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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역사는 동물이 행복해지는 역사

구경거리에서 생태계 보존 위한 ‘노아의 방주’로

시인 노천명은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말했다. 그의 시 ‘푸른 오월’에서다. 도시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인 동물원이 5월에 유난히 붐비는 것도 같은 이치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온갖 동물이 어깨를 펴고 뛰노는 모습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정서를 달래는 특효약이다.

하지만 정작 동물원에 있던 동물들은 지난 수십 세기 동안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서식지에서 동물을 강제로 데려와 좁은 공간에 가두어 기르는 동물원의 방식이 해당 동물들에겐 극한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낯선 우리 속에 갇혀 사람들의 눈요깃거리로 살다 죽어간 동물에게 동물원은 지옥과 다를 바 없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근대 이후 많은 학자들이 이어간 노력은 현재 일부 동물원을 생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쉽게 말하면 자연을 통째로 들어다 옮겼다는 얘기다.

단순히 동물을 전시하는 데에서 종(種)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것으로 현대 동물원의 주된 운영 방향이 바뀔 수 있었던 것도 동물원의 환경이 자연답게 변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연 속에 놓인 동물은 관람객을 더 행복하게 했다. 좁은 우리에 갇혀 이빨을 드러내며 유리벽에 주먹을 날리는 오랑우탄보다 나무 기둥에 올라가 줄을 타며 허공을 가르는 오랑우탄이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서서히 진보한 동물원의 역사는 동물이 조금씩 더 행복해진 역사와 일치한다.


초기 동물원은 권력 과시와 유희 수단

동물원은 본래 왕과 귀족을 위한 시설이었다. 수많은 동물을 잡아들이고 관리하는 행위가 강력한 권력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동물원은 대외에 힘을 과시하는 수단이 됐다. 독특한 유희를 원하는 지배층의 구미를 만족시키기에도 동물원은 좋은 아이템이었다.

학계에서 인정하는 최초의 동물원은 기원전(BC) 1300년 경 이집트에서 출현했다. 당시 이집트의 왕과 귀족들은 희귀한 동물을 잡아 구경하는 것을 중요한 소일거리로 삼았다. BC 700년 경 지금의 서남아시아를 차지했던 아시리아 제국에서는 수도의 왕궁 안에 산양, 낙타, 들소 등을 기르는 수렵원을 만들었다. 이곳에선 왕과 귀족들이 사냥을 하거나 향연을 개최하고 제사를 지냈다.

뒤이어 이 지역의 맹주로 등장해 고대 그리스와 군사 충돌을 벌이기도 했던 페르시아 제국은 수도뿐만 아니라 광대한 영토 곳곳에 수렵원을 구축했다.
 
학계가 근대 동물원의 효시로 평가하는 오스트리아 쉔브른 동물원 역시 1752년에 당시 국왕이었던 프란츠 1세가 그의 왕비를 위해 세운 것이었다. 1765년이 돼서야 이 동물원은 일반에 공개됐다.

그렇다면 일반인들은 동물을 어디에서 볼 수 있었을까. 대개는 서커스단이었다. 조련사의 채찍이나 구령에 따라 공을 굴리는 곰, 사람을 태워 올리는 코끼리가 관객 앞에 나섰다.

문제는 이렇게 동물이 권력 과시나 장난감을 대신하는 수단이 되다보니 동물에 대한 인간적 배려가 뒷전으로 밀렸다는 점이다. 동물의 행복감을 높이는 복지 대책은 전무했고, 수많은 동물이 속절없이 목숨을 잃었다. 동물원은 동물이 통제받지 않은 공간으로 달아나는 것을 막는 감옥에 불과했다.

1829년 영국에서 문을 연 런던 동물원이 주목받는 건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런던 동물원은 동물원의 운영 주체와 목적을 완전히 바꿨다. 과학이 발달하기를 열망하는 시민의 뜻을 모아 설립된 이 동물원은 왕가가 아니라 동물학협회가 운영했다.

