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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모세혈관 따라 10만km ‘건강 게이트키퍼’ 모세혈관 총정리

지름 약 8μm, 전체 길이 약 10만km, 몸속 ‘골목길’로 불리는 이것. 바로 모세혈관이다. 굵은 혈관인 동맥과 정맥이 ‘고속도로’라면 세동맥(가는 동맥)과 세정맥(가는 정맥)은 ‘국도’에 비유할 수 있다. 모세혈관은 이들 ‘국도’에서 뻗어나와 작은 마을까지 다다른 골목길쯤 된다.

 

심장에서 출발한 피가 고속도로, 국도, 골목길을 모두 거쳐 다시 심장으로 돌아오는 데는 약 1분이 걸린다. 이 시간 동안 우리 몸에는 평균 4~5L의 피가 흐른다. 우리 몸은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피를 흘려보내고 있다.

 

 

건강 ‘게이트키퍼’ 모세혈관


그간 혈관 연구는 정맥과 동맥 같은 굵은 혈관에 집중돼 있었다. 이들 혈관에 찌꺼기가 쌓여 혈류 속도가 느려지거나 혈관이 아예 막히면 심장에 무리가 가고 심혈관질환이 발생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모세혈관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구불구불한 모세혈관을 따라 피가 천천히 흐르면서 장기에 영양분을 전달하고, 필요 없는 물질은 버려진다. 모세혈관이 우리 몸의 건강을 지키는 ‘게이트키퍼(gatekeeper)’ 역할을 하는 셈이다.

 

장기에 따라 모세혈관의 형태와 기능은 다르다.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연구단장(KAIST 의과학센터 교수)은 “모세혈관을 연구하면 장기에서 벌어지는 생체 현상을 더욱 세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며 “건강한 사람과 환자의 모세혈관을 비교해 새로운 치료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 단장은 혈관 연구에서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석학이다. 최근에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8월 25일자에 모세혈관의 특징을 정리한 리뷰논문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지난 5~10년간 혈관연구단과 세계 각국 과학자들이 모세혈관의 비밀을 풀어낸 논문 160편을 분석한 결과가 담겼다.

 

사이언스 리뷰논문은 해당 분야의 최신 성과를 망라해 자신의 의견을 붙여 평가하는 것으로 보통 국제적으로 연구 업적을 높이 인정받은 석학이 집필한다. 이번 리뷰논문은 고 단장이 혈관 연구의 대표적인 학자인 헬무트 아우구스틴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의대 교수와 공동으로 집필했다.

 

고 단장은 “최근 모세혈관 생성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단백질을 여럿 확인했다”며 “영양분을 얻기 위해 혈관이 지나치게 많이 증식하는 암이나, 비정상적인 혈관을 만들어 시력을 떨어뜨리는 황반변성 등을 치료하는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폐, 그물처럼 허파꽈리 감싸

 

그물망마다 포도송이가 들어 있는 듯한 이곳은 폐다. 약 3억 개나 되는 허파꽈리마다 그물처럼 생긴 모세혈관들이 감싸고 있는데, 모세혈관의 표면적을 넓혀 기체(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주고받기에 최적화된 구조다. 이곳에서는 허파꽈리와 모세혈관 내압력 차에 따라 기체가 확산된다. 그래서 코와 입, 기관지를 거쳐 허파꽈리로 들어온 산소는 모세혈관으로 들어가고, 혈액이 온몸을 순환하면서 수거한 이산화탄소는 허파꽈리로 나간다.

 

허파꽈리마다 그물처럼 생긴 모세혈관이 감싸고 있어 표면적을 넓힌다. 이런 구조는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기에 적합하다. 형광으로 염색된 부분이 모두 모세혈관이다.

 

 

혈액은 산소를 적혈구에 실어 온몸으로 ‘배송’한다. 1분 동안 이렇게 배송하는 산소는 약 1L나 된다.

 

이충근 IBS 혈관연구단 연구원은 “허파꽈리의 상피세포를 감싸고 있는 모세혈관의 내피세포는 매우 얇으면서도 표면적이 넓어 기체를 다량 주고받을 수 있도록 특화된 구조”라고 설명했다.

 

 

뇌, 혈관 대신 수용체로 영양분 전달

 

뇌혈관장벽(뇌의 모세혈관)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사진.

 

산소를 제때 공급하지 못하면 세포는 죽고 만다. 세포가 죽으면 조직이 망가진다. 그래서 몸속 세포들은 대부분 모세혈관으로부터 100~150μm 이내로 아주 살짝 떨어져 있다. 거의 붙어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중에서도 산소 공급이 가장 중요한 장기는 대뇌다. 대뇌는 일을 하거나 가만히 있거나, 심지어 잠을 자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일을 한다.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사용한다. 만약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신경세포가 손상되면서 조직이 죽고 심할 경우 뇌사 상태에 빠질 수 있다.

