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고발프로그램에서 집중포화를 받았습니다. 나름대로 지방줄기세포 분 야에서는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환자 자신의 지방조직에 포함된 줄기세포를 추출해 증식시킨 뒤 환자에게 다시 넣어주는 ‘자가유래줄기세포 치료’를 연구하고 있는 알앤엘바이오의 라정찬 대표 는 ‘줄기세포 치료를 받고 5일 만에 암에 걸렸다’는 식의 허위사례를 내보내는 프 로그램 내용에 고개를 내저었다.
“자기 몸에서 얻은 줄기세포를 증식만 해서 다시 넣어주는 방법입니다. 국내 외 어디서도 지금껏 그런 사례가 나온 적이 없어요. 물론 치료 효과에 대해서 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지만 안전성을 갖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다니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알앤엘바이오는 지방조직이나 태반에서 줄기세포를 추출, 배양하는 독 자적인 기술을 개발해 줄기세포은행을 운영하고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 하는 바이오벤처다. 최근에는 당장 줄기세포 치료를 희망하는 환자 들의 지방줄기세포를 배양해 주는 서비스도 시작했다. 환자들은 배 양한 자신의 줄기세포를 갖고 중국이나 일본의 병원을 찾아가 치료 를 받는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우리나라와 이들 나라의 의료법이 다 르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는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단계를 거치면 의약품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1, 2, 3상 임상시험을 모두 거쳐야 품목 허가를 받아 치료제로 쓰일 수 있다. 이런 규정은 미국이나 유럽연합 (EU)도 마찬가지다. 반면 중국이나 일본은 자가유래줄기세포의 경 우 의약품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GMP(우수의약품 제조, 관리기준) 시설이 있는 곳에서 배양할 경우 별다른 규제 없이 의료행위에 쓸 수 있다.
자가유래줄기세포, 임상시험 필요한 의약품인가
“자가유래줄기세포 치료라는 건 어차피 환자 본인만 쓰는 겁니다. 이걸 의약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라 대표는 이런 법규정을 개정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아직까지 는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관 계자는 “이런 일은 아직까지 전례가 없어 방침을 정하지 못했다”며 “현재 중국과 일본의 사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 의료법 개정안 발의를 청원했을 뿐 아니라 헌법소 원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과 함께 라 대표는 최근 자가유래줄기세포 치료에 법 적 제제가 없는 중국과 일본에 병원을 세우는 계획을 발표해 주목 을 받았다. 즉 일본 교토에 자가면역질환을 줄기세포로 치료하는 세포치료병원을 세우기로 했고 중국 베이징 근교 연달국제병원에 줄기세포치료센터를 짓기로 했다. 물론 지금도 현지 병원들과 연계 해 줄기세포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외 환자 2300여 명이 자가유래줄기세포 치료를 받았습니다. 물론 환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우수한 치료효과를 얻고 있습니다.”
이 회사가 성공적인 치료로 들고 있는 예가 자가면역질환인 류머 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던 미국인 존 콜리슨의 경우다. 화가인 콜리 슨은 병이 심해져 견디기 어려운 통증은 물론 손가락이 굳어 그림 을 그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인터넷에서 우연히 자가줄기세포 치료를 알게 돼 알앤엘바이오에 연락한 경우다. 미국에서 지방줄기세포를 추출해 한국으로 보내 배양한 뒤 중국에서 시술했더니 2주 뒤부터 통증이 줄어들어 진통제도 끊고 그림도 다시 그리게 됐다고.
