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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 화장품의 진실

안전성 입증되면 효과는 탁월

‘현금 30만 원’. 2~3주 만에 지금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데 드는 비용이다. 그냥 찍고, 바르고, 뿌리면 된다. 무엇보다 첨단 생명공학 분야인 줄기세포 연구로 만들었다니 더 믿음이 간단다. 게다가 눈가나 목에 난 주름살을 없애는 웬만한 성형수술보다 돈도 훨씬 적게 든다. 몸의 각 조직으로 분화하는 줄기세포의 특성을 이용해 주름을 없애는 것은 물론 미백 효과까지 노리는 ‘줄기세포 화장품’이 유행을 타고 있다. 최근 줄기세포의 상용화 부분에서 가장 앞선 분야가 미용, 그 가운데서 화장품은 성형수술과 함께 가장 중심에 서 있다.


줄기세포 자체는 안 들어가

“줄기세포 화장품에 줄기세포가 들어 있는 거 맞아?” 얼마 전 누군가에게 화장품을 선물로 받아들고 들어온 아내가 대뜸 질문을 던졌다. 학교에서 생물학을 공부했거나 줄기세포 마니아가 아닌 다음에야 한번쯤 제기해볼 만한 의문이다. 윤리 논란을 차치하면 줄기세포의 막강한 영향력을 신봉하고 있는 요즘 같은 세태엔 더 그렇다. 줄기세포 성분이 포함됐다는 화장품들이 하나둘 늘면서 궁금증은 더한다.

하지만 줄기세포 화장품에는 줄기세포가 들어 있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줄기세포는 살아 있는 물질로 화장품에 넣으면 곧 죽는다. 세포가 죽으면 원래 가지고 있던 분화, 재생 능력도 함께 사라진다. 또 세포가 죽으면서 배출하는 독성 물질을 배출해 피부나 호흡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설령 세포를 한동안 보관하는 기술이 있다고 해도 사용기간이 최소 수개월에서 1, 2년에 이르는 화장품의 속성상 살아 있는 세포를 넣는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성체든, 배아든 인간 줄기세포를 활용한 화장품은 줄기세포를 직접 화장품 원료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왜 줄기세포 화장품이라고 부를까. 줄기세포 화장품이란 용어에는 많은 내용이 함축돼 있다. 1월 초 출시된 A사의 화장품은 정확히는 줄기세포 배양액의 성분을 추출한 뒤 이를 인공적으로 재조합해 만든 제품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배아줄기세포 배양액 성분 중 피부재생 효과가 뛰어난 성분을 분석한 뒤 이를 유전공학 기술로 재조합해 다시 만든 것이다.

지난해 국내 생명공학 벤처기업 B사가 출시한 제품은 이와는 또 다르다. 지방에서 얻은 줄기세포에서 피부 재생 기능이 있는 성분을 추출해 만들었다. 줄기세포 배양액에서 얻은 성분을 그대로 화장품 원료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A사 제품과 차이가 난다. 최근에는 식물의 씨앗이나 줄기, 뿌리에서 얻은 식물 성장인자를 포함한 제품들이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줄기세포 화장품 바람은 사실 해외에서 먼저 시작됐다. 2007년 프랑스의 화장품 회사인 ‘보스 라보라투와’가 사람의 줄기세포에서 추출한 성분을 넣은 항노화 화장품 ‘아마토킨’을 내놓으면서 화장품 업계에 줄기세포 바람을 몰고 왔다. 아마토킨은 원래는 피부화상 치료용으로 개발된 치료약이었다. 그러나 손상된 피부를 재생하는 메커니즘이 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화장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2008년 프랑스 화장품 회사 ‘디올’이 관련 상품을 출시한데 이어 지난해 12월 프랑스 화장품회사 랑콤이 미래 글로벌 트렌드로 줄기세포를 이용한 화장품을 지목하면서 국내에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아모레퍼시픽, 네이처리퍼블릭, LG생활건강을 비롯한 국내 주요 화장품 회사들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줄기세포를 이용한 화장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화장품이 노화를 감추는 수단에서 노화를 방지하는 적극적 수단으로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노화 방지, 정말 효능 있나

줄기세포 화장품은 최근 수년간 연구에서 밝혀진 줄기세포의 뛰어난 피부재생 능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 줄기세포가 가진 무한한 분화 능력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과학자들은 당뇨병 환자나 버거씨 병 같은 심혈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일반 환자보다 피부재생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정상적인 사람은 피부에 상처가 나면 피부 피하지방 아래 있는 피부 줄기세포가 작동해 상처를 아물게 한다. 반면 심혈관계 질환 환자들은 줄기세포의 재생능력이 떨어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썩거나 곪아 터지게 된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줄기세포에서 피부형성세포를 분화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피부 손상 환자의 치료 가능성이 열렸다.

지난 1월 초 배아줄기세포의 배양물에서 추출한 성분을 분석해 피부재생과 미백 효과가 있는 화장품을 개발한 정형민 차바이오&디오스텍 대표는 “배아줄기세포와 제대혈이나 태반, 지방에서 추출한 줄기세포의 배양물에는 피부재생 효과가 뛰어난 성분이 다량 들어 있다”고 설명한다. 줄기세포에서 추출한 성장인자가 노화된 피부줄기세포를 자극하거나 부족해진 콜라겐이나 피부세포를 되살린다는 것.

