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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의 열혈 엄마, 사육사 배경구

행복한 동물들의 미소에 배부른 사람

“성격 예민한 녀석들을 돌보다보면 자식 같은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무럭무럭 커나가는 모습을 확인하는 게 저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죠.”

동물 얘기가 나오자마자 연륜을 품은 고참 사육사의 주름진 얼굴에서 금세 싱글벙글 웃음이 번진다. 고단할 법도 한 동물과의 일상을 묻는 질문에서 오히려 그의 표정에는 즐거움이 묻어난다. 주인공은 서울대공원에 재직 중인 배경구 사육사. 그는 동물에 우수한 생육 환경을 제공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2008 서울대공원 청구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인물이다. 이 상은 1989년에 제정됐으며, 국내 우수 사육사에게 주는 대표적인 상이다.

주위에선 배 사육사의 수상 소식에 ‘받을 만한 사람이 받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무엇보다 그는 희귀동물을 번식시키는 데 독보적인 능력을 가졌다. 배 사육사는 최근 멸종 위기 동물인 코먼 마모셋, 일본원숭이, 미어캣 새끼가 잇달아 세상 빛을 보게 한 일등 공신이다. 특히 미어캣은 7마리나 번식시켰다. 이 동물들은 성격과 생육 조건이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하다. 당연히 동물원에서 번식에 성공하는 일도 극히 드물었다.

미어캣 태교 뒷바라지에 신바람
배 사육사는 “동물을 바라볼 때 엄마의 심정이 된다”고 말했다. 미어캣이 국내에서 십 수 년만에 자연 분만에 성공한 것이 바로 그의 이런 지극정성 때문이었다. 미어캣은 지난해 서울대공원이 뽑은 최고 인기동물에 선정된 스타급 손님이기도 하다.
배 사육사에 따르면 임신한 미어캣은 유두가 발달하면서 성격이 날카롭게 변한다. 그는 이런 미어캣이 눈에 띄자마자 바쁘게 움직였다. 어떻게 ‘임신부’를 돌볼까 궁리하던 끝에 미어캣이 ‘태교’에 집중할 수 있는 독립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미어캣은 보통 20마리가 한꺼번에 생활합니다. 임신한 어미라면 편안히 쉬고 싶은 게 당연하죠. 그런데 미어캣 무리가 우루루 몰려다니는 환경에서는 그게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늑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어미 혼자서만 지낼 수 있도록 따로 공간을 마련해줬죠.”

실내 온도와 습도까지 쾌적하게 맞춘 독립 공간은 임신부 미어캣의 마음을 안정시키기에 충분했다. 독립 공간은 사람들에게 받는 스트레스도 확 줄였다.
동물원에 사는 동물은 늘 자신을 구경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한다. 거기서 받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어미가 갓 태어난 새끼를 잡아먹기까지 한다.

영양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 썼다. 어미가 잘 먹어야 새끼를 튼튼하게 기를 수 있다는 기본 이치를 배 사육사는 한 시도 잊지 않았다.
“새끼를 갖게 되면 아무래도 더 많은 먹이를 원하기 마련이죠. 소고기, 닭고기도 많이 줬지만 미어캣이 특히 좋아하는 손가락만한 벌레인 ‘밀웜’이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이것저것 챙길 일이 많아지다보니 배 사육사의 일상은 더욱 바빠졌다. 하지만 힘들지 않았다. 자신은 ‘천생(天生)’ 사육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농고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생활을 마무리한 뒤 이 일에 뛰어들었죠. 그동안 참 재미나게 일했습니다. 동물과 함께 하는 생활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

코먼 마모셋 구루병 앓을까 노심초사
국내 동물원에 있는 동물 대부분은 해외에서 들여왔다. 번식뿐만 아니라 기르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4계절이 뚜렷한 한국의 기후에는 더운 지방에서 살던 동물이든 추운 지방에서 살던 동물이든 곤욕을 치르기 마련이다. 배 사육사의 손길은 이런 동물에도 세세히 미쳤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결과를 꼼꼼히 확인했다가 동물이 가장 좋아할 만한 생활 여건을 만드는 데 활용했다.

원숭이의 일종인 코먼 마모셋은 배 사육사의 배려를 받은 대표적인 동물이다. 이 동물은 꼬리를 제외한 몸 길이가 20cm 정도로 소형 영장류에 속한다. “키워보니까 추운 곳에서는 먹이를 잘 먹지 않더라고요.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는 거죠. 15℃만 돼도 움직임이 둔해지면서 원래 행동 패턴을 잃었어요. 그래서 항상 20℃를 유지해주고 있어요. 브라질에서 살던 동물이다보니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바짝 신경을 쓰고 있지요.”

바깥 기온이 많이 내려가는 11월부터 4월까지 코먼 마모셋은 한기를 피할 수 있는 내실에서 주로 지낸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코먼 마모셋이 햇볕을 쬘 수 없어 구루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구루병을 막는 비타민D는 햇볕을 쪼여야 생성되는 데 내실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해서다. 이 때문에 코먼 마모셋이 실내에서 지내는 기간에는 자외선 방출기를 켜 준다. 일종의 인공 햇볕을 만드는 셈이다. 자외선 방출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꼼꼼히 확인하는 것도 배 사육사의 몫이었다.

