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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는 죄가 없다

북미 덮친 ‘냉동고 한파’의 진짜 원인은?


01월 8일(현지시각) 미네소타 주는 영하 37℃로, 미국 전역에서 가장 낮은 온도를 기록했다. 디트로이트와 시카고 등도 영하 20℃ 이하로 뚝 떨어졌다. 특히 바람이 강한 일리노이 주와 인디애나 주, 미시간 주 등은 체감온도가 영하 40~50℃까지 떨어졌다.

인명 피해도 잇따랐다. 90세 노인이 눈에 묻힌 차를 빼내다 사고로 숨지고, 일부 주민은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는 등 20여 명이 사망했다. 항공기 4000여 편이 운항을 중단하는 등 경제적 손실은 5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됐다. 프랑스 AFP통신은 “이런 추위는 남극과 북극은 물론, 지구 밖 궤도를 도는 화성 일부 지역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엉뚱하게 극 소용돌이에 화풀이했나?

20년 만에 북미를 덮친 이번 한파의 근본 원인으로 지구온난화가 꼽히고 있다. CNN 등은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온도가 올라가자 북극의 찬 공기를 가두는 제트기류가 약해진 게 원인이라고 보도했다. 극지방 대류권 상부와 성층권에는 최대 지름이 6000km에 이르는, 강하면서도 차가운 저기압성 바람인 ‘극 소용돌이(Polar Vortex)’가 존재한다. 평소에는 제트기류에 갇혀 있던 극 소용돌이가 약해진 제트기류를 타고 캐나다와 미국까지 남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석에 대해 국내 기상전문가들은 “꼭 지구온난화가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지훈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최근 이론은 북극 해빙이 감소한 영향으로 북극진동지수(박스 기사참조)가 음이 될 때 중위도에 한파가 올 수 있다는 건데, 올해 한파는 이런 경향성이 약했다”며 “이번 한파는 이런 과정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서 극진동 대신 극 소용돌이가 죄를 뒤집어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이론에 따르면 지구온난화 때문에 북극 해빙이 녹고 결국 북극진동지수가 음수가 돼서 우리나라나 북미를 포함한 중위도 지역에 한파가 올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올해 한파는 좀 다르다. 북극진동지수는 올 1월 초에 약 -1.5, 1월 중순에는 +1을 기록했다. 평년대비 기온 편차도 2010년과 2011년 혹한 시기에 나타난 전형적인 온도 패턴과 달랐다. 최근 5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올해는 북극 해빙 면적도 상당히 넓어진 상태다(그림 참조).


 

 

 


100년 전 한파도 지구온난화가 원인일까

결국 이번 한파는 일시적이고 우연한 현상이기 때문에 지구온난화를 원인으로 지목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즉 지구온난화가 없었더라도 이런 한파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지구온난화에 회의적인 최용상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번 한파 때 뉴욕이 118년 만에 최저 온도로 떨어졌다죠. 그럼 118년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때도 지구온난화 때문에 한파가 왔을까요? 어쩌면 그런 추위가 약 100년마다 한 번씩 오는 자연적인 현상은 아닐까요?”

변영화 국립기상연구소 기후연구과 연구관도 “지구온난화라는 개념은 몇십 년간의 추세, 즉 기후의 거시적인 흐름”이라며 “이번 한파를 비롯해 개별적이고 특이한 기상 현상을 모두 지구온난화와 직접 연관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같은 이유로 북미 한파와 함께 남미를 강타한 폭염도 지구온난화가 원인이 아니다. 조천호 국립기상연구소 기후연구과장은 “남미 부근의 아열대 고압부가 강화돼서 폭염이 왔다”며 “올해 처음 나타난 현상으로, 이처럼 지속적이지 않은 현상을 무조건 지구온난화와 연관시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이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기상이변의 원인이 지구온난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한파의 진짜 이유는 뭘까. 여러 전문가들은 ‘자연변동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김주홍 극지연구소 극지기후변화연구부 선임연구원은 “올해는 북극진동지수가 낮지 않았던 만큼, 지구온난화보다는 자연변동성 때문에 제트기류가 약화돼 극 소용돌이가 내려왔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고 말했다. 자연변동성이란 지구의 대기, 해양, 지질 등에 이미 내재돼 있는 주기적인 변화다. 수년에서 수백 년 주기를 갖고 반복된다. 북극진동과 제트기류 역시 이런 자연변동성 때문에 매년 강해지기도, 약해지기도 한다.




자연변동성이 지구온난화 늦춘다

자연변동성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엘니뇨와 라니냐다. 열대 지방의 태평양 온도가 평소보다 0.5℃ 이상 차이가 나는 상태로 5개월 이상 지속되는 현상이다. 올라가면 엘니뇨, 내려가면 라니냐라고 하는데 3~7년마다 나타난다. 호주의 다윈 지역과 남태평양 타이티의 기압차가 급격히 변하는 ‘남방진동’이나 65~80년을 주기로 북부 대서양 해수면의 온도가 바뀌는 ‘대서양 수십 년 단위진동’, 20~30년 주기로 태평양의 표면 온도가 변하는 ‘태평양진동’, 그리고 무작위적인 화산활동 등이 주기적인 자연변동성의 예다. 학자들은 이런 자연변동성을 지구가 열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보기도 한다.

특히 자연변동성은 주기성이 있다고 하지만 우연적 요소가 강해 매년 양상이 조금씩 다르고,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도 기상 변화가 커질 수 있다. 브라질에 사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큰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다. 엘니뇨는 남미 북쪽의 페루나 에콰도르의 해안선을 따라 찾아오는데, 엘니뇨가 강하면 이 지역에 대규모 홍수가 발생한다. 페루와 볼리비아의 고원지대에는 비정상적인 폭설이 내리기도 한다. 엘니뇨가 일어나 건조한 상태로 변하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호주 북부 등지에는 산불이 자주 일어난다.

실제로 2011년 1월 북반구에 이례적인 한파가 닥쳤을 당시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라니냐의 영향을 거론하기도 했다. 안 소장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언론이 겨울철 한파 원인으로 북극진동을 많이 거론하는데, 북극이 따뜻해지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곳은 한반도 북쪽 시베리아”라며 “북극진동에 의해 북극의 찬 공기가 시베리아로 내려왔다면 그곳에 머물고 있는 찬 공기를 한반도까지 끌어들인 데는 라니냐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연변동성이 지구온난화를 당분간 약화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독일의 세계적인 기후학자인 모집 라티프 교수는 2008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전 세계의 온도는 아마 다음 10년간 증가하지 않을 수 도 있다”며 “북대서양과 열대태평양의 자연변동성이 인류가 만들어낸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일시적으로 상쇄할 것”이라고 주장해 화제가 됐다.
 

 


 


기후는 자연변동성과 지구온난화의 ‘합작품’

물론 인간이 만들어낸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아예 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구 기후가 변하는 폭이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북극진동은 지구온난화와 관련 없이 원래 커졌다가 작아지는 자연변동성의 일부지만, 최근 20년 사이에 그 진폭이 두 배 가까이 커졌다. 1990~1994년 사이에 엘니뇨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자주 일어났다. 지구온난화가 영향을 줬기 때문일 수 있다.

핵심은 지구온난화와 자연변동성이 영향을 주고받아 현재 기후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조천호 과장은 “이번이 지구온난화와 상관없는 예외적인 한파라 해도, 앞으로 지속된다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의 범위에 포함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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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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