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숲길을 천천히 걸어가다가 나뭇잎, 가지, 꽃을 찬찬히 보면 애벌레가 보인다. 꼼꼼히 나뭇잎 뒷면이나 떨어진 배설물, 그리고 나뭇잎이 먹힌 흔적을 잘 살피면 언제나 애벌레를 관찰할 수 있다. 게다가 애벌레의 형태나 특성을 익혀 ‘척 보면 알 수 있는’ 수준이 되면 많은 종류의 애벌레를 확실하게 만나게 된다.

살아있는 애벌레와 맞부딪히면 그들이 쉬거나 먹는 모습, 위협행동이나 천적의 재빠른 공격은 물론 자극적 방어와 도망가는 행동도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애벌레의 생태적 행동을 직접 볼 수 있는 즐거움도 있고 애벌레와 천적들이 먹고 먹히는 치열한 삶의 모습을 보노라면 한 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 같다.
이렇게 흔적을 찾아 추적하는 것은 애벌레를 관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워낙 숨기의 천재인 애벌레인지라 항상 쉽게 찾을 수는 없다. 더구나 지표면 근처의 잎이나 풀에서 흔히 발견되는 종류가 아니라 나무의 중간 높이나 숲의 우거진 윗부분에 사는 애벌레를 채집하고자 할 때는 관측만으로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럴 때는 식물을 때리거나(beating) 쓸어본다(sweeping).

[반달누에나방(Mirina christophi ) 쓸어담기 방식으로 채집할 수 있는 종
분류 : 나비목/반달누에나방과
날개 편 길이 : 40~50mm
먹이식물은 병꽃나무이다. 종령 몸길이는 60mm 내외. 연두색 몸 전체에 긴 가시형태의 돌기가 나 있다. 자극을 받으면 몸을 좌우로 심하게
흔들면서 두 번째와 세 번째 가슴마디 사이에 있는 붉은색의 무늬를 드러낸다. 어른벌레는 연한 갈색으로 앞날개 가운데에 검은색의 반달무늬가 있어 반달누에나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어떻게 때려야 많이 떨어질까
애벌레를 채집하는 간단한 방법은 식물을 때리는(beating)것이다. 이 방법은 나무나 철제로 된 프레임에 면직물로 만든 캔버스 천을 펴서 만든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기구가 없다면 간단하게 우산을 반대로 세우거나 시트를 나무 밑이나 관목 밑에 깔아 사용할 수도 있다. 수거용 받침을 설치한 뒤 나뭇가지를 막대로 쳐 애벌레가 캔버스 천에 떨어지게 한다.
식물을 때릴 때는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반드시 날씨를 확인한다. 비가 오면 깔때기 모양의 캔버스 천에 물이 차기 때문에 떨어진 애벌레들이 물에 젖거나 심한 경우 익사할 수도 있다. 때리기가 끝난 후에는 반드시 바닥의 천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왕눈큰애기자나방은 먹이 식물인 쥐 똥나무에서 떨어져도 나뭇가지인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아 식별하기 힘들다. 떨어진 후에도 줄기에 나뭇가지처럼 붙어있던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멈춰있어 만져서 물컹한 느낌을 받아야 비로소 애벌레인줄 한다.
다음으로 한 종류의 식물만 수집한다. 그렇지 않으면 먹이식물이 불확실할 수 있고 식성에 맞는 먹이 식물을 애벌레에게 주지 못해 애벌레를 죽게 할 수도 있다. 또 ‘때리기’란 단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여러 번 때려서는 효과가 낮다. 한 번에 강하게 나무를 때리면 약하게 계속 치는 것보다 애벌레가 더 많이 떨어진다. 나무를 계속 흔들고 때리다보면 애벌레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배의 헛발에 있는 조그만 갈고리로 오히려 나무를 더 세게 붙잡는다. 바람 부는 날에 때리는 방법이 성공하기가 힘든 것도 같은 이유다. 애벌레가 바람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이미 나뭇가지를 꽉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늘이 덮여 있는 숲속보다는 많은 양의 빛을 받을 수 있는 숲의 가장자리를 조사하는 것이 좋다. 또 군락지에서 떨어져 있는 식물을 때리자. 곤충들이 알을 낳는데 지나치기 어려운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구멍 안에서 나비 애벌레 찾기
비슷한 방법으로는 ‘쓸어담기’가 있다. 튼튼한 철제 포충망으로 빗질하듯 키가 작은 관목의 나뭇잎을 먹고 있는 애벌레들을 쓸어 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의 단점은 빗질을 하면서 여러 종류의 식물을 쓸다 보니 다른 식물에 붙어 있던 애벌레들이 한 번에 채집되어 특정한 먹이식물을 찾아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워낙 위장술이 뛰어나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종류의 애벌레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버드나무 가지 끝에 붙어있어 쉽게 구별을 못했던 왕무늬푸른자나방이나, 애벌레의 등면에 버드나무의 잎을 달고 다녀서 마치 마른 잎처럼 보였던 큰무늬박이푸른자나방은 버드나무만을 목표로 쓸어 담기를 한 후에야 만날 수 있었다. 낮에는 땅으로 내려와 천적을 피하고 휴식을 취하던 애벌레들이 먹이식물을 먹으러 올라가는 땅거미 질 저녁 무렵에 성공률이 높다.
때리거나 쓸어잡는 채집의 좋은 점은 여러 종류의 애벌레들을 모을 수 있고, 여러 식물에 서식하고 있는 다양한 생물상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연구소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에게 짧은 시간에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엄청나게 많은 생물과 다양성을, 때리고 쓸어잡는 채집을 통해 보여주곤 한다. 그러나 채집한 애벌레들 중에 먹이식물을 확실히 모를 때는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나무의 몸통에 난 구멍을 통해 수액이 나와 덩어리 진 곳이나 과일껍질 안에 길을 내고 돌아다닌 흔적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구멍을 뚫는 나비목 곤충은 흔치 않아 찾아내기 힘들다. 그러나 벚나무의 수액 덩어리는 유리나방 종류의 애벌레가 살고 있고, 복숭아나무의 수액 덩어리는 잎말이밤나방이 나무 안에 있다는 분명한 표식이다.
포플러의 가지와 줄기가 만나는 가지밑살 부분에 생긴 혹 같은 배설물 덩어리에서는 언제나 박쥐나방 애벌레를 찾을 수 있다. 나무 속에 굴을 파고 다니는 굴벌레나방과의 애벌레는 단풍나무나 철쭉에 구멍을 내고 파고 들어간다. 구멍을 통해 배출한 톱밥처럼 땅에 수북이 쌓여있는 배설물을 확인하면 틀림없이 애벌레가 살고 있다. 사과나 복숭아 과수원의 골칫덩어리인 복숭아순나방 애벌레는 사과 표면 밑으로 길을 내고 돌아다닌 흔적과 조그마한 구멍을 찾으면 된다.