배 사육사는 “사실 상을 받은 나뿐만 아니라 서울대공원에 있는 사육사 모두가 동물의 생육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서울대공원에서는 한여름이 닥치면 추운 지방에 사는 북극곰이 무더위를 견딜 수 있도록 엄청난 크기의 얼음을 풀 안에 띄워준다. 얼음 속에는 먹이가 될 만한 물고기를 한꺼번에 넣어 놀이를 즐기다 식사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열대 지방에서 사는 파충류의 경우엔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사육장을 20℃에서 25℃ 로 유지한다. 파충류는 변온 동물이기 때문에 기온이 내려가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심지어 요즘에는 주기적으로 인공 소나기를 뿌려줘 국지성 호우인 ‘스콜’을 재현하는 사육장도 있다. 이런 노력들 대부분이 사육사들의 땀과 아이디어에서 나오고 있다.

과자 먹고 죽는 동물 보면 가슴 아파
1999년부터 배 사육사가 일한 서울대공원 테마가든 내 어린이 동물원에서는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일이 비교적 자유롭다. 가까이에서 동물을 보며 만지는 것이 어린이 동물원의 취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관람객들이 호기심 삼아 던져주는 과자가 사료와는 성분이 달라 동물들이 소화불량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사료는 균형 잡힌 영양 성분이 골고루 들어 있지만 사람이 먹는 과자에는 염분이나 지방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많은 관람객이 다녀가는 주말 직후엔 동물들이 설사를 하는 일이 잦습니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안타까워요.”
심지어는 과자 봉지를 삼키는 동물까지 있다고 배 사육사는 말했다. 과자 봉지에 묻은 고소한 냄새에 이끌린 동물이 이를 그대로 삼켜 배앓이를 한다는 얘기다.
“회복하지 못하고 죽고 마는 동물도 있습니다. 건강하던 녀석들이 그렇게 되고 나면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아프죠. 허전한 마음이 잦아들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낮은 한숨을 내뱉는 배 사육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동물원에 오는 관람객들이 조금만 더 동물을 배려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먹지 못할 물건들을 사육장에 던지지 않는 것만 실천해도 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배 사육사는 서울대공원이 문을 연 이듬해인 1985년에 사육사의 길에 들어섰다. 그동안 고릴라, 오랑우탄, 사자, 침팬지, 코끼리 등 길러보지 않은 동물이 없을 정도로 이 분야의 베테랑이 됐다. 그를 두고 “최고의 선배”라고 부르는 사육사가 부지기수인 이유다.
그런 그에게 가장 보람된 순간을 물으니 자신다운 대답이 돌아온다. “18년 전에 사육한 고릴라가 오래간만에 들른 날 알아보고 누워 있다 벌떡 일어났을 때”라고 얘기한다.

그는 자신이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우리 사육사들 모두 사실은 엄마예요. 동물의 행복을 위해 항상 뛰고 있죠. 제가 퇴직한 뒤에 제 경험을 바탕으로 일하는 후배들이 ‘그 사람 참 괜찮았지’ 정도의 얘기만 해도 전 더 바랄 게 없습니다.”
한국 동물원 100년 역사를 이끈 서울대공원. 그곳에서 최고 사육사로 대접받는 이가 바라는 소박한 바람이 앞으로의 서울대공원 100년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주목된다.

배경구 사육사가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은 동아사이언스 홈페이지(www.dongaScience.com)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동물원 100배 즐기기
사전 학습으로 관람효과 ‘쑥쑥’


서울 동물원 홈페이지(위)와 사이버 동물원 홈페이지.

동물원에 가기 전, 동물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을 쌓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동물의 생태를 이해하기 쉬워지고, 동물에 관한 흥미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선 이 같은 원리에 착안한 여러 웹사이트들이 다양한 정보를 쏟아내고 있다.

국내 최대 동물원인 서울대공원에서 운영하는 ‘서울동물원(grandpark.seoul.go.kr)’은 동물에 관한 방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것이 강점이다. 서울대공원 내 24개 동물사에 사는 동물의 특징을 ‘동물지식사전’ 코너에서 빠르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좋은 유인원관을 선택하면 모나 원숭이, 오랑우탄, 알락꼬리여우 원숭이 등 총 13종 원숭이의 분포 국가, 서식 기후, 식성, 임신 기간, 수명, 행동 특징을 망라해 익힐 수 있다.

동물의 생생한 울음소리를 듣고 싶다면 ‘사이버 동물원(cafe.naver.com/cyberzoo)’을 찾으면 된다. ‘동물소리’ 코너에서 제공하는 코끼리, 낙타, 오랑우탄 등의 울음소리가 담긴 mp3 파일을 들으면 야생에 나와 있는 듯한 착각에 흠뻑 빠진다. 각 파일별 재생 시간은 1분 내외이며, 음질도 좋은 편이다. 동물원에서 실제 동물 울음소리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사이버 동물원’은 관리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참여가 활발한 카페 형태로 운영된다. 누리꾼이 직접 찍은 사진이나 소소한 동물원 경험담도 볼 수 있어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동물그림 창고(www.animalpicturesarchive.com/list.php?lang=kr)에는 질 높은 동물 사진이 가득 담겨 있다. 높은 수준의 사진이 사이트를 채우고 있어 누리꾼의 눈을 즐겁게 한다. 애니멀 파크(www.animalpark.pe.kr)에선 동물 보호를 중심으로 한 칼럼이 볼 만하다. 동물에 관한 각종 영화와 서적이 일목요연하게 소개돼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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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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