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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블우주망원경과 생일이 같은 천문학자
“음력 생일이 4월 24일이죠. 음력이지만 허블우주망원경이랑 생일이 같은 셈이죠. 태어날 때부터 천문학자가 될 운명이었나 봅니다.”
1990년 이른 봄이었다. 한 젊은 천문학자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 북동쪽에 위치한 윌슨산 천문대(현 카네기 천문대)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미국 워싱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여서 어느 때보다 천문학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그곳에서 허블프로젝트의 핵심과제인 허블상수(우주팽창률)를 측정하는 연구에 참여하고 있었다. 에드윈 허블의 체취가 남은 곳에 있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흥분되는 일이었다. 허블우주망원경과 그의 만남은 이렇듯 우연처럼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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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상이 퍼진 사진이었죠. 선명한 사진을 기대했던 천문학자들이 모두 당황했어요. 초점이 나간 사진을 보냈으니 그럴만 했죠.”
2조 원이 투입된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NASA의 입장도 난처했다. 원인을 조사해 보니 핵심 부품인 지름 2.4m짜리 반사경에 문제가 있었다. 머리카락 두께의 50분의 1 정도를 잘못 가공한 것이다. 결국 반사경의 초점에 빛이 모이지 않아 또렷한 상이 맺히지 않았다. 반사경의 정밀도는 허블우주망원경의 한계를 결정하는 핵심요인이기 때문이다.
“반사경을 깎는 장치에 프로그래밍 오류가 있었어요. 음수부호가 들어갈 부분에 양수부호가 들어간 겁니다. 오류 때문에 반사경의 곡면을 측정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우주공간에는 대기가 없어 천체의 상은 반사경 성능만큼 좋게 맺힌다. 그런데 허블우주망원경의 반사경에 문제가 있으니 큰일이었다. NASA는 고민 끝에 보정장치를 만들어 설치하기로 했다. 허블우주망원경을 지구로 가져와 수리할 계획도 세웠지만 귀환 시 발생하는 충격이 문제였다. 결국 보정장치를 우주왕복선에 실어 우주로 보내기로 했다. 3년 연구 끝에 광학계 보정장치(COSTAR)를 개발했고 마침내 1993년 12월 2일, 7명의 우주비행사와 보정장치를 실은 우주왕복선 인데버호가 발사됐다. 망원경 수리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1994년 1월 마침내 허블우주망원경은 초점이 선명하게 맞은 사진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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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균 교수는 카네기 천문대에서 웬디 프리드먼 박사와 함께 허블상수 과제에 참여했다. 은하까지의 거리를 측정하고 우주 팽창률을 계산하는 연구였다. 하지만 계산에 의존한 연구라서 오차가 많았다.
“허블우주망원경으로 측정하기 전까지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많았죠. 관측 덕분에 현재 받아들여지는 허블상수 값은 70km/s·Mpc(1Mpc=106pc, 즉 326만 광년) 정도입니다. 이 값도 최종적인 값은 아닙니다. 아직도 우주의 팽창속도가 거리에 비례한다는 정도만 예측할 수 있어요.”
이 교수는 허블우주망원경의 발사부터 수리과정까지 지켜보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문제를 발견한 뒤 해결책을 찾아내고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이 꽤나 인상 깊70었다. 우리에게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어땠을까.
“인데버호 발사 전까지 언론에서 단 1건의 비난 기사도 나오지 않았어요. 믿기 힘들었죠. 모두가 하루빨리 우주망원경을 고치겠다는 생각만 하는 것 같았어요. 인간의 능력이 참 대단하다는 걸 느꼈죠.”
허블우주망원경은 소유의 개념이 적고 관측 호환성을 갖춰 천문학 연구에 널리 쓰인다. 하지만 여전히 최초 관측 제안자에게 1년간 데이터 독점권을 준다. 그는 관측과정을 총성 없는 전쟁터에 비유했다. 그는 “해마다 수백 명의 천문학자가 관측제안서를 제출해 경쟁률이 10대 1에 이른다”며 거대망원경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93년 귀국한 이 교수는 곧바로 한국천문학회 총무를 맡았다. 천문학 후진국이었던 국내에 기여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NASA는 천문학 논문 검색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미국에서 발간되는 논문만 등록돼 있었다.