나방은 나비보다 아름답다
가을이 깊어갈 즈음 더 이상 애벌레 찾기가 불가능해지면 불러 모으는 방법도 있다. 올이 굵은 볏짚 새끼줄을 나무줄기에 넓게 감는다. 아직 잎에 남아 있거나 나무줄기를 오르내리는 애벌레들에게는 겨울을 날 수 있는 따뜻한 은신처이기 때문이다.
곤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상은 아마도 나비일 것이다. 나비가 속해 있는 나비목은 기름 성분인 분(粉)가루의 날개를 갖고 있는 모든 곤충을 포함한다. 나비와 나방이 해당한다. 나비와 나방의 차이는 분류학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름다운 색채와 화려한 몸짓의 나비와 독가루를 뿌릴 것 같이 혐오감을 주는 나방이라는 편견으로 굳이 나누려 한다.
분류학적으로 나비는 호랑나비상과나 팔랑나비상과에 속하는 종류이고 나머지 모두가 나방이다. 종류나 수로 보더라도 나방이 나비의 15배 이상이나 된다. 하지만 석주명 선생님 이후로 나비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이루어졌으나 훨씬 더 많은 나방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지 못했다.
나비와 나방의 가장 큰 생태적 차이는 활동 시간대다. 나방은 대부분 야행성이고 나비는 모두 낮에만 활동한다. 미진했던 나방의 생태를 연구하려면 야간이 더 효율적이다.
많은 애벌레들이 밥 먹으러 나오는 시간인 이른 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랜턴을 이용하거나 헤드램프를 쓰고 찾는다. 밤에는 식물의 갈라진 틈, 나무줄기의 가지에 숨어 있는 애벌레를 발견하기가 쉽다. 경계심을 풀고 가지나 잎맥 위에서 열심히 잎을 먹고 있는 애벌레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애벌레를 살펴보기에 하루 중 밤이 좋지만 계절적으로는 봄이 좋다. 봄은 식물이 아직 화학적으로 곤충 저항성 물질을 만들어 내지 않아서 애벌레들이 먹기에 좋다. 잎도 두텁지 않고 가시로 완전히 무장하지 않은 새로운 순도 애벌레에게는 최고의 식사감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들은 잎더미 속에서 쉼터를 마련하고 있다가 처음 나오는 새 순만 먹는다. 애벌레들이 새 순만 먹기 때문에 이름 붙은 복숭아순나방도 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애벌레를 채집할 때 털이 있는 종류는 모두 조심해야한다. 몸을 감싼 애벌레 털은 포식자에게는 껍데기를 까서 먹어야하는 불편함을 주고 기생벌도 정확히 침을 꽂기 어렵게 만든다. 솔나방과나 불나방과 그리고 재주나방과 밤나방과 등의 털은 물리적인 방어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솔나방과의 섭나방은 자꾸 만지면서 괴롭히면 털이 가시처럼 살에 박혀 따끔따끔하다. 해가 없을 것 같은 이런 종류의 애벌레조차도 극단적으로는 방어 무기로 반응할 수 있으므로 어쨌든 털은 조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