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규모 7.0), 칠레(규모 8.8)에 이어 터키(규모 6.0)와 대만(규모 6.0)에 이르기까지 최근 석 달 새 큰 지진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면서 지구에 무슨 변고가 생긴 게 아닌지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앞으로도 강진이 계속해서 일어날까. 최근 지진에서 이슈로 떠오른 궁금증을 풀어보고 지진 예측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지 알아보자.
<;궁금증 1>; 계속된 강진, 이상 현상인가
한 달이 멀다 하고 계속해서 들려오는 지진 소식에 사람들은 ‘빙하기’ 같은 ‘지진기’가 온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정말 최근 들어 지진이 많이 발생하고 있을까. 기상청과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지진 횟수에 관한 한 통계적인 증가세를 발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수치상으로는 계속 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과거보다 관측소의 개수가 늘고 장비가 발달해 예전에 탐지되지 않던 작은 지진들이 기록으로 남은 영향이 크다는 것. 현재 전 세계에서 운영되는 지진관측소의 수는 약 8000개로 1931년 350개에서 20배 이상 증가했다. 또 지진 기록을 보면 규모 3.0 이하의 미소한 지진은 크게 늘어난 반면, 규모 4.0 이상은 큰 변동이 없다는 점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지진의 규모도 최근 지진이 역대 지진보다 강력했다거나 특별히 강진만 발생하지도 않았다. 인명피해가 커 주목을 받았지만 아이티 지진 같은 규모 7.0~7.9의 지진은 매년 17회 정도 일어나고, 칠레 지진 같이 규모 8.0 이상의 지진도 매년 1회 정도는 일어난다. 즉 엄밀히 말해 최근 지진들이 이상 현상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횟수나 규모가 아니라 ‘규모 6.0 이상의 강진이 비슷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는 데 있다.
이를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은 “우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기상청 지진감시과 유용규 사무관은 “작년에 비해 올해엔 규모 6∼7 사이의 지진이 조금 증가한 감이 있지만 7 이상의 지진은 거의 평년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그 외 지각판의 활동 정도가 특별히 증가했다는 근거는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USGS는 “6∼7 사이의 지진이 연초에 많이 기록된 이유는 칠레 지진 뒤 인근 지역에 여진이 계속됐기 때문”이라며 “이 규모의 지진은 한 해 평균 134회, 즉 일주일에 2회꼴로 발생하므로 집중도가 크게 증가했다고도 볼 수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칠레 지진 뒤에는 강진이 집중되는 시기가 올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의 홍태경 교수는 “지난 110년 동안 14번 일어난 규모 8.5 이상의 초대형 지진 중 6번은 1950년과 1964년 사이에, 4번은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 뒤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며 “초대형 지진은 시기적으로 집중돼 발생하는 현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초대형 지진이 발생할 때 나온 거대한 응력이 다른 지역에 쌓이면서 새로운 지진을 유발한다는 주장이다. 응력은 쉽게 말해 땅을 변형시키는 힘이다. 홍 교수는 “응력은 연쇄적으로 인접지역으로 전파되면서 전 지구적으로 응력 균형을 찾는 데 얼마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10~15년 동안은 대형 지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궁금증 2>; 아이티 지진이 칠레 지진 일으켰나
대규모 지진은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의 지진을 유발할 수 있다. 지진이 발생하면 쌓여 있던 응력이 한꺼번에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이때 규모가 작은 지진의 응력은 주변까지만 퍼지지만, 칠레 지진급 대형 지진의 응력은 지구를 3바퀴 이상 돌아도 파동이 살아 있을 정도로 매우 크다. 지반이 약한 곳이나응력이 쌓여 있는 지역에 이 응력이 도달할 경우 갑자기 커진 응력을 견디지 못하는 암반은 찢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지진이다.
