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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철새의 쉼터 홍도, 흑산도를 찾아서

온몸이 호랑이 무늬 깃털로 뒤덮인 새 한 마리가 텃밭 한가운데서 한가롭게 먹이를 찾고 있다. 며칠째 밤새 바다 위 수천km를 이동해오느라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인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흙 속에 사는 벌레를 분주히 찾는다.

이 새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한적한 무덤가 주위에 살며 밤마다 귀신 소리를 낸다고 해서 ‘귀신새’라고도 부른다. 해마다 이맘때면 수천km를 날아오는 ‘호랑지빠귀’다.

그 옆에서는 작은 새 서너 마리가 개의치 않고 먹이를 찾는다. 자세히 모습을 보려고 잠시 다가서면 너 나 할 것 없이 호들갑을 떨며 숨기 급급하다가도 이내 다시 밭으로 모여든다. 이런 풍경은 4~5월 홍도에서 익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지난 4월 14~16일 한반도 최대의 철새 휴게소인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와 흑산도를 찾았다. 이들 섬은 지난해에만 동남아시아와 필리핀, 멀리는 호주 북부에서 날아온 271종 30만 마리 이상의 철새가 머물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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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철새 80%가 두 섬 거쳐

전남 목포에서 104km 떨어진 작은 섬 홍도는 뭍에서 떠나는 배편이 하루 두 차례밖에 없을 정도로 외떨어져 있다. 그나마 올해 들어서는 궂은 날씨로 배편의 절반은 운항하지 못했다. 오후 1시 정각에 목포를 출발한 쾌속선은 3~4m의 높은 파도에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쳤다. 2시간 반을 달린 끝에 도착한 홍도는 때마침 내린 눈으로 섬 숲에 하얀 눈꽃이 만발했다. 평소 때면 상춘객들로 북적였겠지만 이날은 기상 관측 이래 22년 만에 4월 중 가장 늦게 내린 눈으로 섬은 온통 적막에 휩싸였다. 홍도는 겨울철에도 항상 푸른 잎의 상록수 숲으로 우거질 만큼 날씨가 온화하다.


1965년 4월 7일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170호로 지정됐다. 해안을 따라 펼쳐진 홍도 33경은 어떤 뛰어난 조각가도 흉내 낼 수 없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빼어나다.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갖가지 모양을 한 절벽과 남문바위, 병풍바위, 탕건바위, 심금리굴, 흔들바위, 기둥바위, 시루떡바위 같은 명소는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005년 홍도에 철새연구센터를 처음 설립했다. 면적 6.47km2의 작은 외딴 섬에 철새연구센터를 지은 연유는 무엇일까. 초대부터 지금까지 센터장을 맡고 있는 채희영 박사는 단연 ‘환상적인 지리적 여건’을 꼽았다.

“해마다 4, 5월이면 엄청난 수의 새들이 한반도로 들어오거나 시베리아로 넘어가기 전 잠시 쉬었다 가려고 이곳에 모입니다. 섬이 작고, 한꺼번에 많은 새들이 모이는 까닭에 집중적인 연구를 하기에는 최적의 공간입니다.”

실제 홍도는 대부분의 지역이 상록활엽수림이 울창하고 기암괴석으로 이뤄져 있다. 무엇보다 섬이 좁아 철새가 쉬어갈 수 있는 지역은 흑산 초등학교 홍도분교 주변의 초지, 산림 가장자리의 농경지에 불과하다. 철새가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에 이동성 조류의 개체군 변동, 종 수 변화를 파악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현재 한반도에서 관찰되는 조류는 약 500종인데, 이 가운데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철새는 약 380종으로 전체의 84.4%를 차지한다. 그중 80%인 353종이 홍도와 인근 흑산도를 매년 찾는다. 이맘때면 이름도 정겨운 개똥지빠귀를 비롯해 밭종다리, 유리딱새, 호랑지빠귀, 흰배지빠귀, 산솔새로 섬 곳곳에 생기가 돈다. 특히 홍도와 흑산도는 흰꼬리수리가 사는 서식지 가운데 세계적으로 위도가 가장 낮은 한계선에 속한다. 그만큼 서식지로서 보전 가치가 높다는 뜻이다.


