과 같은 발암 물질도 이 효소와 작용하면 활성을 나타내게 된다. 따라서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이 알코올을 섭취할 때 평소에 별문제가 없다가도 강한 약물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항알코올 음료는 알코올이 몸에 흡수되는 것 자체를 방해하거나 알코올 분해를 촉진시켜 독성을 억제한다. 알코올을 섭취하기 전에 우유를 마시거나 식사를 해 공복 상태를 피하는 것이나 술을 천천히 마시는 것은 알코올 흡수 자체를 늦게 일어나게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의 과학적인 근거는 알려진 것이 없다. 단지 경험적으로 볼 때 우유나 두유를 마셔 공복 상태를 피하면 알코올로부터 발생하는 위장 장애를 어느정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우유가 약알카리성이기 때문에 위가 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위산을 과다하게 분비하게 돼 오히려 몸에 해롭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판되고 있는 컨디션, 아스파, 비지니스, 비젼, 알지오 등은 알코올의 흡수 억제보다 흡수된 알코올이 빠르게 대사되는 일을 1차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음료들은 체내의 알코올과 아세트알데히드 농도를 빠르게 낮춤으로써 독성을 최소화시키고 숙취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실험상 규명되고 있다.
컨디션은 구루메(glumate)와 함께 과당, 벌꿀, 비타민 등이 주성분이다. 구루메는 쌀의 배아와 콩을 발효시킨 후 추출한 물질로서, 알코올의 흡수를 방해하고 알코올 대사가 빨리 진행되도록 유도하며, 알코올에 의한 위점막의 손상을 보호한다고 보고됐다.
아스파는 아미노산인 아스파라긴산을 주원료로 하고 비타민과 벌꿀을 함께 첨가했다. 주요 기능은 NADH를 NAD로 빨리 재생시켜 알코올 대사를 촉진시키는 일이다. 실제로 체내의 아세트알데히드 농도를 36% 정도 감소시킨다는 실험 결과가 보고됐다.
비지니스는 식물 발효액인 바이오짐과 함께 올리고당과 비타민 등이 주성분을 이룬다. 바이오짐은 시험관에서 알데히드 탈수소 효소의 활성을 14%까지 증가시킨다. 하지만 알코올 탈수소 효소를 활성화시키지는 못한다. 한편 생체에서는 알코올 대사를 촉진시킨다는 결과가 제시됐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항알코올 기능성 음료가 시판되고 있는데, 모두 이와 비슷한 메커니즘과 효과를 나타낸다고 보고되고 있다. 나아가서 이런 원리를 응용한 알코올성 질환 치료제도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남자가 여자보다 술이 센 이유
그러나 아직까지 기능성 음료들이 알코올의 다양한 독성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알코올을 분해시키는 능력은 사람마다 선천적으로 다르다는 점이 문제다.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의 구조나 양이 개인 또는 국가별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숙취의 주원인 물질로 알려진 것은 아세트알데히드. 그런데 서양인에 비해 동양인, 남자에 비해 여자의 경우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하는 효소가 유전적으로 부족하다. 서양에서 연구된 알코올 대사 과정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시켜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아세트알데히드 독성은 다른 알코올 독성에 비해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정확한 실험 모델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항기능 음료의 효과는 대부분 쥐를 비롯한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에서 추정된 것이다. 그런데 실험 결과가 일정치 않다. 학자마다 실험에 사용하는 쥐의 종류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알코올을 섭취시키는 양도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을 대상으로 알코올의 대사 과정을 정확하게 연구하는 일이 절실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