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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 수명 조절하는 원리 규명

노화 막고 암 치료할 결정적 단서



사람의 세포 속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각각 23개씩 물려받은 46개의 염색체(상염색체 44개+성염색체 2개)가 들어 있다. 염색체 안에는 머리카락 모양과 색깔부터 피부색, 얼굴 생김새, 심지어 특정 질환에 걸릴 확률까지 모든 유전정보가 포함돼 있다. 염색체는 어떻게 죽을 때까지 모든 유전정보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지난 10월 5일 스웨덴 스톡홀름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3명을 발표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엘리자베스 블랙번 교수와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캐럴 그라이더 교수, 미국 하버드 의대 하워드휴스 의학연구소 잭조스택 교수다. 그들은 세포가 분열하는 동안 염색체가 어떻게 분해되지 않고 유전정보를 유지하는지에 대한 비밀을 밝혀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염색체 끝에 붙은 매듭, 텔로미어는 세포시계

소풍을 가기 위해 30cm짜리 김밥을 만든다고 가정하자. 길이가 정확히 30cm인 김을 이용하면 마지막에 양쪽 꼬리를 잘라내야 하므로 결국 완성된 김밥은 30cm보다 짧다. 김밥 꼬리를 잘라낸 뒤에도 전체 길이가 정확히 30cm가 되려면 김밥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기다란 DNA가 복잡하게 얽힌 상태인 염색체도 비슷한 문제에 부딪혔다. DNA를 이루는
핵산에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같은 염기가 하나씩 들어 있는데, 이 염기가 배열돼 있는 순서가 유전정보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DNA는 똑같은 DNA를 하
나 더 복제하는데, 이럴 때마다 DNA 사슬 한쪽 끝에 있는 핵산이 수십 개씩 잘려 나간다.

DNA는 기다란 사슬 두 가닥이 나선처럼 서로 꼬여 있는데, 그 사이에서 염기들이 서로 상
보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아데닌은 티민과, 구아닌은 시토신과 상보적으로 결합한다. DNA
가 복제될 때는 한쪽 끝이 열리면서 두 가닥이 서로 벌어진다. DNA를 합성하는 효소는 DNA 두 가닥을 동시에 지나가면서 새로운 사슬을 하나씩 복제한다. 배열된 염기 순서대로 상보적인 염기를 가진 핵산을 가져와 새로운 DNA 사슬을 짠다.

문제는 DNA 사슬을 복제할 때 끝부분의 염기가 수십 개씩 사라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끝부분에 있는 유전자들은 DNA가 복제되는 어느 순간 손상될 수 있다.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3명의 과학자에 따르면 염색체는 진화를 거치면서 양 끝에 유전자가 들어 있지 않은 ‘DNA 매듭’을 붙이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염색체의 양 끝에 붙어 있는 DNA 매듭이 바로 텔로미어(telomere)다.

‘끝(telos)’과 ‘부위(meros)’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합성어다. 1980년 초, 블랙번 교수와 조스택 교수는 단세포 동물인 테트라히메나(Tetrahymena thermophila )에서 텔로미어를 처음 찾아냈다. 그들은 테트라히메나의 DNA 사슬 끝부분에 염기서열 CCCCAA가 계속 반복돼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부분이 유전정보가 담긴 DNA가 끝까지 복제되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추측했고, 이를 확인하는 실험을 했다.

연구팀은 인공적으로 DNA 단일 가닥(미니염색체)을 만들어 효모 세포에 넣었다. 복제를 거듭함에 따라 미니염색체는 점점 짧아져 결국 유전자를 모두 잃어버렸다. 그들은 미니염색체 양 끝에 테트라히메나 DNA에서 분리한, 염기서열 CCCCAA가 반복된 1.5kb(염기 1500개) 길이의 DNA 조각을 붙였다. CCCCAA가 반복된 DNA 조각과 결합한 미니염색체는 효모 세포 안에서 보통 미니염색체보다 더 안정했다.