하지만 아이티와 칠레의 경우는 위치와 규모로 볼 때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들은 “아이티 지진은 유래 없는 사상자를 낸 큰 지진은 맞지만 칠레까지 도달할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고, 규모 7.0의 지진(아이티)이 규모 8.8의 지진(칠레)을 유발하지는 못한다”고 설명한다.
관련성을 규명하는 작업도 쉽지 않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박창업 교수는 “아이티와 칠레에 지진을 일으킨 판은 서로 다르고 그 거리가 상당히 멀기 때문에 관련성을 찾아 이를 증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물론 큰 지진의 여파가 땅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만든다는 가능성은 적지 않다. 최근 주요 과학저널에는 큰 지진과 그 뒤 발생한 지진 사이에 연관성을 발견했다는 결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2009년 9월 ‘네이처’에는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발생한 규모 9.1의 초대형 지진이 8000km 떨어진 북미 산안드레아스 단층과 남미 칠레 단층을 약하게 만들었다”는 논문이 실렸다. 단층이 약해지면 응력의 변화에 취약해져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세스 스테인 교수도 2009년 11월 ‘네이처’에서 “최근 많은 지진들은 과거 수백 년 전에 일어났던 거대한 지진들의 여진일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대부분의 강진들은 판의 경계면에서 일어나지만 아무런 규칙적인 움직임이 없는 곳에서도 작은 지진들이 일어난다”며 “만약 응력이나 지나가는 지진파 때문이 아니라면 이는 여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요즘도 캐나다의 세인트로렌스 계곡에서 작은 지진들이 일어나는데, 이곳은 1663년에 거대한 지진이 있었던 곳”이라며 “여진은 점차 잦아든다”고 밝혔다.
왜 규모 7.0인 아이티 지진이 규모 8.8인 칠레 지진보다 피해가 컸을까
칠레 지진은 아이티 지진보다 규모가 1.8 크지만 에너지는 약 500배 셌다. 규모가 1 증가할 때 에너지는 32배씩 커지기 때문이다(로그스케일). 하지만 칠레 지진의 사망자는 아이티 지진의 약 0.3%에 지나지 않았다. 왜 이런 엄청난 차이가 난 걸까.
지진공학자들은 두 지역 건물의 내진(耐震) 설계 차이를 이유로 들었다. 칠레는 그동안 지진 피해가 잦아 건물에 내진 설계가 잘 돼 있는 편. 덕분에 큰 지진에도 건물들이 견딜 수 있었다. 반면 아이티의 건물은 내진 설계는커녕 소금기 있는 모래와 함량 미달의 철근으로 지어 규모 7.0의 지진에도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사상자가 크게 늘었다. 한마디로 인재가 부른 참극이었다.
아이티 지진의 진원이 인구 밀집지역과 가까웠던 점도 사망자가 크게 난 이유이다. 진원은 지구 내부에서 지진이 처음 발생한 지점이고 진앙은 진원 바로 위의 지표상 지점이다. 지진 피해 정도는 진원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에 따라 매우 다르다. 지진 에너지는 지진파 진폭의 제곱에 비례해 커지고, 이 진폭은 진원으로부터 피해지점까지의 거리에 반비례한다.
즉 진원으로부터 전해지는 지진 에너지는 진원으로부터의 거리 제곱에 반비례해 작아지는 셈이다. 따라서 칠레 지진의 주요 피해지역인 콘셉시온은 진앙으로부터 115km 떨어지고 진원 깊이가 34km에 달해 규모에 비해 전달된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작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티의 경우는 진앙에서 피해지역인 포르토프랭스까지 거리가 16km이고 진원 깊이는 13km에 불과해 지진의 위력이 막대하게 전달됐다. 이 강력한 지진은 인구밀도가 높은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무참히 파괴했다.