동남아서 시베리아로 가는 길목

철새들이 이동하는 경로는 전 세계적으로 크게 3개로 나뉜다. 여름철 동남아시아와 필리핀, 호주 북부에서 출발해 시베리아로 이동하는 경로와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가는 경로, 남아메리카에서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하는 경로다. 겨우내 따뜻한 남쪽 지역에 머물던 철새들은 한결같이 적도와 남반구 저위도에서 북반구 고위도 쪽으로 이동한다. 철새의 이 같은 이동 특성에 대해 채 센터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시베리아의 툰드라 지역은 여름철 일시적으로 땅이 녹으면서 광범위한 습지를 형성하거나 울창한 숲을 이룹니다. 벌레 같은 새들의 먹잇감도 풍부해지지요.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이룹니다. 반면 남반구 대부분의 지역은 바다이다 보니 그런 여건이 되지 못합니다.”

홍도와 흑산도는 동남아시아에서 시베리아로 가는 요충지에 속한다. 이들 철새 중 대부분이 서해안을 통과하는데, 한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홍도와 흑산도는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철새의 중요한 길목에 해당한다.

인도차이나 반도와 필리핀을 출발한 철새들은 몇 날 몇 밤 수백~수천km 바다 위를 날아 북쪽으로 이동한다. 호주에서 출발한 도요새의 경우 쉬지 않고 한번에 7000~8000km를 날아 이동하는 습성이 있다. 대개는 평균 시속 60~70km 속도로 이동하다가 중간 중간 섬에 들러 허기를 달래고 지친 날개를 쉬곤 한다. 중국 남동부나 대만, 필리핀에서 출발한 새들이 천적을 피해 밤새 날아오다 만나는 섬이 바로 홍도와 흑산도다. 흑산도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 동부해안도 500km나 떨어져 있다.

일단 ‘입도(入島)’에 성공한 새들은 2~3일간 머문다. 물론 섬에 사는 매나 흰꼬리수리 같은 맹금류에게 잡아먹히는, 운 나쁜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서둘러 휴식과 영양 보충을 하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모니터링 하고 오겠습니다.” 아침 9시경 빙기창 연구원이 쌍안경과 커다란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집어 들고 분주히 나선다. 그는 발을 딛기에도 좁은 산비탈을 성큼성큼 걸어 오른다. 그러더니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밭 주변 숲 한쪽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철새 팀은 하루 최소 2번 이상 섬 곳곳으로 정찰을 나간다. 철새 모니터링은 센터가 하는 가장 주요한 업무 중 하나다. 간밤에 새로 들어온 종이나 떠난 종, 또는 개체 수를 알아내려면 모니터링이 필수다. 굶주리거나 너무 지쳐 쓰러져 있는 새를 찾아내 구조하기도 한다. 기자가 넌지시 “취재가 연구에 큰 방해가 되지 않느냐”며 질문을 던지자 빙 연구원이 “물론 방해는 된다”며 빙긋 웃는다.

“새들은 소리보다는 순간적인 행동이나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멀리서 아무리 ‘왁왁’ 소리를 쳐도 도망가지 않아요. 하지만 보세요. 이렇게 갑자기 다가서거나 움직이면 날아갑니다.”

2007년부터 철새연구센터에 합류한 빙 연구원은 “모니터링을 할 때는 눈과 귀를 활짝 열고 크게 훑어야 합니다. 마치 가급적 눈을 크게 하고 전체 그림을 보는 매직아이를 하듯 말이죠. 거의 모든 감각을 열어둬야 합니다”고 말했다.

카메라를 꺼내 모습을 담으려는 순간 그의 시선이 또 한 방향에 꽂힌다. “작은 새들은 수풀 속에 숨어 있어서 일반인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요. 새들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모습을 볼 수 있지 무턱대고 돌아다닌다고 새를 보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동정(새의 종을 파악하는 일)’은 전문가 중 전문가가 아니면 하기 힘들다. 새 모습과 소리, 행동거지를 순간적으로 보고서도 그 종류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새 도감을 줄줄 외운다고 해도 실제 자연에서 오랫동안 관찰하지 않고서는 새의 습성을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새의 종류에 따라 몸집이 큰 경우 이동과정에서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V’자형으로 이동한다. 반면 딱새처럼 작은 새들은 양떼처럼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습성이 있다. 작은 새들의 경우 천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비정형의 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사실을 오랜 진화 과정에서 터득한 셈이다.