CCCCAA가 반복된 DNA 조각은 염색체가 단시간 내에 분해되지 않도록 유지되는 매듭, 즉 테트라히메나의 텔로미어인 것이다. 테트라히메나의 DNA 끝에는 유전정보를 담고 있지 않은 CCCCAA가 20~70번 반복돼 있기 때문에 DNA 합성효소가 DNA 가닥 전체를 복제하지 못하더라도 DNA가 가진 유전정보는 모두 복제할 수 있다.

성균관대 의대 진단검사의학과 김종원 교수는 “각 종마다 텔로미어의 염기서열과 길이는 서로 다른데, 사람 염색체에 있는 텔로미어는 TAGGG 염기서열이 반복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의 텔로미어 DNA는 나이나 조직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2~20kb(염기 2000~2만 개) 정도”며 “대부분 이중나선 구조이지만 맨 끝에 있는 염기 약 150개가 매듭구조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포 차원에선 노화와 암은 동전의 양면

텔로미어도 결국 염기서열로 이뤄진 DNA이므로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복제되는 길이가 점점 줄어든다면 언젠가는 텔로미어가 모두 사라져 DNA 유전정보도 손실되진 않을까. 과학자들은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지는 현상을 ‘세포가 노화한다’고 표현한다.



1961년 과학자들은 조직에 따라 이미 세포가 분열하는 횟수가 정해져 있으며, 그 횟수를 넘기면 세포가 늙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국의 노화 연구자 레오나드 헤이플릭 박사는 태아 조직과 노인 조직에서 떼어낸 세포를 분열시킨 결과 각각 100번, 20~30번 분열한 뒤 죽는 현상을 관찰했다.

노인은 세포도 늙은 셈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세포가 분열하는 횟수를 조절해 세포의 수명을 결정하는 요인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었다. 블랙번 교수와 조스택 교수는 세포가 늙어 죽게 만드는 유력한 용의자로 텔로미어를 지목했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가 짧아지기 때문에, 어느 순간 한계점(노화점)보다 짧아지면 세포가 죽는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는 50~100bp(염기쌍 50~100개)만큼 짧아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모든 세포에서 텔로미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암세포나 줄기세포는 텔로미어가 줄어들지 않아 무제한으로 증식한다. 1984년 블랙번 교수는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그라이더 교수와 함께 텔로미어를 만드는 효소(텔로머라아제)를 발견했다. 대개 효소는 단백질로만 구성돼 있는데, 텔로머라아제는 단백질과 RNA로 이뤄져 있다. 텔로머라아제는 자기 RNA를 주형으로 삼아 DNA를 합성한 뒤 염색체 끝에 붙인다. 이 DNA 조각이 텔로미어다.

모든 세포는 텔로머라아제를 갖고 있지만, 대부분의 일반 세포에서는 활성화되지 않으며 난자를 만드는 전구세포와 혈액세포를 만드는 조혈모세포 같은 일부 세포에서만 활성화된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일정 속도로 짧아져 일반세포보다 더 천천히 노화하도록 조절하기 위해서다.

가끔 텔로머라아제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될 때가 있다. 바로 암세포다. 텔로머라아제가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DNA 끝에 텔로미어가 계속 붙어 세포가 늙지 않고 계속 분열하는 암세포가 된다. 역으로 텔로머라아제가 활발히 작용하지 않아 유전질환을 일으킬 때도 있다. 예를 들어 골수에서 조혈모세포가 빨리 늙어 죽으면 혈액세포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아 재생불량성 빈혈이 된다. 세포의 눈높이에서 보면 노화와 암은 반대 과정인 셈이다.



현재 의학계에서 풀고자 하는 숙제인 노화와 암을 해결하는 데 텔로머라아제가 새로운 실마리가 되진 않을까. 과학자들은 텔로머라아제의 기능을 응용하면 노화나 암에 대한 신약이나 새로운 치료 방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세포의 노화를 억제해 수명을 연장하거나, 암세포가 무한하게 증식하는 일을 막아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번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에는 의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 텔로머라아제의 작용을 조절해 재생불량성 빈혈 같은 유전질환이나 암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돼, 텔로미어 연구 분야에서 다시 한 번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탄생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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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 도움 김종원 성균관대 의대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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