 

뇌나 망막 신경세포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는 모세혈관은 내피세포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연속성 모세혈관이다. 커다란 분자가 새어나가거나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물과 포도당 같은 수용성 물질만 주고받을 수 있는 분자(수용체)도 갖고 있다. 배호성 IBS 혈관연구단 연구원은 “뇌의 모세혈관에는 뇌의 성장과 유지에 필요한 DHA 물질만을 선택적으로 수송할 수 있는 수용체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뇌는 한 번 손상되면 다시 회복되기 어려운 만큼 외부로부터 강한 충격을 받지 않는 구조가 최우선이다. 일단 딱딱한 머리뼈인 두개골이 뇌를 감싸고 있다. 그 안에는 뇌수막이 둘러져 있고, 다시 그 안에는 뇌 척수액이 가득 들어 있다. 그러니까 뇌는 물에 둥둥 떠있는 구조로 돼 있고, 그 덕분에 바깥에서 충격을 받아도 그 여파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는 셈이다.

 

대뇌에 있는 모세혈관에서는 혈액 속 병균이나 유해물질이 뇌로 침투하지 못하도록 모세혈관 안쪽 벽에 내피세포가 촘촘하게 붙어 혈관벽을 만든다(뇌혈관장벽). 그래서 크기가 0.1나노미터(nm, 1nm는 10억 분의 1m)정도로 매우 작은 물 분자조차 통과하기가 어렵다.

 

고 단장은 “대뇌에서 모세혈관벽을 이루는 내피세포 사이의 간격은 영양분은커녕 물 분자도 지나가기 어려울 만큼 좁다”며 “포도당, 아미노산, 철분, DHA와 같은 오메가3 지방산 등 대뇌에 꼭 필요한 성분은 내피세포에 있는 단백질 수용체를 통해 전달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때문에 면역반응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항체나 질병 치료용 약물도 뇌에 주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초음파 등으로 자극해 내피세포 사이의 틈을 미세하게 열어 약물을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눈, 모세혈관 없는 ‘암실’ 유일 보유

 

‘모세혈관 내비게이션’에 경로가 잡히지 않는 장기도 있다. 피부 각질이나 손톱, 발톱, 머리카락을 제외하고 우리 몸에서 모세혈관이 하나도 없는 부위를 보유한 장기다. 바로 눈이다.

 

망막에 모세혈관이 그물처럼 촘촘하게 모여 있다.

 

사실 눈은 우리 몸에서 단위 무게당 모세혈관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장기다. 특히 망막 뒤쪽에는 두께 0.2~0.4mm인 ‘맥락막’이라는 일종의 ‘벽’이 있는데, 이곳에 모세혈관이 밀집해 있다. 맥락막은 외부에서 들어온 빛이 공막(흰자위)으로 분산되지 않도록 암실 역할을 하고, 이를 통해 눈이 사물을 또렷하게 볼 수 있게 만든다. 다시 말하면 맥락막처럼 혈관이 많으면 빛이 통과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빛의 통과가 중요한 눈에는 혈관이 없는 부위가 많다. 맨 처음 빛을 받아들이는 각막, 빛을 모으는 오목렌즈 역할을 하는 수정체, 그 빛이 하나의 초점으로 모여 상이 맺히는 황반에는 혈관이 없다. 특히 황반은 망막 중에서도 시세포가 가장 많이 밀집돼 있어 상을 또렷하게 인지하는 부분이다. 이곳에 모세혈관이 없는데도 조직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유는 맥락막으로부터 산소와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기 때문이다.

 

다만 노화를 비롯해 다양한 유전적, 환경적 요인으로 맥락막 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골치가 아프다. 김재령 IBS 혈관연구단 연구원은 “맥락막의 모세혈관이 줄어들면 저산소증에 빠질 수 있는데, 우리 몸은 산소가 부족하면 혈관을 새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며 “혈관 내피세포를 증식하는 혈관내피성장인자가 모여 들어 비정상적인 혈관이 새로 돋아난다”고 말했다. 비정상적으로 자란 혈관에서 피와 체액이 새어나오면서 망막이 붓기 시작하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시력이 떨어진다.

 

맥락막으로부터 거리도 멀고 바깥에 노출돼 있는 각막은 어떻게 산소와 영양분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까. 각막 주변은 수분을 공급하는 ‘로터리’가 둘러싸고 있다. 혈관도 아니고 림프관도 아닌, 혈관과 림프관의 중간 형태인 ‘슐렘관’이다. 모양체에서 만들어진 수분(방수)이 슐렘관을 지나면서 각막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정맥으로 빠져나와 심장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만약 방수가 슐렘관에서 잘 빠져나가지 못하면 안압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망막신경세포가 망가지는 녹내장이 생길 수 있다. 또 각막을 이식했는데 면역계에서 거부 반응을 나타낼 경우에는 각막 중심까지 새 혈관이 자라나, 투명했던 각막이 혼탁해지면서 결국 시력이 떨어질 수 있다.