대학 학부 때부터 10년 가까이 새를 봐 왔다는 빙 연구원도 여러 번 낙방한 끝에 센터에 합류했다고 한다. 빙 연구원은 선후배 연구원들 사이에서 가장 새를 잘 보는 베테랑으로 불린다. 멀리 밭 한가운데서 순간 ‘파드득’ 하고 날아가 버리는 작은 새를 가리키자 신기하게도 단번에 이름을 알아맞힌다. “유리딱새네요.” 딱새과의 이 새는 섬을 찾는 여러 새 중에서도 가장 빨리 찾아온다.


철새 연구 기본은 가락지 부착

1시간가량 모니터링을 마치고 센터로 돌아오자 남현영 연구원과 센터 막내 서슬기 연구원이 새 한 마리를 손에 쥐고 뭔가를 하고 있다. 호랑지빠귀에 가락지를 부착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한쪽에선 흰 천 자루 안에 갇힌 새 몇 마리가 답답한지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남 연구원이 은색의 가락지로 새의 부척(정강이뼈와 발가락 사이 부분)을 감싸더니 펜치로 단단히 조인다. 새의 가냘픈 다리가 부러질 것처럼 위태위태해 보였지만 웬일인지 손에 쥔 새는 얌전했다. 가락지가 단단히 고정된 것을 확인하자 눈금자로 부리 길이, 부리부터 꼬리까지의 길이, 날개 길이를 차례로 조심스레 측정했다. 전자식 쟁반저울로 몸무게도 쟀다. 남 연구원이 키를 말하자 서 연구원이 복창하며 20여 항목에 숫자를 받아 적는다. 남 연구원이 잠시 새를 들여다보는 사이 일본에서 온 오구라 타케시 연구원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가락지는 철새의 이동 경로나 성장, 행동을 연구하는 각국의 연구자들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가락지에는 국명과 8자리의 일련번호로 이뤄진 고유번호가 적혀 있다. 연구자들은 포획한 새에게 가락지를 붙이고 20가지가 넘는 신체 특성을 기록한 뒤 이를 저장해둔다. 만에 하나 다른 나라나 지역에서 이 가락지를 붙인 새를 발견한 발견자들이 문의해올 것을 대비해서다. 새를 포획한 사람이 가락지에 고유번호를 붙인 기관에 새가 처음 포획됐을 당시 상태를 문의하고, 현재 상태를 전해주는 과정에서 새의 이동 경로나 발육상태 등 다양한 정보 교류가 이뤄지기 때문에 가락지 부착(일명 밴딩)은 철새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에 속한다.


실제로 센터 연구진은 2008년 텃새로 알려진 바다직박구리가 1255km나 날아간다는 사실도 처음 밝혀냈다. 철새연구센터는 2005년부터 최근까지 183종 1만 5500마리에 가락지를 부착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락지 부착을 할 수 있는 전문가는 센터 연구자들과 일부 대학의 연구자가 고작이다.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반면 미국과 유럽, 일본처럼 철새 연구가 앞선 나라들은 가락지 부착을 문화 생활로 즐길 만큼 층이 넓다. 이웃나라 일본은 가락지 부착을 하는 전문가들만 3000명에 이를 정도로 층이 두껍다.

그래서 센터 연구자들은 마음이 바쁘다. 적은 인원으로라도 더 많은 가락지를 부착하려는 욕구가 앞선다. 흑산도팀 소속 김성진 연구원은 “가급적 많은 새들에게 가락지를 부착하기 위해 밤낮없이 작업하고 있다”고 말한다.

2005년 처음 문을 연 이후 철새연구센터는 하루도 문을 닫은 때가 없다. 모니터링과 밴딩은 1년 365일 내내 이뤄지기 때문이다. 여름철새들이 지나가는 4, 5월과 다시 내려가는 9, 10월은 철새 연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이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눈코 뜰 새가 없다. 이날도 가락지 부착 작업은 아침 6시 반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철새가 오는 철이면 24시간 가락지를 부착하는 경우도 있다. 매일처럼 30분에 한 번씩 센터 주변에 설치한 안개 그물에 포획된 새를 안전하게 센터까지 가져오는 일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행여 새를 그물에서 떼다가 다리가 부러지거나 날개가 꺾여 다치는 일이 없도록 새를 가져오는 일은 베테랑급 연구원들이 맡는다.




