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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도 줄기세포로 치료한다

다양한 질환 대상 임상시험 잇따라

“시각장애인이 된다는 생각에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터지고 찢어지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저의 마음을 이해해주세요.”



차바이오&디오스텍 정형민 사장은 출근하며 읽어봤다는 편지를 기자에서 내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 사장은 지난해 11월 차바이오&디오스텍의 미국 현지 법인이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에 배아줄기세포로 만든 망막색소상피세포로 임상시험을 신청했다는 보도가 난 뒤 이런 편지가 계속 오고 있다고 말했다. 편지에서 이 모 씨는 현재 초등학교 교사인 아들(41세)이 황반변성 으로 시력을 서서히 잃어가는 과정을 묘사하며 아들이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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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우리나라 식약청에도 임상시험을 신청할 예정입니다. 이게 받아들여지면 국내 최초로, 아니 어쩌면 세계 최초로 배아줄기세포에서 분화시킨 세포를 사람에 적용하는 임상시험이 올 상반기에 시작될 것입니다.” 지난해 1월 미국의 바이오벤처 제론은 배아줄기세포를 신경세포의 일종인 희소돌기아세포로 분화시켜 척수손상환자에 적용하는 임상시험을 승인받았지만 실험동물에서 물혹이 생겼다는 데이터가 뒤늦게 발견돼 허가가 묶였다가 최근에야 풀렸기 때문이다.

배아줄기세포로 망막색소상피세포 만들어

차의과학대 교수이기도 한 정 사장은 자신이 ‘연구자’가 아닌 ‘개발자’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것도 최종 산물을 만드는 개발자로 말이다.

“벌써 2년이 넘었군요. 그동안 줄기세포 치료 분야는 너무나 빠르게 변모해왔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줄기세포 치료 시대가 임박했습니다.”

황우석 박사 사태 이후 침체된 국내 줄기세포 연구가 재기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과학동아 2007년 11월호 줄기세포 특집이 나간 뒤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정 사장은 당시 막연한 미래였던 줄기세포 치료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고 강조했다.

“배아줄기세포를 망막색소상피세포로 분화시키는 연구는 2006년에 이미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든 세포를 실제 임상에 적용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죠.”

매년 획기적인 항암제 후보 물질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나와도 수년 뒤 추적을 해보면 대부분 흐지부지돼 있듯이 실험실에서 배아줄기세포를 다른 세포로 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막상 동물에 적용해보면 종양발생이나 면역거부반응 같은 부작용이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저희가 미국 식약청에 임상시험을 신청하기 위해 준비한 실험결과와 데이터를 정리하니 책 9권 분량이 되더군요. 임상 허가에 필요한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키느라 연구원들이 밤을 새운 게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차바이오&디오스텍이 망막색소상피세포에 먼저 주목한 이유는 이 부분이 다른 조직이나 장기와 달리 면역거부반응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에게서 유래한 줄기세포인 배아줄기세포 이식 시 문제가 되는 면역거부반응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망막색소상피세포는 망막에 있는 빛 수용체 세포를 지탱하는 층을 이룬다. 망막색소상피세포가 파괴되면 빛 수용체 세포에 필요한 비타민A가 공급이 안돼 시력을 잃는데, 전체 실명의 8.7% 정도를 차지한다.






“세포가 파괴됨에 따라 유리창에 잉크를 뿌린 것처럼 상이 보이지 않는 부분이 점차 넓어지면서 결국 실명합니다. 그런데 성체줄기세포로는 망막색소상피세포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전(全)분화능이 있는 배아줄기세포가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이지요.”

정 사장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 종양 같은 부작용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임상 허가가 나올 경우 희망자 가운데 12명을 뽑아 1/2상 임상시험 에 들어갈 예정이다.



국내 성체줄기세포 임상시험 수십 건 진행 중

골수이식 수술이 최초로 성공한 해가 1979년이므로 성체줄기세포 치료의 역사는 30년이 넘었다. 그러나 우리 몸속 곳곳에 성체줄기세포가 있고 이를 추출해 증식시켜 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불과 10여 년밖에 안 된다.

“전 세계적으로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임상시험이 수백 건이 넘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수십 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배아줄기세포뿐 아니라 성체줄기세포 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는 세포응용연구사업단 김동욱 단장(연세대 의대 교수)은 지금까지 환자 400여 명이 임상시험에 참여해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증상도 다양해 허혈성 뇌손상과 척수 손상, 심근경색, 신경계 질환 등이 망라돼 있다.