 

 

간, 100~200nm 구멍 숭숭 뚫어 영양분 전달

 

음식물을 잘게 분해한 영양분을 온몸으로 옮기는 일도 모세혈관의 몫이다. 영양분을 가득 실은 혈류는 다른 곳을 거치지 않고 간으로 직접 배송하기 위해 ‘간선도로’ 격인 ‘간문맥’으로 빠져나간다. 서상헌 IBS 혈관연구단 연구원은 “심장을 거쳐 온몸으로 퍼지기 전, 독성물질을 거르고 영양분만 남기는 영리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건강하고 맛있는 피’만 남기는 셈이다.

 

간문맥을 따라 흐르던 피는 대동맥으로부터 파생된 간동맥과 만나고, 간세포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모세혈관으로 보내진다. 모세혈관을 따라 각종 대사과정을 거친 피는 간정맥을 타고 다시 심장으로 이동한다.

 

간에 있는 모세혈관은 지름이 100~200nm인 비교적 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이 구멍을 통해 포도당이나 아미노산, 지방산 같은 영양분을 간세포까지 옮기고, 간에서 만들어진 물질을 혈류로 내보낸다. 서 연구원은 “간에서 수많은 물질이 드나드는 만큼, 들어가는 길목에 혈관이 알맞게 나 있다”고 설명했다.

 

간은 우리 몸에서 재생 능력이 가장 뛰어난 장기다. 이렇게 간이 다시 회복되는 비결도 모세혈관에 있다. 모세혈관을 이루는 혈관 내피세포는 간세포와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내피세포는 평소에  성장억제인자를 분비하지만, 간 조직이 손상되면 이 인자의 분비를 막아 간세포를 증식한다.

 

간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 간세포는 혈관내피성장인자를 분비해 혈관 내피세포를 증식시켜 새로운 혈관을 만든다. 간세포와 내피세포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간을 회복시키는 셈이다. 하지만 간경화나 간암 등으로 간 조직이 지나치게 많이 망가지면 결국 혈관 내피세포도 손상돼 회복이 어렵다.

 

 

신장, 혈압 차로 찌꺼기 걸러

 

신장은 몸속에서 더 이상 필요 없는 찌꺼기만 걸러내 소변으로 내보낸다. 거름주머니 역할을 하는 사구체에는 모세혈관이 실 뭉치처럼 엉켜 있는데, 사구체로 들어가는 입구(동맥)보다 사구체에서 나오는 출구(정맥)가 좁아서 생기는 혈압차로 이런 찌꺼기를 거른다. 그래서 신장의 모세혈관은 물, 포도당, 요산 등 크기가 작은 분자와 나트륨, 칼륨 등 이온만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구멍이 작다. 지름이 100nm 수준이다.

 

 

신장 사구체를 현미경으로 촬영한 모습. 모세혈관이 꼬불꼬불하게 뭉쳐 있다.

 

 

또 사구체를 둘러싼 기저막이 음전하를 띠고 있어 음전하를 띤 단백질은 모세혈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서 연구원은 “혈류가 느린 모세혈관에서는 혈액이 응고해 혈전이 생기기 쉽다”면서 “다행히 사구체의 혈관 주변에 있는 다리세포(podocyte)가 혈전을 방지하는 혈관내피성장인자를 분비한다”고 설명했다.

 

 

단단해지는 데 모세혈관이 필수


성장기에는 뼈의 양끝에 성장판이 있다. 파골세포가 성장판의 연골 끝부분을 없애고, 혈관이 아치형으로 자라나며, 조골세포가 새로운 뼈를 만들기를 반복하면서 뼈가 자란다(왼쪽 사진). 속이 비어 있는 탑을 올리는 과정에 비유하자면, 천장을 없애고 새 벽과 새 천장 쌓기를 계속하는 셈이다.

 

뼈는 연골상태로 만들어지는데, 갓 생성된 연골에는 모세혈관이 없다. 그래서 산소가 부족한 탓에 혈관 내피성장인자를 분비해 모세혈관을 자라게 한다. 뼈가 자라는 동안 모세혈관은 연골을 단단하게 만드는 인자를 분비한다. 즉, 뼛속 모세혈관이 뼈를 단단하게 굳히는 셈이다. 이충근 IBS 혈관연구단 연구원은 “모세혈관이 뼈를 단단하게 유지하는 원리를 연구해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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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대전=이정아 기자
  • 사진

    IBS 혈관연구단
  • 일러스트

    동아사이언스, 이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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