런던 동물원이 내건 운영 목적은 ‘동물학과 동물생리학을 발전시키고 동물계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사실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학계에선 특히 이 동물원이 동물생리학 발전을 언급한 데 주목한다. 동물생리학은 동물의 기관이나 조직, 세포의 기능을 자연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다. 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동물이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문화에선 이 학문이 융성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이는 동물을 인간적인 태도로 대해야 한다는 선언이 공개적으로 나온 것을 뜻한다.

런던 동물원의 영어 명칭인 ‘The Zoological Society of London’에서 현대 동물원을 가리키는 명칭인 ‘Zoo’가 유래된 것도 런던 동물원이 지닌 무게를 가늠하게 한다. 런던 동물원 이전까지의 동물원은 구경거리에 방점을 찍은 ‘미네저리’(menagerie)로 구별해 부른다.

런던 동물원을 시작으로 19세기부터 수많은 동물원이 선보이기 시작한다. 당시 세워진 동물원 중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것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북미, 호주 등에 걸쳐 22개에 이른다.
 

 
인조 바위 넘어 숲속으로

동물원의 양적 확장을 기초로 20세기 동물원에선 주목할 변화가 일었다. 전시 방식이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이다. 런던 동물원의 이념을 이어받은 각 동물원은 동물 생육 방식을 세 차례에 걸쳐 변화시킨다. 기본 개념은 동물을 최대한 자연과 유사한 환경에서 지내도록 하는 것이었다.

2002년 상명대 송병룡 박사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는 관람객과 동물을 철책이 아니라 일종의 도랑인 ‘해자’로 분리하는 기법이 활용됐다. 해자는 관람객이 동물을 철책 사이로 들여다봐야 하는 상황을 개선했다. 무엇보다 동물을 바깥에 풀어 놓을 수 있는 수단이 됐다. 동물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야외를 거닐었다.

이때에는 자연계에 있는 물체를 정밀하게 묘사한 모형인 ‘디오라마’를 활용한 전시 기법이 크게 발전했다. 1913년 런던 동물원은 디오라마에 근거한 인공 산을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는 동물원 공간을 지리학적으로 배치하는 방법이 도입됐다. 동물을 사는 대륙에 따라 전시했다는 얘기다. 오스트레일리아, 유라시아,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로 구분해 해당 지역에 따라 동물을 모았다.

하지만 이때까지의 동물원에는 ‘인조’(人造)의 냄새가 진동했다. 호랑이가 드나들도록 만든 동굴, 가장 자연다워야 할 나무와 바위도 모두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었다. 벽과 바닥에 발린 콘크리트가 자연을 대체한 모습이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생태주의 전시가 등장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지금도 진화 중인 생태주의 전시는 동물원에 자연의 향기를 불어넣는 데 중점을 뒀다. 고양이과에 속하는 동물을 쭉 모아놓거나 같은 대륙에 사는 동물을 집단 수용하지 않았다. ‘이 동물이 어떤 기후에서 자랐는가’가 동물원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사육장이 마치 서식지를 통째로 옮겨 온 듯한 모양새를 띠었다.

관람객은 숲속에서 원래 습성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을 찾아 눈과 귀를 집중했다. 이 같은 전시 방식을 학계에서는 ‘경관 몰입’(landscape immersion)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동물원이 미국 우드랜드 공원이다. 1977년부터 동물원 전역을 기후에 따라 툰드라, 타이가, 산악지대, 온대 강우림, 온대 낙엽수림, 사막, 열대 강우림 등 10개 지구로 구분했다.

캐나다 토론토 동물원은 동물원 안에 초지, 숲, 언덕 등을 조성해 동물이 자신의 습성대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미국 뉴멕시코주에 있는 ‘살아 있는 사막의 동식물 공원’에서는 멕시코 국경 근처의 건조한 고원과 초지를 모래 언덕, 석회암 언덕, 사막, 냇물 유역, 숲으로 구분해 동물들이 각자 생활 방식에 맞게 살 수 있도록 했다.


