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의사결정 과정의 연속에서 펼쳐진다. 순간의 선택부터 신중한 생각 끝에 내린 판단까지 우리의 의사결정은 얼마나 합리적이며 또 타당한가.
이 세상 모든 일의 주체는 인간이다. 즉 인간의 의사결정에 의해 모든 것이 기획되고 구현된다. 그렇다면 우리네 의사결정은 항상 믿을만한 것일까. 의사결정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특정 과제가 주어질 경우 자신의 내적, 외적 정보 처리량을 줄이기 위해 ‘어림짐작의 법칙’(rule of thumb, heuristic)을 이용한다고 한다. 대다수의 경우 이런 어림짐작의 법칙은 현실의 수많은 제약 조건 하에서 효과적 결론을 도출시켜 주는 훌륭한 방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어림짐작’은 때때로 ‘어림 반푼어치도 없음’을 양산하기도 한다. 이른바 체계적인 ‘인지적 오류’(cognitive bias, 인지적 편견)를 발생시켜 그릇된 의사결정을 유도하게 되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지 다음에 제시되는 5개의 퀴즈를 통해 우리의 판단, 그리고 의사결정 능력을 진단해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의 말처럼 인간의 합리성이 제한돼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 대다수의 사람들이 수많은 의사결정 상황에서 인지적 오류를 범하게 되는지 살펴보자.
문1 : 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그만큼 많은 사람이 죽음을 맞이한다. 다음에 제시된 사인(死因) 중 어떤 것의 빈도가 더 높을까?
1) 암
2) 자동차 사고
문2 : 200x년 y월 z일 현재, 두산 베어스 심재학 선수의 타율은 0.348이다. 그런데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지금까지 3타수 무안타에 4번째 타석이다. 해설가는 “이 정도 타율의 선수가 3번의 기회를 놓쳤으니 이번 타석에 안타를 칠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과연 올바른 추정일까?
1) 올바른 추정이다
2) 그릇된 추정이다
문3 : 여러분은 지금 4페이지 분량의 영문 컬럼을 읽고 있다. 이때 7개의 철자로 이뤄졌으면서 ing로 끝나는 단어(- - - -ing)들과 7개의 철자로 이뤄졌으면서 6번째 자리에 n이 위치하는 단어(- - - - -n-)들 중 어떤 쪽의 출현 빈도가 더 높을까?
1) 7개의 철자로 이뤄졌으면서 ing로 끝나는 단어
2) 7개의 철자로 이뤄졌으면서 6번째 자리에 n이 위치한 단어
문4 : 어떤 마을에 두개의 병원이 있다. 큰 병원에서는 하루 45명의 새 생명이, 작은 병원에서는 하루 1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난다. 모든 신생아의 50%는 남성이지만 정확한 비율은 매일 매일 달라진다. 즉 때때로 평균치보다 높을 때도 있고, 낮을 때도 있다. 이들 각 병원은 1년 동안 남성의 비율이 60% 이상인 날들을 기록해뒀다. 과연 어떤 병원에서 기록한 날이 더 많을까?
1) 큰 병원
2) 작은 병원
3) 같다
문5: B는 증권사에서 맹활약 중인 애널리스트다. 그는 자신이 담당한 업종의 지수 예측에 탁월함을 보이고 있는데, 업계에는 다음과 같은 소문이 나돌고 있다. “B가 지수 상승을 예측하면 실제로 업종 지수가 상승한다.” 지금 여러분 앞에는 이 소문을 증명할 몇가지 단서가 제시돼 있다. 모두 4장의 서류가 준비돼 있는데 1, 2번 서류의 앞면에는 B의 예측이 적혀져 있으며 3, 4번 서류의 앞면에는 실제 결과가 적혀져 있다.
1번 서류 : (예측) 지수 상승 2번 서류 : (예측) 지수 비상승
3번 서류 : (결과) 지수 상승 4번 서류 : (결과) 지수 비상승
한편 1, 2번 서류의 뒷면에는 B의 각 예측에 대한 결과가, 3, 4번 서류의 뒷면에는 각 결과에 대한 B의 예측이 적혀져 있다. 여러분은 4개 서류의 앞면을 볼 수 있다. 이때 1번 서류를 제외하면 위 소문의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과연 어떤 카드를 뒤집어봐야 할까?
