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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그 남자의 사정 [2]

친절한 우아씨의 똑똑한 데이트 ➐


2015년 7월 2일, 그 남자의 사정

(서울 신촌 00포차 소년과 선배가 마주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야,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이 시간에 불러냈으면 무슨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그렇게 술만 퍼 마시면 나더러 어쩌라고? 여자친구가 바람이라도 났냐?” (소년, 갑자기 눈빛을 희번덕거리며 어금니를 꽉 깨물고 내뱉는다.) “김대리 이 개자식.” (선배, 화들짝 놀라며) “미…, 미안하다. 그냥 해본 소리였는데. 야, 그러지 말고 형님한테 털어놔 봐. 나 물에 빠지면 입부터 가라앉는 거 알지?” (소년, 허공을 바라보며) “형, 인생이 참 웃긴 것 같아요. 딴 놈이 제 여자친구한테 집적대는 와중에 전, 그 여자애 얼굴이 자꾸 떠올라요.”




정 중앙 선에서 입사각 15도로 넣어라

“얼마 전부터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여자친구는 인턴 한다고 바쁘고, 저도 여행 자금 좀 모을 겸 해서요. 큰 식당이라 워낙 알바생이 많은데, 다 또래고 고깃집 일이 진짜 힘들어서 알바생들끼리 친해요. 서로 고생하는 거 옆에서 보니까.” “그래, 나도 그런 얘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 “거기서 어떤 여자애를 만났어요. 저보다 두 살 어린. 처음에는 그냥, ‘되게 마르고 조그맣고 귀여운 애네’ 하고 별 생각은 없었어요.”

(소년, 빈 잔에 맥주를 따르고 소주를 더한다.) “야, 너 이제 천천히 마셔. 그렇게 섞어 마시다가 훅 간다!” “아 참, 저 예전부터 궁금했어요. 진짜 술 섞어 마시면 빨리 취해요? 선배 화학공학과니까 잘 알지 않아요?” (선배, 살짝 당황하지만 검지 손가락으로 안경을 올려 쓰며 눈빛을 반짝인다.) “폭탄주는 보통 약한 술을 섞잖아. 소주는 19도에 불과하고 거기에 5도짜리 맥주를 섞으면 더 약해지겠지. 게다가 분위기상 단숨에 들이켜니까 더 빨리 취하는 거지. 그러니까, 폭탄주라서 빨리 취하는 게 아니라 빨리 마시니까 빨리 취하는 거야. 사람들이 괜히 과학적으로 뭐 있는 것처럼 핑계대는 거라고.”

“아, 그렇구나~. 그럼 폭탄주 마신 다음 날 숙취 심한건요?” “그건 말이지, 술에는 알코올뿐만 아니라 다른 화학성분도 많거든. 색소나 향료, 그리고 술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 같은 거. 그런 게 몸 안에서 반응을 일으켜서일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심한 숙취의 원인은 ‘부어라 마셔라’하는 과음이지. 야, 술 얘긴 그만하고 네 얘기 얼른 해봐. 궁금하다.”

“아, 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알바생들끼리 밥먹고 술 한잔 하고, 볼링장을 갔거든요. 팀을 나눠서 내기 볼링을 치려는데, 우연히 그 여자애랑 같은 팀이 된 거예요. 근데 볼링을 잘 못 치더라고요. 형 알죠? 제가 한 볼링 하는 거.” “어? 어…, 알지.”

“그래서 제가 그 여자애를 가르쳐주기 시작했어요. ‘볼링은 진자 운동이랑 똑같다. 손을 뒤로 높이 올릴수록 공의 위치에너지가 많아져서 바닥 근처에서 운동에너지가 커진다. 바닥이랑 수평 상태가 됐을 때 공을 놓아야 속도가 가장 빠르다. 스트라이크를 치려면 정중앙으로 치지 말고 가운데 핀이랑 옆 핀 사이 각도가 15° 정도 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충돌 직전에 회전이 생겨서 나머지 핀들에 힘이 전달된다’고요. 하, 이거 공대생이 보기에 진짜 별거 아니잖아요. 그, 뭐냐, 과학동아 연재 ‘친절한 우아씨의 똑똑한 데이트’? 거기 쓰기도 민망한 수준의. 근데 여자애가 막 ‘오빤 그런 걸 어떻게 아냐. 진짜 멋있다. 천재 같다’ 이러면서 저를 치켜세워 주는 거예요. 그 하얗고 예쁜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면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가슴이 막 쿵쾅쿵쾅 거리고. 기분 좋고. ‘얘가 나 좋아하나?’ 이런 생각 들면서 설레고. 자려고 누우면 눈 앞에 어른거려요. 선배, 저 진짜…, 어떡해요? 난 여자가 있는데…
 

고기는 복사 열 나오는 숯불에 구워야 제맛(그렇게 2시간 후. 소년, 탁자를 내리치며 주정을 부린다.) “이모, 이모! 여기 숯불 줘요, 숯불! 가스불로 구우면 고기가 맛이 없단 말이에요~.” (선배, 소년의 손을 붙들고 말린다. 하지만 소용 없다.) “가스불은 공기를 뜨겁게 데우는 대류 방식! 숯불은 무슨 방식이게~요? 헤헤헤. ^0^” (선배, 이마를 손으로 짚고 고개를 숙인다.) “숯불은 불이 훨씬 더 빨갛게 보이잖아요~. 그렇게 빛으로 나오는 열이 복사열이에요.” (선배, 포기한 듯 대꾸한다.) “그래서, 복사열로 구우면 고기가 왜 더 맛있는 건데?” “이건 비밀인데…, 형만 알려줄게요! 복사 방식은 대류 방식보다 더 빨리 뜨거워져서 고기를 순식간에 익혀요. 겉은 바삭하게 익으면서 속에 육즙이 그대~로 남는다고요. 그럼 구이판에 굽는 건 뭐냐고요? 헤헤헤, 그건 고체를 통해서 열이 옮겨지는 거니까 전도지요! 그러니까 숯불 줘요, 숯불! #$%^&*(*” (소년, 탁자 위로 철퍼덕 쓰러진다. 침을 흘리며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김대리…, 볼링공으로 아주 그냥…. 난 여자가 있는데~. 김대리…, 볼링공으로 아주 그냥…. 난 여자가 있는데~. @#$$$^”
 

2015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 일러스트

    허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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