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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종학의 아버지 우장춘을 만나다

그의 진짜 업적은 유채와 겹꽃 피퓨니아

서울에서 KTX 열차를 타고 3시간 가까이 달려 부산에 내렸다. 동래구에 있는 ‘우장춘 기념관’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명륜동역에 내렸다. 몇몇 시민에게 길을 물어봤지만 우장춘 기념관의 위치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물어물어 우장춘 기념관에 도착했다. 순간 아, 잠시 실망했다.


빛바랜 우중충한 흰색의 2층짜리 작은 건물. 한 층의 넓이도 중고등학교 교실 하나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였다. 적어도 서너 층은 넘는 거대한 규모를 예상했는데 말이다.

뚜렷한 간판도 없어 평소 눈여겨보지 않으면 주변에 사는 사람들조차 이곳이 우장춘 기념관이란 사실을 모를 듯싶었다. 정문 앞에는 웬 우물이 하나 있다.“우장춘 박사가 육종 연구를 했던 한국농업과학연구소 자리가 바로 여기예요. 지금은 연구소는 없어지고 우 박사가 만든 이 우물만 남았죠.”이곳 박미아 과학문화해설사의 설명이다. 우 박사는 당시 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육종 연구에 썼다고 한다.



배추+양배추=유채

1층 기념관 입구로 들어서자 작은 화분들이 눈에 띈다. 각 화분엔 손톱 크기만 한 싹이 돋아 있다.“처음 보셨죠? 피튜니아예요. 우 박사는 겹꽃 피튜니아 씨앗을 처음 만들었어요.”

피튜니아는 가짓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꽃잎이 한 장인 피튜니아 홑꽃은 암술과 수술이 있어 수정이 가능하지만 꽃잎이 여러 장인 겹꽃은 암술이 퇴화됐다. 겹꽃이 더 예쁘지만 우 박사 생전만 해도 매우 귀했다. 암술이 없으니 종자 번식이 되지 않아 꺾꽂이로만 생산해야 했기 때문이다.





피튜니아 홑꽃끼리 교배하면 대부분 홑꽃이 피고, 겹꽃끼리는 수정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 나무에서 홑꽃과 겹꽃이 함께 핀다. 우 박사는 겹꽃의 형질이 홑꽃보다 우성이라 돌연변이가 생기는 거라고 예상하고 홑꽃과 겹꽃을 교배했다. 그 결과 겹꽃의 종자를 얻는 데 성공했다. 교배한 홑꽃과 겹꽃의 유전자형을 각각 ss와 SS라고 하면 자손 겹꽃의 유전자형은Ss다. 결국 우 박사는 육종기술로 새로운 화훼 품종을 개발할 수 있음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증명해보인 셈이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기념관 한가운데에 이번엔 배추 모형이 자리 잡고 있다. 배추 역시 우 박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나 싶었다.

“우 박사 시대엔 같은 종끼리만 교배가 가능하다는 게 육종학계의 진리였어요. 하지만 이 고정관념을 우 박사가 깨뜨렸죠. 재래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해 유채를 얻었거든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유채 말이에요.”

배추, 양배추, 유채. 이들은 모두 브라시카속(屬)에 속한 식물이다. 그러나 각기 다른 종(種)이다. 결국 같은 속에 속한 다른 두 종을 교배한 결과 같은 속의 또 다른 종이 나왔다는 얘기다. 이 연구로 우 박사는 일본 도쿄제국대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농촌진흥청 전 원예연구소장 서효덕 박사는 “이는 속이 같고 종이 다른 식물이 유전적으로 서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한 결과”라며 “이 이론은 육종학계에서 지금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박사는 배추와 양배추, 유채의 염색체 수까지 분석했다. 염색체는 유전자가 뭉쳐 있는 덩어리. 유채의 염색체는 19개다. 배추의 염색체(10개)와 양배추의 염색체(9개)가 합쳐진 숫자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예작물부 윤무경 박사는 “우 박사는 배추와 양배추, 유채 염색체의 모양과 크기를 비교해 유채의 염색체가 배추와 양배추에서 왔다는 사실도 증명했다”며 “서로 다른 종이 각자 환경에 적응하며 개별적으로 진화한다는 다윈의 진화론을 보완한 셈”이라고 말했다. 서로 다른 종이 교배를 통해 새로운 종으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얘기다.



