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GV신화로 고속전철왕국이 된 프랑스, 금년 6월 ICE개통과 함께 자기부상열차 개발에도 힘을 쏟는 독일, 그리고 이들이 주축이 되어 유럽 전체를 하나로 묶는 유로네트워크 등 세계 첨단을 걷는 유럽 철도기술의 현주소는?
유럽은 철도기술이 최초로 시작된 곳일 뿐 아니라 철도의 역할이 커서 철도에 대한 연구개발이 꾸준히 계속돼 왔다. 결과적으로 철도기술에 관한 한 세계적인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은 유럽이다.
철도기술은 토목 차량 전기 등 각 부분기술을 망라한 복합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 각 부분기술들이 잘 조화되어 종합화 실용화되고 적극적으로 활용이 되어야만 철도기술의 전반적인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 유럽의 경우 철도가 주요한 육상교통수단으로서 충분한 활용성을 보왔다는 것이 철도기술이 높은 이유가 된다. 철도운영이 쇠퇴하면서 상대적으로 철도기술의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러하다. 유럽의 경유에는 내연기관의 발달로 인한 차량 및 항공수요의 급증을 해결하기 위해 70년대말까지 도로 및 공항확장에 주력하고 철도투자를 등한시 한 때가 있었으며 그 결과 철도쪽에 주력한 일본에게 고속전철의 첫운영이라는 영광을 넘겨 주었다.
그러나 도로 및 공항의 확장한계와 환경문제 등으로 인해 철도로 다시 관심이 모아지자 여러나라에서 고속철도를 건설도입하게 되고 최근에는 철도기술에 대한 많은 신기록이 유럽지역에서 작성되고 있다. 이와 같은 추세라면 유럽지역이 과거의 '철도기술 원조'라는 위치를 탈환할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았다고 본다.
철도기술의 발전은 기술육성정책 뿐만 아니라 철도에 대한 정책, 더 나아가서 국가의 교통정책에 큰 영향을 받는다. 또한 철도기술의 특성은 그 나라의 철도운영정책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철도수단은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교통수단의 최종목표라고 할 수 있는 고객이나 수송물을 안전하게, 경제적으로 수송한다는 명제를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해 왔고 해나갈 것이라는 지적이다.
유럽의 주요 도시를 고속철도로 연결하는 유로네트워크(Euro Network)계획의 추진으로 각국의 기술특성들이 상당부분 국제화 일반화하는 추세를 보일 것이나 현재까지는 상이한 운영정책 및 개발배경으로 인해 나름대로 각국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지역 중에서도 철도기술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을 예로 들어 지역간 철도기술의 특징을 살펴본다.
TGV 신화 창조한 프랑스
프랑스에는 다양한 철도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으나 프랑스 철도기술의 특징을 말하라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실용성 및 효율성을 크게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하철에 고무바퀴차량을 최초로 도입했다든지 TGV(테제베, Train Grande Vittesse)의 노선을 설계하면서 도로설계 개념을 도입하는 등 상당한 수준의 파격을 가하기도 한다. 전체적인 효율성을 보장할 수 있다면 때로는 부분기술의 첨단기술 정도에는 크게 개의하지 않는 면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철도기술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TGV다. 프랑스는 일본의 신칸센 개발에 자극받아 프랑스 자체 기술로 TGV를 개발, 1981년 파리-리용간을 시속 2백70km로 첫 운행하였다. 일반적으로 철도는 차량이 주행할 수 있는 구배(勾配, 기울기)를 도로의 경우보다 매우 낮게(1.5%수준)하는 것이 관행이었으나 TGV의 경우 3.5%정도의 구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는 도로 허용구배의 절반 수준으로 철도의 면에서 보면 매우 높은 구배다. 또한 에너지 절감을 위해 차체를 경량화하는 노력을 하였으며 주행속도의 향상가능성을 고려하여 관절식대차(articulated bogie)를 활용하는 등 당시 일반적인 철도기술개념을 상당히 뒤바꾸었다. 이러한 기술적인 파격 뿐만 아니라 신설노선에서는 완전히 여객전용으로 운행하는 등 운영면에서도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였다.