사람의 줄기세포를 배양하면 세포에서 다양한 성분들이 나온다. 여기에는 피부세포를 증식시키고 콜라겐, 엘라스틴을 합성하는 상피세포성장인자(EGF) 같은 성장 성분이 다량 포함돼 있다. 재조합한 성분에는 또 검버섯이나 주근깨의 원인인 멜라닌 생성을 억제하는 성분까지 들어 있다. 줄기세포 화장품을 바르면 낯이 밝아 보이는 이유도 이 같은 미백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줄기세포의 종류에 따라 효능에 차이가 날까. 피부재생 세포로 분화하는 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 외에 제대혈과 지방, 태반에서 얻을 수 있다. 차병원과 차바이오텍 연구진은 2007년 사람의 배아줄기세포와 제대혈줄기세포, 지방줄기세포에서 유래한 피부재생 세포의 생합성 능력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줄기세포의 성질 자체로만 보면 배아줄기세포가 훨씬 유리하다. 배아줄기세포 배양액의 성분을 추출한 결과 성장인자와 미백성분처럼 피부에 좋은 20가지가 넘는 성분을 얻을 수 있었다. 피부재생 능력도 제대혈줄기세포나 지방줄기세포보다 뛰어났다. 배아줄기세포 배양액에서 나온 성분을 피부가 손상된 쥐에게 바르자 1~2주 만에 일반 쥐보다 더 빨리 상처가 아물었다.



물론 효능에 대해서는 서로 엇갈린 주장이 나온다. 줄기세포 배양액 성분이 화학적으로 재조합해 만든 성분보다 효능이 뛰어나다는 주장과 줄기세포가 ‘성체냐 배아냐’에 따라 다르다는 주장이 맞선다. 재조합 성분을 활용하고 있는 쪽도 배양액 성분을 활용하는 쪽이 효능이 더 낫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성체줄기세포의 배양액 성분을 직접 화장품에 썼다고 해도 배아줄기세포 화장품의 효능을 결코 따라 오지 못한다고 말한다. 또 성체줄기세포 화장품이 노화된 피부줄기세포를 다시 활성화시켜 피부재생 능력을 회복시키는 데 무게를 뒀다면 배아줄기세포에서 얻은 재조합 성분은 그 자체가 재생 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더 낫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식물 줄기세포 화장품이 깜짝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인체 줄기세포 유래 화장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바이러스 감염 염려가 없는 식물로 관심이 돌아간 것. 식물에는 사람의 태반과 같은 역할을 하는 씨눈이 있는데, 줄기, 잎으로 분화되는 과정에서 피부재생에 도움을 주는 아미노산이나 활성 펩티드 성분이 나온다. 버섯이나 풍란처럼 한방에서 사용되는 약용식물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들 성분이 피부재생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임상의들을 통해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일부 성형외과에서 식물 줄기세포를 이용한 미용성형이 시술되기도 한다.

 


체외에서 배양해도 안전할까

지방줄기세포 화장품은 지방흡입으로 얻은 조직에서 줄기세포가 포함된 세포 혼합물을 분리한 뒤 체외에서 배양한 세포나 세포 배양액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이에 대해 피부과 전문가들은 “다른 사람의 혈액이나 조직을 사용하는 제품은 간염 바이러스나 에이즈바이러스(HIV), 매독균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지방 제공자에 대한 엄밀한 건강 검진과 제조 과정에서 병원체 제거작업이 필수”라고 말한다. 또 동물에서 추출한 각종 첨가물질을 세포 조작 및 배양 과정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알레르기를 유발하거나 인수공통 전염병을 전파할 우려도 제기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해 3월 ‘화장품 원료지정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고시안’을 예고하고 ‘인체 유래 세포, 조직과 이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물질’ 등 59개 성분을 배합금지 원료로 규정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식약청은 이 고시안에서 인체 유래 세포 및 조직뿐만 아니라 이를 이용해 만들어진 물질까지 사용을 금지해 인체 줄기세포와 그 배양액도 화장품 원료로 사용하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줄기세포 배양액 화장품 판매의 길은 열어 주되 대신 관리를 엄격하게 하겠다며 줄기세포 배양액을 금지목록에서 다시 뺐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입장을 바꾸긴 했지만 식약청이 당초 줄기세포 유래 물질의 화장품 원료 사용을 금지하려던 것은 바이러스 감염을 포함해 줄기세포 화장품의 안전성 검토가 미흡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유럽연합도 전염성에 대한 우려와 윤리적 문제를 이유로 인체 유래 물질을 화장품에 사용할 수 없도록 ‘배합금지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이에 대해 줄기세포 화장품 업체들은 식약청 기준에 부합하는 ‘우수의약품 제조, 관리기준(GMP)’시설에서 만들어지고 여러 차례 독성시험을 거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화장품 성분의 1~2%만이 피부 속에 침투할 정도로 양이 극히 미미하고 유럽을 제외하고 미국과 일본에서도 인체 유래 세포 물질의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는 것.

정형민 사장은 “대다수 화장품 회사들이 GMP 시설을 갖춰 놓고 있다”며 “안전 기준이 엄격히 마련만 된다면 배양액을 재조합해 만든 성분이든 배양액 그 자체를 사용하든 위험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한동안은 줄기세포 화장품의 부작용에 대한 의혹은 잦아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줄기세포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화장품의 가짓수가 늘수록 법적 테두리를 벗어난 가짜가 판을 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식약청은 6월 중 줄기세포 화장품에 승인 허가를 내면서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 줄기세포 화장품 안전기준안도 함께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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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박근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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