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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수술 후 피와 세포가 엉겨 붙으면서 장기가 서로 붙을 수 있습니다. 이 재료를 장기 사이에 끼우면 유착을 방지할 수 있죠. 기존보다 성능이 더 좋은 지혈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지구상에 가장 풍부한 천연 고분자
그가 내민 재료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플라스틱 원통 안에 든 딱딱한 조각은 새로 개발한 인공 뼈였다. 물에둥둥 뜰 만큼 구멍이 많았는데, 강도는 기존 인공 뼈보다 높다고 했다. 책상 위에는 손바닥 만한 크기의 알루미늄 호일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냥 호일이 아니었다. 양쪽에 전선을 물리자, 회로 가운데에 연결된 꼬마전구에 불이 들어 왔다. 나노셀룰로오스로 만든, 접을 수 있는 배터리였다.
병원이나 대학 전자공학과 연구실에서 볼 법한 물건들이 왜 산림과학원에 있는 걸까. 놀랍게도, 이들 재료는 모두 나무에서 왔다. 바로 나노셀룰로오스다. 나노셀룰로오스는 식물 세포벽의 주성분인 셀룰로오스를 나노(10억 분의 1m) 수준으로 분해한 천연 고분자다.
“2000년대 중반에 전세계 제지업계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활발하게 논의했어요. 동시에 친환경 바이오 소재와 나노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죠. 두 접근법이 만나 나노셀룰로오스를 연구하기 시작한 겁니다.”
윤혜정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노 소재라고 하면 주로 탄소나노튜브나 나노점토 등 무기물을 뜻했다. 그런데 나노셀룰로오스라는 천연 유기물이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다. 한국은 2007년쯤 연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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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목재 펄프를 물에 농도 2% 정도로 풀어낸 뒤 구멍이 미세한 체에 통과시키면, 잘게 찢겨 나노 섬유가 된다. 산을 쓰는 방법도 있다. 셀룰로오스의 분자 구조는 결정질과 비결정질이 번갈아 손을 잡고 있는데, 이를 황산용액에 넣으면 상대적으로 약한 비결정질이 녹으면서 결정만 남는다. 결과물은 각각 섬유와 결정이지만, 둘 다 물에 떠 있는 부유액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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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독성 밝히고 안전 기준 합의해야
인체에 독성은 없을까. 원재료는 인체에 해가 없더라도 나노 크기로 바뀌면서 독성을 나타내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학술지 ‘산업생명공학’ 2015년 2월 17일자에 실린 리뷰 논문에 따르면, 나노셀룰로오스는 다행히 먹거나 피부에 닿는 것은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문제는 호흡을 통해 폐에 들어가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연구의 수가 적고, 그마저도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 요컨대, 연구가 많이 되지 않아 나노셀룰로오스가 폐에 무해한지 아닌지를 말할 수 없는 단계라는 뜻이다. 이 연구관은 “지금은 실험실 수준에서 부유액 상태로만 활용하고 있지만, 실제 제조공정에서 분말 상태로 이용하면 근로자의 폐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며 “현재 여러 나라가 협력해 안전 기준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상업화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기술적인 문제도 있다. 복합소재로 활용하려면 나노셀룰로오스와 플라스틱을 섞어야 한다. 그런데 나노셀룰로오스는 물과 잘 결합하는 특성을 지닌 반면, 복합소재에 많이 쓰는 플라스틱 수지는 물과 결합하지 않는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둘이 잘 섞이지 않는다. 현재는 나노셀룰로오스의 표면이 물을 튕겨내는 성질을 갖도록 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제지공학계 일부만 연구하던 나노셀룰로오스를 최근엔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 대학과 연구소 실험실에서 다양한 연구 성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환경과 인체에 무해해 소비자가 선호할 거라는 기대감도 있다.
특히 최근 2년 사이에 민간업계의 참여가 늘었다. 국내에서는 특수지 제조업체인 무림P&P가 국립산림과학원과 함께 2022년까지 나노셀룰로오스를 하루 1t씩 생산하는 설비를 구축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생산 원가를 줄이고 균일한 생산품을 만드는 게 목표다. 윤 교수는 “나노셀룰로오스 기술이 무르익기 시작했다는 뜻”이라며 “현재 뚜렷하게 앞서 나가는 국가가 없는 만큼, 한국도 투자해 연구를 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 읽을거리
Keun-Ho Choi et al. ‘Heterolayered, One-Dimensional Nanobuilding Block Mat Batteries’(doi:10.1021/nl5024029)
in 과학동아 31년 기사 디라이브러리(정기독자 무료)
로봇과 스피커, 종이로 만든다(2008.3) 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0803N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