 



씨 없는 수박 개발자는 일본인



씨 없는 수박 모형은 의외로 2층 전시관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전시돼 있다. 우장춘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아닌가.“씨 없는 수박을 실제로 개발한 사람은 우 박사가 아니에요. 일본 육종학자 키하라 히토시 박사죠. 우 박사는 1953년 키하라 박사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해 국내에서 씨 없는 수박을 만들어 보였어요. 일본 연구를 재연한 거죠. 육종이 얼마나 큰 가능성이 있는 기술인지, 육종 연구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씨 없는 수박은 일반 수박의 씨나 어린 싹에 콜히친이라는 화학약품을 처리한 뒤 다시 일반 수박과 교배해 만들었다. 콜히친은 22개인 수박의 염색체를 44개로 늘리는 역할을 했다. 44개 염색체를 가진 수박과 22개 염색체를 가진 수박이 교배돼 나온‘씨 없는
수박’은 염색체가 33개다.

기념관에는 이 밖에 무와 감자, 감귤 같은 채소나 과일 모형도 많다.

“맛있지만 병에 잘 걸리는 울산 무와 맛은 떨어지지만 병충해에 강한 일본 무를 교배해 튼튼하고 맛 좋은 무로 개량한 성과도 빼놓을 수 없는 우 박사의 업적이죠. 또 당시엔 감자가 바이러스 때문에 수확량이 20%까지 줄었어요. 우 박사는 강원도에서 직접 감자를 재배하며 바이러스에 잘 견디는 신품종을 개발했습니다. 제주도에 감귤을 재배하면 잘 자랄 거라고 처음 내다본 사람도 바로 우 박사였어요.”

우 박사 덕분에 제주 서귀포는 현재 국내 최대의 감귤 생산지가 됐다.

우 박사는 1959년 8월 10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우장춘 기념관에서는 매년 이날 그의 업적을 기념하는 추모행사를 연다. 하지만 이를 알고 찾아오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단다. 육종기술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몸소 보여준 우 박사에 대한 관심이 너무 부족한 건 아닐까.
 
 

“육종기술 체험, 강원도로 오세요”

우장춘 박사가 과거의 육종기술 전도사였다면 요즘은 이 과학자가 육종기술을 알리는 데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강원대 원예학과 강원희 교수다.

강 교수는 5년 전부터 매년 과학에 관심 많은 학생과 과학교사를 모집해 실제로 여러 가지 식물을 재배하면서 모양과 크기, 색깔 같은 독특한 형질이 자손에 전달되는 현상을 직접 확인하는 ‘유전육종체험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덕분에 그의 연구실에는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야생 토마토와 고추 같은 다양한 작물이 항상 자라고 있다.

“생물학을 전공한 과학교사조차 멘델의 유전법칙을 실제로 체험해보지 못한 경우가 많더군요. 우리 연구실에서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죠.”



오스트리아 유전학자 그레고르 멘델은 꽃의 색깔과 위치, 키, 꼬투리의 색깔과 모양, 씨의 색깔과 모양처럼 서로 다른 7가지 형질을 나타내는 완두를 교배해 이들 형질이 유전되는 법칙을 알아냈다. 이 유전법칙은 지금까지 육종학의 기본이 되고 있다. 체험학교에 참가하면 완두뿐 아니라 고추 같은 다른 식물로도 멘델의 유전법칙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강 교수의 전공은 원래 육종학이 아니라 분자생물학이다. 육종학을 기피하고 분자생물학으로 눈을 돌리는 요즘 많은 젊은 과학도와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분자생물학이든 육종학이든 이제는 두 분야를 다 잘 이해해야 해요. 개체 수준에서 일어나는 눈에 보이는 현상도 확인해야 하고, 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현상도 들여다봐야죠. 육종도 이제 분자까지 다루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으니까요.”

유전육종체험학교에 참가하려면 홈페이지(mendelschool.kr)로 신청하고 문의는 (033)250-6423으로 하면 된다.

임소형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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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부산=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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