고양이에 먹히거나 건물 유리창에 부딪치거나

홍도는 사시사철 푸른 나뭇잎을 볼 수 있는 상록수로 우거져 있다. 소나무를 비롯해 동백나무, 보리밥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돈나무 등 각종 나무와 풀만 545종이나 산다. 또 홍도비비추, 홍도원추리, 홍도서덜취처럼 섬 안에서만 자생해 이름 앞에 ‘홍도’가 들어 있는 식물도 많다. 홍도 자생풍란은 과도한 채취로 지금은 섬 주변에서 흔히 볼 수는 없지만 아직도 수집가들 사이에선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

대다수 새들이 벌레를 잡아먹지만 나무 열매도 지친 새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다. 보리밥나무의 열매도 그중 하나다. 일명 ‘보리똥나무’라고도 불리는 이 나무는 덩굴나무의 일종으로 홍도를 비롯한 해안가 일대에 서식한다. 늦봄인 4~5월경 가지에 크고 붉은 타원형 열매를 맺는데, 그 맛이 달콤하면서도 새콤해 사람이 먹어도 손색이 없다. 보리밥나무 열매는 기나긴 여행을 하는 붉은부리찌르레기 같은 새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기도 하다. 열매 속 당분이 기나긴 날갯짓 끝에 섬에 도착한 지친 새들에게는 높은 열량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씨앗이 더 영글고, 섬을 찾는 철새들이 느는 5월경에는 새들이 열매를 따 먹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얼마 전 센터 연구자들은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철새들이 보리밥나무의 생장과 번식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열매를 먹은 새들은 섬 곳곳에 배설물을 떨어뜨리면서 배설물 속에 섞여 있는 보리밥나무 열매 씨를 널리 퍼트리고 있었다. 게다가 배설물에 섞여 있는 씨앗은 보통 씨앗보다 성장 속도가 훨씬 빠르다. 채 센터장은 “새가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씨앗 주변의 불필요한 물질이 없어지고, 따뜻한 체내에 있으면서 성장이 촉진된 것으로 보인다”며 “새와 나무가 서로 생존을 위해 공생하고 있는 흥미로운 결과”라고 말했다.

최근 홍도와 흑산도는 때 아닌 홍역을 치르고 있다. 들고양이 개체가 급격히 늘면서 지쳐 쉬고 있는 새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살아온 족제비는 스스로 개체 수가 조절이 되지만 고양이는 인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섬에 버려진 고양이나 배를 타고 흘러들어온 고양이가 날갯짓을 하기도 어려운 지친 철새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으면서 철새의 서식 환경에 심각한 위협으로 떠올랐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면적이 좁은 홍도는 최근 들어 개체 수가 조절되고 있지만 흑산도는 섬 깊이 숨어버리는 말썽쟁이 고양이들로 아직도 골머리를 썩고 있는 실정이다.

건물 유리창에 부딪쳐 목숨을 잃는 새도 해마다 늘고 있다. 일명 ‘윈도스트라이크(Window Strike)’로 불리는 충돌사고다. 흔히 공항 주변에서나 일어날 법한 사고지만 최근 홍도와 흑산도에서도 점차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두 섬을 찾는 관광객이 해마다 늘자 관광지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벌어지고 있는 기현상이다. 건물 외관을 예쁘게 하기 위해 설치한 대형 유리창이야말로 새들에겐 가장 치명적이다. 유리창에 섬 반대편의 숲이나 바위, 바다가 반사된 모습을 보고 착각을 일으킨 새들이 그대로 날아가다 머리를 부딪쳐 아까운 생명을 잃는 것이다. 대부분 목숨을 잃지만 센터로 구조돼 들어와 치료를 받은 새들도 10마리 중 한두 마리만이 겨우 목숨을 건진다.