천문학 선진국과 협력하는 유일한 기회라고 여긴 이 교수는 NASA 담당자에게 연락해 국내에서 발간된 영문학술지를 등록했다. 거대 망원경이 전무한 상황에서 선진국의 최신 논문을 확보하는 것이 연구의 최대 관건이었다. 취재가 끝난 뒤 며칠 후 이 교수는 은하와 은하 사이를 떠돌아다니는 구상성단 무리를 처음으로 발견해 국제학술지인 ‘사이언스’ 3월 12일자에 발표했다. 연구에 쓰인 구상성단 데이터는 허블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것이다. 허블우주망원경과 그의 인연은 여전히 유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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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블우주망원경이 준 선물, 허블펠로우
“허블우주망원경 때문에 2년간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별과 씨름했어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이영욱 교수는 허블우주망원경이 발사되기 전부터 인연이 있다. 미국 예일대 유학시절 ‘허블 가이드스타 카탈로그’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한 것. 별의 좌표, 온도, 광도를 측정해 NASA에 데이터를 보내는 일이다. 허블우주망원경이 발사될 무렵 그는 캐나다 빅토리아대 물리학과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허블우주망원경이 발사되기 두 달 전에 허블 펠로우십이 생겼고 이 교수는 1기 허블펠로우로 선발됐다. 단 조건이 붙었다. 성공적으로 발사된다는 전제 하에서다. 발사성공 여부에 따라 허블펠로우의 존폐 여부가 결정될 상황이었다. 연구비 지원이 달린 긴박한 상황이었다.
“제발 무사히 발사되기만 빌었어요(웃음). 너무 절박해서 최초의 우주망원경이 발사된다는 기대감은 오히려 적었어요. 연구를 하기 위해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거든요. 하지만 반사경 결함으로 관측은 못했어요.”
허블펠로우 자격으로 제안한 안드로메다은하의 구상성단을 관측해 나이를 구하는 과제가 취소됐다. 다른 천문학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취소됐던 과제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미국 연구진이 허블우주망원경 관측을 통해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 교수가 최초로 제안했던 내용이라 아쉬움이 더했다. 현대천문학에서 망원경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 가는 대목이다.
1993년 연세대로 부임한 이 교수는 칠레 세로토롤로 천문대의 앨리스터 워커 박사에게 부탁해 어렵게 관측 일정을 잡았다. 더 이상 망원경이 없어서 연구를 못하는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급기야 1997년 1년 치 연구비를 들여 제자 2명을 칠레로 보냈다. 주어진 시간은 단 1주일. 제자들 역시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관측에 매달렸다. 결국 관측을 통해 ‘오메가 센타우리’의 정체를 밝혀 기존의 은하 형성이론을 뒤집었다.
이 교수는 허블우주망원경의 가장 큰 업적으로 천문학이 이론적인 공상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 줬다는 점을 꼽았다. 허블우주망원경은 또 시뮬레이션에 의존하던 이론을 실제 영상으로 확인시켜 줬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깊은 곳까지 관측함으로써 빅뱅이론의 증거도 제시했다.
최근 이 교수는 미국 볼티모어 ‘허블우주망원경 과학연구소(STScI)’에서 열린 허블펠로우 학회에 다녀왔다. 전 세계 허블펠로우들이 모여 연구 내용을 교류하는 자리였다. 허블우주망원경 프로젝트를 기획한 원로 과학자 리카르도 지아코니도 참석했다. 허블우주망원경 과학연구소 초대 소장을 지내기도 한 지아코니 교수는 허블펠로우십을 만든 장본인이다.
“젊은 과학자들이 연구에만 집중하는 여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 역시 가장 중요한 순간에 허블 펠로우십으로 도움을 받았습니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안정적으로 지원해 주는 게 연구의 핵심입니다. 결국은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1기 허블펠로우였던 이 교수가 어느덧 이런 역할을 자처할 입장이 됐다. 그가 학회에서 돌아오던 날, 제자 3명이 관측을 하기 위해 칠레로 출국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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