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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4 노벨 의학상] 생명과학의 새로운 장을 연 마이크로RNA

 

올가을에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과학 분야의 최고 영예로 손꼽히는 노벨상 발표. 100년 넘게 이어져 온 이벤트지만, 올해 발표는 더욱 특별하고 놀라웠어요. 인공지능(AI)이 노벨 과학상을 평정했기 때문입니다. 물리학상은 AI 선구자가, 화학상은 AI 기업 대표가 받았습니다. 한편 생리의학상은 난치병 치료 가능성을 제시한 마이크로RNA에 돌아갔죠. 노벨위원회가 왜 이들에 주목했는지, 노벨상의 의미인 ‘인류를 위한 과학’이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과학동아가 세상에서 가장 쉬운 해설을 준비했습니다.

 

 

2024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인공은 많은 사람들이 예측했던 ‘비만 치료제’나 ‘게놈 지도’가 아니었습니다. ‘마이크로RNA(miRNA)’를 발견한 빅터 앰브로스 미국 매사추세츠 의대 교수와 게리 러브컨 하버드대 의대 교수가 그 영예를 안았죠. 이들의 수상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겼어요. 그들의 연구가 발표된 지 무려 31년이 흐른 데다가, 비슷한 주제가 이미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거든요. 그럼에도 miRNA의 발견이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를 함께 살펴봅시다.

 

마이크로RNA가 대체 뭐길래?

 

몸속 세포핵 안에는 유전 물질인 DNA가 들어 있습니다. DNA에 담긴 유전 정보는 mRNA를 거쳐 단백질로 전달됩니다. mRNA가 특정 단백질을 만드는 ‘설계도’인 셈입니다. mRNA는 핵에서 세포질로 나와 리보솜과 결합, 리보솜이 단백질을 합성하도록 유도합니다. 만들어진 단백질은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명 활동을 주관하죠.

 

그런데 mRNA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RNA 중 약 1~2%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RNA는 단백질로 번역되지 않는 비암호화 RNA예요. 그중 하나가 바로 마이크로RNA(miRNA)입니다. miRNA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크기가 아주 작습니다. 겨우 20여 개의 뉴클레오타이드로 이뤄져 있죠. 하지만 하는 역할은 아주 커요. 특정 mRNA에 결합해 단백질 생산을 억제함으로써, 세포 내에서 단백질의 발현량을 조절하거든요.

 

miRNA가 발견되기 전까지 과학자들은 ‘전사 인자’와 같은 단백질이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사 인자는 DNA의 특정 부위에 결합해 발현을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단백질입니다. 하지만 1993년 빅터 앰브로스 미국 매사추세츠 의대 교수와 게리 러브컨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작은 RNA 조각도 유전자의 발현을 직접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1mm 벌레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두 사람은 1980년대에 로버트 호비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연구실에서 함께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던 동료였어요. 각자 연구실을 차린 뒤 앰브로스 교수는 예쁜꼬마선충의 발달 과정을 연구했습니다. 특히 발달에 관여하는 ‘lin-4’와 ‘lin-14’라는 유전자에 관심이 있었죠. 그러던 중 lin-4 유전자가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대신 뉴클레오타이드 22개로 구성된 작은 RNA를 생성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한편 러브컨 교수는 예쁜꼬마선충에서 lin-4가 lin-14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lin-14 유전자의 서열을 규명했어요.

 

이후 앰브로스 교수와 러브컨 교수는 lin-4와 lin-14의 유전자 서열을 서로 공유했습니다. 두 과학자는 이들 사이에 상보적인 염기 서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이는 곧 lin-4에서 만들어진 miRNA가 lin-14에 결합해 lin-14의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는 의미였죠. 1993년, 이들은 이런 발견을 각각 국제학술지 ‘셀’에 두 편의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doi: 10.1016/0092-8674(93)90530-4, doi: 10.1016/0092-8674(93)90529-y

 

제자가 먼저 노벨상을 받았다?

 

단백질이 아닌 RNA가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는 것은 이전에 없던 혁신적인 발견이었지만, 초기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어요. 이것이 예쁜꼬마선충에만 국한된 현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7년이 지난 2000년, 러브컨 교수는 miRNA가 예쁜꼬마선충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명체 전반에 걸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는 예쁜꼬마선충에서 또다른 miRNA인 let-7 유전자를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let-7은 초파리와 인간의 염기 서열에도 존재했어요. 이후 조개, 지렁이, 제브라피시 등 여러 생물종에서도 let-7 유전자가 발견됐죠. 이는 miRNA가 진화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보존된 유전자 조절 메커니즘이라는 뜻이었습니다. doi: 10.1038/35040556

 

이후 많은 과학자들이 miRNA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자연스레 노벨상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앰브로스 교수는 본인이 받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의 이번 수상 소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미 RNA 간섭(RNA interference・RNAi)이 노벨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것이 miRNA를 포괄하는 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노벨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고 말하면 나는 (miRNA라는 주제가) 벌써 다뤄졌기 때문에 아니라고 답하곤 했어요.”