<;궁금증 3>; 과거 몇 세기 동안 큰 지진이 없었어도 큰 지진 일어날까
큰 지진 전에는 몇 가지 전조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전진(前震)이다. 전진은 거대한 단층면 중에서 일부분이 응력을 견디지 못해 작은 규모로 일어나는 지진이고 본진은 거대한 단층면이 한꺼번에 쪼개지거나 밀려서 나타나는 지진이다. 마치 우표를 뜯는 상황과 비슷하다.
‘톡톡’ 하고 우표의 이음새 하나를 뜯는 게 전진, 한꺼번에 우표 하나를 뜯어내는 게 본진에 해당된다. 단층면의 지질구조와 성분은 균일하지 않기 때문에 작은 지진과 큰 지진은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다. 따라서 작은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은 큰 응력이 쌓여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큰 지진이 이어 날 확률이 다른 곳보다는 크다.
하지만 큰 지진이 매번 전조 현상을 대동하고 발생하지는 않는다. 또 규모가 큰 지진이 일어난 적이 없는 지역에서도 큰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 중국 롱멘산 단층대에서는 2008년 규모 7.9의 쓰촨성 지진이 나타나기 전까지 수 세기 동안 규모 6.0 이하의 작은 지진은 일어났지만 규모 7.0 이상의 큰 지진이 발생한 적은 없다.
세스 스테인 교수의 주장처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작은 지진’은 큰 지진의 여파가 지나가며 일으키는 여진일 수 있다. 또 암반이 응력을 견디는 능력에 따라 오랫동안 소리 없이 응력을 쌓아 두다가 한꺼번에 큰 지진으로 터질 수도 있다. 따라서 현상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암반층의 구조가 지각판의 경계부인지 또는 내부인지, 과거에 지진이 있었던 단층지반인지, 지각판이 움직이는 방향과 힘이 어떠한지 파악해야 한다.
<;궁금증 4>; 지진을 미리 예측할 수는 없나
현재 어떤 기관과 정부도 지진이 발생할 시간과 위치를 성공적으로 예측하는 곳은 없다. 지진학자들은 지진계로 측정한 땅의 움직임, 단층의 구조, 지진의 주기를 연구해 ‘수십~수백 년 내에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정도로 대략적인 위험성을 알리는 수준이다.
과거 문헌을 토대로 산출한 주기도 정확하지는 않다. 과거 기록은 주로 인명 피해나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기록돼 누락되거나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일본 같이 지각판이 비교적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곳에서는 100년 설, 120년 설 같은 주기설로 지진을 예측하고 있지만 정확도는 10%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진학자들은 “지진에 주기성이 있다”고 말한다. 지각판이 일정한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정기간 응력이 쌓이고 풀리면서 지진이 반복되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현대 지진학자들은 탄소동위원소 연대측정법 같은 연대 측정 기법으로 과거 지진의 발생 지역과 시기를 찾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 지진학계에서는 지진을 유발시키는 요인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기후변화도 그 요인 중 하나이다. NASA와 USGS는 “앞으로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으면 알래스카 남부지방에 지진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고 저널 ‘세계와 행성변화’ 2004년 7월호에 발표했다. 빙하가 녹아 지각과 이루고 있던 힘의 균형이 깨지면서 지각의 응력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 NASA와 USGS는 과거 빙하기가 끝날 무렵 스칸디나비아에 지진이 많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인간의 활동이 지진과 무관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광산에서 이뤄지는 폭발이나 지하 핵실험이 주변 지역의 지진횟수를 증가시켰다는 연구가 있으며, 지하수가 이동함에 따라 지질 구조가 변해 지진이 발생한다는 연구도 있다. 또 1967년에 인도 코이나댐이 완공되고 얼마 안 있어 이 지역에 규모 6.5의 지진이 발생하자 일부 지진학자들은 “기반 암석층이 저수량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깨진 틈새로 물이 스며들어 단층활동을 활발하게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에도 중국이 세계 최대 규모의 쯔핑푸댐을 완공한 뒤 쓰촨성 지역에 지진이 일어나 논란이 가중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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