1) 1번 서류
2) 2번 서류
3) 3번 서류
4) 4번 서류
답1 : 정답은 ‘1) 암’이다(통계청이 발표한 2000년 사망 원인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만명 당 암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225.5명,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25.4명이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자동차 사고’라고 쉽게 대답한다. 왜 그런 추정을 하게 되는 것일까? TV 뉴스나 신문 등을 생각해보자. ‘암으로 누군가가 죽었다’라는 기사보다 ‘교통 사고로 몇명이 사망하고, 몇명이 부상을 당했다’라는 기사가 훨씬 더 많이 보도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실제로 빈도가 더 높은 암에 의한 사망보다는 ‘자주 접하고 또 오늘 아침 조간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교통 사고에 의한 사망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다. 즉 언론 매체들의 빈번한 정보로 인해 자신 있게 ‘자동차 사고’라고 대답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 기업에서 행해지는 개인 업무 평가에서도 1년 동안의 업적에 대한 전반적 평가보다는 최근 3개월 간 업적에 대해 좀더 과장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역시 이런 유형에 적용될 수 있는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지겹도록 동일한 TV 광고 방영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빈번하고 생생하게 상품 정보를 제시함으로써 알게 모르게 소비자들의 인지 속에 해당 상품을 각인시키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소비자들은 구매시 그 상품을 쉽게 회상할 수 있고, 이는 곧 제조업체의 매출로 연결되니까 말이다.
답2 : 정답은 ‘2) 그릇된 추정이다’이다. 야구 중계를 볼 때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저 선수 2할 5푼대 선수인데 오늘 3번 나와서 안타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이번 타석에 안타칠 확률이 높은 것이죠.” 1/4이란 확률에 충실해지려면 아웃-아웃-아웃이었으니 이번엔 안타를 쳐서 아웃-아웃-아웃-안타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앞뒤가 바뀐 말 같기도 하고 어딘가 어색하지 않은가? 물론 이는 잘못된 논리인데 우선 두가지 예를 더 살펴본 후 분석에 들어가도록 하자.
모 회사의 인사 담당 관리자가 있다. 그는 일정 선발 요건을 설정해놓고 이에 부합하는 구매 관리자를 선발하려고 하는데, 이번엔 능력 있는 사람이 선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행해진 네차례의 선발 결과 신통찮은 사람들만 선택돼 왔기에 이번에는 그만큼 좋은 사람이 선택될 확률이 높아졌다는 것이 그 근거다. 이와 유사한 또다른 예는 도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패가 좋지 않을수록 다음 판에는 좋은 패가 들어 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계속 도박판을 어슬렁거리게 되는 도박사의 미련. 과연 그의 주머니가 두터워질 수 있을까?
이같은 오류가 발생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현상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앞 시행과 뒷 시행은 상호 간에 영향을 주지 않는 ‘독립 시행’이다. 즉 앞선 시행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뒷 시행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확률적 상황에 있어서 데이터의 본질이 무작위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적으로 보여지기’를 기대하게 된다.
답3 : 정답은 ‘2) 7개의 철자로 이뤄졌으면서 6번째 자리에 n이 위치한 단어’다. ing의 경우 n의 좌우에 각각 i와 g라는 확정된 철자가 동반돼야 하므로 그만큼 확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즉 7개의 철자로 이뤄진 단어 중 5번째 자리에 i가 나올 확률을 p(i), 6번째 자리에 n이 나올 확률을 p(n), 그리고 7번째 자리에 g가 나올 확률을 p(g)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식이 성립된다.
p(n) = p(i) × p(n) × p(g)
하지만 실험 결과 이러한 당연함과는 달리 대다수 사람들은 1번을 택했다. 이는 인간의 기억 구조상 단순한 철자 n보다는 일종의 접미어로서 ‘의미’를 지닌 ing를 더 용이하게 탐색하고 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를 좀더 확장해 생각해볼 수도 있다.
무교동 낙지 골목, 청진동 해장국 골목 등 소위 동일 메뉴에 대한 먹자 거리가 형성되는 것이 그 좋은 예다. 해장국이 먹고 싶을 때, 어떤 장소를 쉽게 떠올리게 되는가? 아무래도 특정 식당의 단골이 되기 이전에는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유명 거리를 찾게 되고, 그 안에서 이곳 저곳을 찾고 경험한 후 마침내 한 식당의 단골로 안착하게 된다. 경쟁이 심할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먹자 거리가 형성되는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사실에 기인한다.
