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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 합성공장 리보솜 비밀 밝혀

슈퍼박테리아 무찌를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기여



지난 10월 7일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세포 내 소기관인 리보솜 연구에 기여한 공로로 영국 MRC분자생물학연구소의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 박사와 미국 예일대의 토머스 스타이츠 교수,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아다 요나스 박사를 올해의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수상자 3명은 X선 결정법으로 생체 내 단백질 합성공장인 리보솜의 3차원구조를 규명해 이 복합체의 작동원리를 밝혔다. 이 결과는 각종 질병에 대한 항생제를 개발하는 데도 획기적인 기여를 할 전망이다.

 


RNA와 단백질로 이뤄진 거대한 복합체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프랜시스 크릭 박사는 1958년에 ‘센트럴 도그마(central dogma)’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DNA의 유전정보는 mRNA(전령RNA)로 전사(transcription)된 뒤, mRNA가 아미노산을 운반하는 tRNA(운반RNA)와 상호작용해 유전암호에 따라 아미노산들이 특정한 순서로 연결돼 단백질이 합성된다. 이 과정을‘번역 (translation)’이라고 부르는데, 번역이 일어나는 장소가 바로 리보솜이다.

리보솜은 RNA와 단백질로 구성돼 있는 거대한 복합체다. 리보솜은 세포가 있는 생명체에는 다 존재하지만 진핵생물의 리보솜보다 ‘상대적으로’ 덜 복잡한 박테리아의 리보솜이 집중적으로 연구됐다. 박테리아 리보솜은 분자량이 2.3MDa(메가달톤, 달톤(Da)은 원자질량 단위로 수소원자가 1Da이다. 1MDa=106Da)에 이르는 초거대 복합체로 30S단위체(S는 침강계수로 이 값이 클수록 원심분리 시 아래층에 놓인다)와 50S단위체로 이뤄져 있다.

30S단위체는 21종의 단백질, 약 1500개의 염기로 구성된 16S rRNA(리보솜RNA)로 이뤄져 있고, 50S단위체는 34종의 단백질, 약 3000개의 염기로 구성된 23S rRNA, 120개의 염기로 구성된 5S rRNA로 이뤄져 있다. 리보솜에는 tRNA가 결합할 수 있는 부위가 3곳 있는데(A자리, P자리, E자리), 두 단위체가 만나는 경계면에 위치한다. 단백질을 만들지 않을 때 리보솜은 두 단위체가 분리돼 있다. 번역될 mRNA가 30S단위체에 자리를 잡으면 50S단위체가 결합해 아미노산이 붙어 있는 tRNA로 아미노산 사슬을 만든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이렇게 개략적인 과정은 밝혀졌지만 단백질 합성 메커니즘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하려면 리보솜 구조를 알아야 한다. 또 항생제 내성 병균에 대응할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도 원자수준의 해상도로 리보솜에 대한 3차원구조 정보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항생제의 절반은 병균의 리보솜 작용을 방해해 약효를 내는데, 병균이 리보솜 구조를 바꾸는 돌연변이를 일으켜 항생제에 대한 내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결정 만든 지 20년 만에 구조 규명

리보솜처럼 큰 분자나 복합체는 결정을 만든 뒤 X선을 쪼일 때 나오는 회절패턴을 해석해 구조를 알아낸다. 리보솜 구조 연구는 리보솜의 거대한 크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는데, 이를 극복하는 방법이 개발된 과정을 보면 구조생물학 발전의 역사를 알 수 있을 정도다.

1955년 리보솜의 존재가 전자현미경 사진으로 확인된 이래, 요나스 박사는 1970년대부터 X선 구조 해석의 첫 단계로 리보솜의 결정을 만드는 연구를 시작했다. 1980년 요나스 박사팀은 50S단위체의 결정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그 뒤 30S단위체와 리보솜의 결정이 속속 만들어졌으나 이 결정들은 모두 회절 해상도 가 좋지 않았다.





요나스 박사팀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야 고해상도로 볼 수 있는 결정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뒤 10여 년 동안 스타이츠 교수팀과 라마크리슈난 박사팀을 포함해 여러 실험실에서도 각 단위체의 결정을 만들어 구조해석을 시도했으나 위상 문제에 봉착해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1998년 스타이츠 교수팀은 중금속 유도체와 1995년 발표된 리보솜의 전자현미경 지도로 위상문제를 해결해 50S단위체에 대한 저해상도 X선 구조를 최초로 해석하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 스타이츠 교수팀은 50S단위체의 중해상도 구조를 발표했고, 라마크리슈난 박사팀과 요나스 박사팀은 각각 30S단위체의 중해상도 구조를 발표했다. 두 단위체가 합쳐진 리보솜에 대해서는 같은 해에 미국 산타크루스 캘리포니아대 해리 놀러 교수팀이 저해상도 구조를 발표했다.

뉴 밀레니엄의 시작인 2000년은 리보솜 X선 구조연구에 있어서 세기적인 업적을 이룬 해였다. 스타이츠 교수팀(50S단위체)과 라마크리슈난 박사팀과 요나스 박사팀(30S단위체)이 마침내 원자 하나하나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고해상도 구조를 규명했다. 이듬해에는 놀러 박사팀이 리보솜의 중해상도 구조를 밝혔고, 마침내 2005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도드너 케이트 교수팀이 리보솜의 고해상도 구조를 규명했다.