GPS로 희귀종 슴새 경로 처음 밝혀

철새의 이동과 생활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많다. 흑산도팀을 이끌고 있는 홍길표 팀장은 “철새에게 가락지를 붙인다고 해도 중간에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이동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연구진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철새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위치 정보를 무선 신호로 보내는 작은 단말기를 새의 등에 달아 필요할 때마다 위치를 알아내는 방식이다. 최소 12시간 단위로 위치를 알아낼 수 있어 이동 경로를 연구하는 데 효율적이다. 센터는 2008년부터 이 단말기를 희귀종인 슴새 10마리와 흰꼬리수리 등 13마리에 달아 경로를 추적했다. 그리고 지난해 희귀종 슴새의 이동경로를 처음으로 밝혀냈다. 슴새는 3월~10월 우리나라에 머물며 번식하다가 동아시아 지역 무인도로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위성 추적 결과 전남 신안군 칠발도에서 태어난 새끼들이 22일간 3600km를 날아 싱가포르와 베트남뿐 아니라 필리핀에서도 겨울을 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슴새가 두 갈래로 갈라져 인도차이나 반도는 물론 필리핀 쪽으로도 이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GPS를 이용한 연구 역시 한계는 있다. 위치추적을 할 때마다 줄어드는 배터리 수명 때문에 연구할 수 있는 기간이 1년을 넘기기 힘들다. GPS단말기를 묶었던 끈이 중간에 풀리거나 천적에게 잡아먹혀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홍도와 흑산도를 찾는 철새들이 대부분 1년생이라는 점도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다. 실제 홍도에서 해마다 포획되거나 관찰되는 철새들 가운데 태어난 지 2~3년 된 성조(成鳥)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대해 홍 팀장은 “일부 새들은 무리 내에 암수의 성비(性比)의 편차가 크거나 암수가 따로 다른 경로로 이동하다 번식지에서 만나 짝짓기 하는 경우가 있다”며 “아마도 새들이 연령별로 다른 무리를 지어 이동하거나, 다른 경로로 이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철새의 특성은 한두 해 관찰해서는 알아내기 힘들다”며 “특히 지구온난화의 영향 문제는 최소 10년 이상 연구해야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7월 철새연구센터, 흑산도로 확장 이사

홍도는 습지가 있는 흑산도와 달리 빗물이 그대로 스며드는 지질 때문에 물이 절대적으로 모자란다. 한 주에 한 번 담수화 시설에서 물을 공급받아 아껴 쓰거나, 빗물을 받아 사용해야만 한다. 매일처럼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는 일은 홍도에서는 사치에 가깝다. 게다가 섬 안에는 차가 한 대도 없기 때문에 생활필수품을 좁은 골목길을 따라 섬 중턱까지 직접 지고 올라와야 한다. 연구자들의 고충도 그만큼 크다. 외딴 섬이다 보니 연구원 한 명을 빼고는 몇 년째 가족들과 떨어져 산다.

섬 주민들은 센터 연구원들을 ‘철새팀’, ‘철새’라고 부른다. “출장 갔다 왔나. 안 보이데.” “철새, 오늘 회식상 뭐로 준비해줄까.” 섬 곳곳을 촘촘히 이어주는 작고 아담한 골목길에서 만난 주민들은 마치 동생이나 아들, 딸을 대하듯 안부를 물었다. 뭍에서 오는 관광객을 제외하고 고작 300~400명이 사는 작은 섬에서나 볼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섬 주민들이 철새팀을 반겼던 것은 아니다. 센터가 섬에 생길 때만 해도 주민들의 반대는 거셌다. 섬 주민들은 뭔가 규제를 할 것 같은 기관이 들어온다는 데 심한 거부감을 보였다고 한다. 생계를 위해 자연을 이용해야 하는 주민의 입장에선 그러는 것도 어쩌면 당연지사다. 채 센터장을 비롯해 젊은 새 연구자들은 주민을 만나며 일일이 설득해야 했다. 그리고 오해는 금세 풀렸다.