 

앰브로스 교수의 말처럼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miRNA와 밀접한 분야에서 나왔습니다. 수상자는 앤드류 파이어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와 크레이그 멜로 매사추세츠 의대 교수로, 심지어 멜로 교수는 앰브로스 교수의 제자였습니다. 이들은 1998년 예쁜꼬마선충에서 RNAi 현상을 발견해 노벨상을 받았죠.

 

한 눈에 보는 노벨상, 마이크로RNA 작동 원리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마이크로RNA(miRNA)를 발견한 두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miRNA는 특정 mRNA에 결합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1993년에는 miRNA가 예쁜꼬마선충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했지만, 2000년부터 다양한 생명체 전반에 걸쳐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RNAi, 이건 또 뭘까?

 

RNAi 현상이란 작은 RNA 조각을 이용해 상보적인 염기 서열을 가진 유전자를 분해함으로써 발현을 억제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작은 RNA 조각을 siRNA(small interfering RNA)라고 부르는데요. siRNA는 mRNA와 상보적으로 결합하고, 약 20개의 뉴클레오타이드로 구성돼 있다는 점에서 miRNA와 유사합니다.

 

하지만 둘은 크게 두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원의 차이입니다. siRNA는 대체로 외부에서 유래한 인위적인 염기 서열로부터 기원하지만, miRNA는 주로 우리 몸 안의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집니다. 두 번째 차이는 mRNA와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siRNA는 표적 mRNA와 100% 상보적으로 결합해 매우 특이적으로 유전자 발현을 억제합니다. 반면 miRNA는 ‘시드서열’이라고 불리는 6~8개의 염기에서만 상보적으로 결합한다면 단백질 합성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miRNA는 수천 개의 mRNA에 결합할 수 있어 표적 유전자의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miRNA 연구로 질병 타파!

 

오늘날 과학자들이 miRNA를 연구하는 주된 이유는 그것이 질병과 연관이 깊기 때문입니다. 많은 질병의 주요 원인은 유전자의 발현 조절 이상에서 비롯돼요. 즉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miRNA의 증가나 감소가 암, 심혈관 질환, 신경계 질환 등의 발병을 초래할 수 있죠.

 

따라서 miRNA는 질병 치료나 진단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인공적인 miRNA를 개발해 암과 관련된 유전자를 제어하거나, miRNA와 상보적인 anti-miRNA를 통해 miRNA 자체를 억제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어요. 또한 혈액 내 miRNA를 검출해 질병을 진단하는 바이오 마커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miRNA가 실제로 활용된 사례는 없습니다. miRNA는 여러 mRNA와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죠. 여러 mRNA를 한 번에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한편으론 치료제로서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요. 앞으로 miRNA를 활용해 여러 유전자를 정확히 조절할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생명공학, 컴퓨터공학 등 여러 분야의 연구자가 함께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mRNA 백신처럼, miRNA가 질병 치료의 새로운 길을 열어젖힌다면 이 분야에서 또 한번 노벨상이 나올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최성욱
 

 

제자가 본 앰브로스 교수, “학문과 인품 모두 존경할 만한 스승”

 

안녕하세요, 저는 한올바이오파마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최성욱입니다(사진 가운데). 2011~2019년 앰브로스 교수님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연구실에서 기계가 고장나면 고치는 건 항상 교수님 몫이었어요. 보통이라면 전원을 껐다 켰다 하겠지만, 교수님은 왜 고장났을지 생각하고 원인을 줄여가며 고장난 곳을 차근차근 찾아내셨죠. 이처럼 어떤 현상을 접할 때마다 가설을 세우고 문제의 원인을 찾으시는 태도는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수님은 제게 “가장 훌륭한 실험은 자신이 세운 가설을 반증할 수 있는 실험”이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또한,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셨어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꼭 시도해 보시고, 심지어는 학생들에게도 “네가 공부한 것을 나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셨습니다. 매주 있는 대학원생 세미나에서도 열심히 필기하시고, 가르치려는 태도가 아닌 배우려는 열정으로 질문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어느 날은 제가 좋은 질문을 하는 방법을 여쭤봤어요. 그러자 러브컨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라며 “좋은 질문을 하려 애쓰기보단, 100개의 질문을 하면 그 중 10개는 좋은 질문이 나올 것”이라고 조언해 주셨죠.

 

교수님은 연구뿐만 아니라 취미와 가정에도 진심이셨어요. 점심 시간마다 러닝을 한 뒤 샤워를 하고 오후 연구에 몰입하셨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셨죠. 워낙 소박하셔서 학생들과도 친구처럼 지내셨어요. 연구실 사람들 중 교수님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정말 존경하는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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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기획 및 글

    김미래, 김소연, 김진화, 김태희
  • 디자인

    이한철
  • 도움

    김현호 성균관대 삼성융합의과학원 교수, 조은정 성균관대 약대 교수, 최성욱 한올바이오파마 수석연구원, 한태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신약중개연구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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