파리-리용을 연결하는 TGV 동남선의 성공에 고무되어 1989년에는 파리-르망을 연결하는 TGV 대서양선을 개통하게 된다. TGV 대서양선은 속도를 시속 3백km로 향상시켰으며 이는 현재까지 정상적인 운행을 하는 고속전철중 가장 속도가 빠른 것이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속전철을 운행하고 있다는 기록 뿐만 아니라 비록 시험차량으로 얻은 것이긴 하지만 1990년에 세운 시속 5백15.3km라는 철도차량의 최고속도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는 과거에 거론되던 바퀴식 고속철도의 이론적 한계를 넘어선 속도다. 속도향상에 관한 연구결과는 곧바로 실용화로 이어지게 마련인데 TGV 북부선에 운영할 열차는 시속 3백50km의 주행능력을 보일 것이다. 기술이 발전되면서 경제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최고운행속도도 꾸준이 증가될 것으로 보이며 과연 그 한계속도가 어디까지 될 것인가 하는 것이 큰 관심거리다.
프랑스의 경우 조직적인 자기부상식 열차에 대한 연구개발은 현재까지 없으며 당분간 시도하기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 관계자들의 의견은 효율성을 따져볼 때 자기부상식 열차에 대해 현재까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독일, 자기부상열차에도 많은 투자
프랑스와는 달리 독일은 바퀴식 고속전철뿐만 아니라 자기부상식 열차 기술에 대한 투자도 많이 하고 있다. 고속전철개발에 참여가 늦어 금년 6월에야 개통된 독일의 고속전철 ICE(Inter City Express)는 현재까지 최첨단 부분기술의 종합체로서 '기술상의 최첨단성'을 자랑하고 있다.
ICE는 여객전용노선을 주행하는 TGV와는 달리 화물열차 및 여객열차가 모두 주행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최고속도 시속 2백50km로 운행하고 있다. 특별히 차량운행이 지연되었을 경우 시속 2백80km까지 주행하기도 한다. 속도를 시속 2백50km로 하는 이유는 기술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경제적 효율성 때문이다. ICE도 앞으로 추가로 건설되는 여객전용노선에는 시속 3백km까지 높일 계획이다.
한편 60년대말부터 진행된 독일의 자기부상식열차(Maglev) 연구는 일본과 더불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공기부상방식으로 발전되던 미국의 에어부상식 열차에 대한 연구가 70년대말 중단되자 일본과 독일은 자기의 반발과 흡인을 이용하는 상이한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자기를 얻는 방법도 상이하여 독일의 경우는 상전도 방식이라 하여 일반온도에서, 일본의 경우는 초전도방식이라하여 초저온에서 자기를 얻는 방식을 각각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 영국 벨기에 잇는 해저터널
자기의 강도도 방식별로 차이가 나서 독일의 상전도 방식은 열차를 1cm 정도 부상시키나 일본의 초전도방식은 10cm 정도 부상시키고 있다.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독일의 경우에도 아직 실용화된 예는 없으며 엠슬랜드 시험소에서 트랜스래피드-07 시스템을 시험중에 있다. 트랜스래피드-07의 전신인 트랜스래피드-06은 1988년에 시속 4백12km의 기록을 냈다. 계속 연구개발중이어서 정확히 언제 실용화될 지는 예측하기 곤란하지만 독일정부에서는 실용화할 노선을 이미 결정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일반철도와의 연계성문제로 공항과 도심을 연결하는 등 국지적인 운행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상황이 일반화 국제화 과정을 밟을 것이라고 전망한다면 유럽의 철도기술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날 것이다. EC통합과 이에 따른 유로네트워크 구축 등은 유럽철도기술의 기술표준화 내지는 범용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철도는, 단순히 노선만 연결하면 어떤 종류의 차량도 다닐 수 있는 도로와는 달리 노선의 연결 뿐만 아니라 전기, 신호체계 등의 표준화 또는 이중화를 필요로 한다. 일례로 프랑스, 영국과 벨기에 사이를 해저터널을 통해 연결하는 TGV 북부선에 운행될 TMST(trans Manche Supes Train)차량은 3개국의 기술적 상업적 요구를 모두 만족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독일의 ICE-M(Multisystem)도 국가간 철도의 연계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다양한 국가의 기술특성을 동시에 만족해야 하는 점은 철도기술발전에 제약조건이 될 수도 있으나 그러한 제약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궁극적으로 유럽 철도기술을 향상시키는 효과도 가져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