노형수 연구원은 “지금은 반찬도 나눠 주고, 새가 죽어 있거나 다쳐 떨어져 있으면 주워서 갖다 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섬 생활은 물론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수의사 출신의 김희종 연구원은 “섬 주민들이 땅에 떨어진 다친 새를 직접 데려오거나 안 보이던 새를 보면 연락을 해온다”며 “센터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철새 연구는 중요한 의미를 띤다. 조류독감(AI) 바이러스를 비롯해 살모넬라나 대장균의 일종인 O-157이 철새를 통해 전염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각국은 비상이 걸렸다. 국내에서도 2005년 전 세계에 AI 바이러스가 확산돼 철새를 통한 전염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철새 연구의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약 1200마리를 포획해 분석한 결과 다행히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특히 장거리를 날아 서식환경이 다른 지역을 경험하는 철새들은 기후 변화나 해당지역의 환경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바로미터’나 다름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나라별 환경을 평가하는 환경지속성지수(ESI)에 철새를 주요 기준을 삼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철새 연구는 막 걸음마 단계로 들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까지 전국을 통틀어 철새를 관찰하는 전문 연구시설은 철새연구센터 단 한 곳뿐이다. 전국에 3000개 이상의 철새 관련 시설을 운영하는 미국은 물론, 60개 이상의 연구시설과 엄청난 마니아 집단을 보유한 일본, AI 바이러스 확산을 감시하기 위해 최근 시설을 70곳에서 550곳으로 늘린 중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들 나라는 50~100년 가까운 연구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홍길표 팀장은 “홍도와 흑산도 외에도 국내 섬 10곳 정도에 모니터링과 밴딩을 담당하는 팀을 파견하는 수준 정도 돼야 세계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올 7월 철새연구센터를 홍도에서 흑산도로 옮긴다. 현재 흑산도 흑산면 진리 배낭기미 습지 일대에는 센터가 옮겨 들어갈 2층짜리 신축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새로 마련된 센터에는 그간 공간 부족으로 한 사무실에서 해결해야 했던 여러 연구들을 나눠서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 철새의 계통을 연구하기 위해 꼭 필요한 DNA분석실과 구조된 새가 쉴 수 있는 공간도 처음 마련했다. 채희영 센터장은 “새로 짓는 센터가 완공되면 센터 소속 연구자들 외에 철새 연구를 하고 싶은 과학자들의 방문 연구가 가능해져 철새 연구가 더 활성화될 것”이라며 “철새 관찰과 연구의 저변 확대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3일간 함께 지낸 철새 연구자들의 바람은 거의 하나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새를 기피대상이나 사냥감으로 보지 않고 우리 주변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를 찾는 새들에 대한 폭넓고 과학적인 연구가 이뤄지도록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다.

“한 번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여보세요.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새 소리가 들리고 있는지요. 세상이 다르게 느껴져요.”

흑산도를 떠나기 전 새로 개통한 흑산도 일주도로에서 만난 흑산도 철새팀의 막내 김우열 연구원이 던진 의미심장한 말이다.


 
철새가 이동하는 법

철새는 번식지와 멀리 떨어진 비번식지를 1년에 1번 이동한다. 대개 날씨가 바뀌고 먹이가 부족해지면 계절에 따라 사는 곳을 옮긴다. 새들이 방향을 찾는 데는 다양한 감각을 이용한다. 태양이 비치는 방향을 나침반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지구 자기장의 방향을 길잡이의 근거로 활용하기도 한다. 또 때에 따라서는 계절에 따른 바람 방향을 근거로 한다는 견해도 있다.

철새의 이동 본능은 유전적인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동 방법도 제각각이다. 작은 새들은 천적의 눈을 피해 주로 무리를 지어 밤새 이동한다. 일부 새들은 2~3마리에서 10여 마리씩 독립적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맹금류와 같은 새들은 상승기류를 이용해 날아올랐다 활공하는 방식으로, 일부 새들은 바다 위 파도가 형성하는 기류를 타고 마치 ‘위그선(파도가 만드는 기류를 이용해 바다 위로 2~3m 가량 떠서 이동하는 배)’처럼 미끄러지듯 이동한다.
 
 
한반도 철새 연구자는 ‘멸종위기’

“바이오 분야가 뜨면서 생물학을 전공한 학생들 대다수가 조류 연구에 필요한 표본학이나 분류학 같은 학문을 전공하기보다 분자생물학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요.”

최근 한반도 철새 연구는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 1960~1970년 대 1세대인 원병오 경희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윤무부 경희대 교수, 권기정 동아대 교수, 조삼래 공주대 교수, 이두표 호남대 교수, 이우신 서울대 교수 등 쟁쟁한 석학들이 서서히 일선에서 물러나는 상황에서 후학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1990년대 들어 바이오산업과 제약산업이 주목을 받으면서 유전자와 단백질을 연구하는 분자생물학이 뜨고 그로 인해 분자생물학 분야로 인력이 대거 몰리면서 벌어진 고질적인 편중 현상은 한국의 철새 연구를 멸종 직전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금은 학회를 열어도 많아야 70~80명이 모이는 게 고작이다. 그나마 현장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들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철새연구센터만 해도 채 센터장과 함께 원년 멤버인 홍길표 팀장과 그 바로 아래 세대인 김성진 연구원이 9학번이나 세대차가 난다. 국내에 박사 과정조차 없고 환경이 열악한 외딴 섬에서 연구를 해야 하는 환경도 젊은 연구자들이 연구를 계속 이어나가게 하는 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 학계의 고척추생물학, 동식물 분류학 등 생물학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어서 소수학문을 보호하고 학문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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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박근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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