답4 : 정답은 ‘2) 작은 병원’이다. 실험 결과 대다수 사람들이 ‘같다’라고 대답을 했지만, 이는 표본의 크기를 고려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오류다. 즉 작은 병원의 경우 큰 병원에 비해 표본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이에 따라 편차가 클 수밖에 없고 따라서 비일상적인 확률치인 60%를 넘어서는 빈도 역시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어떤 치과 의사가 광고에 나와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가정하자. “다섯명의 동료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치아 건강을 위해 D 무설탕 껌을 추천하겠냐고. 그 중 4명이 물론이라고 대답하더군요.” 광고의 진위 여부를 떠나 5명 중 4명이 추천한 것이 전문가 80%의 강추 상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올바른 판단의 관건은 대표성을 지니기에 턱없이 부족한 표본 크기에 대한 인식이다.
답5 : 정답은 ‘4) 4번 서류’이다. 이 문제는 명제(논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보다 이해가 쉽다. 즉 ‘특정 조건식이 명제의 형태로 주어질 때 이와 진리값이 같은 것은 역, 이, 대우 중 어떤 명제냐?’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곧 본 문제 해결을 위한 열쇠다.
잘 알다시피 본 명제와 동일한 진리값을 갖는 명제는 ‘역’이나 ‘이’가 아닌 ‘대우’명제다. 이를 본 문항에 적용해보자. ‘B가 지수 상승을 예측하면 실제로 업종 지수가 상승한다.’ 이때 조건 p와 q는 각각 ‘B가 지수 상승을 예측하다’와 ‘실제로 업종 지수가 상승한다’가 되고, 본 명제의 대우 명제는 ‘실제로 업종 지수가 비상승하면, B가 지수 비상승을 예측한 것이다’가 된다.
그렇다면 본 소문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카드를 뒤집어야 할지 답은 자명해진다. 정답은 ‘3) 3번 서류’가 아니라 ‘4) 4번 서류’이다. 자신이 참이라고 생각하는 바에 대한 증거만을 찾으려고 하고, 그것이 그릇될 수도 있다는 증거를 찾는 데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현상이다. 일상으로 넘어가 우리가 흔히 쓰는 ‘천재는 악필이다’ ‘미인은 잠꾸러기다’란 말이 있다. 이 말이 맞는지 증명하기 위해서는 천재나 미인을 데려오거나, 아니면 악필이 아니거나 잠꾸러기가 아닌 사람을 데려와야 한다. 이는 ‘악필이면 천재다’와 ‘잠꾸러기면 미인이다’와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어림짐작의 법칙’ 제대로 이해하기
지금까지 인지적 오류가 야기하는 다양한 유형의 문제를 점검해봤다. 여러분의 문제해결 결과가 얼마나 합리적이고 타당했는가? 물론 현실 세계에 이렇게 단순하고 독립적인 문제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얽힌 다분히 복합적이고 복잡한 문제들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이미 경험했다시피 비록 개별적인 사례라 해도 각 사항들은 정보 표상(representation), 판단, 의사결정, 문제 해결에 있어 자주 발생하는 인간의 인지적 함정을 콕콕 잘도 찍어주고 있다. 우리가 정보의 의미나 형태에 의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 확률·통계·논리에 얼마나 약한지, 과일반화의 오류에 얼마나 쉽게 빨려 들어가는지, 궁극적으로 이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쉽게 그릇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는지 말이다.
그러나 이 역시 대충 살펴보고 “아, 어림짐작의 법칙은 나쁜 거구나”라는 편견을 가져서는 안된다. 어림짐작의 법칙은 인간의 의사결정을 단순화시켜주는 훌륭한 인지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압력, 불충분한 정보 등 수많은 현실적 제약 조건을 고려한다면 약간의 분석을 직관으로 대체하는 이같은 방법은 오히려 실생활의 의사결정에 있어 그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 요컨대 어림짐작의 법칙 그 자체는 언제나 ‘어둠의 자식’인 것이 아니라 부적절한 상황에 적용되거나 과용될 경우에 문제가 발생하는 원초적으로는 몰가치적인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