요나스 박사는 황무지에서 가장 먼저 리보솜의 결정을 얻어낸 개척자로서 동결X선회절법을 개발해 고해상도의 회절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공로가 크다. 스타이츠 교수는 저해상도이기는 하지만 가장 먼저 위상문제를 해결해 최초의 리보솜 X선 구조를 해석한 공로가 크며, 라마크리슈난 박사는 스타이츠 교수와 함께 이후 고해상도의 구조를 해석한 공로가 크다고 생각한다. 만약 노벨상을 4명까지 받을 수 있었다면, 네 번째 수상자는 해석이 가장 어려웠던 리보솜 전체의 구조를 규명한 놀러 교수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리보솜 구조를 연구하면서 개발된 결정화기술, 동결 X선회절법, 강력한 방사광 X선 이용법, 위상문제 해결기술은 리보솜뿐 아니라 다른 복잡한 생체고분자의 구조를 해석하는 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병균의 리보솜 공격해 질병 치료

리보솜의 구조를 해석함에 따라 단백질 합성의 메커니즘을 좀 더 상세히 알게 됐는데, 그중에서 특이할 만한 점이 rRNA의 촉매작용이다. 일반적으로 생체 내 화학반응에 작용하는 촉매는 단백질(효소)인데, 1970년대 후반부터 rRNA도 촉매기능을 한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나오기 시작했다. 올해 라마크리슈난 박사팀은 리보솜의 고해상도 구조로부터 rRNA가 아미노산 사슬을 만드는 반응에서 촉매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다.

한편 리보솜 구조규명은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박테리아 감염 질환 치료제로 항생제가 널리 쓰이면서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슈퍼박테리아가 나타나 새로운 항생제 개발의 필요성이 공중보건의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항생제의 절반이 병균의 리보솜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물론 이들 대다수는 애초에 리보솜 무력화를 목표로 설계된 건 아니고, 자연에서 찾거나 무작위로 실험실에서 만들어 써온 항생제의 작용 메커니즘이 나중에 밝혀진 결과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트렙토마이신, 테트라사이클린, 에리스로마이신, 클로람페니콜, 퓨로마이신 등의 항생제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번 수상자들이 기여한 리보솜의 구조규명은‘구조기반 신약개발(SBDD)’방법으로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는 데 지대한 기여를 할 것이다. 병균의 리보솜 구조를 면밀히 분석해 그 작용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약물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타 할아버지’ 스타이츠 교수와의 인연

필자는 서울대 화학과 서세원 교수팀에서 박사과정에 있을 때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이대실 박사팀과 공동으로 유전자증폭반응(PCR)에 쓰이는 Taq DNA 중합효소의 결정구조를 연구했다. 행운이 따라 고해상도 단백질결정을 만들 수는 있었으나 X선을 쪼이면 결정이 급격히 손상돼 구조를 해석할 수 없었다.

이때 예일대 스타이츠 교수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던 김영수 박사(현 서울대 의대 교수)와 공동연구할 기회가 주어져, 1993년 당시 스타이츠 박사팀이 한창 기술을 개발하던 동결X선회절법을 써서 Taq DNA 중합효소의 구조를 해석할 수 있었다(1995년 ‘네이처’에 발표). 동결X선 회절법은 영하 170℃에서 얼린 결정에 X선을 쪼이므로 손상이 덜하다. 그 뒤 스타이츠 교수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Taq DNA 중합효소와 DNA의 복합체 구조를 해석해 DNA 증폭반응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었다(1996년 ‘네이처’에 발표).

스타이츠 교수는 사진에서처럼 잘 정돈된 하얀 턱수염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데, 성품도 자상하고 인자하다. 고동색 랜드로바에 밝은 아이비색 면바지, 푸른색 계열의 와이셔츠 위에 짙은 군청색의 재킷을 걸친, 깔끔하면서도 전형적인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좋아한다.

실험실에서 함께 연구하던 20여 명의 식구들을 종종 댁으로 초대하면, 각자 음식(필자가 만들어간 김밥은 맛이 별로였는지 많이 남기도 했지만)을 가져와서 즐거운 주말을 보낸 기억을 떠올려보니 그 초대가 힘든 미국생활에 큰 힘이 되지 않았던가 생각된다. 특히 저택이 바다(아쉽게도 태평양이 아닌 대서양)를 접하고 있어 날씨 좋은 여름에는 수영도 하면서(해안에 해파리가 많아서 쏘이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가끔이나마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 기억도 떠오른다. 평생 한길로 매진한 스타이츠 교수의 노벨상 수상을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한다.

 


엄수현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에서 단백질 구조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타이츠 교수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고 1997년 광주과학기술원에 부임했다. X선 결정법을 비롯해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규명하고 있다. 엄 교수는 연구대상을 원자수준에서 들여다볼 수 있을 때 큰 기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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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엄수현 광주과학기술원 생명과학과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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