사업단 소속인 연세대 의대 박국인 교수팀은 대개 미숙아가 태어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허혈성 뇌손상, 즉 뇌에 피가 안 통해 산소가 부족해져 뇌세포 일부가 죽어 생기는 손상을 줄기세포로 회복시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허혈성 뇌손상은 뇌성마비나 정신지체, 간질 등으로 이어진다. 연구자들은 합법적으로 유산시킨 태아의 뇌에서 신경줄기세포를 얻어 미분화증식을 한 뒤 뇌에 주사하는 방법을 시행했다.



“뇌세포는 면역거부반응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신경줄기세포를 넣어줘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아직까지 부작용도 없고 줄기세포가 신경세포로 분화하면서 뇌의 기능이 많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환자들이 어리기 때문에 뇌가 성장하고 있어 2년 이상 관찰해야 최종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지금까지는 결과가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교통사고로 목뼈골절 같은 중상을 입어 척수가 손상된 환자들에 대해서도 신경줄기세포를 넣어주는 임상을 진행하고 있는데, 역시 증상이 호전되는 결과를 얻고 있다.

한편 박 교수는 “줄기세포 치료 개념이 처음 나왔을 때 전신마비인 사람이 뛰어다닐 수 있게 될 거라는 과장된 이미지를 심어준 측면이 있다”며 “전신마비가 1, 정상이 10이라면 줄기세포 치료로 보통 2~3(손가락을 움직이는 정도)이나 잘하면 4~5(보조기구를 써서 걷는 수준)로 나아진다”고 말했다. 물론 줄기세포 치료가 없다면 이런 개선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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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면 내년에 줄기세포 치료제 나올 듯

“지금 환자 100여 명을 대상으로 3상 임상시험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 줄기세포 의약품으로 시판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제대혈(탯줄에 들어 있는 피)에서 얻은 줄기세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바이오벤처 메디포스트의 오원일 연구소장은 현재 임상 중인 ‘카티스템’이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 첫 번째 줄기세포 의약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제대혈에는 두 가지 유형의 줄기세포가 있는데, 각종 혈액을 만드는 조혈모세포와 다양한 세포로 분화하는 중간엽줄기세포가 그것이다. 메디포스트는 중간엽줄기세포에 주목했다. 분화능과 다양한 세포인자의 분비능도 우수할 뿐 아니라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성체줄기세포는 주로 골수, 지방, 제대혈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제대혈이 가장 원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면역거부반응이 거의 없고 오히려 면역조절 기능이 관찰됐습니다.”

메디포스트는 제대혈에서 분리한 중간엽줄기세포를 미분화증식시키는 공정을 확립하고 동물실험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한 뒤 2005년 국내 최초로 퇴행성관절염 치료제 상업임상(1/2상)을 시작했다. 학술적인 목적이 우선인 연구임상의 허가가 비교적 쉽게 나
는 반면, 상업임상은 조건이 까다롭다. 기업체의 제품화가 주관심사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허가를 내준 식약청도 책임이 무겁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줄기세포 상업임상을 진행하는 업체는 메디포스트를 포함해 5곳(건수로는 11건)이다.

“증식력이 왕성한 배아줄기세포와는 달리 중간엽줄기세포는 12~13계대 정도 되면 세포노화가 옵니다. 계대는 세포가 증식하면 배지를 옮기는 과정이죠. 저희는 세포활성과 안전성을 생각해 5계대까지 배양한 세포로 치료제를 만드는데, 제대혈 하나당 500명분의 치료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현재 치료제는 줄기세포배양부유액과 생분해성 고분자 가루가 세트로 돼 있는데, 의사가 시술 직전 세포부유액을 고분자를 담은 용기에 넣고 풀어 젤을 만든 뒤 시술부위를 절개해 손상된 관절의 연골부위에 시멘트 모르타르를 바르듯 발라준다. 그 뒤 봉합하면 줄기세포가 연골세포로 분화함과 동시에 연골재생을 유도하고 고분자는 서서히 사라진다. 오 소장은 “1/2상 결과 연골이 재형성돼 환자들의 보행이 개선되고 통증이 줄었을 뿐 아니라 부작용이 전혀 없었으며, 손상된 부위의 연골이 재생된 치료효과가 MRI로도 입증됐다”며 “조만간 뇌졸중과 치매, 폐질환 등에도 치료제 상업임상시험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포응용연구사업단 김동욱 단장은 “현재 국내외에서 상당히 많은 상업화 임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1~2년 내에 줄기세포 치료제가 나올 것이고 몇 년 지나면 다양한 제품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과연 2010년대에는 몇 종의 줄기세포 치료제가 나올까. 최초의 줄기세포 치료제 영예를 우리나라 제품이 차지할까. 의학 분야의 혁명으로 불리는 줄기세포 치료의 서막은 이미 올라가고 있다.
 