‘서식지 옮기기’는 미래 동물원 대세
동물원의 운영 형태가 변화한 것은 동물원의 주된 기능이 전시, 위락에서 동물의 종 보존과 생태에 관한 교육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환경파괴가 심각해지면서 멸종 위기종을 번식시키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동물원의 중요한 임무로 떠올랐다. 동물원의 환경이 자연과 근접하게 된 것은 자연이 대량 파괴된 상황을 만회하기 위한 측면이 있는 셈이다. 세상을 온통 뒤덮은 엄청난 홍수에서 자연계의 종을 보존한 ‘노아의 방주’에 현대 동물원을 빗대는 학자들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1992년 미국 출신의 세계적 생태학자인 재닌 베니어스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부터 세계 동물원에서 사는 포유류 90%가 동물원에서 자체적으로 번식된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원이 야생에서 잡아 온 동물을 가두는 곳이 아닌 종 보존의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주장이 뒷받침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동물원에 자연 서식지를 최대한 옮겨다 놓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동물에게 야성을 찾아주는 일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동물을 만드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대책이라는 학계의 결론이 앞으로 또 어느 동물원을 변화시킬지 주목된다.


동물도 즐거움 느낄까?

사람처럼 ‘도파민’ 분비

 
저명한 동물행동학자인 제인 구달과 함께 ‘동물에 대한 윤리적 대우를 위한 모임’을 설립한 미국 콜로라도대 마크 베코프 교수에 따르면 동물도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은 행복감을 느낀다.

베코프 교수는 이 같은 분석을 담은 자신의 저서 ‘동물의 감정’에서 “동물은 놀이를 하거나 친구를 만날 때, 서로의 털을 다듬어 줄 때, 잡혀 있다가 풀려날 때, 노래할 때, 심지어 남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을 볼 때에도 즐거워한다”고 밝혔다. 베코프 교수에 따르면 돌고래는 기분이 좋으면 킬킬거리며 웃는다. 코요테나 늑대들은 서로 반기듯이 달려가 꼬리를 거칠게 흔들며 인사한다. 코끼리는 커다란 귀를 펄럭거리며 괴성을 지른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사람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게 베코프 교수의 지적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일선 사육사들도 목격한다. 일본원숭이는 아침에 출근한 사육사가 우리 근처로 접근하면 ‘반갑다’는 의미의 소리를 지른다. 서울대공원 배경구 사육사는 “그때 지르는 소리는 포획망을 들고 들어간 사육사에게 경계심을 표시할 때와는 다르다”며 “보통 사람의 귀에는 비슷하게 들려도 즐거움의 감정이 묻어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원숭이는 감정 유형에 따라 30여 가지 다른 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즐거움을 느낄 때 사람의 뇌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인 도파민이 동물에서도 분비된다고 베코프 교수는 강조했다. 포유동물은 인간처럼 감정을 관장하는 대뇌의 변연계를 갖고 있어 상당히 풍부하고 정밀한 형태의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즐거움을 경험한 인간의 ‘하하’ 소리와 쥐의 ‘찍찍’소리는 본질적으로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나타난다는 얘기다.

이와 비슷한 견해는 진화론을 창시한 찰스 다윈에게서도 발견된다. ‘종의 기원’과 함께 그의 대표 저서로 꼽히는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 대하여’에 따르면 북아프리카산 꼬리없는 원숭이는 기쁠 때 날카로운 소리를 반복해 지르며 입 언저리를 뒤쪽으로 당긴다. 다윈은 이때 생기는 근육의 수축 현상이 인간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난다고 기술했다.
 
파충류나 조류, 어류도 즐거움을 느낀다. 비록 포유류만큼 조직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이런 동물이 단지 자극에 반응할 뿐인 ‘단백질 덩어리’라는 견해에는 많은 반론이 있다. 실제 서울대공원에서는 친구를 잃고 우울증을 앓던 파충류인 갈라파고스 코끼리 거북이 활달한 성격을 가진 너구리곰과의 포유류인 붉은 코아티와 한 우리에 살면서 건강을 회복한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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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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