“자가면역질환은 면역계가 자신의 조직을 공격하는 병으로 왜 이런 변화가 생기는지 아직까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고 마땅한 치료제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2005년 중간엽줄기세포가 면역조절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습니다.” 중간엽줄기세포는 사이토카인 인 인터류킨-10의 분비량을 증가시켜 염증유발물질의 생성을 억제한다는 메커니즘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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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는 줄기세포 치료 상용화에 우려하는 전문가가 많다. 세포응용연구사업단 김동욱 단장은 “충분한 과학적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고 조급하게 외국에서 이런저런 시술을 하다가 예상치 않은 부작용이 나올 경우 줄기세포 전 분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줄기세포 배양 원천기술을 제공하고 라 대표와 함께 알앤엘바이오를 설립했지만 2년 전에 결별한 서울대 수의대 강경선 교수는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뒤 줄기세포 연구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며 “지금은 우리정부도 국가경쟁차원에서 줄기세포 치료제 상용화를 적극 뒷받침하고 있는데 너무 조급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줄기세포 치료를 받고 5일 만에 암이 생겼다는 식의 TV보도는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알앤엘바이오의 경우도 현재 자가유래줄기세포로 3가지 상업임상(1/2상)을 진행하고 있다. 버거씨병(혈관이 막혀 사지 말단이 괴사하는 질병)과 퇴행성관절염, 척수손상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결과를 기다리지 못하고 상업화에 뛰어드는 모습은 자기모순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편 일본 같은 선진국도 자가유래줄기세포 치료를 허용하고 있는데 뭐가 문제가 되냐는 주장에 대해서 강 교수는 “일본은 의사에게 자율권을 주지만 문제가 생기면 엄중한 책임을 묻는다”며 “우리나라 는 아직 그런 자율권을 수용할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줄기세포는 만병통치약 아니다
임상시험 없이 줄기세포 치료를 할 경우 안전성뿐 아니라 유효성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잔뜩 기대하고 거금을 들였는데,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면 환자입장에서는 난감하기 마련이다. 강경선 교수는 “줄 기세포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며 “어떤 유형의 줄기세포가 어떤 질환에 효과가 있는지를 규명하는 임상시험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미국의 바이오벤처 오시리스가 개발한 프로키말의 임상시험 사례가 좋은 예다. 세계 최초의 줄기세 포 치료제 후보로 기대를 모았던 프로키말은 골수에서 추출해 배양한 중간엽줄기세포 치료제로 면역 조절 기능을 있어 이식편대숙주병(골수이식을 받은 뒤 이식된 림프구가 숙주를 공격하는 질환)을 치료 하는 임상시험을 3상까지 진행했다. 지난해 9월 이 회사는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는데, 아쉽게도 약 효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네덜란드 라이덴대 빌렘 피브 교수는 “중간엽줄기세포라도 다 똑같은 건 아니다”라며 “어떤 조건에서 세포를 배양하느냐가 유효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줄기세포를 지나치게 배양해서 활력이 떨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줄기세포에 대해 아직은 모르는 부분이 많은 셈이다. 이 회사는 현재 크론병(만성 염증성 장 질환, 3상), 당뇨병(2상), 심장질환 (2상)에 대해서도 임상시험 중이다. 프로키말은 이 가운데 유효성이 있다는 결과를 얻는 질병에 대해서 만 치료제로 승인받을 수 있다.
스웨덴 룬트줄기세포센터 올레 린드발 박사와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생명윤리과 현인수 교수 는 지난해 ‘사이언스’ 6월 26일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혁신적인 치료를 받기 위해 외국을 나가는 경우와 문제가 많은 ‘줄기세포 투어(stem cell tourism)’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혁신적인 치료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전임상에서 충분한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보한 뒤 다른 치료로는 가망이 없는 중증 인 환자들에게 치료를 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효과가 입증되면 별도의 임상시험 없이도 치료법으로 인 정된다. 저자들은 “지난 40년 동안 개발된 외과적 치료법의 10~20%만이 임상시험을 거쳤다”며 “줄기 세포에 기반한 치료법 가운데도 이런 방식을 따르는 게 더 적합한 경우가 있겠지만,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엄격한 기준이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선 교수도 “줄기세포 치료제에 따라 기존의 합성의약품 개발에 적용하는 까다로운 임상조건을 그대로 적용하는 건 무리인 경우도 있다”며 “그럼에도 세포를 외부에서 배양하 는 과정이나 환자에게 투여됐을 때 일어나는 일들을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 고 있기 때문에 임상시험은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이미 우리는 돈이 있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줄기세포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실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줄기세포 치료 효과를 보고 있다. 물론 개중에는 수백만~수천만 원의 거금을 들이고도 기대한 효과를 보지 못한 경우도 있다. 자가유래줄기세포는 안전하다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장기적 으로도 그렇다고 장담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말한다. 아직까지는 줄기세포 치료가 ‘이브의 사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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