각막손상 환자 8명 줄기세포로 시력 찾아

지난 12월 줄기세포 치료로 잃었던 한쪽 눈의 시력을 회복한 사례가 소개돼 화제가 됐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임상시험에 참여한 8명 모두 효과를 봤다. 영국 북동잉글랜드줄기세포연구소(NESCI) 프랜시스코 피구에이레도 박사(사진 오른쪽)팀은 화학약품이 묻는 사고 등으로 각막이 손상돼 시력을 잃은 눈에 정상 눈의 각막에서 얻은 각막윤부줄기세포를 배양한 뒤 이식해 시력을 회복시켰다. 이 과정을 기술한 논문은 줄기세포 저널인 ‘스템셀스(Stem Cells)’ 12월호에 실렸다.

‘눈의 창’이라고 할 수 있는 각막은 외부에 노출돼 있어 상처를 입기 쉽다. 또 혈관이 없기 때문에 각막의 둘레에 있는 각막윤부줄기세포에서 계속 각막상피세포를 만들어 공급해줘야 한다. 화학약품이 묻어 각막윤부줄기세포가 완전히 파괴될 경우 손상된 각막이 회복되지 않기 때문에 시력을 잃는다.

임상시험 참여자의 한 사람인 러셀 턴불 씨(사진 왼쪽)는 23살 때인 1994년 어느 날 나이트클럽에서 놀다가 귀가하는 버스에서 두 남자가 싸우는 걸 구경하다 한 사람이 뿌린 암모니아에 한쪽 눈 각막이 손상됐다. 그 뒤 힘든 삶을 살던 그는 줄기세포 치료로 시력을 회복해 다시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됐다며 의료진에게 감사해 했다.

피구에이레도 박사는 “전체 실명의 10%가 각막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며 “줄기세포 치료는 단순히 증상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완치를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현재 연구진은 24명의 환자에 대한 추가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또 양쪽 각막이 다 손상된 환자를 위해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2019년에는 헌혈이 사라질 수도

에이즈, 인간광우병, 신종플루.

이런 전염병들이 대중의 주목을 끌 때마다 병원에서는 피가 부족해 난리다. 사람들이 헌혈을 꺼리기 때문이다. 인간광우병이 휩쓸고 간 영국은 물론 캐나다 같은 나라도 외국에서 피를 수입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적정 혈액 재고량(7일분)의 20~30%에 머무르는 수준으로 그나마 군인의 헌혈이 있기에 버티고 있다.

“지금 배아줄기세포로 혈액(적혈구와 혈소판)을 대량 생산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4년 세계 최초로 경기도 판교에 혈액을 만드는 공장을 가동시킬 계획입니다.”

차바이오&디오스텍 정형민 사장은 배아줄기세포가 치료 뿐 아니라 현대의학시스템이 굴러가는 데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혈액을 만드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인공혈액을 만
들려는 시도는 수십 년 전부터 있었지만, 진짜 적혈구처럼 미묘한 농도 차이에 따라 산소와 붙었다 떨어지고 좁은 모세혈관을 뚫고 지나가며 면역계를 자극하지 않는 특성을 갖는 대안을 찾는 데는 여전히 실패하고 있다.

“2008년 저희와 미국의 바이오벤처인 ACT가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 스템인터내셔널에서 확립한 배아줄기세포를 혈액혈관형성모세포(hemangioblast)로 분화시키는 기술을 바탕으
로 상업화 연구를 하게 됐죠.”

배아줄기세포를 핵이 없는 적혈구까지 가게 만드는 기술은 전 세계에서 스템인터내셔널만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과학월간지 ‘디스커버’는 2009년 1월호에서 ‘2008년 100대 테크놀로지’에 ‘배아줄기세포로 만든 적혈구’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 회사는 누구에게나 수혈할 수 있는 O형이면서 Rh-형인 혈액을 만드는 배아줄기세포를 선별했다.

보통 혈액 1파인트(470cc)는 미국에서 200달러(약 22만 원), 우리나라에서 약 10만 원 정도다. 현재 기술로는 혈액 1파인트를 만드는 데 1000만 원 정도 들어간다. 따라서 혈액제조 비용을 100분의 1 수준으로 낮춰야 상업성이 있다. 정 사장은 “지금은 플라스크에서 세포를 배양하는 정도까지 규모를 키웠다”며 “앞으로 100~500L 용기에 배양하는 기술을 확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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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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